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가 살던 물태리 집성촌(지금은 수몰된 청풍호)에
모셔 있던 석불입상(고려초 10C,보물 546호)
청풍호의 고뇌,씨족 집성촌은 흩어지고
정초 기도를 마치고
이제 나도 훗날을 기약할수 없고
무릎이 좀 아프지만 내 자란 산하를 한번 더 보고
조상들이 머물던 집성촌을 둘러보며
다시금 마음의 일단락을 짓고 싶었다
장손으로 후손을 잇지 못한 불효를 짓고
또 출가의 대도를 이루지 못했으니 실은
양가득죄를 참회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청풍호는 1981년 시작해 1986년 완공했다.
나는 댐을 시작하기전 1979(?)년 물태리(지금 수몰)
를 다녀 갔으니 곧 동리가 수장된다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있었다.
족보를 읽을수 있는 연후에야 조상님들이 남양주
어느 산 석굴에서 불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영기를 받아 나도 일찌기
산문에 들어와 조석으로 부처님 공양을 드리는 출가
사문이 됬으니 참으로 인연이란 단멸됨도 아니요,또한
시공간을 만나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니 이 어찌
부처님 인연법을 거역하리오? 자라온 근교 용문산
용문사 부처님과 천삼백년 은행나무 법신에 마음의
향을 사루며 사바 70여 성상을 향해 달려 가는 이
법체를 아무 사고 없이 살아오게 한 그 은혜를 새기고
또 두물머리 고목에 깊은 감사와 회한을 바쳐 이
어리석은 중생을 보듬어준 용문산과 용문사 부처님
그리고 한강의 장구한 기운에 깊은 찬탄의 염불을
올렸다.
흘러왔고 또 흘러갈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와 두물머리 고목이 각기 일천이백년
과 사백년을 버티며 이제 세멘트 보조처치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 우리의 백년을 논함은 기실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불가 45성상이 꿈처럼 흘러왔듯이,다시 다가설 45년은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할 수 밖에 없으니,중생의 바램은 과거의 모든 인연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또 현세의 모든 인연들이 각자 각처에서 행복하기를 부처님께 기도할 뿐 그 어떤 작위적 운신을 할수 없음이다.세월은 하수상해 미래의 그 어떤 약속도 확약할 수 없으니 저 구름과 강물에 후일을 전하고,저 능선의 바람과 무한 허공에 기원을 띄울 뿐, 그 밖의 약속이
란 모두 허망하다 하지 않을수 없다.
다시 발길을 돌려 청풍호를 찾았으니 천지 개벽이 되었다. 조상들의 집성촌 남한강 상류,그리고 유년 19년을
머문 남ㆍ북한강 교차점 모두 국가의 대동맥인 한강
어귀였으니 이것은 평생 강어귀 내지 강변에 붙은 산자락 부처님도량을 서성이게 한 운명적 동력이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른들이 '충북 음성군 청풍면 돌다리'
라 가르쳐 줘 새긴 기억인데 지금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로서 댐공사로 인해 수몰됬으니 아마 '물태리'를
'돌다리'로 잘못 입력한 나의 오류라 하겠다. 온 곳이
모두 물에 잠겨 옛 어른도 없고 이제는 타방 객지인들이 호반주위로 까페와 식당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으니
청풍대교와 옥순대교가 우뚝 서 놀란 가슴에 한번 더
충격을 주었으니,비봉산 정상까지 잇는 청풍호반 케이블카에는 놀람을 넘어 천지개벽의 변신에 융화
와 현실인정이란 용심을 택하기로 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간혹 옛날 지도가 보였으나 도무지 가늠키 어려운 것은
이제 맑은 청년의 혜안과 시력도 없거니와 옛 지도를 헤아려 새겨 본들 과거로 돌아갈수도 없거니와 이미 어쩔수 없는 내 일신의 무력함을 거듭 인정하는 꼴밖에
안되었기에 옛날과 현존의 비교는 포기하기로 했다.
