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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중 『죄와 벌』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세계고전문학 필독서로 지정할 때 빠지지 않는 책이니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남자 라스꼴리니코프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전당포의 노인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심리적인 고민이 깊어지는 중에 그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그의 여동생 두냐가 돈 많은 부자와 약혼을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빠의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스콜리니코프는 동생의 결혼을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형편이 좋아지지 않으면 결국 동생이 팔려가듯이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알고는 전당포의 노인을 살해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는 노인만 죽이고 자신의 물건과 조금의 귀중품만 훔치려고 했는데 우발적으로 노인의 여동생까지 죽이게 됩니다. 아무도 살인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도망치게 됩니다. 여러 정황을 살피던 경찰에 의해 점점 용의자범위에 이 라꼴리니코프가 포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완전 범죄로 끝날 줄 알았지만 곧 범행이 들통날 상황이 되는 중, 양심의 가책과 애인의 적극적인 자수 권유로 인해 자수하였고 결국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베리아 감옥에서 생활하던 중 시베리아까지 자신을 따라와서 자신의 죄값을 함께 갚으며 생활하고 있는 애인의 고통, 그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해서 결국 자신의 죄에 대해 크게 참회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짧게 이야기하면 너무나 뻔한 내용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그 당시 러시아 사회의 생활상과 세계 경제적 사상과 계층갈등구조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그렇게 간단한 소설책이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죄와 벌’이라고 말하면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이런 것을 떠올리겠지만 19세기, 20세기 사상과 이념을 설명해주며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는 대단한 문학작품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벌’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늘 본문 아모스 1장을 보면서 제게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 ‘죄와 벌’이라는 주제였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1장 3절부터 4장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이스라엘민족과 이방민족이 범한 구체적인 죄악들과 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매주 본문을 나눠서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삶속에서 범할 수 있는 죄악들이 세상 여러 민족중에서 어떻게 나타났는 지 살펴보고 그 죄악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시는 지를 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앞에 나와 참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는 긍휼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이방 민족의 죄,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아모스 1장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아모스 1장과 2장을 보면 다메섹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람,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유다,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 되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인 주변 이방민족에 대해서도 왜 심판을 예언하게 하실까요? 어쩌면 이스라엘이나 이방민족, 즉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이 똑같이 심판받을 삶의 모습이 동일하기에 하나님께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함께 멸하실 뜻을 알려주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또한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이 죄로 인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알려주면서 이스라엘도 그들과 똑같은 죄를 짓게 된다면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아모스 1장에서는 여러 이민족에 대해 예언을 주십니다. 1장 3절에서 5절에는 다메섹에 대해, 6절에서 8절에는 가사에 대해, 9절에서 10절에는 두로에 대해, 그 뒤로 계속 에돔, 암몬, 모압, 남유다, 북이스라엘에 대한 책망과 형벌에 대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변 여러 나라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나라들을 모두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어느 것도 없습니다.
역대하 20장 6절입니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간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만일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에 나가버린 사람들이 나는 지구와 상관없이 살아간다고 하면 맞는 말일까요? 아무리 지구를 떠났어도 결국 지구에서 만든 우주선에 안에 있고, 지구에서 가져간 공기, 지구에서 가져간 양식, 지구에서 가져간 옷으로 우주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주에서 죽을 거 아닌 이상 때가 되면 다시 지구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지구를 떠나있지만 지구의 영향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간다고 아무리 주장해 보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살다가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죽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따라 심판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렇게 여러 나라들을 언급하시는 이유는 이런 여러 나라들이 죄악되고 범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너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즉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과연 여러 주변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그 나라들과 너희가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거룩하게 구분되고 있으면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더 진실하게 따르고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너희는 다른 이방 나라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람민족의 나라 수리아의 수도인 다메섹을 콕 찝어 책망을 하십니다. 이 아람민족의 죄악은 길르앗 사람들을 학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아모스 1장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열왕기하 8장 12절에 보면 수리아왕 하사엘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하면서 얼마나 무자비한 일을 자행했는 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사엘은 어린아이를 집어던지고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라서 죽였습니다. 폭정이 계속 이어지면서 열왕기하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유린하고 사람들을 괴롭힌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지키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이웃을 괴롭히고 부당한 일을 행했는데 그 이유야 어떻든지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람 사람들이 길르앗인들을 수중에 장악하고 고문하거나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을 분명한 죄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기 민족을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잔학한 행위를 하며 인신매매와 각종 비인간적 만행을 저질렀던 이방 민족을 하나님께서는 확실하게 벌하시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인간이 모든 능력자인 듯 교만하며 그로 인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교만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의 주권자이신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이방 민족의 죄,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가사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아모스 1장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하나님께서 책망을 예언하시는 두 번째의 대상은 ‘가사’입니다. 이 ‘가사’는 블레셋민족의 수도입니다.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죄 서너가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에 대해 뒷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 유다의 다섯 번째 왕 여호람때 블레셋이 침범하여 왕의 아들과 아내들을 납치해간 일이 있습니다.
