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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 12:7-8, 26:23-25, 35:14-15
제목: 제단을 쌓는 사람들 :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일시: 2020. 5. 10(어버이주일)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코로나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월 25일(설명절)이었다. 중국 시진핑이 우한코로나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세계에 알린 것이다. 그날 저와 아내는 중국교회 설명절 친교모임에 초청되어 참석했다. 중국인들은 설명절 때 만두를 빚는 것이 전통인가 보다. 책상을 여러 개 길게 연결해 놓고 다들 함께 만두를 빚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이 하나는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두를 만드는데 뭐 그렇게 유별나게 마스크를 하는가 생각이 들었지만 위생적으로 음식을 하는구나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보니 그들은 이미 중국본토 뉴스들을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중국의 상황은 전쟁과 같았다. “중국식당 짱은 장사하기 힘들겠군”이라며 다른 사람 영업까지 걱정해주는 사치스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 자신도 같은 아시아 사람임을 망각하고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비겁한 꼬리자르기 걱정까지 했다. 그러나 중국우한코로나는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을 알리는 출발 신호탄이었다. 중국에 이어 한국에 코로나가 신천지를 통해 강타했다. 그리고 이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유럽과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그리고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가 가장 심각하고 전 세계에 어디든 코로나의 영향이 없는 곳이 없다. 5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2020년 반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는데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I. 제단은 가장 영적 전투의 마지노선이자 마지막 최후의 보루이다.
전문가들도 코로나와의 싸움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결국 코로나의 종식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면 지금 약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거리두기이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와의 싸움의 유일한 방법이다. 극단적인 조치로 많은 나라들은 록다운(Lockdown)을 선포했다. 록다운은 나라나 도시 그 지역 전체에 이동을 제한하여 “자물쇠로 꽉 채워버리다”는 의미로 정부가 이동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다. 이때 사회는 올스톱이 된다. 완전히 얼어붙게 된다.
그러나 록다운 되었을 때 모든 일상이 얼어붙게 되지만 어떻게든지 얼어붙지 않게 하고 숨통을 트이게 하려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먹고 사는 것과 관계된 것이다. 그것을 생활필수품이리고 한다. 록다운을 시켜 아무리 집안을 걸어 잠그고 도시를 봉쇄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손을 댈 수 없는 것은 먹고사는 생활필수품이다. 코로나로 죽기 전에 굶어죽을 수도 있는 생존권이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은 마지막까지 가는 저항선이다.
분데스리가는 멈추어도, 테아터와 오케스트라 공연은 쉬어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휘트니스 문을 닫아 몸매와 건강을 챙길 수 없고 싸커월드가 문을 닫아 취미생활을 할 수 없더라도 빵과 물은 사야 한다. 그래서 바우마켓은 닫고 공장은 멈추어도 먹고사는 알디 컨쥼 레베 네토 카우프란트... 이런 마켓은 다 열게 했다. 물론 사람들마다 “필수품”이 다를 수 있다. 화장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품목이다. 정 없으면 아시아식으로 물로 처리하면 되는데 말이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록다운 상황에서 모든 것이 끊기고 먹을 것은 없어도 와이파이가 되고 핸드폰은 운베딩트 무조건 생필품이다. 미국은 코로나로 인해 사재기를 하는데 총을 구입한다고 한다.
끝까지 물러설 수 없는 나의 생존을 위한 생필품은 무엇인가? 코로나가 우리를 탈탈 털 때에 이것만은 양보 못하고 꿋꿋히 지켜야 할 나의 생필품은 무엇인가? 록다운 되어 모든 삶이 얼어붙게 된다할찌라도 마지막 저항선이요 끝까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제단을 쌓는 일이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 사람은 3대에 걸쳐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제단을 쌓는 일이었다. 제단을 쌓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필수품이었다. 이 믿음의 조상들과 같은 약속을 받은 우리 역시 끝까지 사수해야 할 필수품은 바로 제단을 쌓는 일이다. 제단은 마지막 보루이다. 예배가 무너지면 삶이 무너지는 것이다.
예)한국과 독일에서 총 26년간을 풀타임 목회를 하면서 얻는 경험은 예배에서 실패하면 삶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예배에 소홀하게 되면 분명히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예배는 마치 내 영이 코로나에 걸렸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진단키트와 같다. 예배에 빠질 이유가 자꾸 생기는가? 예배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지는가? 예배에 집중이 안 되는가? 예배가 은혜가 되지 않는가? 예배에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은가? 예배 중 핸드폰의 정보가 궁금한가?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영적으로 정전이 된 때인데 각 가정마다 자가 발전기가 있는가하는 걱정이 된다. 그 동안 늘 전력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불을 켜고 난방을 하고 에어콘을 사용했을텐데 요즘 예배의 전력을 잘 공급받고 있는가 회개가 되고 노파심이 든다.
