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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 넘어지는 반석
이사야 8:11-15
11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12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아하스 왕은 이사야를 통한 주의 임마누엘의 예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마음은 앗수르 왕을 의존하려는 마음으로만 가득합니다. 그는 세 가지 면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첫째는, 하나님보다 두 왕, 곧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를 더 두려워한 것이고, 둘째는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앗수르 왕을 더 의존한 것이며, 셋째는 앗수르 왕이 그를 돕지 않자 고통 가운데 그가 한 일은 고작 그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준 아람의 다메섹 신들을 예배하며 의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안중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는 주님보다는 늘 눈에 보이는 세상 및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임마누엘의 예언에 따라 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하신 말씀처럼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감히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담긴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이 땅에서 멸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간판을 만들어서 그 위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쓰라.”
그리고 주께서는 그 간판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쓴 사실에 대해 두 사람의 증인까지 세우십니다. 그 두 사람은 대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입니다.
한편, 히브리어 원어 (마헤르 샬랄 하쉬 바즈)는 “신속하게 약탈물을, 급하게 노획물을”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불신자 아하스 왕에게 주신 징조와 맞물린 하나님의 실제적인 심판 예고로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르신과 베가)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그러면서 이때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보다 앗수르 왕을 더 의지한 아하스 왕 및 남유다를 향한 심판을 더하여 언급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아하스)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사 7:17).
그 후 이사야가 아내와 동침하고 곧바로 아들을 낳았고, 이사야는 주의 지시에 따라 그 아이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하라. 그 아이가 커서 ‘아빠,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앗수르 왕이 (아람의) 다마스커스와 (에브라임의) 사마리아의 모든 재물을 약탈할 것이다”(사 8:4).
즉, 이사야의 둘째 아들이 엄마 아빠를 말하기 전에 앗수르 왕으로 하여금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게 함으로 두 나라를 황폐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가 지은 동일한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사 8:6-8).
여기서 ‘이 백성’이 누구인지에 대해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백성은 ‘내 백성’이라고 하시고 하나님을 저버린 백성을 ‘이 백성’이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워 보내시면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사 6:9-13)
그러므로 이 백성 중 그루터기 외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시작부터 배교로 세워진 북이스라엘에 해당하고, 나아가 아하스 왕처럼 하나님보다는 앗수르 왕을 더 의지하는 남유다의 불신자들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 백성’은 배교에 물든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세우셔서 이 백성 중 북이스라엘을 먼저 덮고 그 넘쳐 흐르는 물이 남유다에게도 흘러 들어가 목에까지 덮게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 전체가 앗수르 제국의 공격에 초토화될 것입니다. 이에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어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산헤립 때에 14년 동안 고통과 궁핍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 하나님은 이 백성이 세상 제국인 앗수르에게 철저하게 유린 당하는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그 이유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아람 왕 르신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패역한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멸하실 것이며, 나아가 남유다도 심판하시되 “임마누엘”의 징조를 위해 남유다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때 남유다의 회복은 남은 자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사 8:8)
사랑하는 여러분!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는 것은 멸망을 향하는 길입니다.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이제 곧 멸망하게 될 르신과 베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지금 르신과 베가는 하나님의 심판이 코 앞에 와 있는 멸망의 대상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르신과 베가를 믿고 따름으로 이 땅에서 영원히 멸절되었습니다. 남유다 중에도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앗수르 제국을 의지한 자들 역시 하나님께서 잘라내시고 그들 중 남은 자들만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은 무엇이고 “르신과 베가”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 말씀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실로아”는 ‘실로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1, 7).
