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의 석양: II. Noble rot
제주도립미술관 21.9.14
II. Noble rot
9.13에는 제주도 전체가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들며 하루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그래도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지라 어제 지나간, 아직도 5.16도로(성판악을 중간에 둔 제주시-서귀포시 간)로 불리는, 촌장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제1131지방도로를 거쳐 비자림로에 있는 “사려니 숲”(신성한 숲)으로 달려갔다. 평균 고도 550m에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여러 개의 오름을 포함하고 있는 수 백 만평에 달하는 광대한 숲으로 하루 종일 걸으면 좋겠지만 세찬 비로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었다.
빗속의 5.16도로, 21.9.13
사려니 숲길 21.9.13
저녁에는 한국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홍신자와, 그녀가 70세에 결혼하여 서귀포에 같이 정착한 남편 Werner Sasse교수(독일 보콤대학 한국학)를 “외돌개 게스트하우스”에 초대하여 즐거운 식사와 Sasse교수의 기타 솜씨를 감상하였다. 야간이라 촌장의 섹스폰 연주를 감상하지 못해 유감이었다. 내가 전에 캘리포니아 Paso Robles의 winery에서 사두었던 디저트 와인을 가져갔는데 Sasse교수가 독일의 Eiswein을 연상하며 즐겨 마시기에 모두들 기분이 좋았다. 이런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귀부병貴腐病이라는 곰팡이에 의해서 당도가 높아진다는데 늦가을 서리가 내린 후 수확한다고 한다. 그 곰팡이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93년 경 뉴질랜드 근무 중, 남섬 북동부 Marlborough지방의 유명 와이너리 방문 때였다. Marlborough와 그 지역의 제일 큰 도시인 Blenhiem이라는 지명은 윈스톤 처칠의 조상인 존 처칠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잉글랜드의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와 바이에른 연합군을 격파한 1704년의 Blenheum(독일 다뉴브강 유역의 작은 동네) 전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전투의 승리로 존 처질은 말버러 공작(1세)이 되고 옥스포드시 인근 3백만평에 이르는 영지와 영국 국왕에 의해 Blenheim Palace로 명명된 영지 안에 새로 지은 웅장한 궁전까지 하사받았다. 영국내에 일백 수 십 개의 귀족 영지가 있지만 궁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곳은 그곳이 유일하다. 나도1970년대 그 인근에 살 때 자주 놀러 갔던 곳인데 뉴질랜드에서 그 이름을 다시 접하고 감회가 깊었던 기억이 난다.
죄수들의 유배지로 개척되었던 호주와 달리 영국의 이민정책으로 식민된 뉴질랜드는 수도 이름도 나폴레온을 격파한 웰링턴 장군 이름을 땄고, 남섬의 제1도시도 옥스포드대학의 Christ Church College 이름에서 따오는 등 아직도 영국을 모국으로 삼고 지내는 나라이다.(호주, 카나다와 함께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 당시 방문한 와이너리에서 30년이 지나야 마실 수 있다는 디저트 와인도 10년 된 것을 몇 병 샀었는데 이제 마실 때가 지났는데 어디 있는지 찾아 볼 일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 늙는 것은 명화가 키치kitch로 전락하고, 포도 열매가 곰팡이로 썩어 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텐데 이왕이면 고상하게 썩어(noble rot)가도록 노력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Botrytis Cinerea보트리티스 시네레아: 특정한 기후 조건에서 생기는 회색곰팡이의 학명으로, 일명 귀부(고귀한 부패)를 만드는 곰팡이다. 포도껍질에 이 곰팡이가 자라면 포도 내의 수분을 증발시켜 당도를 높이고, 특별한 플레이버를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저트 와인, 독일의 트로켄베렌스아우스레제나 프랑스의 소테른 와인은 이 곰팡이 때문에 만들어진 와인)
돌광어와 와인, 외돌개나라 21.9.12
Noble rots: 홍신자-Sasse부부와 외돌개나라 촌장 21.9.13
9.14에도 하루 종일 계속 비와 바람이었다. 저녁 비행기라 시간을 보낼 겸 제주도 서남쪽 한림읍 성이시돌 목장에 들렀다.
