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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싱그러운 딸기의 향과 맛에 취하다. 봄나물의 향연 / food essay_미각의 즐거움
ysoo 추천 0 조회 61 17.03.27 23: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food essay_미각의 즐거움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봄, 봄, 봄,
향긋한 봄나물의 향연

 

음식에 대한 가장 탁월하고도 자세한 묘사로 유명한 시인 백석의 ‘가즈랑집’이란 시에 들어 있는 대목이다.

참 다양하게도 먹었다 싶다.

첫 줄에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등도 모두 나물이고 밑에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도 나물이다.

내가 이 시를 우연히 읽으면서 든 생각은 “별걸 다 먹는다”였다. 그랬다. 우리는 정말 산하에 나는 모든 것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석의 시에는 다분히 그것을 미각의 처지에서 맛으로 먹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상은 생존의 측면이 더 컸다.

인구는 많고 먹을거리는 적은 조선 반도에 사는 이들의 숙명이었던 것이다.

 

나물이란 본디 푸성귀를 날것 또는 말리거나 가공해서 먹는 반찬의 총칭이다. 꼭 산에서 나는 것만 아니라 콩
나물이나 무나물, 시금치 등도 가장 흔한 나물에 속한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래도 산나물을 나물답게 느낀다. 그래서 3월만 되면 나물 맛 좀 아는 사람은 몸이 들썩인다. 어디 강원도 두메의 나물 맛 좀 볼 수 없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기실 강원도의 산나물은 아직 이르다. 이즈음의 나물은 오히려 한 해 전에 갈무리해서 말려둔 것을 꺼내 먹는 시기다. 그런데 이 말린 나물이야말로 이 봄의 진객이라 할 수 있다. 춘궁기, 쌀도 떨어지고 양식거리가 없어질 때 비로소 상에 오르는 나물이기 때문이다. 고사리와 더덕, 고비, 여러 가지 취나물은 물론이고 참나물, 명치, 보시대 같은 말린 나물로 국을 끓이고 물에 불려 무쳐 낸다. 들기름이 귀할 때는 그저 된장에 슬슬 무치기만 해도 좋은 반찬이었고, 보리에 섞어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나물은 말리면 맛이 더 좋아질 뿐 아니라 영양도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수분이 적어지니 영양이 농축됨은 물론이고 말리는 동안 햇빛과 바람에 맛이 더 깊어진다. 쓰고 비린 맛이 줄어들고 고소한 맛이 강조된다.

 

그렇다고 막 따거나 캐서 먹을 나물이 산에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에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철마다 내가 하는 식당으로 뭘 보내는데, 해마다 봄이면 기다려지는 게 있었다.

언젠가 나물 같지는 않고 솜털이 숭숭 난 나무의 새싹 같은 걸 보냈다. 처음으로 그걸 받은 때다. 냄새를 맡아봐도 별것이 없고, 이게 뭔지 싶어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어디 산중에 있는지 불통이었다.

마침 일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있어 물으니 환하게 반색하시는 게 아닌가.

 

“두릅이오, 두릅.”

 

투박한 북방 언어로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먹느냐니까 대뜸 끓는 물에 데치더니 된장을 찍어 내민다.

아아, 그 고소하고 씁쓸한 향이라니. 거짓말 좀 보태면 봄에 땅기운이 슬슬 풀리고, 푸슬푸슬하게 흙냄새가 일어나는 그런 냄새였다. 알고 보니 이게제법 인기 있는 나물인지라 장바닥에도 꽤 깔렸다.

그런데 시장 물건은 땅두릅이라고 하여, 나무에 달린 제대로 된 두릅과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사서 먹어보니 과연 친구가 보내준 두릅과는 맛이 다르다. 두릅은 따기에 알맞은 시기가 있어 조금만 지나면 억세져서 쓴맛이 지나치게 돌고 식감이 나빠 못 먹는다고 한다. 날래게 찍어둔 나무들에서 따야 하는데, 이 두릅 맛이 알려지면서 산이 조금 힘들어한다는 얘기도 있다.

나무도 순이 달려야 잎이 무성해질 텐데 모두 달려들어 두릅이라고 꺾어버리니 산이 밟혀서 신음한다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국내의 여행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후배가 있는데 봄철이면 사업을 팽개치고 싶다고 한다. 관광버스를 대놓고 임자가 있든 없든 사람들을 풀어 나물 여행이라고 산을 다 밟아놓는다는 것이다.

