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었으니 이제 일요일이다.
우리 초등학교 동기의 따님이 화촉을 밝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자리에 찾아 올 코흘리개 친구들의 반가운 얼굴을 대할 기대 때문일까
오늘은 그저 아름다운 일요일(Beautiful Sunday)이 될 듯 싶다.
그러고 보니 대니얼분(Danielboone)이라는 가수가 부른 "뷰티풀 썬데이"가 떠오른다.
"썬데이 모닝 업 위덜랔 (Sunday morning , up with the lark '일요일 아침 종달새 소리에 잠이 깨어)"
어쩌고 하는 팝송이다.
친두들과 나는 이렇게 가사를 바꿔 부르곤 했다.
"썬데이 서울, 주간 경향,
한구욱일보, 조선일보
헤이, 헤이, 헤이, 나는 신문팔이"
그렇다.
당시 나는 신문팔이였다.
아침에는 전국지인 조간신문을, 저녁에는 지방지인 석간신문을 배달하고, 일요일이면 충장로에서 주간지를 팔았다.
그 중에서도 석간신문 배달은 오래 하기도 했지만 여러 면에서 잊을 수가 없다.
내게 자립심을 키워 주었고, 무엇보다 세상살이의 단면을 엿보는 경험을 쌓게 해 주었다.
또 하나 내성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활달하게 해 주는 등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비록 살집은 없어도 큰 병치레 하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몸뚱이를 건사하는 것도
그때 달리고 달렸던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맡은 구역은 광주고등학교 앞에서부터 담양쪽으로 큰 길을 따라 두암동(지금의 동광주 톨게이트 부근)까지 였다.
신문배달 그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저 달리고 달려서 사무실 혹은 대문 안에 던져 놓으면 되니까.
힘들었던 것은 확장(새로운 구독자 확보)과 수금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라 월 구독료 130원인 신문대금도 거금이라 확장이 쉬울 리 없고
보던 신문을 끊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이었다.
구독자 대부분 신문대금을 잘 주었으나 몇몇 사람은 정말 애를 먹였다.
그 중에서도 모 중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댁은 몇달치씩 밀렸으면서도 애걸복걸해야 겨우 한달분을 주곤 했다.
여북하면 지금까지 그 분의 성함을 기억하고 있을까.
또 도무지 만날 수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매일 신문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그 집에 사람이 사는 건 분명한데 만날 수가 없으니
지금처럼 집집마다 전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연락할 길도 없고, 시쳇말로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애를 먹이는 사람이 있으면 훈훈한 분도 있기 마련이다.
명절이면 양말 한켤레라도 건네 주시며 힘내라고 격려를 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구독사절이라기에 편지를 써서 신문에 끼워 보냈더니 신문도 계속 넣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며 등을 두드려 주신 분도 계셨다.
내 구역 안에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학교가 있었다.
초등학교 동기가 다니는 학교이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그 학교에서는 게시판에 시험성적이 우수한 학생 명단을 붙여 놓곤 했다.
그 동기의 이름도 늘 볼 수가 있어서 내 일인 양 반갑기만 했다.
지금은 장성인가 어딘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꼭 한 번 보고 싶다.
게시판에서 가끔 동기 이름을 보는 즐거움을 빼고는 그 학교에 대한 추억은 별로 좋지가 않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그 학교에 들어 가기가 정말 고역이었다.
산을 깎아 만든 학교라 그런지 운동장에만 들어서면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흙이 얼마나 달라 붙든 지 운동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옷까지 엉망진창이 돼버리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에서 이야기한 교장선생님이 바로 그 학교에 근무하던 분이었고.
그 밖에도 늘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 보니 단벌 교복이 신문잉크에 삭아내린 일
산장입구 계림초등학교 맞은 편에서 담장 너머로 지나가는 내 모습을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담장 아래로 몸을 숙이곤 하던 수줍어하면서도 해맑은 여학생의 얼굴
배달 끝내고 주린 배를 채웠던 광고앞의 국화빵과 중흥동 시장의 단팥칼국수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순진했던 시절의 회상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요일이다.
첫댓글 친구는 정말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 오면서도 이 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친구들의 가슴을 찡하게 감동 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련가? 아마 그 때 개교한 학교라면 동신 중,고등학교가 아닌가 싶은데 항상 성적이 우수하여 승식이를 즐겁게 해주었던 친구는 문완섭이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심금을 울리는 가슴 찡한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