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 손미덕
토마토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 토마토는 과일 같은 채소요 식량 같은 채소다. 깔끔하게 잘라 디저트나 샐러드로 먹어도 좋고, 어슷비슷 썰어서 설탕을 치고 비벼 먹어도 좋다. 이때는 밥처럼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는다. 남는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새콤달콤 그 맛이란 날아갈 듯 기분 좋다. 비빔 토마토를 한 대접 먹으면 기운이 난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을수록 의사의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고 한다. 토마토를 먹으면 병원에 갈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토마토의 짙은 향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 향에 취하면 사람이 살아난다.
강서구 대저는 토마토가 특산물이다. 길가의 가로수에는 '도마도 팜니다. 농장 직접 재배'라고 흔하게 써 붙어있다. 종이상자를 뜯어 적은 촌스러운 문구에 듬뿍 정이 간다. 토마토를 우리말로 일년감이라고 하지만 도마도가 더 우리말 같다. 토마토 농사를 짓는 대저의 농부는 농사가 천직일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식량 농업을 한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사람이 먹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은 신성하다. 그러므로 농민은 성인이다.
토마토는 멀리 고향 안데스를 떠나 이탈리아에 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토마토를 요리의 재료로 썼다. 붉은색과 독특한 향이 음식의 풍미를 돋구었다. 토마토요리를 먹고 행복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토마토를 에덴의 황금 사과라고 불렀다. 그들은 토마토를 삼색 국기에 올렸다. 뷔페식당의 시끌벅적 수많은 요리 중에 삼색 카프리 디저트만큼 간결 선명한 음식은 없을 것이다. 붉은색 토마토는 흰색의 치즈와 녹색의 바질잎과 선명하게 잘 어울린다. 어울리면서 각자의 개성이 돋보인다. 지구를 몇 바퀴 돌만큼 팔렸다는 병 토마토케첩은 너무 흔해서 그 재료가 토마토인 것도 잊어버린다.
토마토가 영국에 갔을 때는 철혈재상 크롬웰이 박해했다. 토마토가 정력을 돋구어 청교도 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중국에도 갔다. 중국 남방 사람들은 토마토 를 남만시라 불렀다. 이 남만시가 조선에 들어와 일년감이 되었다. 그 일년감을 대저에서는 도마도라 부른다. 대저 도마도는 한 개 먹으면 또 한 개 먹게 된다. 홍시같이 부드러운 감칠맛과 사과같이 새콤달콤한 맛이 마술처럼 배합되었다. 그 맛은 마법처럼 사람의 입맛을 끌어들인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토마토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우리 가족에게 살길을 열어주었다. 그 농사는 도마도(道魔道)였다.
아버지는 조상 대대로 살았던 고향 김해를 떠났다. 아버지는 정읍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이 많았다. 정읍의 동학 접주가 김해에 와서 포교하였다. 접주는 정읍에 동학도가 개발하는 금광이 있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동학 접주가 사칭한 금광개발에 속은 것이다. 그곳에서 금맥은 찾지 못했고 재산만 잃었다. 아버지는 살아가기 위해 고향에서 배운 토마토 농사를 지었다. 1970년 벼농사가 주업인 태인면에서 토마토 온실재배를 시작한 것은 가히 농업혁명이었다. 황량한 겨울 벌판에 투명한 비닐하우스가 번쩍였다. 아버지는 그 비닐하우스를 바쁘게 들락거리며 도마도~ 도마도~ 늘 중얼거렸다. 우리 가족에게 그것은 살길을 찾는 도마도(道魔道)의 주문이었다. 그 도마도는 바로 여기 대저에서 왔다. 당시 김해 군 대저에는 토마토 씨앗을 보내주던 흥농종묘사가 있었다.
