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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태국에서 선교대회를 은혜 중에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셔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특별히 동남아 지역에 많은 분들이 선교를 하시는데 그분들을 만나면서 얼굴이 하나도 구김이 없더라고요.
보통 오지에 가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언어도 다르지요. 아는 사람도 없지요. 선교를 간다는 것 자체만 해도 너무 귀한 분들이죠.
그런데 그분들이 정말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라.
어쨌든 선교를 간다는 그 자체만 해도 귀하고 소중한데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한 분 한 분마다 너무 귀한 사역을 잘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분들을 보면서 저는 목회를 더 열심히 잘해서 그분들을 도와줘야 되겠다 그런 마음의 결단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의 모습은 이 초대교회 모습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한 교회라고 봅니다.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개인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교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구별해서 세우신 교회,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하는 교회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를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교회는 초대교회 정말 귀감이 되고 롤 모델이 되는 그런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봅니다. 이 탈무드에 보면 인간을 판단할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을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 뭐냐 키스 카스코스라고 합니다. 키스 카스 코스 이 키스는 술잔을 의미합니다. 즉 술을 먹여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저는 아직 술을 잘 먹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술을 먹어보신 분들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죠? 술을 먹어보면 그 사람이 본색이 드러나는 겁니다.
키스 이 카스는 뭐냐 분노를 말합니다. 뭘 한다고요?
분노 화를 내게 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이 화가 났을 때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자매는 남자가 화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저 사람하고 결혼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 남자가 화를 내는 모습이 아주 온유하고 근사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연애를 하다 보면 화를 내는 경우가 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러분들 화를 안 내봤기 때문에 모르시는 모양이죠. 연애하는 기간에는 사실을 사실은 화를 내는 경우들이 잘 없죠. 왜냐하면 대부분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람이 화를 내는 모습을 한 번 정도는 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화를 돋구지는 말고요. 결혼 이후에 보면 이 언어 폭력이라든지 또 상대방을 폭행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정말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평소에라도 이런 부분을 면밀히 한번 살펴보는 것도 괜찮지 않는가 우리 결혼하는 결혼을 준비하는 우리 청년들은 좀 잘 들으시면 좋겠어요. 그렇죠 화는 또 끄지 말고 화는 도 꾸지 말고 그런 모습들을 한번 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세 번째로 코스 이 코스는 돈주머니를 말합니다. 이 돈주머니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돈 관리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경제 관념이 좀 뚜렷하면 좋겠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돈 앞에서 사람은 성도들 중에도 인격도 신앙도 다 팔아먹는 그런 부분들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흔히 돈주머니가 회개해야지 참된 회개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경제에 대한 생각, 이 돈에 대한 자세가 중생하지 못했다면 그 신앙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돈이 귀해 보이고 돈이 하나님보다 더 높게만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를 않는 겁니다. 그러니 물질 관계를 경제 관념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신앙의 관념화입니다. 신앙이 뭐라고요?
관념화 관념화가 관념화가 뭐냐고 하면요. 신앙의 관념적으로 가졌을 뿐이지 실생활 실생활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그게 관념화입니다. 그러니 머리로만 믿고 생각으로만 믿습니다. 아니 믿는다는 것은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믿습니다고 하지만 말 뿐입니다. 이게 관념만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감사합니다고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온갖 원망 불평을 품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열심히 찬송을 부르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 입으로 못된 소리는 다 하고 다닙니다. 그야말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관념적 신앙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이런 관념적인 신앙은 자기 자신도 지금 무슨 생각을 가지고 하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다니는지조차도 모릅니다. 이 신앙의 관념화야말로 정말 무서운 함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알면 아 내가 이런 부분이 약하구나 내가 고쳐가야지라고 하면서 고칠 수가 있는데 자기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관념화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것도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로 현실 도피적식 종교의식입니다. 현실 도피적인 뭐라고요?
종교의식 이 또한 신앙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습니다.
실제로 어떤 분을 보면 가정 생활은 구질구질하고 지옥 같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만 좋다는 겁니다. 교회 봉사는 열심히 하는데 사회생활이라든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다 힘들어합니다. 남편 보기 싫고 아내 보기 싫고 자식 보기도 싫고 만사가 다 짜증스럽습니다.
이런 현실 도피 생활은 신앙생활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줍니다. 이런 병에 들면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극단적인 개인주의입니다. 뭐라고요?
극단적인 개인주의 내 구원 문제만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나만 성공하면 되고 나만 구원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잘못된 신앙이라는 겁니다. 이런 것은 교회의 빛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가리게 세상 사람들부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이번 선교대회를 참석하시는 분 중에서 그만 여권을 잃어버린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비행기에 내리면서 여권을 비행기 안에 두었던 겁니다. 게이트를 나와서 이제 다음 코스트로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그때 이분이 번뜩 생각이 난 겁니다. 여권이 없어졌다. 여권이 없어졌어 처음에는 너무나 당황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저도 옆에 있었는데 저 역시도 멘붕이 온 겁니다. 낯선 나라에 가서 여권을 잃어버리면 여러분 여권을 재발급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힘들거든요. 그러면 이 선교대회가 뭐고 행사도 다 그냥 지나가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동료들까지도 그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순간 동료들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 보았는데 출구가 여러 곳이니까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비행기 출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기억이 안 나요?
