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논쟁이 벌어졌다.
바울과 바나바와 이방교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변론을 하게 되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멍에를 지우지 말라 하고,
그들도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믿는다고 설득한다.
나와 다른 믿음을 만날 수 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데는 서로 동의하여도
중요한 신앙의 가치는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는 것 같다.
수세례와 침례, 성령의 내재와 외적인 충만함, 구원의 예정과 신인협동설 등등,
대부분 교리적인 것들이다.
먼저 내가 맞는지 틀린지 말씀으로 확인해 봐야할 것 같다.
그 다음에 내가 맞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논쟁이든 토의든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둘 다 맞고 틀림이 아니라 그저 다름이라면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 줘야 하는 것 같다.
이방인이 율법이 아닌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유대인들보고 당장 할례를 때려쳐라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아프리카.... 많은 윤리적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 윤리적 문제들은 구원과 결부시키면 안되는 것 같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며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다.
나도 그도 주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고, 주 안에서 하나이다.
내가 먼저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지.
내 율법의 이해 가지고 비판, 판단, 정죄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꼭 필요한 변화라면 나의 변화든 남의 변화든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그리고 그와 하나가 되어야지...
- 사도행전 15장 1-11절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