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道>
--일본 문화의 복합결합체-
와비차의 완성자라고 하는 센노리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대망(大望)>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20권 짜리 장편 소설의 중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이 인물은 사카이 항의 상인 출신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이자 조언자로서 폭넓은 지식과 소양, 뛰어난 안목에 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죽음을 불사하는 소신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대검을 휘두르며 전국을 호령하는 용맹한 무사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망>에서 그의 캐릭터는 상당히 개성적인 것이었다. 비록 무력을 지닌 인물은 아니지만, 지략과 신념 그리고 찻잔 하나로 간빠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 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결국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 자결함으로서 더 이상 <대망>에는 등장하지 않게 되지만,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다성’으로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주저 없이 그가 모든 걸 바쳐 이뤄내고 지켜온 ‘다도’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이유는 단순히 목마름을 달래려는 생리적인 욕구만은 아니다. 사람이 즐기는 음식들이 그렇듯이, 물을 마시는 것도 단순히 목을 축이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개발하여 더욱 맛있는 음료를 추구하며, 그것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프랑스의 포도주 문화나, 독일의 맥주 문화, 한, 중, 일 삼국의 차 문화는 모두 이런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인들이 차를 마시는데 기울이는 관심과 마시기 위한 문화적 격식들은 이방인의 시각에서 볼 때 정말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차는 원래 부처님에게 공양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에서 유래되어 약용으로, 스님들의 음료로 쓰였다는 점은 한, 중, 일 삼국의 공통적 특징이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전문 다도인들이 등장하여 격식과 절차를 만들어가면서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가 아닌 하나의 도(道)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다인들에 의해 차를 마시는 때와 장소, 그리고 차를 달이고 접대하는 절차가 일일이 정해졌고, 불교의 선 정신과 불교의식을 다도의 정신세계와 의식에 응용해서 다도들 통해 정신 수양을 꾀하고자 했다. 즉, 다도를 통해서 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선의 경지란 다도의 경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 싹텄다.
다도에 주목할만한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의 여러가지 문화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다실 밖에는 일본인의 우주관, 세계관을 엿 볼 수 있는 정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다실은 그 자체로 일본 건축 양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도의 소박한 멋을 나타낸다. 다실 내부의 간결한 멋과 족자, 꽃꽂이 등의 장식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독립된 문화로 손색이 없는 것이며, 다도의 찻잔, 주전자 등의 공예품 역시 완성된 하나의 문화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다도를 주최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주인의 발동작과 움직임 하나 하나가 일본 전통극 ‘노’의 그것과 같다고 하니 다도는 그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의 결합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정원
일본인은 예부터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꾀하였는데, 자연을 또 다른 형태로 실생활 속에 옮겨와 감상한 것이 일본의 정원이다.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정원은 공통적으로 자연의 경관을 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수목이나 석재 등의 정연한 배치에 의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서양식 정원과 대조된다. 그렇지만 자연의 경관미라 하더라도 일본의 정원은 한국과 달리 자연의 재료를 이용하여 자연의 산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이들이 하나의 조화를 이룬 인공적 공간미를 일천년에 걸쳐 추구해 일본 특유의 정원문화를 이루었다. 집안에 자연 세계를 들여놓는 이러한 정원에는 일본인의 폐쇄성, 작위성, 축소지향성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의 정원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아스카 시대의 정원은 큰 연못에 섬을 만들어 바다를 상징화 했고, 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아 중국식의 돌분수와 석교가 나타나기도 한다. 헤이안 시대의 정원은 귀족풍의 매우 호화롭게 장식되었으며, 10세기에는 불교가 확산되면서 불교식 정토를 표현한 중앙의 섬과 육지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연못식 정원이 유행했다.
일본의 정원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선종의 영향을 받은 무로마치 시대의 카레산스이 라고 하는 정원양식이다. 돌과 모레 만으로 이루어진 이 정원은 돌과 모레만으로 산수를 표현함으로서 매우 추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실의 정원에는 고요한 정신세계가 깃들어 있다. 센노리큐가 가르친 다도의식과 함께 발달한 이 정원은 인공적인 요소를 피하고 자연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차름 대접하는 다실과 이어져있다. 오늘날의 일본 정원은 돌길, 석등, 나무 등과 같은 다도 정원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장소인 단순한 모양의 전망대도 이 다도정원에서 유래되었다.
(2)다실
일본의 다실은 한칸짜리 작은 초가집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집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단지 최소한의 심미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 뿐 일체의 호화로운 장식은 배제된다. 다도의 정신은 16세기부터 일본의 건축양식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일본의 실내장식이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하며 간단하여 마치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다실의 외관은 무척 작으며 평범하게 보인다. 건축재료 또한 그들의 소박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수수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소박하기 그지없이 보이는 다실에 나름대로의 심원한 예술사상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 세부적인 설계라든가 심혈을 기울이는 정도가 대단히 호화로운 궁궐을 지어내는 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3)꽃꽂이
꽃꽂이의 역사는 이미 15세기경, 일본의 가옥에 도코노마라는 독특한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결국 도코노마에 서화를 걸고 꽃꽂이를 장식해서 감상하는 것이 마음의 평온의 장이었다. 이것이 16세기경부터 다도가 번성하게 되자, 다실에도 도코노마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벽에는 족자를 선반에는 꽃꽂이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꽃꽂이는 다실의 꽃(茶花)으로 확립되었고 겐로쿠 시대에는 다도에서 자립하여 일반 서민 계층에게 보급되었다.
오늘날의 꽃꽂이는 여성들이 결혼하기 전, 다도와 함께 교육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일본의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꽃꽂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4)공예품
일본은 삼국으로부터 청자등을 전래 받으면서 아스카 시대에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도기가 만들어진 것은 가마쿠라 시대로 무로마치시대와 전국시대를 거쳐 도요토미히데요시와 센노리큐의 다도문화를 만나면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때 히데요시의 조선침공으로, 이참평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 도공들이 끌려와 일본 도예의 뿌리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천대받는 도공인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적국에서는 귀족의 예우를 받으며 자기 굽기에 몰두할 수 있었기에, 400년이 지난 오늘, 일본의 도자기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일본의 도예 작가들은 전통의 보존과 그것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가장 일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감각과 안목을 가진 많은 작품들을 창조해 내고 있다.
특히 다도에서는 와비의 미라 하여,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비대칭적이고 불완전한 것에서 느끼는 미의식을 으뜸으로 했는데, 센노리큐가 꽃병의 귀를 떼어낸 일화는 와비의 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다도는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문화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한동안 쇠퇴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명 정치인이나 경제인사이에 복고적인 미술품 수집 붐과 함께 일본의 전통문화인 다도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붐은 다도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된다.
20세기 초, 다도는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다도는 곷꽂이와 함께 현대 여성의 필수적인 교양 예법으로 자리잡게 되자, 여자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다의과가 개설되어, 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도를 지도하게 되었다.
오늘 날 다도의 각 유파는 정통의 수장인 이에모토를 정점으로 수백만 명의 문하생을 거느리고 일본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도는 일본인들의 생활 예술로서, 전통적인 일본인의 생활문화로서 그 가치가 점차 높이 평가되고 있는 한편, 일본 정신문화의 특질을 잘 드러내는 문화요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