이 내용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알려주는 동시에 ‘실로아’가 치료의 샘을 내뿜는 근원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실로아는 메시야와 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 즉 생수의 강과 맞물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성소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과도 맞물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로아는 하나님의 나라와 맞물린 다윗의 왕권을 뜻합니다. 다윗의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남유다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실로아의 샘은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은 남유다 및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실로아 못은 나중에 산헤립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포위했을 때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기혼샘과 연결시킴으로 예루살렘의 생명수가 됩니다. 이 또한 모든 어둠의 공격으로부터 주의 백성을 구원하는 근원은 임마누엘의 약속이 담긴 다윗 왕권의 실로아 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가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이 있는 다윗의 나라, 즉 오직 실로아 샘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샘은 다윗의 나라를 나타내고, 그 나라의 완성은 매우 천천히 흐를 것이지만 결국 메시야의 오심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서 주와 언약을 맺은 주의 백성은 반드시 실로아 샘을 마셔야 합니다. 즉, 다윗 왕국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와 그의 나라를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메시야를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메시야는 처녀가 낳은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믿음 만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지만 이 백성은 그 믿음을 버리고 르신과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르신은 곧 멸망할 나라이고, 앗수르는 주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는 도구로 쓰인 후 멸망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된 주의 백성, 즉 남은 자들만이 실로아의 물을 한없이 마시며 만족한 삶을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앗수르 왕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약탈하고 무너뜨린 후에 결국 그 힘이 남아 돌아서 남유다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를 불러들인 것은 아하스 왕이지만, 정작 앗수르 왕이 북이스라엘을 장악한 후에 한 일은 도리어 아하스 왕을 협박하여 막대한 공물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아하스 왕은 남유다에 있는 모든 값진 것을 다 털어 줍니다. 하지만 그때뿐이고 앗수르 왕의 학대는 더욱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아하스)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아하스)를 공격하였더라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대하 28:20-21).
그 후 주전 714년에 산헤립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제외한 남유다의 모든 성읍을 약탈하였습니다. 그 후 그러한 상태로 14년 정도 있다가 주전 701년에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읍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그 땅은 임마누엘의 땅이라 그들의 공격은 대실패를 하게 됩니다. 이는 주께서 친히 천사를 시켜 앗수르 대군 18만 5천을 죽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8장 9절 이하는 임마누엘의 땅을 친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는 임마누엘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
9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10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사 8:9-10).
하지만 남유다 내에서 앗수르 제국을 의존하는 세력은 다수였고, 이를 지지하는 지도자 및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아무도 의존하지 말고 주 하나님만 의지하자고 외쳤기 때문에 친 앗수르 세력에게 오해를 받아서 반역자로 몰렸습니다.
[
11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12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사 8:11-15)
유다 내에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친 앗수르를 지지하는 세력은 그 땅에 임마누엘로 계시는 주 하나님에 의해 수치를 당해야 하며 주 하나님에 의해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께서는 이사야 및 남은 참 신자들에게 그들과 함께 하거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대신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하게 모시고 그분만 두려워하며 그분만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친히 남은 자들의 성소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보호해 주시고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반면에 유다 내에서 하나님을 불신하는 세력들은 비록 그들이 주의 백성이라고 불리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림으로 인하여 임마누엘의 땅에서 쫓겨나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의해 패망하게 되어 어두운 흑암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
20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들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22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사 8:20-22)
오!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고통과 흑암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늘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 모시기 바랍니다. 늘 변함없는 실로아의 샘을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13-15절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사 8:13-15).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읍을 앗수르로부터 지켜 주실 근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 내부에는 가짜들이 있습니다. 그 가짜들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의해 패망할 것입니다.
이때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속한 불신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반석이 되십니다. 또한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읍에 속한 주민이라도 그들이 불신하는 자들이라면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함정과 올무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자녀 및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함을 받아도 도리어 임마누엘의 하나님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부서지고 덫에 걸려 망하게 될 자가 많은 것입니다.
아하스가 바로 이러한 부류의 대표자입니다. 북이스라엘, 즉 에브라임의 경우는 거의 전체 백성이 이러한 부류였습니다. 이는 그들은 처음부터 배교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에도 이사야를 비롯한 남은 자들 외에는 대부분 이러한 부류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지금 이 땅의 교회에 속한 자들 중에 임마누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걸림돌이 되는 자들은 없습니까? 그들은 다름 아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지만 주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세상을 더 믿고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권사와 집사도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신자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녕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로 모시고 섬기며 그분만을 경외하고 두려워합니까?