역대하 21장 16,1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미 다윗왕 이전 사울왕 때에도 이스라엘과 싸우기도 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는데 이 일 이후에도 블레셋족속들은 너무나 잔인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억압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종종 사람들을 잡아갔고 그 잡아갔던 사람들을 다른 나라로 팔아넘겼습니다. 블레셋 경제의 큰 부분은 다른 나라를 침범하여 사람들을 사로잡아 이방나라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로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블레셋은 역사상 계속적으로 인신매매를 통한 경제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자신들이 사람을 사고파는 죄를 저지를 때 당시 근동지역의 무역중심국가인 에돔과 두로를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재물로 보고 돈으로 취급하고 세상의 어떤 물질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가치관은 정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영혼으로 여기며 귀히 아껴야 합니다. 서로서로 존귀하게 여겨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빌립보서 2장 3,4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존중하며 모든 인격체를 참 사랑으로 대하며 사람들의 형편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기쁨이 사람들속에 함께 하도록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에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속에 나타날 때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직장, 아름다운 사회...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세상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이방 민족의 죄,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두로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아모스 1장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아모스 1장 9절에서 두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로는 부와 강한 힘으로 유명한 성이었습니다. 또한 두로라는 자체 명칭 자체가 국가를 의미하는 하나의 왕국이었습니다. 두로는 시돈과 더불어 베니게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에스겔 27장 3~5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주하면서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 스닐의 잣나무로 네 판자를 만들었음이여 너를 위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 돛대를 만들었도다”
에스겔 27장 33절입니다.
“네 물품을 바다로 실어 낼 때에 네가 여러 백성을 풍족하게 하였음이여 네 재물과 무역품이 많으므로 세상 왕들을 풍부하게 하였었도다”
구약성경 에스겔에 기록된 두로의 상황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배를 건조해서 바다를 통해서 통상무역했을 만큼 대단한 무역항이었습니다. 두로는 물질적으로 상당히 풍성한 도시였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성한 땅 두로, 그 당시 전 세계라고 생각되었던 근동에서 가장 경제가 활발했던 도시 두로가 책망받은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로의 죄는 모든 포로를 에돔에 붙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피신하기 위해 도망해 들어왔거나 아니면 어떤 경로든 그들의 수중에 떨어진 이스라엘 포로들을 에돔인에게 팔아넘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포로들이 어떤 간난과 역경에 처하게 될 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 도모했습니다. 이런 두로에 대해 오늘 책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시 오늘 본문 아모스 1장 9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아모스 1장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오늘 본문에 두로의 죄악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눈길이 가는 구절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두로는 이미 형제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이 “계약을 왜 파기했냐?”는 것입니다. 아니 언제 이스라엘과 두로가 계약을 체결했습니까? 열왕기상 5장 1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쭉 넘겨서 열왕기상 5장 12절에는 뭐라고 되어있나요?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다윗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두로와 상당히 화친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죽고 나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해서 함께 언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9장 13절을 보니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을 부르기를 “나의 형”이라고 지칭하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왕과 히람은 서로 형제같은 관계였고 두로와 이스라엘은 형제의 언약을 맺은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두로가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께서 두로를 책망하신 이유입니다. 의형제가 지켜야 할 신의, 의리를 깨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납치하여 팔아먹는 일에 블레셋, 에돔, 두로 모두 한 통속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사를 행했는 일에 블레셋, 에돔, 두로 할 것 없이 똑같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깨어버린 두로를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인간은 약속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약속했어도 그대로 지키기보다 다른 핑계를 통해 약속의 중요성을 다르게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서로가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를 원하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무시하고 언약을 따르지 않고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참 신의의 신앙생활을 통해 복받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죄에 대한 지적과 아울러 하나님의 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1장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아람민족, 블레셋민족, 두로 이 세 나라에 대한 벌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구절이 있습니다. 1장 4절, 1장 7절, 그리고 1장 10절까지“내가 불을 보내어 궁궐을 사를 것이다”라는 말씀이 오늘 본 민족들에 대한 예언에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라는 존재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앞에 죄를 짓게 될 때 그 형벌을 내리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불법과 불의, 편법과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왜 잘 되고 하나님앞에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왜 힘들게 살고 어려운 형편이 되냐며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는 무시무시한 망언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이야 지옥갈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진정한 신앙인은 그런 말을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이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고 불법과 비리가 난무하며 정말 악한 짓을 하면 더 부자가 되고 더 권력자가 되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평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세상의 불법을 행하는 권력자를 멸하시고 그 처소인 모든 궁궐을 불태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두로의 멸망에 대해서도 실제 역사를 통해 완전한 패망의 과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두로’는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 5년 동안 권력을 빼앗겨 식민통치를 당했습니다. 그 뒤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13년 동안 동일하게 모든 주권을 잃었습니다. 그런 뒤에 두로는 주전 332년에 마케도니야제국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완전한 멸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앞에 나오는 수리아의 다메섹 또한 멸망당하고 강국 메데바사에 주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의 5대도시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글론 가사 가드 등도 완전히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고 블레셋 족속이 멸망당했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서 멸망해서 애굽이 그 지역을 다스리다가 주전 560년경에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영구하게 블레셋 권력자들과 백성을 추방하면서 민족이 다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라고 부르며 블레셋 민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민족적으로 따져보면 블레셋 민족의 후손이 아닌 것을 우리를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앞에서의 죄악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삶, 우리 가족들의 삶,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오늘 민족의 죄와 벌, 그 첫 시간 아람, 블레셋, 두로 민족의 죄를 돌아보면서 정말 하나님앞에서 정직하고 공의로우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의 영적 죄악이 결국 이 땅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저와 여러분부터 시작해서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