어디로 들어왔는지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분들이 이리 뜨고 저리 뛰면서 왔던 게이트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이 열리지를 않는 겁니다. 닫혀버렸습니다. 들어오기는 마음대로 들어왔어도 나가기는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는 겁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래서 혹시 안에 보니까 그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저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두들겼죠. 그래 목소리는 들리는 것 같은데 사람이 나오면 확 두들겼어요.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귀찮아가지고 나오시면서 와이 와이 왜 두들기냐고 그래서 우리는 여권을 보여주면서 여권이 없어졌다. 여권 좀 찾아달라고 그러니까 청소하시는 분들이 청소하다가 여권을 발견한 거예요. 그걸 맡겨 놓은 거예요.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냐고 하면 만일 그 사람이 혼자였다면 아마 여권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주변에 많은 동료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함께 같이 가니까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되었던 것이죠.
또 한 가지는 두드려라 열릴 것이오. 그냥 뭐 이렇게 똑똑똑 두드린 게 아니고 문이 부서질 듯이 확확 오면 그러니까 그 불 안에 있는 분이 귀찮아 갖고 와 여권이 없어졌다고 여러분 무엇이든지 함께하는 것이 참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 일할 때 하나님 앞에 응답의 역사도 함께 같이 일어나는 줄을 믿습니다. 복음 역시 우리만 예수 믿고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천국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나만 천국에 온 것과 온 식구들을 다 데리고 천국에 오는 것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 식구들은 내가 아는 분들 천국에 가면 얼마나 고마워할까요? 내가 당신 때문에 내가 당신 때문에 이 자리에 이 귀한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이 구원의 문제는 내 자신의 문제를 뛰어넘어서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지옥 가지 않고 그들도 함께 같이 구원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여러분들의 마음에 결단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이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냐라고 보면 그들은 물질을 서로 통용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3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2절 시작
눈물이나 화자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분명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느니라 라고
아멘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자기 모든 물건을 서로 뭐 하고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여러분 초대교회 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말 유토피아 같은 그런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정말 이런 모습이 초대교의 모습 내가 가진 것을 저 사람에게 주고 내가 필요한 것은 저 사람에게서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필요한 것들을 서로 나누는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계적으로 따져보면 결코 우리가 사용하는 이 자원이나 농산물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대로 유통이 안 될 뿐입니다. 제대로 나누어 쓰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이 잉여 농산물의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들도 참 많습니다. 썩어서 쌓여서 썩어 나가는 그런 잉여 농산물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비대해서 걱정이고 너무 먹어서 걱정이고 남아 돌아서 걱정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이고 굶어 죽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모순이 세계 곳곳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서로 통용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참 중요하다라고 봅니다. 통용이라고 했습니다.
이 초대교회가 서로가 가진 물건을 서로 통용할 줄을 알았습니다. 서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나누는 것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나누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물질이 많아지면 나누어야지 그게 아닙니다. 내가 물질이 없어서 못 나눈다. 그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마음의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천국은 어떤 곳인가 어떤 사람이 들어올 수 있을까?
어떤 분을 좋아할까?
이 천국은 나눔이 있는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반대로 내 자신만 알고 아무것도 나누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정말 이 통용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통용할 수만 있다면 나눌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귀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 나누는 마음이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이유 중에 한 가지가 그 물질,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서로 나눔이 될 때 참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납니다. 34절에 보니까 우리 34절 말씀 한번 시작,
그 뒤에 가할 사람이 없으니 이름 값과 지키는 자는 달아 그 한 것의 값을 가져야한다.
아멘 그중에 무엇이 없다고요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왜 가난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물질을 우리가 보면 못 가짐이 없으면 나는 돈이 없구나, 나는 가난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 없대요. 분명히 가난한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많지.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 물질의 통용을 하다 보니까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부유함을 주셨다. 이런 부유한 마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마음은 보통 마음이 아니죠. 그리고 가진 것이 있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남들에게 내가 자랑하고 뿜을 내고 내가 이런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각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
여러분 가난은 하나님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라님도 가난을 구원해 줄 수 없죠. 해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자, 배고픈 자, 헐벗은 자, 가난한 자가 없다는 것이 오늘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보면 다시 우리 3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32절의 말씀 시작.
믿는 우리가 마음과 치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공명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당긴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아멘, 믿는 누구가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믿는 무리가 참 중요합니다. 안 믿는 무리가 아니라 무슨 무리 믿는 무리 믿는 무리는 누구를 말할까요?
그렇죠 예수님을 믿는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부활을 믿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된 성도들. 그들이 바로 믿는 무리 그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자기 곰이라도 자기 것이다 내 것이다 하는 이가 하나도 없어 이런 마음 여러분 이런 마음은 세상에 주는 마음이 아니에요. 어느 누구도 이런 마음을 줄 수가 없어요. 하늘의 은혜가 그들 가운데 임재했다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라는 말을 하잖아요. 은혜다 은혜 은혜라는 말이 뭘까요? 이 독일어로 보면 까베라고 합니다. 까베 그러면 이 사명은 이 아웃프 까베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는 그냥 말로만 은혜다.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입니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프카백 바로 나의 사명입니다. 열매입니다. 그 자리까지 가는 것이 바로 아우프 카페라는 겁니다. 말로써 내가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은혜입니다. 그거 아닙니다. 은혜라는 것은 아홉 카페 은혜를 받았으면 그 사명의 자리로 그 열매의 자리로 가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겁니다.
오늘 초대교회는 하늘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오브 카베입니다. 그래서 누가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당신 천만 원 내놓으시오 1억 내놓으시오. 그런 말도 한 적도 없습니다. 하늘의 은혜가 임하게 되니까 성도들이 믿는 무리들이 각자가 받은 은혜대로 그것을 내어놓았다는 겁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 2025년도를 맞이한 우리 이 시간에도 이런 하늘의 은혜는 반드시 있는 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달성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이런 초대 교회와 같은 그런 은혜가 임하게 되면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이 아웃풋 카페 하늘의 은혜를 맛보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