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4-22)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계시록-묵시는 신앙 박해 시대의 문학입니다. 로마 황제 숭배와 유대교와 타종교로부터 큰 압박을 받으며 초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었어요. 고통 가운데 있는 교회를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친히 보고 아셨습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게 하셨습니다. 마치 예언자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하듯이, 요한이 주님께서 일곱 교회 각 교회에 말씀하심을 그대로 전한 편지였어요.
교회 안팎을 그대로 보시고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각 교회에 맞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어떤 교회는 칭찬을 받고, 어떤 교회는 칭찬과 더불어 책망을, 어떤 교회는 책망만 받았습니다. 오늘 일곱 번째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64km에 위치했습니다. 에베소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서머나-이즈미르에서 계속 동남쪽으로 내려오며 라오디게아까지. 갑바도키아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2. 4년 전 터키 선교지 순회사역을 하며 갑바도키아에서 라도디게아로 가서 우리 일행이 에베소까지 성지순례의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이 멀리 와주어 고맙다고 직접 성지순례 안내를 해주었어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데 교회와 함께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은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았어요. 책망만 받은 것은 당시 이 교회의 상황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14절,“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주님이 이 교회에 이런 모습으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첫 말씀에,“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15절) 경찰이 어떤 사건을 수사하며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요. 주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다 보고 아십니다. 주님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지 않으시고, 하나씩 해결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며 바로 잡아주듯이, 참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도 그렇게 하셨어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향해서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 너희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내 입에서 너를 통하여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교회의 두 번째 문제는 17절,“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다.”
4.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과 실제를 너무 잘 아시는데, 진작 이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형편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참 기가 막힌 상황이었어요.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는데 내 모습을 바로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이 얼마나 부자였기에 자신들의 부를 자랑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들의 실체가 어떠했기에 주님은 그들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실마리
5.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만 아니라 모든 교회,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형편과 실제를 다 아십니다. 적당히 아시지 않고 완벽하게 아세요. 주님 앞에 서면 누구도 항변하지 못해요. 그렇게 당당하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을 뜨지 못했던 것처럼요.(사도행전 9장을 보세요)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첫째,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아멘은 진실로라는 말이에요.
이 세 가지는 결국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진실하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즉 그는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아시는데 거짓이 없이 아신다는 의미에요. 둘째로 주님은 창조의 근본이신 이-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신성-하나님이 되심은 성경에 곳곳에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주님이 친히 자신의 신성을 밝히셨어요. 주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잘 아시니, 너희의 모습을 바로 알고 합당하게 대처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6. 만일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고자 하셨다면, 굳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인간들을 형벌만 주면 되었어요. 하지만 주님은 신화의 신들처럼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완전한 인격을 소유하셔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변화되기를 원하셨어요. 그들이 변화되려면 그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첫째,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에서 10km 떨어진 히이라폴리스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대로 있어요. 호텔들도 많고요. 온천의 뜨거운 물이 흘러내려서 25리 길에 위치한 라오디게아에 이르면 물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게 됩니다.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서 물이 그런데, 그들의 믿음도 그랬다는 말씀이에요. 그들의 신앙은 왜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게 되었을까요? 라오디게아는 그들이 말하던 것처럼 매우 부자였습니다. 각 나라에 가면 소위 부자 동네들이 있습니다. 뉴욕에 가면 맨하튼의 경우 30가에서 70가(미드 타운), 그리고 동쪽의 긴 섬 롱아일랜드가 부촌이에요. 서울은 강남이고요.
7. 라오디게아 교회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는 것은, 현장에 가보니 금방 알았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아시아의 다른 여섯 개 교회 지역과는 차별이 됩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는 흔적들이 이곳이 얼마나 부촌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어요. 건물 규모가 차원이 다릅니다. 그들은 부요해서 두 차례나 큰 지진을 겪었지만, 로마 정부의 도움을 거절했어요. 포항 시민들이 지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도 그들만큼 부자였으면 세금으로 우리 지원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칠거에요.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더 주기를 바라죠.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마음이 갈급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 보니 믿음이 뜨겁지 않아요. 믿음이 있다 하나 미지근해요. 집이나 옷은 화려하지만, 속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그들의 실체를 아시고 18절,“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부요한 그들은 연단을 몰랐어요. 그들의 믿음과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벌거벗은 것도 몰랐어요. 힌 옷은 하나님의 의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안약을 자랑했지만, 그들의 영적인 눈은 맹인이 되고 말았어요.
복음 제시
8. 예수님은 죽어가는 사데 교회를 향해서 회개를 강하게 촉구하셨듯이,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회개의 기회를 주셨어요. 19절,“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그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도 내가 사랑한다고 선포하셨듯이, 오늘 누구에게든지 동일하게 선언하십니다. 참된 사랑은 그 사람을 죽게 하지 않고 살립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미지근하게 있다가 멸망하지 말고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는 내가 너희에게 회개의 시간-기회를 주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들이 듣고 순종했으면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어요. 20절,“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주님과 교제-관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식탁 교제-신뢰와 관계의 회복) 우리가 복음을 제시하며 결단을 촉구할 때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기대
9. 예수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믿음으로 승리할 때 주실 은혜도 선포하셨습니다. 21절,“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오디게아 교회가 부자라고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열심을 내고 회개하면 그들이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어요.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들이
마음의 연단을 받아 흰옷-의의 옷을 입고, 안약을 사서 보고-영적인 눈이 뜨일 때 일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처방까지 하나하나 다 일러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늘 우리의 결단입니다.
윌리암 헌트는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습니다.(세상의 빛, 등불을 들고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명화가 되었어요. 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녹슬고 거친 문입니다. 문을 잡초로 덮여 있고요. 이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에요.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전시회에 가서 이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들이, 아빠 사람들이 왜 안에서 예수님께 문을 열어주지 않죠? 아빠가 머뭇거리니까 아들이 답했습니다. 나는 알아, 사람들이 집안에서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까 그렇지. 이 아이의 말처럼 지금도 사람들이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지 않습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을 열어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