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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로
2009년 3월 17일 (화) 맑음
여제 저녁에 마신 술이 과했는지 몸이 맑지 않았다. 아침 운동을 하고 여관 부근을 산책하였다. 아침식사는 서울서 온 전직 교사가 사 주었다.
시내 산책을 끝내고 여관에 돌아와서 로비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청각장애인이 내가 오늘 저녁에 하노이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서운했던지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자기가 일본에 돌아가면 부모님에게 내 얘기를 하고 내가 일본을 방문할 경우에 자기 집에서 묵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포사회에서 알아주는 서예가라고 하였다. 하여간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서울서 온 전직 교사는 왕위앙으로 떠났다. 그는 루앙 프라방까지 갔다가 하노이로 간다고 하면서 연이 닿으면 또 만나자고---.
라오스에서 아름다운 산과 불교 유적지와 소수민족들의 생활 등등 볼거리 그냥 남겨두고 떠나기가 아쉽다. 라오스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이 많다. 보름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내가 다닌 여행지 가운데에서 가장 순박한 사람들로 느꼈다. 라오스의 산들이 대부분 부드럽고 완만하다. 그런 지형적 특성이 사람들의 심성 형성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인가.
한국인들(외국인)이 위앙짠에 꽤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라오스에서 사업을 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한다. 토지 건물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임대료도 현지인들의 2배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등 현지인들보다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이 위앙짠에서만 400여 명이 각종 사업을 하고 있다니, 뭔가 이익이 있으니까---.
오후 여섯 시에 여관 앞에 온 서비스 차를 타고 남부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거기서 하노이로 가는 국제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가 대우에서 생산하여 한국에서 사용하던 중고차였다.
터미널에 줄지어 서 있는 버스를 보니 많은 수의 버스가 우리나라에서 중고품으로 팔려나온 것들이었다. 버스에 쓰인 회사명이 한글로 쓰인 것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자칫 우리나라의 한 버스 터미널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만하다.
2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데 걱정이 된다. 그러나 한번 부딪혀 보자.
버스가 저녁 19시에 남부 터미널을 출발해서 24시 경에 국경 부근에 도착하여 밤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에 국경으로 이동하여, 출국과 입국 수속을 승객 각자가 밟기 때문에 국경 통과에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런 시간을 모두 계산해서 24시간이라 하니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태국의 치앙콩에서 훼이싸이까지 같이 와서 해어졌던 스페인 사람 Borja Rocha 커플을 만났다. 루앙 프라방의 길에서도 잠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하노이 가는 버스에서 또 만났다. 그들이 먼저 나를 보고 반갑게 찾아와서 하노이에 같이 가게 되어서 반갑다고 인사를 하였다.
버스에서 눈을 감고 지금까지 지나온 경로를 더듬어 보았다.
훼이싸이에서 슬로 보트를 타고 메콩 강을 따라 오다가 빡맹에서 1박하고, 루앙 프라방에 1박 2일 만에 도착하였다. 슬로보트를 타고 오는 동안 이르는 곳마다 색다른 강변 풍경에 마음이 빼앗겨 지루하지 않았다.
루앙 프라방에서 왕위앙으로 오는 길에서는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또 다른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산줄기를 타고 올라간 자동차가 저 아래 계곡을 까맣게 내려다보면서 산마루를 타고 이리저리 돌았다. 버스의 진행 방향이 이 산마루에서 저 산마루로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았다.
산등성이에서 골짜기로 내려서서도 1시간 이상 내리막길을 달려서 앙위앙에 도착하였다.
왕위앙에서의 카약과 점핑 자전거 트레킹과 케이브(Cave) 탐사(探査), 위앙짠에서의 2일간의 유숙 등 라오스에서의 일정이 뒤로 밀려났다.
이제 베트남으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산길을 어즈러이 흔들면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2009년 3월 18일 (수) 구름
오늘은 하루 종일 흐렸다. 라오스 국경 부근의 소도시에서 출발하여 국경을 통과하고 베트남 지역에서 9시경에 하노이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라오스 국경 관리 사무소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걸어서 베트남 입국 관리 사무소까지 왔다.
입국 수속을 하는데 외국인들에게 2만 동을 받고는 영수증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부당하게 받는 돈 같았다.
라오스의 Kaew Neua에서 국경에 닿았을 때까지는 버스가 평지길을 달려온 것 같았는데, 베트남 국경 검문소에서부터 Vinh이란 곳까지는 차가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골짜기의 험준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내려가서 저평 지대에 닿기까지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로보아 우리가 빠져나온 골짜기가 심산유곡(深山幽谷)임에 틀림없다.
골짜기를 빠져 나오니 평야지대의 농촌 마을들이 보였다.
Vihn시내로 들어선 시각은 11시 05분, 이때부터 베트남의 농촌 풍경을 보면서 하노이로 달렸다. 넓은 들판에 수확이 끝난 횡한 벌판이 많이 보였다. 간혹 논에서 모내기 하는 모습도 보였다. 베트남의 농업은 쌀농사 중심인 것 같다.
라오스와 베트남의 국경지방에서 험한 골짜기 길을 벗어나서 베트남의 Vihn에 들어설 때까지는 차가 몹시 흔들렸는데, Vihn에서부터 하노이까지는 길은 곧고 노면이 골라서 차가 이리저리 쏠리지 않고 덜컹거리지도 않았다. 도로 사정이 라오스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왕복 2차선인 이 도로는 베트남의 남북을 잇는 중심도로인데, 우리나라의 시골길과 같다.
