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에는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갓바위 부처님(관봉석조여래좌상)과 불굴사, 원효암 등 팔공산 자락의 사찰들이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경산의 알려지지 않은 유적들은 잘 찾지 않아 비지정 문화재를 찾아 길을 떠난다.
원효대사 탄생지로 전해지는 곳
원효대사 탄생지로 전해지는 자인면 북사리 도천산 제석사를 찾았다. 사찰은 근래 다시 지은 듯 깨끗했다. 대웅보전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데 대좌가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주목되었다. 삼성각 옆에 고목은 원효대사가 탄생한 장소라고 한다. 경내에 있는 중수 기념비에는 1625년 창건 되었다고 써 있으니, 창건 시기가 다수 신빙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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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 완전히 새로이 다시 지은 절 처럼 깨끗하다. |
ⓒ 김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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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좌 석불이나 개금되어 있으나 대좌는 문양이 있어 볼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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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 탄생지 원효대사가 태어난 장소라 전하나 근거는 미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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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는 자신이 태어난 곳과 살던 집에 절을 세워 각각 사라사와 초개사라 하였다고 한다. 향토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아마 제석사가 곧 사라사일 것이란 주장을 하였다. 경내에는 석등 부재와 일부 탑 부재가 남아 있고 원효성사전에는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있는데 원효대사의 일대기를 탄생에서 열반까지 8가지 그림으로 형상화하였다. 1990년부터 매년 음력 5월 4일 원효성사 추모다례를 봉행하고 있다.
제석사 자체 안내문에는 약 400여년 전 한 농부가 밭갈이 하던 중 불상과 탑신이 발견되어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자인초등학교 내 석탑재 있어
자인면 교촌리 자인 초등학교 정원 내에는 원래 위치를 알 수 없지만 옮겨져 있는 석탑 부재들이 남아 있다. 석탑의 기단부 갑석과 탑신석1매, 옥개석(지붕돌)1매가 있는데, 옥개석은 층급4단 받침에 풍탁공이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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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탑부재 자인초등학교 내 석탑 부재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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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안심리 3층석탑
늘 그러하듯 비지정 문화재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남산면 안심리에 있는 3층석탑 역시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일단 동네에도 3층석탑이 있다는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만 거의 1시간여 동안 해매다가 드디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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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 멀리나마 삼층석탑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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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 내에 있었는데 막상 찾고 보니 정말 보람이 느껴졌다. 완벽한 형태의 3층석탑인데 아직 비지정이다. 이 정도면 아마 다른 지역에서는 지방 문화재로 벌써 지정되었을 것인데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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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탑 기단부 일부를 제외 하고는 완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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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앞에는 흥정동 3층석탑이 있었다. 문화유적 0916-11-036이며 창건년도는 미확실하다. 높이 1.8m이며, 지대석 66cm의 3층석탑이다. 탑과 너무 가까이 있어 조금 주변으로 옮겨 설치하였으면 좋겠다. 오래된 안내문구로 보아 아마 관리 대상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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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문 오래된 안내문이 그나마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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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수원내에 있고 진입하는 길과 외지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석탑이다. 지금부터라도 기단부를 복원하고 주변을 발굴 조사하면 완벽한 3층석탑이 될 것 같다.
설총선생 신도비가 있으나 찾기 어려워
경산지역에는 삼성현이라 하여 일연스님, 원효대사, 설총을 받들고 있다. 그 중 설총과 원효대사 관련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유곡동 일대가 그러하다. 기름골의 불광사는 설총이 공부하던 곳이라 전하며, 유곡동의 끝자락인 골안골 원효사에는 설총의 신도비가 남아있다. 또 이곳은 원효가 창건했다는 신림사터로 추정되며, 석탑 부재등과 연화대석 등이 경내에 남아 있다. 아울러 이곳에 있던 일부 석조물들은 경산시립박물관 야외로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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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립박물관 석재 경산시립박물관 야외 석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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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남산면 하대리에 있는 도동재 남쪽에도 홍유후 설선생 신도비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