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씩 꾸준히 증가, 대부분 아파트서 홀로 생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세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전국 교구 원로사목자 수는 227명으로 전체 사제(3817명)의 5.9%를 차지한다. 2001년 2.9%에서 불과 10년 만에 2배가 늘어났다.
|
▲ 명절을 앞두고 서울 한 본당에서 열린 '원로신부님 모시기' 행사에서 본당 어린이들이 원로사목자들에게 세배를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원로사목자에 대한 공경심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
사회와 교회가 고령화되면서 원로사목자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96명 47명에 불과했던 원로사목자 수는 2004년에 100명을 넘어서더니, 6년 만인 2010년 200명을 돌파했다.
2011년 말 현재 50대 사제는 708명, 60대 사제는 329명이다. 사망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20년 안에 1000명이 넘는 사제가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사목자가 된다. 원로사목자들에 대한 사목적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로사목자 현황과 그들의 삶, 원로사목자들을 위한 사목적 대비를 다룬 기획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먼저 원로사목자 현황과 은퇴 후 삶을 취재했다.
#급증하는 원로사목자 수
1996년(2.2%)부터 5년 동안 2%대에 머물러 있던 전체 사제 수 대비 원로사목자(교구 기준) 비율은 2002년 처음 3%대로 올라섰다. 2006년(4.4%)에는 4%를 넘어섰고 2009년(5.1%)에는 5%대에 진입했다. 올해 안에 6%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년 간 연평균 원로사목자 수 증가율은 11.1%다. 지금처럼 증가 추세가 계속되면 10년 후에는 65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1~2011년 사제ㆍ원로사목자 수 증가율을 바탕으로 예측해 보면 7년 후인 2019년, 원로사목자 수가 전체 사제 수의 1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제들도 고령화 시대를 맞는 것이다.
교구별 원로사목자 수는 2011년 말 현재 서울대교구가 43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교구(33명), 수원교구(28명), 대구대교구(27명)가 뒤를 이었다. 제주ㆍ의정부교구는 원로사목자가 없다.
각 교구는 70살 전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는 사제에게 주택(혹은 주택구입비)을 제공하고 매달 생활비를 지급한다. 서울대교구(지혜관)와 춘천교구(선목사제관)처럼 원로사목자들을 위한 공동사제관을 마련한 교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로사목자는 교구에서 마련해 준 아파트나 주택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원로사목자 수가 늘어나면 교구 재정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원로사목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소임은 없다. 수녀원에서 생활하며 지도신부를 하는 사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다. 대부분 원로사목자는 식복사와 함께 주택에서 생활한다. 원로사목자 4명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 공동사제관에서 지내
2004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임충승(수원교구) 신부는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작은방에 꾸며놓은 제대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며 지낸다. 종종 수녀회 초청으로 수녀원에 머물며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임 신부는 "은퇴를 하고 한동안 하루 일과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걱정도 많이 했고 무엇을 할 지 몰랐다"면서 "40여 년 동안 바쁘게 사목하다가 갑자기 쉬니까 몸에 이상이 생겨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임 신부는 "미사 집전이나 판공성사는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는데 부탁하는 곳이 많지 않다"며 "원로사목자들은 그런 부탁이 오면 기쁜 마음으로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금경축을 지낸 유봉준(서울대교구, 2001년 은퇴) 신부는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지혜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은퇴 후 로마에 가서 윤리신학을 공부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던 유 신부는 귀국 후 아파트에서 생활하다가 7년 전 지혜관에 들어왔다.
유 신부는 "홀로 아파트에서 사는 게 지루하고 답답해서 공동사제관으로 들어왔다"며 "원로사목자들과 교류할 수 있어 좋고, 필요한 게 있으면 교구에서 지원해주니까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신부는 "아무 계획 없이 사목현장에서 물러나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신부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2006년 은퇴 후 지혜관에서 살고 있는 김득권(서울대교구) 신부는 은퇴 후 얼마 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평생 신자들을 위해 살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던 그는 무엇을 어떡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적응을 해나갔다.
김 신부는 "은퇴 후에 쓸 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로사목자로 살아보니 그런 건 전혀 필요 없다"며 "현역에 있을 때 사목에 최선을 다하고 신자들 사랑을 많이 받은 신부는 신자들이 자주 찾아와서 현역 못지않게 바쁘다"고 말했다. #제2의 인생 사는 원로사목자들
2006년 은퇴한 정지웅(수원교구) 신부는 주임 신부로 사목할 때만큼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포콜라레 영성을 살아가는 사제들' 대표를 지낸 정 신부는 은퇴 후 3년간 이탈리아 포콜라레 본부에서 일했다.
한국에 돌아와 몇 달 동안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용인 인보성체수녀회로부터 지도 신부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단번에 수락했다. 정 신부는 수도자들과 함께 아침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집전한다. 수녀들이 정 신부를 "우리 신부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따른다. 수원에 있는 아파트에서 틈틈이 피정지도를 하기도 한다.
"사제는 은퇴를 한다고 해도 죽는 날까지 사제입니다. 사제는 규율과 절제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어디에 소속돼 있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보면 아무래도 풀어지게 되죠.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하고, 교회에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은퇴 후 평소 꿈꿔왔던 삶을 살아가는 원로사목자도 있다. 내년에 회경축을 맞는 춘천교구 맏사제 이응현 신부는 2000년 은퇴 후 13년째 곰실공소에서 주임신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신부는 지난 1월 평화신문 인터뷰에서 "평생 신자들과 함께 살았는데 아파트에서 혼자 살면 무척 답답할 것 같았다"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상철(춘천교구 행복한가정운동 담당) 신부는 지난해 초 은퇴 한 후 1년 여 준비기간을 거쳐 '오상철 신부의 천생연분 피정'을 시작해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