한겨울에 토마토 싹을 키우려면 따뜻한 온실이 필요하다. 그 시절에 사람 몸 데울 연탄은 귀하고 아까워서 차마 온실의 보온용으로 쓸 수 없었다. 자연 발열 장치 온상을 만드는 것이다. 온상을 만들려면 먼저 장방형 구덩이를 판다. 그 구덩이에 충분히 물에 적신 짚을 채워 넣고 차곡차곡 정성껏 밟는다. 그 위에 흙을 덮어 밭을 만드는 것이다. 구덩이 양옆에 대나무를 휘어 꽂아 틀을 만들고 비닐을 덮으면 이것이 온상이다. 이 온상이 햇볕을 받으면 후끈후끈 열이 올라온다. 밟아 넣은 젖은 짚과 햇볕의 화학작용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대저의 흥농종묘사에서 보내온 노란 도마도 씨앗을 젖은 헝겊에 싸서 아랫목에 묻었다. 아버지는 그 아랫목에 잠잠히 앉아 동학의 스물 한자 주문을 외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동학의 21자 주문을 수도 없이 반복하였다. 그 소리는 높고 낮게, 길고 짧게, 빠르고 느리게, 반복되었다. 그것은 아랫목에 묻은 씨앗을 위한 주문 같았다. 그 주문을 들으면서 우리 가족은 혼곤히 편안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헝겊에 쌓인 토마토 씨앗에 드디어 하얀 촉이 돋았다. 마치 우리 가족의 몸에도 그 촉이 돋아난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씨앗을 온상에 고슬고슬 앉히고 고운 모래를 체로 쳐서 덮어주었다. 온상은 보슬보슬 노란 콩고물을 얹은 떡시루 같았다. 온상에 짚이 발효하는 냄새가 구수하게 올라왔다. 나는 온상을 돌보는 일을 했다. 해 질 녘에 온상에 거적을 덮어주고 해 뜰 때 거적을 벗기는 것이다. 조마조마 싹트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온상에 파란 바늘잎 토마토 싹이 올라왔다. 촉촉하고 노란 모래 시루에 파란 싹이 빙긋빙긋 눈웃음을 쳤다. 눈곱같이 씨껍질이 매달려 있다. 토마토 싹이 대견하게 잎을 세 마디 올리면 옮겨심는다. 모종 사이사이 간격을 넓혀주면 몸살을 하면서 튼튼해진다. 틈틈이 낮에 온상의 비닐을 벗겨 햇볕을 쐬어 주고 밤에는 두툼히 덮어 포근히 잠을 재운다.
고된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힘들게 지은 온상을 철거하고 구덩이를 메워주어야 했다. 구덩이의 짚은 푹 썩었다. 썩은 짚을 다시 꺼내는 일은 시시포스 대왕의 형벌보다 더하다. 시시포스의 바위는 한꺼번에 굴러떨어지니 말이다. 온상의 짚은 꾹꾹 밟았기 때문에 한데 엉겨 떨어지지 않았다. 낫으로 무자비하게 찍어 조각조각 뜯어서 꺼내야 했다. 그 온상을 만들 때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땔감용으로 애써 말린 짚에 물을 뿌리라니. 더구나 그 물은 깊은 우물에서 도르래로 길어 올려야 했다. 내 몸집보다 큰 두레박을 끌어 올릴 때는 아슬아슬 그 우물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썩은 짚은 거름으로 천 평 밭에 뿌렸다. 천 평 밭에 토마토를 옮겨심고 토마토마다 지주대를 꽂는 일도 무지무지하다. 지주대를 양쪽에 꽂아 사이시옷으로 교차하고 그 꼭지를 묶어 일렬종대로 연결하는 것이다. 나는 레미제라블의 코제트처럼 몸집보다도 큰 물통을 들고 천 평 토마토밭을 헤매다니며 물을 주었다. 장발장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동집약적 농업은 나를 집약적으로 부려 먹었다. 곧 토마토가 꽃 심을 내밀었다. 토마토는 꽃 심을 옆구리로 밀어내면서 키가 컸다. 꽃 심은 노란 꽃을 한 움큼 쥐고 있는 손목처럼 옆으로 팔을 뻗었다. 그 손목을 잎줄기로 바쳐 지주대에 고이 묶어주어야 한다. 주렁주렁 무겁게 열릴 토마토를 위하여 이일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이때가 보통 현충일쯤이다. 현충일에는 학교에 안 간다. 나는 당연히 밭에 나가 일을 했다. 중학생 때 현충일이 기억난다. 곧 중간고사 시험이 다가오는데 속상해서 나는 울먹였다. 나는 토마토 묶을 짚을 옆구리에 차고 소녀 전사처럼 맨발로 토마토밭을 누비고 다녔다.
꽃피는 마디마다 앞으로 4회나 더 이 일을 해야 하니 기말고사까지 망치지 싶다. 오전 10시에 현충일의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울먹였다. 사이렌은 하늘 높이 치솟아 애절하고 장엄하게 퍼져나갔다. 토마토밭 지주대들은 잠잠히 그 사이렌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죽죽 뻗어 일제히 차렷 자세였다. 토마토의 짙은 향은 향불 피는 냄새 같다. 이윽고 사이렌 소리는 음조를 낮추더니 토마토밭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토마토밭의 사이시옷 지주대는 일제히 ‘세워 총’으로 뻗쳤다. 엄숙한 일대 열병식이었다. 사이렌 소리는 유유히 토마토밭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어깨가 절로 으쓱 올라갔다. 토마토밭에서 일하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았다.
