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압니다,
주님께서 가련한 이에게 정의를 베푸시고
불쌍한 이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심을
(시편140,12).
“저는 압니다”라는 확신의 말은 인정에 바탕을 둔 신뢰를 고백하는 표현이다.그가 아는 주님의 구원 능력으로 가련한 이들에게 주님의“정의”가 베풀어지고,불쌍한 이들에게“권리”가 회복되게 하는 것이다.고대 세계에서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에 대한 책임은 임금에게 있었는데, 이 시편에서는 주님이 가난한 이들을 모든 위협에서 구해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주인’인‘다윗 임금’을 바라본다(Tucker).결국 시인은 주님의 구원 능력이 발휘되는 곳에는 악인이 남아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한다.
시편 140편의 전체적 의미:140편은 시인이 주변의 많은 원수 때문에 곤경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을 말한다.거의 모든 절에서 원수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곤경이 많음을 말해주는 것이다.원수들의 악한 말들, 곧 독을 품은 말이나 험담을 일삼는 자들의 입술이 재앙을 입도록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시인은 말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시인의 고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원수들이‘덫’,‘줄’,‘올가미’(6절)등으로 그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은,그가 짐승처럼 취급당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그가 주님의 정의에 감사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정의롭지 못한 원수들과 대항하는 사람이다.이 시편의 핵심 구절은“저는 압니다,주님께서 가련한 이에게 정의를 베푸시고 불쌍한 이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심을”(13절)이다.많은 곤경 가운데서도 시인은 하느님께 큰 신뢰를 두고“당신은 저의 하느님”(7절)“제 구원의 힘이시여”(8절)라고 부르며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친밀감과 그의 대단한 신앙의 힘을 드러낸다.이런 믿음 위에서 주님께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고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한다.시인의 메시지는,원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느님은 정의로우시므로 신앙을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 더 큰 신뢰를 두라는 것이다.(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3 시편90-150편/전봉순 著/바오로딸)
6.차별
성경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고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사도10,34;로마2,11;갈라2,6;에페6,9 참조).따라서 인종,국가,성별,출신,문화,게급,장애 여부에서 어떤 차이가 있더라도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게 존엄하다.특별히 하느님 아드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강생하셨음을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유다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고,종도 자유인도 없으며,남자도 여자도 업습니다”(갈라디아 3,28).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단지 인간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내적 거룩함을 지닌다.하느님의 영광이 어느 정도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비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지닌 존엄성은 인간이 다른 사람 앞에서 갖는 존엄성의 기초가 된다(사목헌장29항).또한 이런 인식은 모든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평등과 우애를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이와 같은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을 인식할 때 모든 사람은 함께 또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사실 개인들 사이,남녀 사이,여러 사회 계층 사이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점이 많이 있다.따라서 법 앞에서 실제로 평등하도록 보장하면서,특별히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민족들이나 혹은 국가들의 관계에서도 국제 공동체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려면 평등과 균형의 조건들이 미리 조성되어야 한다.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인식에는,만민 평등사상과 더불어 온 인류가 한 공동체로서 일치할때만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신장시킬 수 있다는 인식도 포함되어애 한다.
장애인들 역시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닌 온전한 인격체이다.비록 그들이 육체와 능력에 어떤 제약을 받고 고통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그들은 그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장애인들은 권리의 주체로서 자기 능력에 따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 야하고 실제로 또 적절히 도와주어져야 한다. 특별히“기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만 공동체 생활을 허락하여 노동을 하게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당하며,모든 사람의 공통된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이다.이는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심각한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된다”(노동하는 인간 22항).
장애인들의 육체와 정신의 노동 조건,정당한 임금,승진 가능성,그리고 각종 장애 철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또한 장애인들의 정서 차원과 성(性)차원에서 신경을 써야한다.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저마다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도덕 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며,애정과 관심과 친밀감이 필요하다”(요한 바오로 2세,정신 지체 장애인의 존엄과 권리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위한 메시지,2004.1.5.).
(가톨릭 사회 교리 주제편 51-53 쪽 발췌)/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기독교(유대교와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신자들은 신의 능력이 “무궁하며”(시편147,5)선하다고 믿는다.따라서 신의 뜻을 믿고 따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선하게 사는 길이라고 여긴다.아울러 잠언 3장5~6절에 나오는“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찰함에 의지하지 말라.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를 포함한 ‘성경’의 여러 구절이 그 근거라고 생각한다.즉 기독교인은 자신의 도덕적 직관이 허술하고 불완전하므로 자신보다 더 높은 존재, 더 많은 것을 아는 권위자의 판단을 따르는 것(가장 중요한 미덕)이 고통을 덜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신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는 기독교인의 이러한 믿음을 단순히‘권위’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는 없다.그보다 우리는 모두 각자 가진 정보를 토대로 추정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므로,기독교인의 추정은 무신론자와 다르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기독교인은 자기 자신과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려면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다.이처럼 사람들이 위험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면,그들이 내리는 도덕적 판단도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273쪽 발췌/커트 그레이 著/김영사)
(-우리 주님께서는 위대하시고 권능이 충만하시며 그 지혜는 헤아릴 길 없으시다(가톨릭 성경 시편147,5)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그분께서 네 앞길을 곧게 해주시리라.(가톨릭 성경 잠언3장5~6절))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6월의 장미/이해인)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