오직 그러한 믿음의 백성에게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소가 되어주시며, 이에 그들만이 주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는 보호와 도움이지만, 불신하는 거짓 신자들에게는 멸망과 심판이 되십니다.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속하였지만 세상을 신뢰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불신한 자들은 하나님의 집의 모퉁이 돌을 버린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시 118;22).
여기서 건축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의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돌을 주의 나라와 성전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돌에 부딪히는 자들을 멸하셨습니다.
신약으로 건너오면, 불순종하고 패역한 북이스라엘 및 남유다와 관련한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반석)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6-8).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으로 불리는 바리새인이라는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부류는 정확하게 아하스 및 에브라임의 부류와 같습니다. 그 이유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하스 왕처럼 사람들을 두려워했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눅 20:19).
이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거짓 백성인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포도원 농부 비유입니다. 그 비유에서 보면, 멀리 타국으로 떠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농부들에게 소출의 일부를 받으려고 종을 보내면 그 농부들은 도리어 그 종을 매로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주인은 세 번째 종까지 보냈지만 그 종마저 상하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이에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 방책으로 사랑하는 친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면 존대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포도원 농부들은 도리어 그 아들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 비유에서 오늘 본문을 인용하여 자신이 가짜 신자들인 그 악한 농부들, 즉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심을 알려주십니다.
[
15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눅 20:15-18)
이처럼 거짓 백성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모퉁이 머릿돌을 버리는 건축자들입니다. 그 돌은 불산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에 의해 멸망 받을 것입니다. 심지어 주의 교회 내에도 거짓 자녀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의 특징 역시 복음의 믿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만과 무지와 완고함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18, 22-24)
베드로가 광장에서 외칩니다.
[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1-12)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 의해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임마누엘이라는 최고의 기적을 믿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복음인데 그 복음이 바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을 보면,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방인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반면, 주 예수님을 거절한 유대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30-33).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그들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주를 따르기 보다는 자기 멋대로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아하스 왕처럼 인간의 방식을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 그것이 아하스가 앗수르를 의지한 것과 같은 정신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존할 때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결국 복음이 되는데,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감사와 복을 누리는데, 그렇지 못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남유다에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믿고 장차 오실 처녀가 낳을 아이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녀가 낳은 그 아이가 다름 아닌 아담이 죄로 타락한 이후 곧바로 하나님이 보내 주시기로 하신 구원자이신 여인의 그 씨라는 것을 믿고 소망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본문 16절을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증거의 말씀이 대다수의 유다 백성에게 감추어지고 소수의 남은 자들, 즉 이사야의 제자들에게 한정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등한시 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감추시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즉,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주신 주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대신 앗수르 왕을 의지하는 남유다 및 그 백성들에게, 심지어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까지 주의 말씀을 봉함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나 자격있는 사람들, 즉 남은 자들은 봉해져 있는 증거의 말씀과 율법을 열어 볼 수 있었습니다. 8장 20절이 이를 증거합니다. 그들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에 이사야 및 그의 제자들, 즉 남은 자들은 장차 오실 임마누엘의 주만 바라보며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충실한 이사야의 제자들에게 계속 임마누엘의 역사를 나타내시며 그들의 눈을 열어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말씀을 멀리하고 등한시 할 때 우리에게 성령의 조명하심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까이 하고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가까이 할 때 계속 주의 계시의 말씀이 열리고 깨달아집니다.