"조상님들이 오랫동안 머무시던 이 청풍의 맑은 터전
이여,집성촌은 사라졌으나 산하는 그 땅,그 물줄기
그리고 그 하늘아래 공간이니,흩어진 모든 중생들에
게 평화를 주소서,안식을 주소서.이 나그네 역시 언제
다시 조상님 터전을 순례하며 공경과 경배의 일념을
기약할 수 없으니,한잔의 청수를 받으소서,이 한줄기
마음 공양을 받으소서. 인연이란 찰라에 사라짐이요,
육신 또한 순간에 무상한 기운으로 흩어지니 어느 세상에 계시던 조상님들께서 후손들과 인연을 돌봐 주시사 세상은 덧없어도 부처님과 조상님 공덕이 무궁하도록 섭수하시고 가호하시옵소서"
60이 넘어 가면서 주위에 자주 떠나가는 분들이 시야에 확실하게 그리고 뜨겁게 다가섰다.특히 혼자 사는
노년의 절반이 일반적으로 남들보다 일찍 가는 모습을
보며 생사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으며 도량에서 기도하
든 혹은 산하를 답사하든 자기상념에 골똘이 매이게 됬으니 '근원과 본질 그리고 다음'을 짚어 보며 시간이 촉
박해짐을 느꼈다. 생사일여, 본질에 있어 생사가 둘이 아니라 하지만 우리 중생삶이라는 실존에서 분명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할 때 부처님과 합일,그리고 법신인
산하대지와의 일체를 이루기 위한 나름의 사유를 모색
한 것이 정적인 명상과 동적인 순례에 더욱 관심을 갖
게 되었다.물론 그 극점에 일심과 무심이요,인연과 수순임을 분명히 알고 새기는 바다.
첨가하면
근 30여년간 주위의 많은 장례식에 참석해 수많은
사바의 마무리를 보며 그들의 왕생극락을 축원했다
이제 서서히 내 차례를 짚어 보며 근래 기도와 운동으
로 일찍 숙면에 들면 전에는 부처님과 도량,스님들과
지인들 꿈을 꿨으나 근자에 더욱 생사의 본질을 헤짚
는 꿈(6식,7식,8식)의 전개에서 더욱 밀도있는 사유를
이어가게 됬다.부처님께서 현존도 결국은 꿈이라 하셨듯,꿈 또한 현실과 뗄수 없는 관계라 할 것이니 그 꿈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나아갈 바를 분명히 다지는 일은 우리 중생보살의 자기책무이기도 하다.사는데
까지 성실히 살되 중생 폐해를 삼가하고,항상 부처님
반야광명을 응시하니 번뇌의 결박이 아닌 해탈의 세계
를 자유로이 오갈수 있다 하겠다.
황사미세먼지가 산하를 뒤덮었다.
기도를 했으나 부처님도 조상님도 대답이 없으셨다
한번 더 고성염불을 모시려 했으나 오전에 많이 걸어
다리는 풀리고 목은 잠겨 가능치 않았으니,이미 부처님
과 조상님들이 모두 알아 들으셨으리라 나는 스스로
자위를 했다. 이번 짧은 시간 내 유년의 공간과 조상님
터전을 참배함은 점점 이동권이 미약해 지고 한편으로
는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와중에 '사바세계의 공간과
터전'이라는 법신으로 내 육신에 양분과 영양을 주어
긴 성상을 사고없이 삶을 풍요와 안락으로 이끌어 준
것에 대한 마음의 봉대요,봉헌이다.물로 잠겨 댐을
이루고 산허리를 뚫어 터널을 만들고, 중생 편리를
위해 다리를 놓았으니 이 또한 중생행복과 자유를
향한 진일보한 과학의 세계임을 불보살님과 조상님들
이 아실 것이니,어찌 부처님과 조상님이 중생과 후손들
의 풍요와 안락을 지속해 바라지 않으시리오 하는 생각
에 이르니 장구한 시간을 흘러온 한강과 선자리에서
역사를 증명해온 금수산ㆍ가은산 산신령께
일심공양과 기도를 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나무 비로자나불! 나무 산왕대신!
청풍호의 고뇌,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과거와 미래 그 모두를 사랑하리.뿌연 황사미세먼지속 아득한 청풍
호에 조용히 저녘이 다가서고 있었다.
불기 2567.2.25 낮 12:12
의림지
고려 충숙왕 4년(1317년) 청풍출신 청공스님이
왕사가 된것을 봉축하고 청풍현이 청풍군으로 승격한
것을 기념으로 세운 한벽루
비봉산 정상-저 아래 청풍호가 보인다
우측 상단ㅡ청풍대교가 보인다.
청풍 문화재단지
청풍대교
양수리 두물머리
용문사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