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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編 《存齋集》 소개
2019.02.01 장흥위씨 대종회가 기존 <국역 존재집>을 파격적으로 개편해 <신편 존재집>을 출판했다. 2016년부터 준비해 근 3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존재학을 공부하려는 종친들께 정독을 권유하는 차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제1권은 <한시와 가사, 325쪽>, 제2권은 <사서차의, 393쪽>, 제3권은 <격물설, 401쪽>, 제4권은 <경세사상, 342쪽>, 제5권은 <외로운 ‘구도자’, 285쪽>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 <국역 존재집>에 비교해 크게 세가지 면에서 파격적이다. 먼저 분류에 있어 문사철(文史哲) 기준에 의거 전면적으로 체계를 바로 잡았으며, 제5권에서 평전(評傳)을 첨가해 존재공의 지성사적 위치를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했다. 또한 존재사상에 쉽게 접근하도록 길잡이로서 여러 학자들의 글을 실었다.
우리 문중의 석학 圓山 위정철 前)소장께서 8旬을 맞아 편저자로 출간했다. 존재公 전도사(傳道師)로서의 존재사상에 대한 깊은 애착과 함께 존재학의 연구방향을 제시한 격조높은 저서이다. 이에 신편 존재집 서를 싣는다.
新編 《存齋集》序
존재 선생은 장흥 위씨의 지성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지성을 담고 있는 기록은 <존재집>과 <존재전서> 등 두 종류가 있다. <존재집>은 1875년 족손 魏榮馥 후손 魏炳錫등에 의해 간행됐다. 저서는 원래 100여권이 넘었으나 1795년 正祖의 명으로 그 중 24권을 內閣에 보냈다. 내각에 올려 보낼 때 왕명을 받은 전라도관찰사의 재촉을 받아 다급한 나머지 복본(複本)을 만들지 못한 채 원본을 그대로 보낸 뒤 돌려받지 못했다. 내각에 보내졌던 저술 중 상당한 분량이 없어져 문집에 담기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의 저술이 이 정도라도 빛을 보게된 것은 몇몇 후손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존재집>은 선생의 장남 魏道立(1748-1808)이 1801년에 정리했다. 그 유고를 조카 魏道僩(1830-?)이 목록을 작성했다. 목록에는 내각에 보낸 24권 이외에 賦, 跋, 記, 書 각 1권, 狀 2권, 誌 2권, 銘 1권, 文 2권, 疏 2권, 解 1권, 辨 1권, 墓表 2권, 屛溪先生經禮問答 1권, 明史評 1권, 鄕約節目 1권, 海島誌 1권, 經書條對 1권 등과 古琴, 思成錄前後編, 爺孃手書, 支提誌 등이 포함돼 있었다. 중복된 부분이나 품격이 떨어지는 글은 제외되었겠지만 초기의 100여 권이라는 분량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저자의 年譜와 承召事實 등 부록의 일부 내용도 이때 정리된 것이다.
위영복은 魏道立 등이 정리한 유고를 任憲晦에게 맡겨 편차와 교정을 부탁하고 서문을 받은 뒤 부록을 첨가하여 1875년에 목활자로 24권 12책을 간행했다. 이때 간행된 판본은 규장각(〈奎 12629〉), 장서각(〈4-6482〉),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436〉),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돼 있다. 임헌회는 유고를 精選 편집했는데, {古琴}과 {瀛誌}처럼 別著의 형식의 글은 문집에서 제외했다. 辭, 禮說隨錄, 分賑節目, 學規, 陶蘇眞影 등은 남아 있지 않았던 듯하다. 저자의 저술로 본집 외에 규장각에는 {瀛誌} 목판본(〈奎 5477〉)이, 국립중앙도서관에는 {古琴} 목활자본(〈의산 古 3613-14〉)이 소장돼 있다.
<존재전서>는 1974년 경인문화사가 魏桂煥家에 소장된 필사본 25권을 상하 2책으로 영인해 출판한 것이다. 全書本은 卷次의 구분이나 체제를 갖추지 않고 文體別로 모아 놓은 상태이고, 제목 위에 흑점은 임헌회가 편집 당시 대본으로 사용했던 듯하다. 구성은 上冊이 詩賦, 疏, 書, 雜著, 格物說, 四書箚義(大學, 論語, 中庸, 孟子), 序, 記, 辨, 年譜로 되어 있고, 下冊이 政絃新譜, {瀛誌}, 然語, 祭文, 墓道文, 雜著, 附錄으로 구성됐다. 아마 魏道立의 정리본을 바탕으로 한듯 한데 목록과 비교해 보면 明史評, 海島誌, 屛溪先生經禮問答 등이 빠져있다. 본 해설은 규장각 소장본 〈奎 12629〉을 저본으로 했다.