(이 목장은 1954년 한림성당에 부임한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만든 곳. 맥그린치 신부는 주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육지에서 새끼를 밴 암퇘지 한 마리를 사 와서 버려진 땅을 사들여 1961년 본격적으로 성이시돌 중앙 실습 목장을 만들었고, 현재 제주 최대 양돈목장이 됨. 25살의 청년으로 와서 90대까지 제주도에 살며 임피제라는 한국 이름까지 얻은 맥그린치 신부는 2018년 영면.)
목장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는 테쉬폰Ctesiphon 양식의 건물도 둘러 보았다. 2천년 전 이락 바그다드 인근 테쉬폰 마을에 지어져 아직도 그대로 서 있다는 돔 형태의 이 건축양식은 비 바람이 많은 제주도에 어울리는지라 1962년에 처음 직원 숙소로 지어졌다고 한다. 목장 내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하나 One Tree가 있어 사진도 찍었다. 90년대 초 뉴질랜드에 살 때 제2도시인 북섬 북단의 Auckland시의 언덕에 올라가면 One Tree라고 불리는 오래 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관광 명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누군가가 그 나무를 잘라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성이시돌 목장의 나무는 그리 유명하지도 않으니 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왔다.
테쉬폰 21.9.14
One Tree 21.9.14
이어 애월읍 519m 높이 새별오름 曉星岳 에 비바람을 맞으며 올랐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가축을 방목하였으며 겨울이면 들불을 놓았던 연유로 매년 들불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오름엔 들불을 놓은 후 자란 풀이 고운 풀밭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의 5개의 봉우리는 서로 이어지면서 근처의 오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려말 새별오름에서 '목호의 난 牧胡─亂 ' 이 일어났으며 최영장군의 토벌대가 난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원元은 탐라에서 삼별초를 평정한 뒤, 1273년(원종 14) 일본원정에 대비하여 이곳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또한 후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였으며 목호(牧胡:몽골의 목자)를 보내어 소 ·말 ·낙타 ·나귀 ·양 등을 기르게 하였다. 1294년(충렬왕 20) 탐라가 고려에 반환되면서 탐라의 이름은 제주濟州로 개칭되었으며, 조정에서는 목사牧使·판관判官을 두어 다스렸다. 1372년(공민왕 21) 고려는 명明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명에 말[馬]을 보내기 위하여 제주의 말을 징발하였다. 이에 1372년 9월 12일, 목호들은 “세조황제가 방축放畜한 말을 원나라의 적인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고 난을 일으켜, 유경원劉景元·이용장李用藏을 살해하였다. 조정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말을 바칠 것을 청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1374년 명나라에서 말 2,000필을 요구하였고, 역시 제주에서 말을 징발하자 목호들은 다시 난을 일으켰다. 이에 조정에서는 최영崔瑩을 보내 진압하도록 하였다. 이때 전함이 314척, 군사가 2만 5605명이었으며, 최영은 적괴賊魁 3명을 처단하였고, 난을 평정했다. (두산백과) )
새별오름 21.9.14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제주도립미술관을 둘러보며 5박6일의 제주 기행을 마쳤다. 밤 비행기에서 김포 주변을 내려다 보니 도시의 밤 불빛이 지난 십 수 년 사이에 어느덧 여느 선진국처럼 무척 밝아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서울 면적의 세 배인 1,833km2에 70만 가까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인구 밀도가 서울의 1/50이다. 이백이 노래한 別有天地非人間 은 아닐지라도 아직은 원시적 자연의 정취를 조금은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지난 수 년 사이에 무섭게 올라가고 있는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 건물들을 보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우리 세대까지는 그럭저럭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급격한 개발의 후유증은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큰 짐으로 남겨질 것 같다. 그리 되면 아름다운 서귀포의 석양 색조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니 지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서귀포의 석양-왼쪽은 범섬 21.9.12
오슬로의 석양- Holmenkollen Hotel앞에서, 2003.12.7.15:45
김포의 밤 21.9.14.21;44
<駐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역임, 근저: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제주도립미술관 21.9.14
II. Noble rot
9.13에는 제주도 전체가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들며 하루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그래도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지라 어제 지나간, 아직도 5.16도로(성판악을 중간에 둔 제주시-서귀포시 간)로 불리는, 촌장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제1131지방도로를 거쳐 비자림로에 있는 “사려니 숲”(신성한 숲)으로 달려갔다. 평균 고도 550m에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여러 개의 오름을 포함하고 있는 수 백 만평에 달하는 광대한 숲으로 하루 종일 걸으면 좋겠지만 세찬 비로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었다.
