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의 판사입니다] - 엄상익 변호사
20년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같이 군에 근무하던 법무장교 동기 중 한 명이 대법관이 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 1심 판사였던 그는 민주화 투쟁으로 재판에 회부 된 인사들에 과감히 무죄를 선고했었다. 이후 그는 오랫동안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그는 대법관이 된 것이다. 그를 축하해 주기 위해 동기생들이 모였다. “대법관이 되어 일을 해보니까 단순한 법리 해석만 하는 게 아니야. 국가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앞에 있던 장교 동기생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진보의 대표격으로 대법관이 된 거야. 세상의 분위기에 휩싸이지 말고 그냥 여태까지 해 온 그대로 행동해. 그게 튀건 말건 말이야.”
대법관은 법의 한계를 넘어 정치의 본질을 건드리는 경우가 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건에서 뇌물을 주었다고 기소된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국정원의 예산 일부를 청와대에 보낸 걸 뇌물로 보는 것은 무리였다. 1심 판사와 2심 판사도 모두 그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담당 대법관만 그걸 뇌물이라고 했다.
하급심판사들이 뭐라고 하건 대법관이 뇌물이라고 하면 뇌물이 되는 게 우리 법의 구조다. 박근혜 대통령은 뇌물범이 되어 정치생명이 끊겨버렸다. 어쩌면 그게 징역 생활보다 더 중한 형벌인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정치적으로 살아났다면 정국의 판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판사들은 뇌물이 아니라고 봤는데 왜 대법관만 뇌물로 보였을까. 나는 그 대법관의 눈에 비늘이 씌워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었다. 이재명 시장이 TV토론에서 거짓말을 한 게 법적인 문제가 됐었다. 대법원은 거짓말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그를 살려주었다. 덕분에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되어 아슬아슬한 차이로 떨어졌다. 담당 대법관은 왜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하여튼 그는 대법관을 그만 둔 후 50억 클럽의 변호사가 됐다.
역대로 법원에 의해 정치가 흔들거린 적이 많다. 김영삼 의원의 당권을 정지시켜 버린 판사도 있었다. 자유당 정권시절 국민들의 지지가 있던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에 대해 대법원은 사형을 확정 시켰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서도 법원의 사형선고가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법대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까 봐 벌벌 떨었다.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던 교사등 몇명의 지식인이 인민혁명당이라는 모함을 받고 법의 심판대에 올랐었다. 대법원은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그들은 바로 다음날로 목에 밧줄이 걸려 모두 죽음의 세계로 갔다. 한국의
정치는 의회가 아니라 대법원에 가 있는 것 같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 그게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법치주의일 것이다. 출세욕에 잡혀 자기를 임명해 준 인간에게 충성하면 안된다. 여론에 굴복해서도 안된다. 그래도 이 나라는 올곧고 자존심 있는 판사들의 희생에 의해 법치주의가 유지되어 왔다.
해방 후 판사가 피살당한 사건도 종종 있었다. 공산당이 지폐를 위조한 정판사사건이 있었다. 그걸 재판했던 담당 판사가 암살됐다고 들었다. 그 시절 재판을 한 후 납치된 판사들도 있었다.
판사를 했던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이 올라왔더라구. 정치적 음모가 있는 느낌이었어. 구속영장을 기각했더니 내 사돈의 팔촌까지 조사 하더라구.”
나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는 판사 생활을 오래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가 해방 후 법관 생활을 하셨지. 소신대로 재판을 하는 강직한 분이었어. 어느 날 길을 가시는데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서 할아버지를 세웠지.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나는 대한민국의 판삽니다’라고 소리쳤어. 바로 총성이 울리고 할아버지는 밤새 피를 흘리다가 죽었지.”
독재와 혼란이 소용돌이치던 시절 강직한 판사들이 이 나라의 표류를 막는 닻의 역할을 해 왔다. 차기 강력한 대통령 후보인 야당 대표의 재판을 놓고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차기 대통령 선출에 대한 결정적 영향력을 가진 셈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대리하는 훌륭한 대법관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엄 상익 변호사는 1954년 평택출신으로 경기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24회 사법시험에 합격 후 군판사를 지냈다.1986년 변호사 개업을 하였고, 현재는 묵호의 실버타운에 살면서 글쓰는 삶을 살고 있다. 네이버에서 우연히 그의 글을 만났는데 문장이 전문작가처럼 수려하진 않았지만 일상의 소소한 느낌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게 공감이 가고 그의 성향에 동질감이 느껴져 친구처럼 생각되었다. 친구란 게 꼭 직접 만나서 밥을 먹거나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세상을 살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지향하면 정신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그는 법정스님을 좋아해서 스님의 다비식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나도 한때 스님을 좋아해서 서점에서 스님의 책을 모두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엄 상익의 글은 대부분 그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그의 마음에 담아 재해석하고 전달을 하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나는 그의 글을 몇회에 걸쳐 소개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