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들어 일기예보가 아주 잘 맞는 것이 신기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예전에 기상 이변으로 재해가 발생하면 기상청 관계자들이 늘 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로 슈퍼컴퓨터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했고 국민들은 그에 식상한 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요즈음은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는지 올해 들어 나에 관한 중요한 행사 때마다 비가 오는데 신통방통하게도 기상청의 예보가 적중할 때가 많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기를 그렇게 학수고대했건만,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상암동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이내 굵은 비가 되어 내린다.
함께 간 직장 내 동호회원들은 이내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 주변에서 혼자만 하픈데 뛰지 말고 조금 한 5km나 뛰고 뒤풀이 나 가자고 한다. 그 소리에 한참 망 서려 진다. 어제 저녁 술도 한잔해서 컨디션도 썩 좋은 편은 아니기도 해서....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져 먹는다. 내 이제 마라톤 경력 5년여 동안 아예 오지 않았으면 몰라도 대회장에 와서 포기하거나 중간에 기권한 사례가 없기에 오늘도 그동안 지켜온 나 혼자만의 약속을 뒤로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 치 않는다. 그래 동호회 총무에게 아무래도 내가 늦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먼저가라고 귀 뜸 해주고 출발선에 서서 신발 끈을 조이며 전의를 다져 본다. 마라톤의 명 사회자 개그맨 배동성씨의 사회로 내빈 소개에 이어 드디어 9시 하프 부문을 시작으로 힘찬 레이스를 시작한다.
철벅철벅 인천상륙작전 당시 자유를 목말라하는 불쌍한 어린 양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파도를 헤치고 갯벌을 가로질러 돌진했던 정의의 군대 발자국 소리처럼 달림이들의 한발 한발 떼어 놓는 힘찬 소리가 힘들고 지친 내 마음의 고동을 깨운다. 멀리 빗속에 한가로이 유람선도 지나가고 자원봉사 학생들의 파이팅 소리...
오늘따라 유난히 비에 젖은 절두산의 모습이 모진풍상의 한 많은 역사의 시간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라톤이라는 것도 이러한 모진풍파와 풍상을 겪어야하는 인생의 세월 축소판과도 같은 것 오늘도 나는 내 자신과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또 달려간다.
어느덧 저 멀리 원효대교가 보이며 절반의 거리를 다와 갈 무렵 선두 달림이의 힘찬 레이스와 마주친다. 저 사람은 어찌 생겼기에 저렇게 잘 뛸 수 있을까 나의 심장은 태백의 준령을 넘는 짐을 가득 실은 화물차의 소리가 나는데...라고 생각하며 격려의 멘트를 보내고 무거운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반환점을 돌면서 시계를 보니 10시, 12km를 1시간에 달려온 것이다.
잠시 오늘의 예상 기록을 생각해본다. 1시간 45분 라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기록에 대한 욕심이 생겨난다. 최고기록은 아니지만 요즈음에는 영 기록이 좋지 않타,,,,, 그래도 이제는 1시간 30분대는 자주 뛰어야 하는데 45분대에도 못 들어오니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게으름 때문일까? 아마 후자이겠지 오늘을 기회로 올해는 분발하여 보스톤 기록을 한번 세워봐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니 비는 그쳤고 구름은 그래도 많다 또한 비가 온 뒤라 바람은 선들선들 불어오고 어쩌면 더울 때 보다는 한결 낳다 하는 생각마저 든다. 베드로 파이팅 소리에 고개를 들으니 한동네 달림이로 오늘 뻐꾸기로 참가한 토마형과 요셉형이 열심히 반환점을 향해 달려간다. 13, 14km를 지나 어느덧 15키로를 지나니 오늘의 레이스도 종반으로 접어든다. 비가 그치고 나니 한강변에 나왔던 많은 시민들이 격려를 해준다. 한결 힘이 솟구쳐 달리는데 시각 장애인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힘차게 달리고 있다. 하이파이를 외치며 격려를 보낸다. 그러면서 내 현재의 모습을 보며 저 달림이 모습을 보니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훌렸을까를 생각하니 위대함마저 든다. 그리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함께 달리는 저 아름다운 봉사자의 천사 같은 모습을 어찌 필설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요즈음 우리 사회는 자주 못 살겠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저 사람들의 모습을 한번쯤 그네들이 보았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우리 건강하고 젊은 우리들이 저들과 함께 갈 때 모든 종교에서 말하고 꿈꾸는 진정한 유토피아의 모습이 아닐는지....
상암동 월드컵 공원으로 홍제천을 따라 마지막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오늘 이 잔치에 참석한 모든 달림이들에게는 죽음의 언덕이 아닐는지 겨우겨우 오르니 자봉 학생들이 함 찬 격려소리 그리고 1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오늘의 괴롭고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도 이제 저무는 한 인생과 같이 종말을 고해가고 골인이라는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서울경찰악대의 연주소리와 사회자의 멘트를 들으며 21.0975의 마지막 점을 1시간 47분 25초에 통과한다. 비록 오늘의 목표였던 45분대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빗속이라는 악천후 속에 완주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대회인 가을의 전설에서 아름답고 멋져보일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딸 같은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건네는 시원한 생수 한 모금에 고단한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마무리 한다.
2008. 5. 18.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완주기
첫댓글 마라톤 실력보다 글 실력이 더 빨리 향상되는 것 같네.
베드로가 다음번에 공무원 00상 받는것 아냐? 받으면 한 턱 쏴!! 기다릴께....
이사람과 저 사람 조금이라도 꺼리만 되면 한턱내라고 하니 참...
좀 쏴 ~ 제발좀 꺼리좀 만들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