빗속의 5.16도로, 21.9.13
사려니 숲길 21.9.13
저녁에는 한국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홍신자와, 그녀가 70세에 결혼하여 서귀포에 같이 정착한 남편 Werner Sasse교수(독일 보콤대학 한국학)를 “외돌개 게스트하우스”에 초대하여 즐거운 식사와 Sasse교수의 기타 솜씨를 감상하였다. 야간이라 촌장의 섹스폰 연주를 감상하지 못해 유감이었다. 내가 전에 캘리포니아 Paso Robles의 winery에서 사두었던 디저트 와인을 가져갔는데 Sasse교수가 독일의 Eiswein을 연상하며 즐겨 마시기에 모두들 기분이 좋았다. 이런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귀부병貴腐病이라는 곰팡이에 의해서 당도가 높아진다는데 늦가을 서리가 내린 후 수확한다고 한다. 그 곰팡이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93년 경 뉴질랜드 근무 중, 남섬 북동부 Marlborough지방의 유명 와이너리 방문 때였다. Marlborough와 그 지역의 제일 큰 도시인 Blenhiem이라는 지명은 윈스톤 처칠의 조상인 존 처칠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잉글랜드의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와 바이에른 연합군을 격파한 1704년의 Blenheum(독일 다뉴브강 유역의 작은 동네) 전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전투의 승리로 존 처질은 말버러 공작(1세)이 되고 옥스포드시 인근 3백만평에 이르는 영지와 영국 국왕에 의해 Blenheim Palace로 명명된 영지 안에 새로 지은 웅장한 궁전까지 하사받았다. 영국내에 일백 수 십 개의 귀족 영지가 있지만 궁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곳은 그곳이 유일하다. 나도1970년대 그 인근에 살 때 자주 놀러 갔던 곳인데 뉴질랜드에서 그 이름을 다시 접하고 감회가 깊었던 기억이 난다.
죄수들의 유배지로 개척되었던 호주와 달리 영국의 이민정책으로 식민된 뉴질랜드는 수도 이름도 나폴레온을 격파한 웰링턴 장군 이름을 땄고, 남섬의 제1도시도 옥스포드대학의 Christ Church College 이름에서 따오는 등 아직도 영국을 모국으로 삼고 지내는 나라이다.(호주, 카나다와 함께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 당시 방문한 와이너리에서 30년이 지나야 마실 수 있다는 디저트 와인도 10년 된 것을 몇 병 샀었는데 이제 마실 때가 지났는데 어디 있는지 찾아 볼 일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 늙는 것은 명화가 키치kitch로 전락하고, 포도 열매가 곰팡이로 썩어 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텐데 이왕이면 고상하게 썩어(noble rot)가도록 노력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Botrytis Cinerea보트리티스 시네레아: 특정한 기후 조건에서 생기는 회색곰팡이의 학명으로, 일명 귀부(고귀한 부패)를 만드는 곰팡이다. 포도껍질에 이 곰팡이가 자라면 포도 내의 수분을 증발시켜 당도를 높이고, 특별한 플레이버를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저트 와인, 독일의 트로켄베렌스아우스레제나 프랑스의 소테른 와인은 이 곰팡이 때문에 만들어진 와인)
돌광어와 와인, 외돌개나라 21.9.12
Noble rots: 홍신자-Sasse부부와 외돌개나라 촌장 21.9.13
9.14에도 하루 종일 계속 비와 바람이었다. 저녁 비행기라 시간을 보낼 겸 제주도 서남쪽 한림읍 성이시돌 목장에 들렀다.