교회 안에 여러 기능과 역할 그리고 부분들이 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신앙필수품은 무엇인가? 예배이다. 교회 안의 많은 사역들, 성경공부, 바자회, 친교프로그램, 수련회 등 이 가운데 모든 것이 올스톱 되어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있다. 예배이다. 마치 열처리를 하면 순수한 정금만 남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에 열처리를 할 때 다른 것은 녹아 없어져 버려도 끝에 남는 것은 바로 예배이다. 예배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소통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지 옵션이 아니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활동들은 대부분 수평적인 것이지만 예배는 수직적인 것이다.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은 바로 제단을 쌓는 것, “예배”인 것이다. 예배가 없을 때 우리는 질식하고 영적으로 숨이 막혀 왔다. 함께 모여서 예배할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이 예배를 어떻게든 사수하기 위하여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예배로의 체온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이다.
예)우리는 3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드렸고 오늘부터 지극히 제한된 가운데 함께 예배한다. 그리고 09:00에 예배 영상을 찍고 11:00에 녹화예배를 올렸지만 오늘부터는 영상팀 지체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실시간으로 예배드린다. 또한 어린이주일학교예배를 위해 한주일동안 사역자들과 교우들이 함께 예배를 만들어 주일 15:00에 영상으로 올린다. 온 세상이 얼어붙었지만 예배를 드리기 위한 몸부림이 있다. 예배를 진지하게 드리기 위해 유래없이 형식을 무척 강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유치할 정도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기도 했다. 미리 10분전에 준비하라. 큰 화면으로 하라. 파자마 입지 말고 격식있게 입으라. 아멘으로 화답하라. 전화기는 꺼 놔라.
III. 제단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첫걸음이다.
하나님과 우리와 우주만물을 만드셨을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기쁨을 누리기 원하셨고 영광받기를 기대하셨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3:23).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사람들은 죄인된 상태에서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교통하시고자 한 방법을 고안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단을 쌓는 일이었다. 제단을 통해서 끊어졌던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빈 공간이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제사를 열납하시고 제물을 받으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되는 소와 양과 비둘기가 피를 흘렸고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제사의 성취로서 예배의 완성자가 되셨다. 제단을 쌓는 일, 예배를 드리는 일은 범죄한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일이었다.
창세기 3장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스토리 이후 창세기 4장의 첫 스토리는 바로 가인과 아벨이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이야기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깨어진 관계는 제사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제단을 쌓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 장 못가 창세기 6장에서는 다시 죄로 만연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물로서 심판하신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노아가 375일 만에 땅을 밟게 되면서 처음 한 것은 바로 여호와께 단을 쌓는 것이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을 드렸더니”(창세기 8:20). 노아는 제단을 쌓음으로 홍수 이후의 세계에 첫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다.
이후 창세기 12장에서 믿음의 조상이 나오는데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신다. 그 계보를 잇는 그들의 공통적인 것이 있는데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1)아브라함은 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식솔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처음 한 것이 단을 쌓았다는 것이다. 잘 도착해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삶의 현장에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가나안 생활의 시작을 제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갔던 조카 롯이 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잘 지냈다. 고향을 떠나 얼마나 서로 의지했겠는가? 그런데 우양이 많아지고 지역은 협소하니 서로 이해관계에 얽히게 된다. 삶과 일터 현장에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의 분쟁이 있게 되었다.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제안한다. 롯은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창세기 13:10). 롯은 기도해보고 하겠다는 말도 없이 얼른 그 땅을 택한다. 그는 눈에 좋은 대로 현실을 쫓아가지만 그의 인생에 단을 쌓는다는 말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이리저리 다녀본다. 그는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
2)그의 아들 이삭도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세기 26:25). 이삭은 부딪히지 않는 사람이다. 이삭은 아내도 하나님이 척 알아서 리브가를 주시고, 창세기 26장 말씀과 같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다”(창세기 26:12-14). 불레셋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계속 몰아내지만 가서 땅을 파면 물이 나오고 양보하고 이동하여 어디를 가든 형통하였다. 마침내 그가 정착하게 된 곳이 브엘세바인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얻게 되었다. 바로 그 브엘세바에서 이삭은 제단을 쌓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3)이삭의 아들 야곱도 단을 쌓았다. 창세기 28장에서 보면 형의 진노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면서 당시 루스라고 하는 지역에서 노숙자와 같이 잠을 잤다. 그곳에서 꿈에 그는 천국의 계단을 보았고 잠에서 일어나 그가 행한 것이 돌 기둥을 세워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 야곱은 비록 도망자요 노숙자의 모습으로 있었지만 그가 행했던 것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가며 서원했던 것이다.
IV. 오늘은 Muttertag 이다. 어머니 날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버이 주일이라고 한다. Vatertag도 있는가? 야곱에게 어버이는 이삭과 리브가였다. 이삭에게 어비이는 아브라함과 사라였다. 그들이 한 것은 제단을 쌓는 일이었다. 집안의 내력이 제단을 쌓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분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우리 안에는 예배의 DNA가 있다. 우리는 예배하는 사람들의 가문에 속한 예배의 사람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고 관계하는 최선의 방법은 제단을 쌓는 일이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우리는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예배로 마감한다. 예배는 우리의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이며 예배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문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예배의 가풍을 잘 이어나가며 코로나의 시대 속에서 이제 정상적인 예배와 제단을 쌓고자 몸살을 앓고 최선의 삶을 사는 모든 지체들에게 주님의 충만한 은혜와 축복이 풍성히 넘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