야, 나물 많다고 하며 손님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곳은 또 대개 나물밭인 까닭에 속이 쓰리다는 말이었다. 촌에서 나물은 밭작물처럼 하우스 치고 농사짓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그 씨를 산에 뿌려두고 기르는 것인지 저절로 자라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기르는 까닭이다.

 그러니 산을 다니다 취나물이며 맛있는 나물이 지천이면 이건 대개 기르는 것이므로 조심스레 피해갈 일이다.

 

국토가 작아서 한 발 거리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은근히 기후가 다르고 풍토도 차이가 난다.

 

출장 다닐 때 두꺼운 파카를 입고 갔다가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티셔츠 바람으로 돌아다닌 적도 좀 많은가. 서울은 싹도 잘 안 보이는 동절 같아도 남도에선 동백이 이미 지고 매화가 피고 있더라는 건 이미 몸으로 겪어본 일이다. 냉이와 쑥이 그렇다. 시장에서 쑥을 보고 ‘야, 요샌 쑥도 기르나 봐요’ 했다가 아주머니에게 혼났다.

누가 쑥을 기르느냐고. 쑥이야말로 다 자연산이라고 지청구를 들은 것이다.

서울이 영하 몇 도네 했을 때 남도의 섬에서 막 싹을 돋우는 것이 쑥이다. 모르긴 몰라도 쑥은 워낙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양도 많기 때문에 노인들이 심심풀이로 캐기가 좋아 굳이 재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쑥으로 봄을 온전히 보내는 게 내 취미가 된 지 오래다. 쑥 냄새는 맡으면 혼곤하게 봄으로 나를 잡아끈다.

 

봄에 뭔 꽃이 제대로 있겠으며, 새벽은 아직 시퍼렇게 칼바람을 불어대는 게 분명하니 말이다.

손등이 다 터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자욱해지는데 쑥은 문득, 갑자기 봄 차림을 하고 수수하게 요염을 떤다. 내 향 좀 맡아주셔요.

우리 전 시대의 유명한 미식가인 홍승면(1927~83) 선생은 쑥의 향과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수줍듯이 향긋하고 결코 수다스럽지 않은 오순도순한 냄새에 비하면, 맛은 스스로를 감출 줄 모르는 솔직하고 분명한 쑥떡이었다….”

 

내 혀가 망가진 것인지 풍토가 홍 선생의 그 시절과 다른 것인지 어째 쑥이 제 향과 맛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나를 탓할 일이겠지. 나의 쑥에 대한 풍미는 40년도 넘어서 입에서 젖내가 나던 시기니, 그때의 촉촉한 코와 혀가 지금 있을 리 만무함이 아닐까.

 

오래된 동요 한 자락이 생각난다. 가락은 생각이 나는데, 가사가 가물가물해서 찾아 보았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캐오자….”

 

병아리 입을 하고 동무들과 교실에서 꽥꽥 불러 젖힌 동요다. 한 교실에 팔십 몇 명씩을 때려 넣은 교실에도 그렇게 봄이 있었고, 풍금 소리에 맞춰 목청을 돋운 것이다.


그때는 도시 변두리에도 나물 캐는 아낙이며 누이들이 있었다. 소쿠리를 끼고 대나무칼이나 과도를 하나씩 들고 야산의 둔덕에 쪼그려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봄에는. 서울 변두리 사람들이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촌에서 살던 사람들이라 아침저녁으로 10원짜리 시영(市營) 버스 출퇴근에 시달리더라도 그런 시절에 맞춰 살기 마련이었다. 그런 친구 집에 가면 봄나물 냄새가 났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도통 산에 다니질 않으셔서 주로 옆집에서 캐면 조금 얻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어디선가 캐오든 사든 봄에 먹는 김치가 있었다. 바로 씀바귀였다.

내가 거칠게나마 미각이 있다 싶은 건 어릴 때부터 쓴 것을 마다하지 않은 걸로 짐작하곤 한다. 아버지 말고 누이들은 이 쓴 김치를 먹지 못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씀바귀를 뜨거운 밥에 척척 올려서 먹고, 아예 군입에도 먹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미각이란 단맛보다도 쓴맛일 때 더 구미를 당기는 효과를 가져온다.