(이 목장은 1954년 한림성당에 부임한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만든 곳. 맥그린치 신부는 주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육지에서 새끼를 밴 암퇘지 한 마리를 사 와서 버려진 땅을 사들여 1961년 본격적으로 성이시돌 중앙 실습 목장을 만들었고, 현재 제주 최대 양돈목장이 됨. 25살의 청년으로 와서 90대까지 제주도에 살며 임피제라는 한국 이름까지 얻은 맥그린치 신부는 2018년 영면.)
목장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는 테쉬폰Ctesiphon 양식의 건물도 둘러 보았다. 2천년 전 이락 바그다드 인근 테쉬폰 마을에 지어져 아직도 그대로 서 있다는 돔 형태의 이 건축양식은 비 바람이 많은 제주도에 어울리는지라 1962년에 처음 직원 숙소로 지어졌다고 한다. 목장 내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하나 One Tree가 있어 사진도 찍었다. 90년대 초 뉴질랜드에 살 때 제2도시인 북섬 북단의 Auckland시의 언덕에 올라가면 One Tree라고 불리는 오래 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관광 명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누군가가 그 나무를 잘라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성이시돌 목장의 나무는 그리 유명하지도 않으니 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왔다.
테쉬폰 21.9.14
One Tree 21.9.14
이어 애월읍 519m 높이 새별오름 曉星岳 에 비바람을 맞으며 올랐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가축을 방목하였으며 겨울이면 들불을 놓았던 연유로 매년 들불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오름엔 들불을 놓은 후 자란 풀이 고운 풀밭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의 5개의 봉우리는 서로 이어지면서 근처의 오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려말 새별오름에서 '목호의 난 牧胡─亂 ' 이 일어났으며 최영장군의 토벌대가 난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원元은 탐라에서 삼별초를 평정한 뒤, 1273년(원종 14) 일본원정에 대비하여 이곳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또한 후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였으며 목호(牧胡:몽골의 목자)를 보내어 소 ·말 ·낙타 ·나귀 ·양 등을 기르게 하였다. 1294년(충렬왕 20) 탐라가 고려에 반환되면서 탐라의 이름은 제주濟州로 개칭되었으며, 조정에서는 목사牧使·판관判官을 두어 다스렸다. 1372년(공민왕 21) 고려는 명明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명에 말[馬]을 보내기 위하여 제주의 말을 징발하였다. 이에 1372년 9월 12일, 목호들은 “세조황제가 방축放畜한 말을 원나라의 적인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고 난을 일으켜, 유경원劉景元·이용장李用藏을 살해하였다. 조정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말을 바칠 것을 청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1374년 명나라에서 말 2,000필을 요구하였고, 역시 제주에서 말을 징발하자 목호들은 다시 난을 일으켰다. 이에 조정에서는 최영崔瑩을 보내 진압하도록 하였다. 이때 전함이 314척, 군사가 2만 5605명이었으며, 최영은 적괴賊魁 3명을 처단하였고, 난을 평정했다. (두산백과) )
새별오름 21.9.14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제주도립미술관을 둘러보며 5박6일의 제주 기행을 마쳤다. 밤 비행기에서 김포 주변을 내려다 보니 도시의 밤 불빛이 지난 십 수 년 사이에 어느덧 여느 선진국처럼 무척 밝아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서울 면적의 세 배인 1,833km2에 70만 가까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인구 밀도가 서울의 1/50이다. 이백이 노래한 別有天地非人間 은 아닐지라도 아직은 원시적 자연의 정취를 조금은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지난 수 년 사이에 무섭게 올라가고 있는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 건물들을 보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우리 세대까지는 그럭저럭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급격한 개발의 후유증은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큰 짐으로 남겨질 것 같다. 그리 되면 아름다운 서귀포의 석양 색조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니 지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서귀포의 석양-왼쪽은 범섬 21.9.12
오슬로의 석양- Holmenkollen Hotel앞에서, 2003.12.7.15:45
김포의 밤 21.9.14.21;44
<駐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역임, 근저: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