<존재집>과 <존재전서>는 국역에도 진통을 겪었다. 전남대는 존재 위백규의 실학은 경학, 경세학, 천문, 지리, 역사, 의학 등을 아우르는 방대한 체계와 독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茶山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라고 전제하면서 그 결과 기존의 연구는 시가를 중심으로 한 문학적 조명을 시도한 몇 편의 단편적인 연구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한국사상사에서 위백규의 정당한 자리매김과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연구를 위해 문집 번역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된다면서 국역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필요한 막대한 경비를 조달하지 못해 차일피일 시간이 흐르면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다 전주대고전학 연구소가 <존재집>을 국역하는 쾌거를 이뤘다. 대학은 2005년 한국고전번역원으로부터 호남권 협동번역사업 거점대학으로 지정되면서 <존재집>의 번역에 나섰다. 대학측은 이때부터 존재집 24권의 번역에 들어가 2011년 작업을 마치고 그해 9월 30일 「삼벽에서 피어나 호남지성의 꽃, 존재 위백규」 란 이름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므로 2003년 장흥문화원이 주최한바 있는 존재학문의 두 번째 학술대회인 셈이다. 늦게라도 <존재집>이 국역된 것은 문중으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번역에 소요된 비용이 3억원이 넘었다니 우리 문중차원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존재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려면 <존재집>의 국역만으로 가능할 수 없다. 국역은 <존재전서>와 단행본까지 이뤄져야 ‘존재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 왜냐면 <존재전서>에는 <존재집>에 실리지 않은 저술이 많기 때문이다. 한시의 경우 「집」에는 126제(題) 187수(首)가 실렸으나 「전서」에는 205제 373수로 훨씬많다. 더구나 금당도(金塘島) 선유(船遊)체험 시문인 5언장편 금당시, 7언4운 금당선유운, 5언절구 금당선유운 4수와 기행문인 금당도선유기가 모두 누락됐다. 여기다 정조대왕이 높이 평가했다는 세계지리서 <환영지(寰瀛誌>마저 빠졌다. 그럼에도 <존재전서>가 국역될 개연성은 요원하다.
물론 <존재집>의 국역도 고맙기 그지 없다. 그러니 국역된 <존재집>으로라도 연구해 걸음마 단계인 존재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존재집>을 연구하자면 또 하나의 장애가 있다. 그것은 <존재집>의 기존 편집체제가 앉고 있는 모순과 혼란이다. <국역 존재집>은 1875년의 편집본을 분야별로 정리하지 않고 단순히 번역해 출간했기 때문이다. 즉, 학문 분야와 연대 등이 일목요연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가령 경세에 관한 저술의 경우 <만언봉사>는 2권에 <봉사>는 3권에, <정현신보>는 5권에 떨어져있다. 이는 방대한 량이라서 불가피한 사정도 있으나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집중하기 어렵다.
따라서 <신편 존재집>은 文士哲의 내용별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이는 서로 분산된 글을 기승전결로 찾아 공부한데 도움을 주고자하는 의도이다. 편집자는 이를 위해 수년간 작업했다. 처음 시도이니 첫술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미진함이 많은 이유는 편집자의 한계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러 번 고치고 다듬어져야 할 과제인 것이 분명하다. <신편존재집>은 <존재집> 전6권 중 행장이나 묘갈명 등 개인에 대한 기록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전5권에 담았다. 원고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았기에 본문과 떨어져 있는 각주(脚註)를 새로 입력했다. 입력하는 단계에서 혹시 착오로 잘못된 각주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바란다.
제1권은 <문학작품집>이다. <존재집>에 게재된 한시는 126제 187수가 있다. 이들 가운데 제작연대가 기록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기록되지 않았다. 선행연구자의 노력과 내용이나 기타 다른 글을 통해 93제의 제작연대를 확인하고, 미상은 40제이다. 그리고 ‘사강회’로 인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토론문학의 한편인 ‘연어(然語)’를 담았다. 여기에는 「매군창수」 23수와 간화선(看話禪)의 한 대목 같은 「신회(神會)」도 있다. 특히 <존재전서>의 ‘자회가’등 가사와 연시조 ‘농가구장’ 및 ‘보리(麥)’와 ‘년년행’ 등의 작품을 포함했다. 아울러 각종 ‘설’, ‘기’, ‘서’ 등도 산문(散文) 영역의 글이라 일부를 추가했다.
