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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천자잉 지음 | 이지은 옮김 | 사람in | 2017년 02월 13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자기계발 > 자기능력계발 > 마인드콘트롤
[사람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는 ‘중국에서 철학자라는 이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천자잉이 인간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철학적 문제를 일반 대중들이 쉽게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한 책이다. 저자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을 개인의 본성에서 찾고, 그 본성대로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양질의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천자잉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정신적 기쁨을 개인의 행복으로 여긴 공자, 주관적인 인생을 논한 노자, 공효를 주장한 묵자의 사상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로 인간의 도덕을 드러내는 애덤 스미스, 지극한 쾌락을 강조한 니체, 경험을 강조하는 데이비드 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한 제레미 벤덤을 통해 윤리적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천자잉
저자 천자잉은 1952년 상하이에 태어난 뒤 부모를 따라 베이징으로 이사했다.
젊은 시절에는 네이멍구(內蒙古)로 내려가 학업과 노동활동에 참가했다.
1977년 대학입시가 부활한 후 베이징대학교 서양 어문학부에서 독일어를 전공했다.
1978년 5월 외국철학연구소에 입학해 베이징대 학교 외국철학연구소에서 쉬웅웨이(熊偉) 선생을 따라 헤겔 철학을 공부했다. 1981년 대학교 졸업 후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았다.
1983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 <이름에 관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딴 후 유럽에서 1년 동안 근무했다.
1993년 5월 귀국한 후 그 이듬해 베이징대학교로 돌아와 다시 강단에 섰다.
2002년 화둥 사범대학교 철학과로 전입한 뒤 화둥사범대학교 종신교수, 즈장(紫江) 학자로 임명됐다.
2008년 1월 서우두 사범대학교 철학과로 전입해 외국철학과 전임 교수, 특별 초빙교수로 활동 중이다.
‘중국에서 철학자라는 이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자 : 이지은
역자 이지은은 중앙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중국 요녕사범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 석사를 졸업했다. 중국 경 제/경영 분야 전문 번역가로서,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와 관련된 정보와 이론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방 적인 지식이 나 정보의 전달이 아닌, 독자와 함께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독자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자세야말로 양 질의 번역을 위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주요 역서로는《왕도》,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천추흥망 원나라: 유목민족의 세계 제패》, 《중국을 통해 본 생활경제 학》, 《삼국지 인물과 계략을 말하다》(공역), 《삼국지 사실과 허구를 말하다》(공역), 《탐탐 : 남다른 삶을 위한 자세》, 《의문에 빠진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뜻밖의 미스터리》 등 다수가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1장 윤리적 삶이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
인간의 마땅한 도리, 윤리·도덕적 삶
도덕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선함을 가르칠 수 있는가
윤리학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무엇이 ‘앎’이고, 무엇이 ‘마음’인가
논리로 진리를 구하다
2장 행복이란 무엇인가 _공효주의와 이기적 유전자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을 측정하는 방법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이기적인가
이익이란 무엇인가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인가
이기적인 ‘보이지 않는 손’이 가져온 이타적 효과
인간의 행동을 이기심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로움과 이기심은 무엇인가
3장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_사실과 가치의 문제
함부로 단정 짓지 마라
돈을 빌렸다면 반드시 돈을 갚아야 하는가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한 노력
당신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짜 생각’은 무엇인가
윤리학은 내가 포함된 앎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평가인가
우리의 평가는 합리적인가, 이치에 맞는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4장 실천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목적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바둑은 즐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왜 구덩이를 파는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왜 창조적 활동을 요구하는가
