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차시현]
지난 2월 19일(금) 롯데콘서트홀에서 2021 서울시향과 임동혁의 스크랴빈 피아노 협주곡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보리스 블라허(Boris Blacher), 알렉산드로 스크랴빈(Aleksandr Scriabin), 그리고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와 같은 근현대 작곡가의 곡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과 함께, 지휘자는 윌슨 응(Wilson Ng), 피아니스트 임동혁(Dong Hyek Lim)이 협연자로 자리했다.
간결한 시작과 광란의 마무리, 블라허의 파가니니 재해석
첫 번째 프로그램은 보리스 블라허의 ‘파가니니 주제에 대한 교향악적 변주곡’. 곡의 정체성을 밝히고 시작하듯 악장의 솔로 연주로 시작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모르는 사람을 더 찾기 어려운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도입부 주제가 들려오니 모두가 파가니니의 곡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킨 채 출발한다.
악장의 단단하면서도 모두의 집중을 모으는 다이나믹 대비가 큰 주제 솔로를 시작으로 주제의 열여섯 개의 변주가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변주에서 특정 악기들의 멜로디 솔로가 나타나는 등 여러 악기가 돌아가며 협연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두드러졌다.
현악이 한 파트씩 쌓여가며 화음을 완성하고 어우러지는 음색을 완성해나가는 모습과 관과 현이 때로는 둘로 나뉘어져 변주 속 주선율을 주거니 받거니하는 등 다양한 변주가 등장한다. 블라허가 굉장히 각 악기들의 음색을 잘 활용해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시향은 그 사실을 청중이 납득하도록 연주한다. 그들은 작곡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러한 효과들을 적절한 음량과 울림으로 만들어낸다.
뒤로 갈수록 드러나는 블라허의 대중음악적 취향으로 재즈가 들려온다. 클래식과 재즈 그 사이를 넘나들며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주제선율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악마의 재능을 지녔다 불리우는 파가니니의 명성에 걸맞게 광란의 강렬한 마침표와 함께 곡이 마무리된다. 원곡의 바이올린 음색만으로 즐기던 변주곡을 다양한 악기로 즐길 수 있음은 다양한 효과와 색채를 좋아하는 이에겐 안성맞춤인 변주곡이라 할 수 있겠다.
2부의 화가 마티스 교향곡. 1악장의 천사들의 합주에서는 초반에 부드럽게 깔리는 금관의 소리에 얹어진 현의 높은 고음은 천상의 소리를 상상하게끔 했다. 찬란한 햇빛같은 현의 고음이 구름같은 금관의 소리 사이에 끼어들어 계속해서 눈부시게 했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를 기반으로 한 만큼 3악장까지의 주인공의 방황, 그리고 다시 제 자리를 찾아 믿음에 이르기까지를 상상하게끔 하는 곡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감정을 과도하게 이입한 것이 아닌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고 서술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그림을 바라보고 얻는 심상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맹렬하게 다가와 잘게 부셔지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섬세한 완급조절
스크랴빈의 작품들을 들어오긴 했지만 스크랴빈의 피아노 협주곡은 사전에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협주곡 외의 스크랴빈의 음악을 몇 번 들어보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임동혁 피아니스트의 인터뷰를 살펴보았다. 스크랴빈의 음악이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협주곡만은 예외라는 그의 스크랴빈 협주곡은 어떨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터치는 맹렬하게 다가와 잘게 부셔지는 파도와 같았다. 섬세하면서도 그 간극이 큰 완급조절이 인상 깊었다.
고음에서의 그의 터치는 영롱했다. 롯데 콘서트홀의 홀음향과 이 곡이 가진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여길 만큼 그 음색을 잘 울려낸다. 특히나 반야드 형태의 홀이라는 강점이 서울시향의 오케스트라 음향에 얹어진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섬세한 터치로 우러나오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극대화해준다.
2악장의 약음기 낀 현악의 음색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세피아 톤의 장면을 연상하게끔 한다. 그런 향수에 젖은 듯한 톤의 현악의 멜로디 진행에 곁들여져 있는 듯하면서 동시에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피아노의 음색 조화가 아름답다. 점점 농도가 짙어지는 그의 터치 무게감은 뿌옇게만 보이던 과거 회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마치 3악장에서 그 그림이 완벽하게 선명해질 것이라고 알려주듯이.
고요한 공기 속 피아노의 마무리 음의 울림이 퍼지는 정적의 시간만큼은 침 삼키는 소리도 울려퍼질까 숨을 죽이고 모두가 그 음악의 마무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울림이 없어질까 하는 찰나 곧바로 이어지는 3악장의 ‘적당히 빠르게’는 곡의 마무리 악장답게 강렬함이 드러난다. 론도의 반복되는 피아노의 멜로디를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울림과 함께 전달되는 온기
거리두기로 인해 객석은 조금 비어 있는 홀임에도 불구하고 그 빈 공간을 메꾸는 서울시향의 열정의 온기가 느껴진다. 화가 마티스 교향곡의 믿음에 이르는 주인공처럼 번민을 극복하길 바라는 메시지가 울림을 타고 온기와 함께 전달되었다. 서울시향의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파도가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잔뜩 성난 파도가 아닌 강하게 다가오지만 결국에는 잘게 부셔지며 우리의 살갗을 적셔주는 파도의 울림이 느껴졌다. 따뜻한 울림의 파도였던 것이다.
2021년에도 다양한 연주자들과 프로그램과 함께, 특별한 메시지를 울림을 매개체로 우리에게 전달할 서울시향의 행보가 기대된다.
[공연정보]
공연명: 2021 서울시향 임동혁의 스크랴빈 피아노 협주곡 ①, ②
공연일시: 2021년 2월 18,19일(목,금) 저녁 8시
공연장소: 롯데 콘서트홀
지휘자 윌슨 응(Wilson Ng)
협연자 피아니스트 임동혁(Dong Hyek Lim)
[프로그램]
블라허, 파가니니 주제에 대한 교향악적 변주곡
Blacher, Orchestral Variations on a Theme of Paganini
스크랴빈, 피아노 협주곡
Scriabin, Piano Concerto in F sharp minor, Op. 20
(협연자 앙코르곡) Scriabin, Piano Etude no.12 op.8
-Intermission-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교향곡
Hindemith, Mathis der Maler Symphony
차시현 withinne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