제2권은 <독서차의>이다. <대학>, <중용>, <논어>, <맹자> 등 4서차의를 함께 묶었다. 기존의 편집체제를 크게 개편했다고 볼 수 있다. <존재집>에서는 제5권에 대학, 제6권에 논어, 제9권에 맹자, 제10권에 중용이 있다. <국역존재집>에서도 제2권에 대학과 논어, 제3권에 맹자와 중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신편 존재집>에서는 대학과 중용이 원래 <예기> 49편에서 분리됐음을 감안해 대학→중용→논어→맹자 순으로 편집했다. 저자인 존재 선생은 4서 중 <논어>를 가장 중요해게 여긴듯하다. 이유는 저술의 분량에서 나타난다. 대학은 84쪽, 중용 77쪽, 맹자 83쪽인데 논어는 무려 328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제3권은 <격물설>이다. 방대한 분량의 저술이랄 수 있다. <존재집> 제11권에서 16권에 실려 있다. 전주대 오항녕(吳恒寧) 교수는 “상론(尙論)만해도 별도의 학위논문이 가능한 주제”라고 평가했다. 격물성의 내용은 세계와 역사를 다룬 논설이다. 논설의 주제는 천지로부터 나(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과 주제를 섭렵하고 있다. 이는 그의 우주관과 인식론을 엿볼 수 있는 변증법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즉, <격물설>는 선생이 생각하는 ‘나→우주→역사’의 연관과 상호 관계를 보여준 값진 자료랄 수 있다. 나아가 선생이 조선 사상계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위상과 특성을 보여주는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에 따라 <신편 존재집>은 기존 <존재집>의 편집을 파격적으로 뒤짚었다. 기존편집도 나름대로 심오한 이론적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11권부터 16권까지 권수순에 따라 나열하지 않았다. <Ⅰ> 우주와 사물편으로 <존재집> 제16권 원류(原類), 원도서(原圖書),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제12권 천지, 오행, 금수, 곤충, 사물(1) 제13권 사물(2), 음양과 우주질서 <Ⅱ> 역사와 인물편으로 제11권 요전설, 우공설, 사략설, 백이전설 제14권 상론 제15권 시인 역사인물, 아(我), 인설서, 인설, 일원종시설, 논하락도설 등의 순으로 짠 것이다. 이유는 주제의 내용에 따라 우주의 생성과 운행 및 역사 인물순이다.
제4권은 <소문>이다. <정현신보>, <봉사>, <만언봉사> 순으로 편집했다. 물론 <정현신보(政絃新譜)>는 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존재 선생은 <崔知事 夢嵒>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언봉사>로 인한 말썽에 대해 해명했다. 즉, 1783년 무료해서 시중의 여론을 확인없이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 했다. 그러나 선생이 30세부터 쓰고 보완을 거듭했던 <정현신보>는 소문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1778년 장흥부사 황간의 부탁으로 대작한 <봉사>도 <정현신보>를 저본으로 사용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전후사정을 감안했을 때 <정현신보>는 봉사와 만언봉사의 바탕이다.
제5권은 <외로운 ‘구도자’>이다. 존재 선생의 일생을 당신의 저술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사실 장흥 위문에 인물이 많이 배출됐으면 호남 지성사 아니 한국 어느 인물과 견주워도 손색이 없는 존재 선생 정도면 「평전(評傳)」 하나쯤 나왔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금까지 선생의 일생을 전해주는 단행본은 나오지 않았다. 고작해야 그의 생애를 단편적으로 알리는 기사 정도만 간헐적으로 나왔지 그 이상은 없었다. 선생은 생전에 늘 삼벽(三僻)을 서러워했다. 그러다 말년에는 소강절(邵康節)의 원회운세설(元會運世說)에 의탁해 소진기에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했다. 소진기와 삼벽이 겹친 탓이다. 선생은 ‘고축명(鼓軸銘)병서’로 현실을 탄식했다. 자신을 큰북을 매다는 축으로 쓸만한 나무로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무는 뛰어난 사물인데도 진정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또한 어찌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겠는가. 아! 나무가 진정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대소가 있단 말인가. 느낀 점이 있어 다음과 같이 명을 지었다. 木之奇兮不自奇/기이한 나무는 절로 기이한 것이 아니라 而遇知者知鼓而鼓之/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고축이 되리니 若大遇也/특별한 큰 만남이 있게 된다면 宜天下稱奇/천하가 기이하다 칭하리.” <신편 존재집>이 ‘존재학’을 공부하는 후학에게 조금이라도 도움됐으면 한다.
2019.02.01
위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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