 

서양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아페리티프를 아주 중시한다. 저녁 7시면 동네 바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니, 저녁 먹을 시간에 왜 저렇게 다들 나와 있지 의아했다. 그건 아페리티프를 하기 위함이었다.

주로 쓴 술을 마셨다. 베르무트라는 약주로 칵테일을 하거나 캄파리&소다 같은 걸 마셨다. 모두 쓴맛이 강한 술이다. 쓴맛은 침을 돌게 한다. 그래서 나중에 먹을 음식을 잘 소화시키고 혀를 말끔하게 씻어서 음식의 맛을 잘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려서 제법 미식에 소질(?)을 보인 것이다.

 

남도에선 냉이를 한창 캐는 모양인데, 앞서 밝혔듯 같은 내륙이라도 추운 골짜기에선 뭐든 늦다.

강원도 사는 친구에게 물으니 이제 슬슬 캐볼 참이란다. 냉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나물이다. 그 씁쓸하고 진한 향이 한 계절을 다 머금은 것 같다. 부족한 필설을 놀리지 말고, 박완서 선생의 문장을 인용함이 좋겠다.

 

 “흙의 에센스가 바로 이런 거다 싶은 강한 냉이 맛이 수액처럼 고루 퍼지면서 마치 내가 한 그루 나무가 된 양 싱그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표현에선 덧붙이는 건 다 사족이다. 구리시 아치울에 있는 선생의 자택은 마당이 제법 너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마당 안에도 나물이 일어난 모양이다.

돌나물과 머위, 깻잎이 저절로 자라서 선생의 소일거리 겸 한 끼 반찬으로 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봄에는 돌나물을 흔히 먹었다. 들에 지천이고 워낙 잘 자라고 캐기도 쉬워 상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전라도에서는 돈나물이라고 하는데, 익히지 않고 주로 회를 해서 먹었다. 요즘 백반집에도 이런 회로 상에 내는 듯하다. 그런데 곁들여 내는 장이 좀 불만이다.

돈나물무침이라고 해도 될 만큼 초고추장이 듬뿍이다. 그것도 지나치게 달고 조미료 맛이 과하다. 그러면 돌나물의 비릿하고 쌉쌀하며 청아한 물 냄새 같은, 흙의 기운이 도는 은근한 맛이 드러나질 않는다.

어머니는 꼭 된장과 고추장을 살짝 섞어 식초를 약간 버무려 냈다. 그것도 장이 있는지 마는지 뿌렸다.
그래야 돌나물의 싱싱한 봄 맛을 즐길 수 있다.


봄나물에서 빼지 말아야 하는 것이 민들레다. 요새는 재배해서도 나오는데, 야생의 민들레 싹이라면 제격이다. 민들레는 씀바귀처럼 쓰고 진한 정유(精油)를 품고 있다.
샐러드처럼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서 된장에 무쳐도 맛있다.

민들레는 방석 식물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방석처럼 납작하다는 뜻이다.

어찌나 번식력이 좋은지 한때 집에 마당이 있던 나는 딸아이가 여름에 민들레 홀씨를 훅훅 불어대는 걸못하게 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이듬해 마당이 온통 민들레밭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뿌리가 깊어 캐기가 어렵다. 질기디질긴 녀석이다. 그래서 선조가 민들레를 우리 조상과 동일시했나 보다. 구황 식물로 봄에 가장 많이 먹는 나물이다. 언젠가 한식당을 하는 후배에게서 민들레를 유자에 슬쩍슬쩍 묻혀서 내놓은 샐러드를 얻어먹은 적이 있다.

쌉쌀하고 푸릇한 기운이 유자의 향과 어우러져 내 몸의 독을 씻어내는 것 같았다.

 

나물은 우리 민족 고유의 요리이자 요리 재료로 알려졌다. 이웃 일본에서도 더러 나물을 먹는데, 우리보단 덜 먹는다고들 한다. 일본에서 식물의 싹을 데치거나 절이는 여러 음식을 먹어본 나로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처럼 나물이 늘 상에 오르지 않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우리 나물의 요리법 중에 독특한 건 인정하고 가야 한다. 바로 푹 삶아서 꼭 짠 다음 기름과 양념에 버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꼭 우리만의 요리법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나물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탈리아는 보통 고기 요리에 채소를 곁들인다. 흔히 생각하듯 감자류는 별로 안 쓴다. 대신 치커리, 근대, 시금치 같은 나물을 푹 삶은 후 기름에 볶아서 곁들이는 게 많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도 나물을 먹는다! 특이한 건, 삶을 때 아주 곤죽이 되도록 오래 삶는다는 것이다.

