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를 앞두고 조훈현9단의 응씨배 우승소식을 들었다.
다시 바둑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복학을 하고, 새로 생긴 바둑동아리(수담회)에 가입을 하니,
1급 두시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람실 바둑책들의
대출카드를 통해 이미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동이 틀 때가지의 칫수고치기.
충남대 바둑대회에 참가하던 일.
바둑판을 짊어지고 엠티 가던 날, 춘천행 기차길의
굽이굽이 펼쳐지던 경관들
아물아물 후배 여학생들의 이름도 생각나고...
사람들이 좋아 바둑도 좋았던 시절
그런데 시간 투자에 비해 좀처럼 바둑은 늘지 않아
졸업할 때까지 1급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두점까지 육박한 정도였다.
겨우 물1급행세를 한 것은 영등포의 화랑기원에
출입한 이후였다.
<영등포 화랑기원>에 대한 소문은 바둑교실을 하던
친구 형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는데, 당시
아마강자 모임인 <정맥회>의 리그전이 그곳에서
열리며, 기력 향상을 위해 한번쯤 독파해야할 책들을
구입하려면 그곳에 가보라고 했던 것이다. 또한
어쩌다 서울 시내의 기원에 들려
낯선 강1급들을 만나면, 기력을 보충하는데 좋은 바둑책좀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묻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종종 화랑기원에 한번 들려보라는 것이었다.
아마강자들 중엔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도대체 화랑기원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맨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고 가득 진귀한
바둑책들, 개중에는 제본된 책들도 꽤 있었는데,
한국기원 연구생들에게 보급하기위해 준비된 것들이라 했다.
국내의 바둑책들은 물론,
일본의 해묵은 바둑연감들, 50~70년대 일본 유명기사들의
대국전집들, 手筋대사전,手筋사전,포석대사전,정석대사전
藤澤秀行의 명저시리즈, 사까다의 묘시리즈, 일본바둑잡지 등등
실로 탐나는 바둑책들의 전시장과 다름없었으니,
나는 당장 바둑책매니아가 되고말았다.
바둑두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2~3일정도까지는
책 구경만 하였던 기억이 있다. 10여권을 당장
사들이니 집에 있는 책들을 정리해야 될 상황에
직면하였는데, 이 때 우연히 낡은 책갈피 속에서 떨어진
색이 바랜 A4용지에 씌여진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이럴수가! 대학 신입생 시절, 그 때
기원 원장님께서 주셨던 기원홍보전단지로만 알았던 A4두장.
바둑에 대한 예찬과 바둑지도에 대한 내용이 대분이었지만,
뒷장 끝에 작은 글씨로
‘상급 전.후, 기력 향상을 위해 볼만한 책으로는
출판사 왕문사(旺文社)의 기본수법사전
출판사 玄玄閣의 기경중묘,관자보,현현기경,기수묘수집,
법문사의 속임수2권이 있고, 천우사(天祐社)의
사까다의 묘시리즈(6권),일본책 手筋사전, 중략...
강1급을 목표로 할 경우 프로기사가 운영하는 기원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권함’ 이라고 선명하지 않은 글씨체로
씌여있는 것이었다.
위에서 왕문사(旺文社)의 기본수법사전(상.하-藤澤秀行 저)은
대다수 아마 강자들이 상급 전.후의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책이다.
내가 놀란 것은 그동안 강1급들이 추천해주었던 대부분의
책들이 목록으로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때까지 이름조차 생소했던
화랑기원에서 구입한 手筋사전(오청원 세고에 공저)조차
목록에 있었다니, 시공을 초월한 절묘한 매치에
탄복을 했던 것이다.
기력 향상을 목표로 또는 강1급(타이젬9단, 오로 별7단)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애기가들의 공통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기력이 향상될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역시 강1급들의 바둑공부과정 또는
프로기사들의 입단하기까지의 수업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던 것인데, 당시의 화랑기원은 강1급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있었고, 더욱이 원장님의 자제분이
신예프로기사로 활약하고 있는데다, 한국기원연구생들의
학습교재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으니,
책을 구입하는것만으로도 반점은 느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오청원9단의手筋사전을 1회독한 후,
바둑교실을 하는 선배(오로 7단)와의 대국을 통해
물1급은 족히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입생시절, 기원 원장님께서 주셨던
바둑학습지침서를 즉시, 금과옥조로 삼고, 바둑공부를
하였다면, 대학 졸업 이전에 강1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화랑기원도 몇 년 전에 문을 닫았고,
바둑에 대한 관심 또한 생활의 여파에 따라
몇 년씩 접어두다 보니, 아직 강1급의 길은
멀기만 하다.