의사는 소통하는 사람이다
덕성의 앎에서 견문의 앎으로
지식의 크기를 늘리는 새로운 앎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가는 사람을 잡지 않고,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5장 아는 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앎은 실천의 시작이요, 실천은 앎의 완성이다
앎과 실천 중 무엇이 먼저인가
지행합일의 어려움
앎의 깊이가 얕으면 알고도 행하지 못한다
심리와 심성을 대체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굴원, 마음의 병을 앓다
이론은 실천을 이끌지 못한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자에게 물어보라
6장 행복한 양질의 삶을 위하여
행복은 좋은 것인가
욕망은 행동을 조종하고, 목적은 행동을 이끈다
쾌락은 행동에 투영된다
쾌락을 구하다
고통을 위한 고통, 쾌락을 위한 쾌락
쾌락은 발전한다
행복은 몇 살 때부터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간은 모두 자아실현을 꿈꾼다
어떻게 하면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는가
7장 선을 향한 마음 _본선과 향선
선이란 무엇인가
물은 본래 아래로 흐르지 않는 것이 없다
천성이 악하면 예의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선함을 닦으면 선인이 되고, 악함을 닦으면 악인이 되는가
선함과 악함은 짝을 이루지 않는다
일부러 지려는 마음과 일부러 악하게 구는 마음
마음은 모두 같다
도덕적 행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나의 덕성을 고찰한다
향선, 윤리적 삶을 위한 노력
8장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입신의 본질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관은 존재하는가
시공간적 제한을 받지 않는 절대진리는 존재하는가
진정한 인성은 진정한 종교의 바탕이다
보편적 기준은 존재한다
어느 영역에서 개별적 존재가 되는가
보편성과 정통성
사소한 이치 하나로 변할 수 있다
책 속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한다.
이를테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고향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이러한 구체적인 고민을 할 때 특정한 조건에서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거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등 단순히 결정하기 위해 논의하는 선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통합적으로 고민해야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때 구체적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피상적으로만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처럼 좀 더 일반적인 문제와 연계해 고민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삶에 대한 나 자신의 일반적인 인식과 이해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와 생각은 개인에게만 국한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동경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는 누군가의 행동으로 인해 상대에게 반감을 갖거나 경멸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아예 배제한 채 오로지 나 자신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_본문 24페이지
무엇이 ‘앎’이고, 무엇이 ‘마음’인가
무엇이 앎이고, 무엇이 마음인가? 사실 이 문제는 근세 철학가가 말하는 개념의 고찰이다. 앞장에서 말한 것처럼, ‘배움(學)’이라 함은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나 그 논리를 밝혀내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개념을 고찰하거나 이름을 구분하고, 이치를 분석하는 작업은 특수한 형태의 ‘규명’ 작업이다.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평범한 이유 뒤에 숨겨진 근본적인 이치와 논리를 찾는 것이다. 복잡한 논리 뒤에 체계적으로 숨겨진, 보다 근본적이면서 보편적인 논리를 찾는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학적 활동이다. 이를 두고 ‘궁리(窮理)’라고 한다. 요컨대 궁리라는 것은 단편적인 규명 활동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이면서도 심오한 형태의 규명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생활 속의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사고한다. 윤리적 사고는 인간의 다양한 사고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공평하게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한다. 때로는 특정한 이유에 입각해 누군가에게 행동하라거나 혹은 행동하지 말라고 설득하기도 한다. 자신의 특정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특정한 이유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삶 속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윤리적 사고, 토론, 쟁론 등은 모두 윤리학의 근간이자, 윤리학이 탐구해야 할 숙제이다. _본문 39~40페이지
이익이란 무엇인가
이익의 정의를 좀 더 확대해보면 명성 역시 개인의 이익이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면 관심 역시 일종의 이익이 된다.