드디어 토마토 수확을 한다. 나는 학교를 조퇴하고 토마토 따는 일을 도왔다. 생물 토마토는 시세가 좋을 때 잽싸게 수확해야 한다. 아버지가 토마토를 따서 밭고랑에 놓으면 나는 바구니에 주워 담아 원두막 밑으로 날랐다. 한 바구니 담아 날라놓고 오면 벌써 또 한 바구니가 찬다. 얼른 마치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다. 나는 빨리빨리 열심히 뛰면서 날랐다. 드디어 아버지를 따라잡았다. 그러나 웬걸 아버지는 모르는 척, 한 번에 서너 개씩 따서 푹푹 내 바구니에 담아 주었다. 아버지는 나보다 토마토가 훨씬 중요한 것 같았다. 나는 토마토가 미워서 자꾸 먹어 치웠다. 짐을 덜어보겠다고 먹기 시작했다. 예쁜 것은 예뻐서 먹고, 못생겨서 먹고, 맛있게 생겨서 먹고, 먹는 게 남는 것이라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많이 먹어도 속은 편안했다. 너무 많이 먹어 걱정이지만 소변을 보고 나면 산뜻하고 키가 크는 것 같았다.
내가 원두막 아래로 날라놓은 동글동글 빨간 토마토가 새콤달콤 냄새 풍기며 둥그렇게 높이 쌓였다. 아버지는 흐뭇한 눈으로 토마토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지극한 마음과 정성은 신령하였다. 그 신령함에 하늘의 기운이 동화하여 토마토가 익는다. 그들먹하게 토마토를 쥔 손목을 4단계나 달고서 말이다. 아버지는 토마토 금맥을 찾았다. 나는 밤에 토마토가 가득 담긴 광주리 옆에서 촛불을 켜고 시험공부를 했다. 나는 문제가 안 풀릴 때마다 토마토를 먹었다. 토마토를 먹으면 문제가 잘 풀렸다. 문제가 잘 풀리면 좋아서 토마토를 또 먹었다.
대저 농민들은 새롭고 경쟁력 있는 토마토를 개발하였다. 독특한 방법으로 토마토를 재배한다. 토마토를 키우는 온실의 비닐을 여닫기를 반복해 토마토를 키운다. 온도 차를 극복하며 고난 속에 익은 토마토는 크기가 작고 과육이 단단하다. 수송과 보관이 쉽고 맛이 좋다. 그 맛은 깊고도 오묘하다. 그것은 대저 사람의 도마도(道魔道) 재배법이다. 대저 토마토의 초록 꽃받침이 선명하다. 멋진 왕관 같다. 토마토는 긴장하여 탱탱하다. 붉은 심줄이 죽죽 붉어졌다. 왕관의 무게를 견딘다. 부산의 끝 대저에는 토마토 군대가 있다. 그 토마토밭에 찾아가서 경례를 부치고 싶다. 정읍시 태인면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태인면은 동학혁명 시절 유명한 고을이었다. 동학을 신봉하는 아버지가 존경한 사람은 손 화중이다.
손 화중은 정읍에 살았고 동학혁명군의 대장이다. 손 화중은 고창 선운사 도솔암 절벽 미륵상 배꼽에서 세상을 구할 비결을 꺼냈다고 한다. 그 비결의 내용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 선사가 적어 미륵상의 배꼽에 넣었다고 한다. 동학혁명은 실패하였고 살아남은 사람은 붙들고 살아갈 희망을 찾아야 했다. 동학의 접주를 사칭한 금광개발업자는 아버지에게 그 비결에 금맥의 위치가 적혀있었다고 하였다. 손 화중을 모시던 아무아무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종씨 어른이 남긴 비결이라서 믿었는지도 모른다. 선운사 미륵상 배꼽 속 비결이란 먹고 사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검단 선사는 흉악한 도둑들에게 소금과 종이 제조법을 가르쳐주었다. 검단 선사의 고매하신 뜻은 먹고 사는 법이 바로 세상을 구하는 비결이란 것이다. 아버지의 도마도 농사도 바로 그런 것이다. '도마도 팜니다. 농장 직접 재배' 그 문구는 가로수의 배꼽 높이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