베트남에서는 지금 한창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도로 확장 공사와 큰 교량 공사, 도로변의 크고 작은 공장들, 우뚝우뚝 솟아오르는 건축물이 간단없이 나타났다.
한편 산업 육성책이 불러들인 자연파괴 현장도 목격되었다. 강물의 오염, 보기 흉하게 파헤쳐놓은 산의 모습, 여기저기에 방치해놓은 산업 쓰레기, 공장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시커먼 연기 등등 산업 육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하노이 시외버스 정류장에 7시 지나서 도착하였다.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가지 전에 어떤 여인이 버스에 올라와서 외국여행객들에게 접근하여,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밀집 지역에 있는 자기 호텔까지 미니버스로 데려갈 터이니, 가서 호텔의 시설을 보고 가격 대비하여 이용 여부를 결정하고, 만약 자기 호텔을 이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미니서스 운임 1$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노이에서 여관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요즈음은 관광시즌이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저녁 늦은 시각에 배낭을 메고 여관을 찾아 돌아다니기가 그렇고 해서 그 호텔에서 묵기로 하였다. 스페인 Borja Rocha 커플도 오늘 하루 자고 내일 하롱베이로 갈까 생각중이라 하였다. 남자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서로 커플이 상의한 다음 그녀가 결정한다고---.
퇴근 시간 - 오토바이불결이 이루어지는 시간의 하노이의 거리 모습
2009년 3월 19일 (목) 구름
지난 밤에 빨아놓은 옷이 마르지 않아 선풍기를 틀어놓고 말렸다.
아침 식사는 빵으로 대신하고 바로 여관을 나와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여행사 VIKO TRAVEL을 찾아갔다. 다른 여러 여행사를 찾아가서 Tour에 대한 것을 알아보고 VIKO에 찾아갈까 하다가, 현지인의 투어에 참가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도 있고, 한국인이 하는 여행사가 좀 비싸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지만 큰 가격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해서 한국인이 하는 투어를 신청하였다.
사파 투어(Sa Pa Tour)는 3박 2일에 95$(1박은 소수민족 Ta Van의 자오 족 마을에서 홈 스테이, 2막은 열차 안예서), 하롱베이 투어(Ha Long Bay Tour)는 20$이었다. 예약을 하고 바로 호텔로 가서 짐을 찾아 VIKO에 맡기고 시내 구경을 하면서 거리를 익혔다.
우선 하노이 역의 위치를 미리 알아두기 위해서 큰 길에 나서 하노이 역을 찾아갔다.
한노이 역
Dinh Tien Hoang을 따라 가다가 Hang Bai를 지나서 Tranhung Dao로 꺾어져 한참 동안(10분 정도)걸어가면 하노이 역사(驛舍)가 보인다. 역사를 찾아가다가 큰 쇼핑 몰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모여 있는 고급 백화점이었다. 긴 팔 T를 하나 구입할까 하고 들어갔으나 적당한 것이 보이지 않아 그냥 나왔다.
역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으나 길이 혼잡하고 먼지와 매연 때문에 걸어 다니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쉽게 피곤해졌다. 하노이 역사 앞에 있는 싸구려 음식점에 들어가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맥주도 곁들여 마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쉽게 지름길을 찾아서 왔다.
호안 끼엠 호수 가까이에 있는 St Joseph Cathedral에 들려 성모경을 바치고 한 동안 마음을 가다듬어 기도하고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성 요셉 성당
성당을 나와 혁명 박물관에 갔다.
혁명박물간은 간략한 고대 월남사가 있고 주로 공산당 혁명사였다. 내 관심사는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을 어떻게 다뤘는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1965년 월남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전을 결정했다는 사진 3장이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여행사에 들러 그런 얘기를 했더니 많은 자료가 전시되었었는데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따라 우리나라에 대한 나쁜 인상을 주었던 자료들을 거둬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하였다. 국가 경제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적대적 감정을 거둬내고 그 자리에 관계개선이란 현실적인 문제를 택했을까?
혁명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초기 월맹군의 기()
혁명 박물관에 있는 단두대
혁명 기념관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 한 아리따운 여인이 한국말로 인사를 하면서 애교스럽게 다가오더니 나의 신상에 대하여 묻기도 하고 하노이의 구경거리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내 몸에 밀착하여 걸음걸이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기 사정을 애기하면서 돈이 필요하니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난한 장기 여행자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겨우 돌려세웠다.
여행사에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하노이에는 그런 식으로 외국여행객의 돈을 갈취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니 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길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여인이 나의 어깨에 막대기를 올려놓는 게 아닌가! 막대기 양 끝에 파인애플을 매달고 다니면서 파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아 줄 터이니 파인애플을 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가지 쓰고 팔아주었다. 조심.......
호안끼앰 호수가의 벤치에 앉아 쉬면서 7시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호안끼앰 호수와 그 주변
호숫가에 앉아있으니 남녀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로 아주 좋아보였다.
호안끼앰 바로 옆의 도로
7시30분 여행사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 하노이 역으로 갔다.
열차의 객실 앞쪽에 현지인인지 중국인들인지 무척 시끄러웠다. 그들은 내가 들어있는 칸의 문을 노크도 하지 않고 획 열고는 쾅 닫거나, 아예 확 열어 제켜놓고는 그냥 가는 사람도 있었다. 내 침실이 있는 칸에 그들의 일부가 들어오면 좀 시끄럽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프랑스인 Frank와 Gerome가 들어와서 다행이었다. 그들은 나에 대하여 상당히 호감을 보여 더욱 좋았고 편안한 잠자리가 될 수 있었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 책을 보다가 그만 깊은 잠에 빠졌다.
첫댓글 스승님! 베트남 관광까지 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