치아가 튼튼함도 타고난 복이라 한다. 나와 집사람은 둘 다 이가 튼실하질 못해 유감이다. 수 년 전 치과를 개원한 처조카가 있다만 먼 곳이라 우리 내외는 동네 치과에 다니고 있다. 시월 첫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다. 퇴근해 현관에 들어서니 집사람은 바깥에서 저녁을 들었으면 했다. 치과 진료를 받고 지친 집사람은 상을 차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선뜻 그러마고 동의했다.
사실 우리 집은 외식이 드물어 한 해가 가도 손가락으로 꼽아 헤아릴 정도다. 그렇다고 내가 밖에서 무엇을 잘 사다 나르는 정 도타운 위인도 아니다. 나는 산책 나갈 가벼운 차림으로 운동화를 신었다. 집사람도 간편한 차림으로 따라 나섰다. 집사람은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많이 고프다고 했다. 그럼 이르지만 저녁식사부터 하고 용지호수를 한 바퀴 둘러 돌아오자고 했다.
집사람은 내가 고기에 마음 없음을 잘 아는지라 식당 선택권을 나한테 미루었다. 예전 도지사관사를 지날 즈음 나는 한정식을 떠올렸다. 아내는 집에서 늘 먹는 토속차림은 시큰둥해했다. 도청 후문서 머지않은 곳에 있다는 해물 찜을 하는 곳을 안다고 했다. 나도 집사람 생각에 뜻을 같이 하고 보도블록 따라 걸었다. 가을을 맞아 청청한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조금씩 빛이 바랬다.
집에서부터 걸어 용지동민의집을 지날 때였다. 집사람도 잘 아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사람은 통화내용을 물어보지 않아도 훤히 꿰뚫었다. 친구와 둘이 퇴근길 소주잔을 부딪혀보자는 제안임을 금방 눈치 챘다. 시내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로 오십 중반 나이에도 대단한 학구열로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중이다. 젊은 날 교육민주화운동을 하다 교단서 밀려났다 복직했다.
친구는 우리 내외의 아주 드문 시간을 기특해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묻더니만 가까운 곳 도가니탕 잘 하는 집을 추천해주했다. 그럼 우리 내외가 그곳으로 갈 테니 친구도 와서 함께 자리하자고 했다. 우리 내외는 낯선 식당으로 들어서 도가니탕을 처음 맛보았다. 근래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집사람이 권하고 친구와 함께한 소주 안주로 곁들인 좋은 자리를 가졌다.
내가 젊은 날 밀양에 근무하면서 대구의 야간강좌 대학을 다닐 때 친구를 만났다. 내보다 나이가 위지만 서로는 격의 없이 지낸다. 친구는 연극인 손숙과 가까운 일족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가세가 기운 밀양의 명문가였다. 친구는 손위 형님이 사정이 있어 맏이가 아니면서 기제사와 명절차례를 지낸다. 우리는 자연스레 추석은 어떻게 쇠고 성묘는 어떻게 하였는지 안부를 나누었다.
다음 화두는 건강과 이이들이 커 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와 대학 동기이기도한 친구의 부인도 건강이 좋지 않아 염려가 되었다. 친구도 나처럼 아들 녀석만 둘을 두어 집안이 좀 썰렁하고 삭막하지 싶다. 비록 친구 부인과 동석한 자리가 아닐지라도 셋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우리가 이른 시각 저녁자리를 가져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도 날이 그렇게 어둡질 않았다.
셋은 롯데아파트 앞 은행나무 가로수거리를 걸어 용지호수로 갔다. 우리 아파트 불빛이 바라보이는 용남초등학교에 이르러 집사람은 보냈다. 친구와 나는 공원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 용지호수를 둘러 다시 우리 아파트상가로 갔다. 둘은 식품가게 안에 위치한 횟집으로 들었다. 손님이 많이 다녀가 수족관 전어는 모두 동나고 돔만 있었다. 생선회를 안주 삼아 소주잔이 더 오갔다.
둘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친구는 그간 매사 강한 의협심으로 몸 사리지 않고 실천으로 옮겼다. 지나친 열정과 적극성은 주변 사람의 경계가 되기도 할 법했다. 이제 흐른 세월 따라 두터웠던 사명감도 엷어졌다. 넘치던 용기와 기백도 꺾여가는 즈음이다. 우리는 서로의 빈 잔에 ‘좋은 데이’를 채워가며 밤이 이슥하도록 마주 앉았다. 시월 첫날에. 1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