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 포도주와 향과의 삼각관계
오늘날의
향수가 발견된 것은 바로 포도주 때문이었습니다. 비법은 바로 '알코올', 어느 연금술사가 오랫동안 향을 유지시킬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 비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금을 만드는데 실패했던 그들은 포도주 증류과정 중 알코올을 발견, 각종 향신료와 섞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의 물, 기름 등에 의한 기제보다 모든 방향물질을 용해하는 성질이 뛰어난 '알코올'은 휘발성향을 오래
유지시켜줄 뿐 아니라 원료로만 머물었던 향료를 드디어 '향수'라는 개념으로 끌어올리게 했습니다. 한편 최초의 알코올 향수는
로즈메리(ROSEMARY)와 수지를 증류시켜 알코올을 뽑아내고 여기에 증류과정에서 나온 로즈메리의 잔여물을 첨가한
'헝가리워터'(HUNGARY WATER)인데 오늘날의 오데코롱(EAU DE COLOGNE)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1370년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만들었다는데 72세나이로 폴란드국왕에게 청혼을 받았다고 할 정도니 그 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17세기 - 콜롬버스가 닻을 올린 이유
콜롬버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등이 미지의 바다에 도전했던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바로 향료군도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단지 관세를
물지않고 인도나 동남아 등지로부터 향료를 마음껏 가져오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떠났던 것입니다. 당시 후추, 계피, 전향유 같은
향료는 저장한 고기, 생선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좋게할 뿐 아니라 페스트나 콜레라 등 전염병을 방지한다고 믿을 정도로 약품으로
이용되었고, 금은보화와 맞바꿀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재화가치를 가졌던 것입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만으로 망망대해에 몸을 던졌던
항해가들. 바로 그들 뒤엔 항해권을 독점해 막대한 재산을 챙기려는 당시 포르투칼, 스페인왕의 야망이 깔려 있었습니다. 한편
1508년 이탈리아 프로렌스의 성마리베라의 도미니카회 수도사는 향료조제용 아뜨리에에서 '유리향수'를 만들어 당시 유럽상류 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533년 앙리 2세 때 파리 노트르담사원 근처에 제1호 향수전문점이 연 이후 향료의 메카는 이탈리아에서
비로소 파리로 옮겨졌습니다.
17세기 - 프랑스의 향산업은 가죽냄새 때문에..
향수하면
프랑스 그것도 파리를 연상시킨다면 큰 오산입니다. 오늘날 향수산업의 큰획을 그었던 곳은 파리가 아닌 '그라스'입니다. 남부
프랑스 지방의 해발 350m의 완만한 구릉위에 풍부 지중해 햇살이 비추는 곳, 그라스(GRASSE), 그곳에서 프랑스의 향수산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최적의 자연조건 탓도 있었지만 가죽 특유의 지독한 냄새를 없애기위해 향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2세기
무렵 그리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가죽과 유리를 수출하여 공업과 상업이 번창하기 시작, 16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향료산업에
뛰어들어 향기나는 장갑, 모자, 벨트 등 향료가 섞인 피혁제품을 유행시켰다. 이때 향기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루이 14세는
향료와 향수를 산업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17세기 중엽에는 여성들은 향냥이라는 향주머니를 즐겨차고 다녔으며 그 이후 파리에는
수많은 향료, 화장품전문점이 열기 시작했는데 특히 '르네'점이 유명했다고 합니다.
19세기 - 천연향료에서 합성향료의 시대로..
불과
150가지의 향과 향료를 오늘날 4000여가지 이상의 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한 19세기. 바로 다양한 제조방법으로 비로소 향수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특정 계급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이용했던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들 까지도 향수를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유기 화학이 발전하자 19세기 중엽의 화학자들은 다양한 추출법과 조향기기를 만들어 원료로서의 향수보다는
제조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아울러 화학적인 방법으로 식물, 동물 등의 미세한 부분까지 추출하는데 성공하여, 천연향료에서 동물성,
합성향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다양한 향수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원료에 그쳤던 향수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최초의 합성향료를 만든 프랑스 화학자, 모리나드(MOLINARD)는 귀족계급이라는 특정 계급에 그쳤던
향을 대중들에게 퍼뜨리게 한 일등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근대 향수의 아버지로 불리는 겔랑의 유명한 조향사인 '자끄 겔랑'을
시점으로 향수는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20세기 -패션과 향과의 환상적인 만남
1921년
패션과 향수의 만남으로 향수시장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바로 샤넬과 조향사 어네스트 보우(ERNEST BEAUX)가 만든 '샤넬
NO.5' 가 그것입니다. 모스크바 출신 화학자인 어네스트 보우는 패션의 불필요한 요소를 없앤 'Less is More(덜함은
더함이다)'라는 샤넬만의 독특한 패션스타일과 실루엣 칼라 등을 합성향료와 수종의 알데히드를 조합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향산업은 패션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비로소 향수산업은
패션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향수와 유명인의 이름을 딴 이른바 향수 브랜드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샤넬을 비롯해 랑방,
장빠뚜, 피에르 가르뎅,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이브생 로랑 등이 있습니다.
사향을 애용한 역사 속의 여인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을 사랑의 노예로 만든 조세핀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전쟁터에 나가서도 매일같이 사랑의 편지를 써서 병사로 하여금 전달케한 나폴레옹,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 조세핀과의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조세핀>
조세핀이 죽은지 70년이 지난후에는 그가 사용했던 침실에서 사향내가 물씬 났다는 것으로 볼때,
사랑의 미약인 사향으로 나폴레옹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역시 사향덕분에 미의 여왕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을 건설한 시저가 이집트를 정복하러 갔다가 오히려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휘감기었으며, 시저를 비난하며 재차 정벌에 나섰던 안토니오마저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렸던 클레오파트라.
그녀가 여왕으로 군림하고 시저와 안토니오를 굴복시킨 비결은 자세히 알려져있지 않았지만 화장술이 천재였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동방으로부터 수입된 사향을 독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진 조선명종시대에 천하의 명기 황진이도 이 사향을 애용 했다고한다.
선천적으로 시와 노래, 춤에 뛰어났으며 기생이면서 함부로 몸을 허락하지 않는 고고함도 있었지만 그렇게 미모가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더욱이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은채 늘 수수한 옷차림이었으며 잔치자리에서 천연덕스럽게 이를 잡는 주책을 부렸음에도 중국의 관리들마져 황진이를 만나러 조선에 사신을 가길 희망할 정도의 국제적인 인기 비결은 무었이었을까요?
바로 사향을 사용해 뭇 남자들을 뇌살시킨 것입니다.
황진이가 죽고난 후 개성의 그녀집을 방문한 한 선비가 그녀의 방에서 누린내 비슷한 묘한 냄새가 나더라고 기록해 놓았는데, 이 냄새가 바로 사향의 향기였던 것입니다.
첫댓글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에서 채취한 것이라는디...
남자를 무력화시켜 사로 잡은 것이 수컷으로부터 나왔다는게 신기하군
사향 채취가 상업적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서, 향료 용도로는 합성 향료인 합성 사향이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며, 천연 사향의 사용은 현재는 거의 없다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