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벨은 쉴새 없이 울렸다. 짜증을 삼키고 폰을 열었다. 13호에 입실한 손님인 민재였다. 민재는 그동안 나를 많이 도와 주고 있어서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옆방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을 수경의 잠을 깨울것 같아 잠옷 입에 롱패딩을 걸치고 방문을 잠궜다. 무슨 일이야 늦은 시간에 민재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실장님 죄송해요. 민재의 목소리는 술에 취했는지 혀가 꼬부라져 발음도 불분명 하게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저 술 딱 한병 마셨어요. 근데 오늘은 엄마가 보고 많이 싶은데 다시 생각 하니까 여기까지 늘어 놓더니 휴대전화가 끊겼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 하니 이방 저방에서 들리는 코고는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사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오늘은 유난히 시끄럽다. 나는 고시텔에서 손님을 관리하며 생계를 꾸려 가고 있다. 혼자 누우면 꽉차는 좁은침대에 몸을 누였지만 마음이 답답하다.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하지만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냉장고에 넣어둔 물 한잔을 마시자 가슴이 뚫는듯 하다 다시 명에 뭔가 얹혀 있는듯 내려가지 않았다. 작년 부터 생긴 가슴 통증이 간헐적으로 몰려 온다. 종합검진을 생각 하다 며칠전 50년 지기친구 아들 결혼 청ㅈ덥장을 받고 사서 고민했다. 남의집에 매어 있는 입장에서 멀리 영주시 까지 갈수도 없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는 형편상 친구에게 욕을 먹을수 밖에 없다.
나 자신 고시원이라는 좁은 공간에 짐을 풀고 첫발을 담글때는 잠시 머물다 떠날 생각이었다. 당시 고시원은 성인이 된 조카들과 언니 헝부의 눈치밥 대신 비록 라면에 중국산 싸구려 김치를 먹어도 마음이 편했다. 고시원의 첫날밤의 인상은 10년이 지난 오늘도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다. 약 두평이 안되는 방안에 책상과 의자 작은 냉장고 혼자 누우면 공간의 여유가 없는 좁은 침대. 샤워와 볼일을 볼 수 있는 샤워실이 갖춰진 화장실 옷 몇벌만 걸면 공간이 없는 옷장이 방안 풍경이었다. 고향집에서 혼자 쓴 방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폐기 처분 했지만 50년 인생의 묵은 짐들은 눅진한 곰팡내처럼 눌러 붙어 고단한 삶을 따라 다녔다. 복도 바로 옆으로 한 발자국만 옮기면 되는 방위치. 복도에서 누군가 거칠게 슬리퍼를 끌면 나는 신경은 곤두섰다. 생활 소음에 컴플레인을 걸기엔 한 달 방값 30만원 만큼의 거대한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몇번이나 고시원 총무에게 옆방 전화 소음에 대한 컴플레인을 생각 하며 어느순간 잠에 빠져 들었다
고시원 살이 2일째 되는 날에도 방음이 안되는 alc블럭으로 칸막이를 한 얇은벽 너머로 밤새 수다를 떠는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투박한 말씨는 신경을 거슬리리게 했지만 모처럼 나만의 공간이라는 편안함 때문인지 곤하게 잠을 잤다.
그당시 나는 아울렛 매장 신발 코너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했다. 아침 9시에 출근 창고에 보관해 둔 신발을 모두 꺼내어 사이즈 별로 진열했다. 손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신발은 항상 융으로 된 걸레를이용 반짝반짝 빛이나게 광을 내는 것이 주 업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