내 작품에 가격을 얼마나 매기든지 내 취미와 취향대로 그림을 그린다면 관심과 이익은 철저히 구분된다. 혹 당신이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면 이것은 내 이익에 손해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딸과 아버지는 이익과 상관없는 관계지만, 만약 누군가 딸을 다치게 했다면 아버지의 이익에 피해를 준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이익은 무척 중요하다. 이익을 무시한 채 인의만을 부르짖거나 감정에 호소해봤자 겉만 번드르르한 낭만주의에 빠질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인간은 순수하게 고상한 이성적 동물도 아니고, ‘이성적 인간’ 유형에 속하는 이성적 동물도 아니다. 측면 에서 골대를 향해 찬 골이 골네트에 들어간 순간, 스코어보드에 1점이 추가되고 모든 선수와 축구팬이 미친 듯이 환호하며 기쁨의 포효를 지른다. 이때의 골은 1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우리의 행동은 이익을 가져오는 동시에 기쁨, 만족감, 초조함 등 다양한 감정을 유발한다. _본문 76페이지
출판사 서평
중국 현대 철학계를 이끄는 거장 천자잉
‘양질의 삶’에 대한 성찰
‘도덕적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행복한 삶’에 대한 답을 얻다!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선택하고 있는가
내가 선택한 길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가
‘중국에서 철학자라는 이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천자잉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철학적 문제를 일반 대중들이 쉽게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생활철학으로 일반대중에게 깊은 성찰을 통해 행동으로의 실천을 주장하는 천자잉은 이 책 《사람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을 개인의 본성에서 찾고, 그 본성대로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양질의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사람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행복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윤리적 삶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혼란한 현대의 기준이 되어줄 윤리를 생각하도록 한다. 윤리적 삶의 추구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개인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행복이 아닌,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혼란만이 가중되고, 이기심이 팽배해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 깨달음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제대로 사는 인생, 기본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찾을 수 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이 책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윤리적 질문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 배경에는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욕망이 담겨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인생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본성’을 성찰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야말로 도덕적인 삶의 방향이라고 한다면, 나는 타인에게 도덕적인 삶을 강요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타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즉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물론 타인의 행동을 도덕규범으로 규정하며,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볼 수 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그것을 내 것으로 온전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도덕적인 문제에 귀 기울여 보자.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은 이기적인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해도 되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여부는 도덕적 잣대로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라는 개인으로서만 행복을 추구할 수는 없다. 사회환경적인 관계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삶이란 함께 사는 삶을 말한다. 그리고 도덕이란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행위에 대한 약속이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한 삶이란 도덕적 관념에서 나를 위하는 마음과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발견하는 것이 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자잉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정신적 기쁨을 개인의 행복으로 여긴 공자, 주관적인 인생을 논한 노자, 공효를 주장한 묵자의 사상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로 인간의 도덕을 드러내는 애덤 스미스, 지극한 쾌락을 강조한 니체, 경험을 강조하는 데이비드 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한 제레미 벤덤을 통해 윤리적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내가 선택한 인생의 길이 모두의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천자잉이 전하는 도덕적 삶의 철학은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문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목적을 잃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결혼의 주요 목적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우리는 대체 어떻게 논증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샌델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한편으로는 전체적으로 현존하는 혼인법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또 한편으로는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결혼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대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목적에 관해 우리는 이러저러한 주장을 무턱대고 제기하기보다는 상식과 이치에 호소해야 한다. 만일 목적을 배제한다면 윤리학은 누군가의 손으로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고 말 것이다.
목적은 인류의 활동을 규범한다. 그러나 과학, 예를 들어 윌슨이 같은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인류학은 자연조건을 토대로 규범의 형성을 설명한다. “인류사회학자는 자연 사실과 규범성 간의 완전한 연계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모든 규범은 각종 자연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당사자의 인식과 무관하게 과연 그렇게 행동할 것인가? 사실상 인류 사회학자 중에서 이러한 견해를 지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윌리엄 애덤스는 인류학은 타인의 도덕적 의의를 제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사실상 우리가 인간인 이상 누구도 이를 실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_본문 156~157페이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현대에 접어들면서 선택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개념과 동일한 맥을 따르는 용어로서, 현대인의 삶 깊숙이 그리고 넓게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인이 직업을 선택한 것은 충분한 고민을 거쳐 나온 결정이다. 하지만 그 고민과 선택도 출신, 빈부, 감정적 호소 등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개인에게 선택 항목은 시공간적으로 무작위로 널려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동산 개발을 통해 이익의 최대화를 추구하거나, 비행사의 연봉이 많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내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현실 속의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주식시장이 아니다. 겉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는 득실을 따질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직업이 자신에게 이익을 최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생각해본 뒤에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마찬 가지로 어떤 직업이 최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지 고민해본 뒤에 직업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상이나 이익을 막론하고 구체적 환경, 즉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귀감이나 재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_본문 223~22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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