셰프들에게 물어보면 섬유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그런다는 얘기뿐이었다. 그렇게 삶아서 마늘을 넣은 올리브유에 볶는다. 이런 걸 보통 ‘콘토르노’라고 한다. 곁들임 음식이라는 뜻이다. 서민 식당에서는 고기 요리를 주문하면 콘토르노를 따로 시켜야 한다. 그곳에서 나물을 한번 시식해보길 권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걸 왜 먹어” 하는 생각이 가시지를 않는다. 맛도 별로고 식감도 좋지 않다. 게다가 얼마나 소금을 많이 치는지. 보드랍고 간간하며 향긋한 어머니가 버무린 나물이 생각날 뿐이다.


글 박찬일(푸드 칼럼니스트) 요리 양은숙(요리 전문가)

사진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승헌

 

 

Recipe Tip

자연의 향, 대지의 기운을 담은 봄나물 요리

 

 

모둠 봄나물 샤브샤브


재료 봄나물(냉이, 방풍나물, 쑥, 취나물, 풋마늘,미나리) 적당량, 대패 삼겹살 150g, 새송이버섯 100g, 팽이버섯 80g
샤브샤브 된장 육수 된장 1큰술, 무 150g, 다시마 10cm, 대파 1/2대, 물 5컵
소스 간장 3큰술, 식초 2큰슬, 정종 2큰술, 설탕 1큰술


만드는 법

1 냄비에 물과 함께 무, 다시마, 대파를 넣어 한소끔 끓인 후 다시마는 건지고 무가 무르도록 푹 끓인 후 된장을 심심하게 푼다.

2 봄나물은 티끌을 다듬어 씻고 삼겹살은 낱장씩 떼고 새송이 버섯·팽이버섯과 함께 접시에 돌려 담는다.
3 볼에 소스 재료를 넣고 섞어둔다.

4 육수를 끓이면서 나물과 삼겹살, 버섯 등을 넣어 익힌 후 소스를 찍어 먹는다.

 


돌나물 메밀 밀쌈

재료

돌나물 100g, 홍고추 1개, 메밀가루 1컵, 밀가루 1/2컵, 물·소금·식용유 약간씩
무침 양념 고춧가루 1큰술, 간장 1작은술, 소금 1/2작은술, 통깨·참기름 약간씩

만드는 법

1 돌나물은 다듬어 씻는다.

2 볼에 메밀가루와 밀가루, 물, 소금을 넣어 반죽을 홀홀하게 한다.

3 팬을 은근하게 달군 뒤 종이 타월에 기름을 묻혀 팬 바닥을 닦은 후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 올린 다음 빠른 동작으로 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빙빙 돌려 얇게 편다.

4 반죽 가장자리가 나풀거리면 꼬챙이로 가장자리를 뒤집어 나머지를 익힌다.

5 볼에 돌나물과 준비한 양념을 넣어 가볍게 무치고 밀쌈에 한 입씩 올려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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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essay_미각의 즐거움

 

 

새콤 달콤 상큼
싱그러운 딸기의 향과 맛에 취하다

 

딸기는 겨울을 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5, 6월이 제철이었다.

농사 기술은 발전한다. 비닐하우스 온도를 조절해 딸기 묘에게 착각을 일으킨다. 두어 계절을 앞당겨 열매를 맺도록 ‘속이는’ 것이다. 그래서 빠르면 11월에도 딸기가 나온다. 계절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것이다.

주부들은 딸기의 제철을 잘 안다. 가격을 보고 아는 것이다.
11, 12월에는 아직 비싸다. 500g짜리 한 팩에 1만원 앞뒤로 움직인다. 1월에는 내려앉기 시작하고, 2월은 아주 싸다. 진짜 ‘제철’인 것이다. 제철의 의미는 맛도 맛이지만, 생산량이 가장 많아야 한다. 그래서 2월은 딸기의 제철로 완전히 자리 잡는다.