당시 화랑기원에 진열되어 있던 책들 중에
한국기원 연구생들의 학습교재로 널리 보급되었던
책들은 오청원대국전집, 고전묘수풀이집, 수근사전
수근대사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실
한국기원 연구생수준에서 볼만한 책들은
대국기보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왠만한 묘수풀이는 이미 머리 속에 환하게
자리잡고 있을것인 즉, 설사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발양론이라 해도 연구생들의 수준에서는
이미 복습하는 정도의 참고서 역할에 그칠 것이기때문이다.
요즘엔 좋은 바둑책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까지는 일본세가 워낙 강하여
기보공부를 하더라도 국내의 도전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 초일류기사들의 대국기보를 위주로
공부한 것이 당시의 현황이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물1급에 이르기까지
발양론을 제외한 고전묘수풀이문제는
1회독정도 한 것 같다. 그러나 꾸준히 했던 것도
아니고... 화랑기원에서 구입한 手筋사전(오청원 공저)과
手筋대사전을 한번 본 이후엔, 기력에 내공이
쌓이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은 있는데. 아마도 반복적으로
눈에 익숙해질 때까지 공부했다면 강1급에
좀더 가까이 근접했을 것이다.
물론, 수읽기 공부만으로는 강1급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동감하는 바이다. 기력 향상에 대해 대부분의 조언자들은
기본기를 튼튼히 다진 이후에는 2~3점 상수들과
빈번한 실전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바둑책 공부만 하더라도 부분적인 결과를 판별할 수
있도록 한판의 대국에서
포석,정석,끝내기의 수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학습체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바둑책 공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읽기 공부라는 것이 이미 공론화되어 있다.
참고로 전문기사들이 추천하고 있는 바둑책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90년대 이전에
입단한 분들은 대부분
법문사의 명인전 전집/위기명인기성전시리즈,
현현각의 오청원대국전집, 고전묘수풀이전집을
많이 추천하고 있으며,
90년대 이후에 입단한 신예기사들은 이창호 대국기보,
고전묘수풀이전집 그리고 일본의 수근사전,
수근대사전을 비롯한 묘수풀이집을 많이 추천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인터넷 게시물에 단계별 바둑학습과정을
게재한 적이 있는데, 마고정도님에 의해
다른 곳에 게재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박성균 사범님의
홈페이지 다음카페 <수담산방>의 바둑책 게시판에
올려져 있다.
프바사 게시판에는 오래 전에 같은 내용을
坂田님께서 소개하신 것 같다.
불과 몇 년 사이지만, 학습목록 중에는 이미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서
이번에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책들과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들 위주로 재구성하여
네 번째 이야기<체계적인 바둑학습이란?>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기력은 물1급에 머물고 있지만,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도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 같다. 대학 바둑축제 때, 발양론처럼
난해한 책을 보지 않더라도 강1급이 되는데
문제없으며, 현현기경과 관자보수준의
묘수풀이만으로도 실전에서 충분할거라던 서능욱 사범님.
봉천동 명인기원에서 강1급 두시는 분께
석점으로도 역전패를 당하자, 옆에서 물끄러미
한 수 가르쳐 주시던 김동엽사범님.그리고
서초동의 일품기원에서 혼자 바둑책만 보고 있을 때,
“바둑 한 수 어때요?”하시며 스스로
지도대국을 청해주시던 고 김수영 사범님.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인품들 또한 높으시던지
프로기사가 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인터넷바둑이 기원을
대체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몇 번의 대국을 하여도
생각나는 아이디도 없고, 기억에 남는 대국도
별로 없다.
그러나 10여년도 더 지난 기원에서의 대국과
당시의 얼굴들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치 오늘, 이른 봄햇살처럼...
첫댓글 아...부럽다는 생각이...물이더라도...그 근처까지만 가 봤으면 하는 소망이 생깁니다.잘 읽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네요. 역시 바둑이 늘고 싶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글입니다. 다음 편도 빠른 시일내에(죄송)... 부탁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아 정말 재밌군요~~ 계속 올려주세요~~ 근데 혹시 마고 나오셨어요?
기력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큰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영등포 화랑기원 작년에 다녀왔었는데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