이제 본문 18절을 보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자녀들에 대해 말합니다. 이사야의 친 자녀는 오직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이 두 아들은 이사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말하는 자녀란 이 두 아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바로 16절의 “내 제자들”이 말씀 안에서 얻은 이사야의 자녀들입니다. 즉,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처럼 주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향기며 편지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 속한 자들입니다. 물론 당연히 이사야의 실제 아들인 두 아들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남은 자들에 대한 대표성을 띕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이 두 아들의 영적인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사야는 그의 제자들의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께서 자기에게 속한 제자들을 언급하실 때 놀랍게도 이사야 8장 17-18절을 인용하십니다.
[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 2:11-16)
히브리서 2장 12-13절은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맏형으로서 우리를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서 찬송하십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그리고 외칩니다.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지금 히브리서 2장 12-13절의 내용은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에서 세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인용은 시편 22편 22절, 이사야 8장 17-18절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22:22)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사 8:17-18).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의 영적인 형제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니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고 합니다. 이는 이사야 8장 17절의 “나는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8장의 배경을 보면 12절부터 16절까지는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고, 곧바로 이사야가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긴다는 내용이 17절과 18절에 기록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사야가 한 말을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사야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한 말은 그리스도의 영이 하신 말씀인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로서 이는 참 사람인 인자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특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는 표현은 이사야가 한 말로서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그루터기, 즉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사야와 온 마음과 뜻을 같이 하여 하나된 자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이사야와 한 마음이 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내게 주신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남은 자들로 표현되는 참 신자들의 머리십니다. 그들의 아버지십니다. 그들의 맏형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친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49-50).
마찬가지로 이사야 선지자와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 받은 참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러한 영원한 가족 관계로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녀 된 자들입니다. 참 사람이신 그분은 우리의 머리시며 아버지십니다. 심지어 맏형이십니다.
그러면 이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로 알리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사야의 두 아들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두 이름은 성경 전체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먼저 큰 아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라는 뜻입니다. 어디서 돌아옵니까? 주의 심판에서 돌아옵니다. 주의 심판으로 인해 멸절 당하지 않고 주의 심판 가운데 구원 받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중에 누구든지 ‘남은 자’가 되면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이와 대조로 둘째 아들은 “신속한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뜻의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그 심판은 주의 이름이 걸려 있는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는” 암몬과 북이스라엘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마헬살랄하스바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남유다 내의 가짜 신자들을 제거하는 심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남유다의 거짓 신자들이 믿던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에 의한 심판이며, 그 이후 먼 훗날에는 바벨론의 공격에 의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 가운데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은 스알야숩에 속한 자들이며, 그리고 그 남은 자들 중에서 메시야가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야는 남은 자들과 함께 열방을 향한 그루터기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보람과 복으로 이어지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이사야의 제자들, 또는 이사야의 영적 아들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주의 말씀으로부터 임마누엘의 약속을 받고 언젠가 오실 ‘그 메시야, 처녀가 낳을 그 아들’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절부터 22절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과 그렇지 않고 “신접한 자와 마술사”의 말을 듣는 자들에 대해 비교합니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접한 자와 마술사”, 즉 마귀의 음성과 인간이 지어낸 말을 듣는 자들은 곤고함과 굶주림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속 어둠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을 저주하며 환난과 심한 흑암과 고통 가운데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계시의 말씀을 다 담은 성경을 붙들고 사는 삶, 그리고 성령께서 그 계시의 말씀을 조명해 주시는 삶이 얼마나 복된지요! 성령께서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가르치시고, 신자는 어린아이 같은 겸손한 심령으로 그 교훈을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고 기쁨과 감사와 의가 넘치는 신자의 삶이 얼마나 복된지요!
그러므로 구약이든 신약이든 창세 전부터 택함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어린양을 믿고 의지하여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봉합하며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셔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리스도로 모시며 살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남은 자, 즉 참된 신자에 속하여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기 전에 신속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성소가 되시고 모든 위험과 멸망과 미혹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믿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믿고, 그분의 새언약, 곧 복음 안에서 한없는 자유와 감사와 기쁨과 평강을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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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별일 없이 사는게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순탄한 하루 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