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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산스님법융스님고무신 원문보기 글쓴이: 고무신
아야~ 우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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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묘비명은
옛날부터 시니컬한 시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되어 있다.그래서 가장 흔한 묘비명은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교훈적이고 철학적인 문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이다.
박수근 (서양화가, 1914~1965)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박인환 (시인, 1926~1956)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방정환 (아동문학가, 1899~1931)
'동심여선(童心如仙) - 아이 마음은 신선과 같다'
오상순 (시인, 1894~1963)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
이호우 (시조시인, 1912~1970)
'여기 한 사람이 이제야 잠들었도다'
조병화 (시인, 1921~2003)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정약용 (문신, 1762~1836)
'네가 너의 착함을 기록한 것이 여러 장이 되는구려 (중략)
힘써 하늘을 밝게 섬긴다면 마침내 경사가 있으리라'
중광스님 (속명 고창률, 별명 걸레, 승려,화가, 1935~2002)
'괜히 왔다 간다'
최북 (화가, 1712~1786?)
'아아, 몸은 얼어 죽었어도 이름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으리로다'
최영 (무관, 1316~1388)
'위엄을 떨쳐 나라를 구할 때 백발이 성성했구나'
허목 (학자, 1595~1682)
'말은 행실을 덮어주지 못하였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도다'
디오판토스 (그리스 수학자, 246?~330?)
'보라! 여기에 디오판토스 일생의 기록이 있다'
마타하리 (스트립 댄서 / 스파이, 1876~1917)
마르가레테 게르투르드 젤러(마타하리의 본명)
셔우드 앤더슨 (소설가, 1876~1941)
'죽음이 아니라 삶이야말로 위대한 모험이다'
장 드 라퐁텐 (시인 / 동화작가, 1621~1695)
'장은 밑천과 수입을 모두 탕진하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노라'
키르케고르 (철학자, 1813~1855)
'잠시 때가 지나면 그때 나는 승리하고 있으리라'
프랑수아 비용 (시인, 1431~1463?)
'아무 쓸 데도 없는, 머리가 돈 부랑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대지에 몸을 되돌렸다'
그런데...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이 끝이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꿈을 가졌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조금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누구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했을지."
정말, 인생을 다시한번 돌아 보게 하는 묘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