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나는 사람 사귀는 일이 서툽니다. 내가 까탈스러운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세속에서도 출가해서도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고, 출가해서도 진정한 친구는 몇 안 됩니다. 나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타고난 성품이 그런 걸 어쩌라고요.
“어리석은 친구를 만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행복이고, 지혜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두 번째 행복이다.”<행복경>
삭까천왕이 붓다에게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붓다는 37가지 행복을 설명합니다. 그것이 행복경이죠. 그 37가지 행복 중에서 맨 처음에 어떤 친구 또는 동료를 만나는가에 행복이 달려있다고 꼽았어요.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되는 것이죠. 어떤 남편 또는 아내를 만나는가에 따라, 어떤 자식을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이 거의 결정된다고 봐야 하잖아요. 어떤 직장 상사를 만나는가에 따라, 어떤 직장 동료를 만나는가에 따라 사회생활의 행불행이 결정되고요.
출가자의 길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도반을 만나는가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대체로 유유상종이라고 자기가 추구하는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더군요. 학승은 학승끼리, 포교승은 포교승끼리, 권승은 권승끼리, 수행승는 수행승끼리 어울리더라고요. 같은 길을 가지 않으면 도반이라고 부르기 힘듭니다. 물론 행자 도반, 강원 도반, 선방 도반, 등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터놓는 진짜 도반은 아니죠.
행복경에서 언급한 친구는 물론 도반을 말합니다. 정신적인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동료, 함께 도를 닦는 친구, 함께 불교 공부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절에 다니는 신도들을 보면 여기서도 추구하는 바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더라고요. 교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교리 공부 모임에, 기도 좋아하는 분들은 기도 모임에, 수행 좋아하는 분들은 수행 모임에 들어가 신행 생활을 합니다. 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까 뭐라 할 수 없지만, 옆에서 보기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반을 의미하는 빠알리어 깔야나밋따(kalyaan.amitta)의 어원은 좋은 친구, 덕 있는 친구, 정신적인 스승이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충고해주고 격려해주고 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며 함께 수행하는 친구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북방에서는 도반과 선지식을 구분하지만, 남방에서는 스승도 도반에 포함됩니다.
불교 공부에서는 이 도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르고 올바로 깨달으신 붓다가 현존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는 그런 복은 타고나지 못했습니다. 붓다는 아니더라도 아라한이라도 아니면 수다원이라도 만난다면 행복경에 맨 처음에 등장하는 진짜 행복, 아니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난다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어,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이 도의 절반입니다.”
붓다가 대답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이 도의 전부이니라.”<상윳따 니까야>
여기서 말하는 도반은 나를 이끌어줄 선지식, 스승을 말합니다. 스승을 잘 만나면 도를 깨닫는 것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참 스승을 찾을 것인가? 유튜브에 많은 스승이 등장합니다. 세상은 바야흐로 스승 범람 시대입니다. 인생 코치를 하는 스승, 교리를 가르치는 스승, 이런저런 수행을 가르치는 스승, 다양한 스승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전합니다. 도를 깨달았다는 분들도 있고, 또 그들의 말이 모두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물론 그중에는 위장 도인도 있겠고 진짜 도인도 있겠죠. 그런데 어떤 분이 진짜 스승일까? 내가 보기에는 어리석은 스승과 지혜로운 스승이 쉽게 구분되지만, 세상은 의외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말도 되지도 않는 사람의 말을 추종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더라고요. 뭐, 세상은 원래 요지경이기는 하지만, 정신적인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오직 진리만이 현존해야 할 그런 길에서도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입증할 수 없는 형이상적인 문제이니까 더 그렇겠죠?
이럴 때 법구경 게송이 떠오릅니다.
잘못을 일러주고 꾸짖어주는
지혜로운 이를 만난다면
땅에 묻힌 금 항아리를
알려주는 사람처럼 가까이하라.
그를 가까이하면
나아갈 뿐 물러서지 않으리라.<법구경 게송 78번>
첫댓글 고맙습니다.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