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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0일(월) 새벽설교 마태복음 12:1~13 '안식일의 주인' 새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오늘은 마태복음 12:1~13 말씀을 중심으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자 바리새인들이 그들을 비난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말씀을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의 영적 무지함을 책망하시고,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회당에 들어가셔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안식일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을까요? 첫째는 안식일은 예배 가운데 안식을 누리며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 이하에 보니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그들을 비난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을 바르게 지내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이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에게는 어느 안식일에 목격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은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따르면 안식일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이삭을 잘라 먹었다는 것입니다. "잘라 먹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잘랐다"는 것은 이삭들을 "손으로 잡아 훑어서 뜯어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추수하는 행위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삭을 껍데기 채로 그냥 먹을 수 없으니 껍질을 벗기기 위해서 이삭들을 두 손으로 비볐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도리깨질에 해당하는 행위로 여긴 것입니다. 이삭을 손으로 비빈 다음에는 알곡과 겨가 뒤섞인 채로 그냥 입에 넣었겠습니까? "후" 불어서 겨를 날려버리고 밀알만 먹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키질 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 모든 행위를 바리새인들은 음식준비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먹을 음식준비는 그 전날 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보는 대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말하기를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라고 비난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는 애굽의 종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데 있습니다. 안식일의 중심에는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안식을 누릴 뿐 아니라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예배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우리는 본질을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한 바리새인들이 그와 같습니다. 적용) 나는 주일의 중심으로 어디에다 두고 있습니까? 예배를 통한 안식과 새힘을 얻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배 외의 다른 외적인 부분에 있습니까? 둘째로 안식일을 잘 지키려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7,8절 말씀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안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분의 뜻대로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목적은 바로 거룩이고, 그 거룩의 결론은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게 되면 아무리 열심히 안식일(주일)을 지키고 살아도 감사와 안식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처럼 말씀을 자신을 높이고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참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바리새인처럼 외적인 경건만 보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는 말씀을 읽어도 오늘 본문 3절과 5절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주일예배의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의 죄를 봅니까? 남을 정죄하는 데 사용합니까? 세 번째로 안식일을 잘 지키는 방법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9~13절 말씀인데요.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은 문제에 이어 이번에는 안식일에 병고치는 문제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에 지켜야 하는 율법조항 중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주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에는 배고프고 아픈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으면서 자기 재산상의 손해는 참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12절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나오는 ‘선’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적인 선이 아니라 영혼 구원 차원의 선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안식일에 행하는 가장 옳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묵상간증에 ‘바리새인의 고발’이라는 내용입니다. 모태신앙인이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없던 저는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며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부남과 결혼을 준비하던 중에 우울증으로 힘들어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그 후 저는 신학대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만난 신학생과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남자친구가 여러 여자와 교제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인 저는 남자친구와 진흙탕 같은 싸움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말씀을 잘따르며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라는 생색이 속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고발한 것처럼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주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문자적으로만 알았기에 악한 말로 남자친구를 비난했고, 그가 용서를 구하자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을 감춘 채 행복을 좇아 그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고통 가운데 저는 큐티하는 공동체에 속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엇습니다. 그러자 저에게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책망하시며 가르쳐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남편과 같이 음란한 죄를 지은 자인데, 외적인 경건에만 신경쓰며 남을 판단하고 정죄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로 인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고 자비와 긍휼 없이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과 같은 저의 외식을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 같은 죄인을 오래참고 구원해주신 주님이 남편 또한 구원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부부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음을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늘 기억하고 받은 은혜를 늘 전하면 살겠습니다. 적용하기) 1. 옳고 그름으로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저의 잘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2. 교회 소그룹지체들을 위해 매일 잠들기 전에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안식일은 예배 중에 참 안식을 누리며 새힘을 얻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 중에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붙잡아야 하니다. 또한 안식일에는 사람을 살리는 자로, 사람을 회복시키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주님 안에서 참 안식할 수 있는 주일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하면 저희들이 매 주 주일을 잘 지키고, 그 안에 참 안식하며 새 힘을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지다.
기도) 주님, 내 것을 지키고 복 받고자 율법적으로 주일을 지켰음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안식일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깨닫고 매 주일마다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또한 예배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영혼구원과 회복을 위해 힘쓰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