예전 사람이 딸기 제철이라 여기는 5월에는 오히려 딸기를 거의 볼 수 없는 데다 있더라도 아주 비싸다. 5, 6월 딸기를 노지 딸기라고 한다. 노지란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출된 밭을 말한다. 기후의 풍파에 민감하다. 그래서 과육에 상처가 많다.대신 향과 단맛이 더 강하다.

 6월에 속초의 장에서 우연히 노지 딸기를 봤다. 향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딸기 향이 나를 부른 것이다. 가보니, 할매 두어 분이 노점에서 제철 노지 딸기를 팔고 있었다. 하나 깨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하고 농밀한 향!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딸기 맛이었다.

이제는 제철 딸기는 그저 2월이라고 믿는 게 좋겠다. 세월과 시절은 바뀐다. 옛 기억이 옳다고, 전부라고 우겨서도 곤란하다. 노지 딸기가 사라지고 비닐하우스 재배로 대체된 이유로 어떤 이는 ‘산성비’를 꼽는다.

독한 비가 연약한 과육의 딸기를 상처 입히기에 노지 딸기는 재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고 한다. 산성비가 딸기를 무르게 할 정도로 독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우울한 속설이다.

 

딸기의 제철과 관련해 기억나는 게 하나 더 있다.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의 모친은 가정적인(?) 분이어서 이런저런 살림 하는 재미를 즐기셨다. 딸기잼도 그중 하나였다. 꽤 더운 계절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네 놀러 갔더니 아궁이 위 솥에서 뭔가 달콤하게 익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아궁이에 불을 넣었으니 정말 더웠다.
그 시절에는 연탄을 땠다. 석유는 제법 비쌌기에 딸기잼처럼 오래 끓이는 건 연탄을 쓰신 모양이다. 그다지 색깔이 고와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콤한 냄새가 났다. 친구 어머니가 어마어마한 양의 설탕을 넣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잼에는 설탕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제철이 끝날 무렵, 딸기는 ‘잼용’으로 팔려 나갔다. 곤궁했던 1970~80년대에도 아기자기하게 살림하던 여자가 많았던 것이다.
딸기가 지나치게 익고, 상처 입었으며, 색이 바래기 시작하면 잼을 만들면 맞춤했다.
생식하기에는 상품성이 떨어지므로, 과일 가게나 소비자나 두루 좋은 일이었다.
그런 딸기를 한 아름 사서 여름, 가을에 먹을 잼을 만드는 집은 규모 있고 살림이 괜찮은 집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많은 우리 집은 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설사 만들었더라도 빵에 발라 채 일주일이 안 되어 다 먹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끝물로 사오는 ‘잼용’ 딸기는 몽땅 그냥 생식했다.

철이 끝나기 전에 진탕 먹어서 아쉬움을 없게 하는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모든 과일을 그런 식으로 먹였다.
자주 사주지 못하니 많이 사서 실컷 먹게 만들었다.

 

딸기는 바나나만큼 비싸지 않았다. 기억하기에 그때 딸기는 아주 작았다. 요즘 딸기는 과장하면 거의 주먹만 한 것도 있지 않은가. 근육을 인공적으로 키운 애너볼릭 딸기라며 누가 농담을 할 정도다.

옛 딸기는 정말 작았다. 예전에 딸기는 당연히 산딸기 같은 조선 딸기를 뜻했다고 한다. 복분자가 바로 우리 딸기다. 그러다 식민지를 겪으면서 양딸기를 받아들인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1940년대 수원에서 많이 심었고, 전국적으로 크게 번졌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딸기 맛은 고향의 맛과 다르지
않았다. 딸기가 서양에서 온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그곳에선 5월이면 딸기가 나오는데, 시고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딸기 맛이 단맛이 강조되고 신맛을 버려서 크게 아쉽던 차에, 오래된 추억의 맛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딸기가 유럽 딸기보다 맛이 절대 못한 것은 아니다.


유럽 딸기는 신맛이 강하다. 우리 딸기는 부드럽고 진한 편이다. 당도를 따지는 시중 풍토 때문에 딸기 고유의 향을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되지만, 우리 딸기가 맛있기는 하다. 게다가 값도 싼 편이다. 한창 제철인 요즘 500g짜리 플라스틱 팩 하나에 3천~5천원이면 살 수 있지 않은가. 유럽의 반값 정도에 불과하다.


내가 서울에서 요리를 시작하던 5, 6년 전, 가락시장에 가면 주로 육보라는 품종이 많았다. 값도 가장 셌다. 먹어보면 맛이 그다지 뛰어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왜 값이 비싼지 이해가 안 됐다.

상인에게 물었다. 과육이 단단해서 보존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과일은 그 맛과 향도 중요하지만 보존성이 더 의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토마토도 완숙하기 전에 딴다. 멜론도 맛있게 먹으려면 상온에 일주일 이상 놔두어야 한다. 숙성하는 것이다.

딸기는 숙성이 안 되는 과일이다. 냉장고에 오래두면 수분이 말라서 당도가 올라가고 짓무르면 향이 강해지는 것 같은데, 원칙적으로 숙성 개념이 없는 과일이다. 그래서 가급적 덜 익었을 때 따서 먹는 게 좋다. 그런데 유통 과정에 물러지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종자 개량을 한다. 과육이 단단해지는 쪽으로.


그 때문에 아무래도 향이 덜하다는 느낌이 있는 듯하다. 이런 딸기 품종은 한동안 일본산이 주름잡았다. 일본이 우리에게 딸기를 건네준 나라이기도 하고, 육종이 세계적이다. 우리 땅에 심은 많은 채소와 과일이 일본에서 개량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산이 많이 나오고 인기가 있다. 설향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점차 국산 품종이 시장을 넓히고 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한다. 내게는 그 여왕님이 처음 가지고 오는 것이 과일, 즉 딸기였다. 비로소 과일의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겨우내 귤과 저장 사과 말고는 먹을 과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5월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딸기는 본격적인 과일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낮의 노곤한 시장, 늦봄의 따스한 기운이 가득찬 그 골목에는 향긋한 딸기 향이 가득했다. 포도와 복숭아 향이 농밀해지는 8월이 농익은 계절의 녹진한 느낌이라면, 5월은 화사하고 우아했다. 5월!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은 딸기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그때 우리는 딸기밭에 갔다. 하우스 딸기가 거의 없던 때라 대부분 밭에서 자라는 노지 딸기였다. 멀리서 이미 딸기 향이 진동했고, 그 밭에 들어서면 머리가 어질어질한 폭발적인 향에 취했다. 계절은 좋았고, 딸기는 달았다. 갓 딴 딸기가 입안에서 터지는 수줍은 맛이여.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딸기에 막걸리라니. 과일 안주에 소주를 마시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맥주는 만만한 술이 아니었던 시절 막걸리가 가장 맞춤했을 것이다.

막걸리에 딸기밭 주인이 슬쩍 내준 김치에 딸기를 먹고 마셨다.
아아, 이젠 대부분 하우스로 바뀌어 딸기밭을 찾아가던 5월의 흥분은 가라앉았다. 딸기는 한겨울과 초봄이 오히려 제철이니 이 격세지감을 어찌할까.


요즘 다행히 딸기 따는 체험 관광 상품이 나오는 모양이다. 딸기는 손으로 꽉 쥐면 터질 것처럼 연약하다. 잎 아래쪽은 아직 덜 익은 것이 고개를 내밀고, 위쪽 잘 익은 것은 수습하면 된다.

빨갛고 수줍은, 귀여운 딸기를 하나씩 따면 정말 수확의 기쁨이랄까, 행복한 마음이 든다.

 

이탈리아에선 우리처럼 딸기를 다양하게 먹는다. 날로 먹는 경우도 많지만, 디저트로 요리해 먹는 걸 즐긴다. 사각으로 썰어 설탕과 화이트 와인, 그중에서도 단맛이 있는 모스카토(Moscato) 와인에 재웠다가 먹으면 기막힌 맛이 난다. 민트를 조금 다져 넣고 딸기와 버무려도 맛이 좋다. 그냥 생크림이나 발사믹 식초를 뿌려 먹기도 한다.

 

딸기는 분류학적으로 과일이 아니라 채소다. 그래서 달콤한 디저트 말고 일반 요리에도 쓸 수 있다. 샐러드가 대표적이다. 딸기와 허브를 넣어 샐러드를 무치면 입맛이 돈다.


특히 새콤한 맛이 강한 딸기는 생식하기보다는 샐러드에 더 알맞다. 딸기로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 수도 있다. 딸기 분량의 20% 정도 오일을 섞고 소금과 후추를 약간 친후 곱게 갈아 채소를 버무리면 특이하고 맛있는 샐러드가 된다. 딸기 주스를 만드는 것은 흔한 방법인데, 너무 달게 하는 것보다 야채즙처럼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이파리를 제거한 셀러리 한 줄기를 골라 껍질을 벗긴다. 네 배의 딸기와 잘게 썬 고구마 약간, 민트나 파슬리를 더한 후 생수를 넣고 곱게 갈면 건강에 좋은 야채 주스가 된다.
딸기는 달고 과육이 연약해 농약을 많이 뿌린다는 괴담이 있었다. 사실과는 정반대다.
딸기는 인공 수정을 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비닐하우스이므로 벌이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하우스 안에 벌통을 만든다. 그 때문에 농약을 치기 어렵다. 시중에서 친환경 딸기를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재배도 흙이 직접 닿지 않게-오염 방지-둑을 쌓고 비닐을 깔고 재배하는 경우가 많고. 흙 대신 물로 양분을 공급하는 양액 재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배법을 적용해 과일이 아주 깨끗하다.


글·요리 박찬일(요리연구가, 이탤리언 레스토랑 ‘인스턴트 펑크’ 셰프)

포토그래퍼 최충식 어시스턴트 박혜미

 

 

비타민 가득, 겨울 영양 요리 1

 

 

딸기 모스카토 디저트


재료(4인 기준)
딸기 1팩(500g), 모스카토 와인 1컵(토닉 워터로 대체할 수 있다), 설탕 12큰술, 민트 잎(낱개로) 4장, 바질 잎 8장, 꿀 1큰술, 바닐라 아이스크림 4스쿱

 

만드는 법
1 딸기는 씻어서 4등분한 후 설탕 8큰술을 뿌린다.
2 바질 잎과 민트 잎을 다진 후 설탕 4큰술, 꿀과 함께 모스카토 와인에 넣고 블렌더로 간다.
3 ①과 ②를 각기 냉장고에 2시간 이상 넣어서 숙성한다.
4 우묵한 그릇에 ②를 붓고 ①을 얹어 낸다. 아이스크림으로 토핑한다. 발사믹 졸인 것(시판함)을 뿌려도 좋다.

 

 

비타민 가득, 겨울 영양 요리 2

 

 

딸기 소스의 소 등심구이


재료(4인 기준)
소스 딸기 반 팩(250g), 올리브 오일 4큰술, 소금 2작은술, 후추 약간, 마요네즈 2큰술, 생크림 반 컵, 타임 잎 약간 고기 양념 소고기 등심(또는 송아지 고기) 800g, 소금·후추· 올리브 오일 약간씩


만드는 법
1 딸기는 잎을 떼어내고 손질한 후 모든 재료를 합쳐 블렌더로 곱게 간다.

2 고기는 소금·후추로 간하고 올리브 오일을 발라 팬에서 굽는다. 1인당 200g짜리 등심은 두께가 얇으므로 오븐없이 팬에서만 구울 수 있다. 중간 불로 팬을 달궈 한쪽 면 2분,뒤집어서 1분 30초 정도 구우면 미디엄이 된다(실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고기 온도계를 쓰는 게 좋다. 고기 중앙을 잘 찔러서 55℃ 정도면 된다).

3 ①의 소스를 뿌려 낸다. 가니시는 감자구이나 제철인 참마를 구워서 내면 좋다.

 

 

Health Tip

비타민 C의 보고, 딸기의 효능


딸기는 과일 중에서 비타민 C가 가장 많이 든 식품으로 꼽힌다. 특히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들은 비타민 C가 부족하기 쉬운데, 딸기는 골초를 위한 비타민 C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맛이 좋고 당질은 감의 50% 정도여서 다른 과일에 비해 살찔 염려도 적다.

칼륨도 100g당 200mg으로 오렌지(190mg)보다 많아 딸기를 많이 먹으면 나트륨이 몸밖으로 배출되어 나트륨 과잉 섭취로 인한 고혈압, 심장질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위암, 신장결석, 골다공증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당도도 적당해서 건강을 위한 간편한 비타민 C원이 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비타민 C는 피부 건강에 좋고 스트레스 해소와 암 예방 효과도 있다. 딸기에 우유를 뿌려 먹으면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고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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