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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7월(1595년 7월)
509
7월 초1일 (임신) 잠깐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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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제삿날(仁宗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다락 위에 기대어 나라의 돌아가는 꼴을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마치 아침 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만한 기둥같은 인재(棟樑)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같은 인물(柱石)이 없으니, 모르겠다.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어갈지. 마음이 괴롭고 어지러워서 종일 엎치락뒤치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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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2일 (계유) 맑다. [양력 8월 7일]
512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날이다. 슬픈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513
저녁나절에 활 열 순을 쏘고, 또 철전 다섯 순 ∙ 편전 세 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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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3일 (갑술) 맑다. [양력 8월 8일]
515
아침에 충청수사에게로 가서 문명하니 많이 나았다고 한다.
516
저녁 나절에 경상수사가 이곳에 와서 서로 이야기한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517
밤 열 시쯤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나 입맛이 없으시다고 한다. 몹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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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4일 (을해) 맑다. [양력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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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판관이 배를 거느리고 진으로 돌아왔다.
520
이전(李筌) 등이 산 일터에서 노 만들 나무를 가지고 와서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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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갔다. 미조항첨사 ∙ 웅천현감이 와서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내기로 환각궁을 쏘았는데 노윤발(盧潤發)이 으뜸이었다.
522
저녁에 림영(林英) ∙ 조응복(趙應福)이 왔다.
523
양정언(梁廷彦)은 휴가를 얻어 돌아갔다.
524
7월 초5일 (병자) 맑다. [양력 8월 10일]
525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저녁나절에 조방장 박종남(朴宗男) ∙ 조방장 신호(申浩)가 왔다. 방답첨사는 활을 쏘았다. 림영(林英)은 돌아갔다.
526
7월 초6일 (정축) 맑다. [양력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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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鄭沆) ∙ 금갑도만호 ∙ 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 여덟 순을 쏘았다.
528
종 목년(木年)이 곰내(古音川)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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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7일 (무인)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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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사 ∙ 두 조방장 ∙ 충청수사가 왔다. 방답첨사 ∙ 사도첨사 등을 편을 갈라 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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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병사에게서 임금님의 분부가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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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재앙이 나라에 참혹하게 만들고, 원수놈은 나라 안에 있어 귀신도 부끄러워 하고, 사람도 원통해 함이 천지에 사무쳤건만, 아직도 요망한 기운을 빨리 쓸어버리지 못하고, 원수놈과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있음(不共戴天)을 끊어버리지도 못하니 통분하다. 그러니 무릇 혈기가 있는 자로서 누가 팔을 부르걷고 마음을 썩히면서 원수놈의 그 살점을 저미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경은 적과 마주 진치고 있는 일선 장수로서 조정의 명령도 없이 함부로 적과 대면하여 감히 패역한 말을 지꺼리고, 또 여러번 사사로이 편지를 통하여 적의 기세를 높이고, 적에게 애교를 부릴 뿐더러, 수호 ∙ 강화설이 명나라에까지 미쳐 부끄러럽 게 하고, 흔단을 열어 놓기에 조금도 꺼리낌이 없도다. 생각건대 군율로 다스려도 아까울 것이 없을 것이지만, 오히려 관대히 용서하고 돈독히 타이르고 경계하도록 책망하기도 했다. 아닌게 아 니라 오히려 고집을 부리고 스스로 죄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니, 내가 보기에는 몹시 해괴하고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이에 비변사의 낭청 김용을 보내어 구두로 나의 뜻을 전하니, 경은 그 마음을 고쳐서 정신을 가다듬어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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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니, 놀랍고도 죄송스러움을 가눌 길이 없다. 김응서(金應瑞)란 어떠한 사람이기에 스스로 회개하여 다시 힘쓴 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만약 쓸개라도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자살이라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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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8일 (기묘) 맑다. [양력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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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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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만호 ∙ 조방장 박종남(朴宗男)이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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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의 군관 배영수(裵永壽)가 그 장수의 명령을 받고 와서 군량 스무 섬을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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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정광좌(鄭光佐)가 와서 부임했다고 아뢰었다. 활 열 순을 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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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년(木年)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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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9일 (경진) 맑다. [양력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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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말복이다. 가을 기운이 서늘해지니, 회포가 많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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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첨사가 와서 보고 갔다. 웅천현감 ∙ 거제현령이 활을 쏘고 갔다.
543
밤 열 시쯤에 바다 위의 달빛이 다락에 가득차니, 생각이 번거로와 다락 위를 어슬렁거렸다.
544
7월 초10일 (신사) 맑다. [양력 8월 15일]
545
몸이 몹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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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우수사를 만나 서로 이야기했다. 양식이 떨어져도 아무런 계책이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무척 답답하여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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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장 박종남(朴宗男)도 왔다. 술 두어 잔을 마셨더니, 몹시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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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 다락 위에 누었더니, 초생달 빛이 다락에 가득하여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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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임오) 맑다. [양력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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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어머니 앞으로 편지를 쓰고, 여러 곳에도 편지를 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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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재(武才) ∙ 박영(朴永)이 직접 일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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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공무를 보고, 활 열 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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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계미) 맑다. [양력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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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한 뒤에 경상우수사가 와서 봤다. 그와 함께 활 활 열 순 ∙ 철전 다섯 순을 쏘았다. 해질 무렵 서로 회포를 풀고 물러갔다. 가리포첨사도 와서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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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갑신) 맑다. [양력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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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포첨사 ∙ 우수사가 같이 와서 가리포첨사가 술을 바쳤다. 활 다섯 순 ∙ 철전 두 순을 쏘았는데 나는 몸이 몹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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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을유) 저녁나절에 개었다. [양력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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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녹도만호 송여종(宋汝宗)으로 하여금 사망한 군졸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쌀 두 섬을 주었다. 이상록(李祥祿) ∙ 태구련(太九連) ∙ 공태원(孔太元) 등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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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병이 나아 펀안하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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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병술) 맑다. [양력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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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니, 박 ∙ 신 두 조방장과 방답첨사 ∙ 여도만호 ∙ 녹도만호 ∙ 보령현감 ∙ 결성현감 및 이언준(李彦俊) 등이 활을 쏘고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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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그로 하여금 씨름 내기를 했다. 정항(鄭沆)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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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정해) 맑다. [양력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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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들으니, 김대복(金大福)이 병세가 몹시 위태롭다고 한다. 매우 걱정스럽다. 곧 송희립(宋希立) ∙ 류홍근(柳洪根)을 시켜 간호 치료케 했으나, 무슨 병인지를 알지 못하여 무척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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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천부사 정석주(鄭石柱) ∙ 영광도훈도 주문상(朱文祥)을 처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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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원수에게 가는 공문과 병 사에게 갈 공문를 초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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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첨사(성윤문) ∙ 사도첨사(김완)가 휴가신청서를 제출하므로 성 첨사에게는 열흘, 김 첨사에게는 사흘을 주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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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만호는 유임한다는 병조의 공문이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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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무자)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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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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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 있던 왜적이 벌써 철수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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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그래서 곧 정항(鄭沆)을 시켜 정하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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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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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출항하여 나갈 일을 전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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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기축) 맑다. [양력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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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대청으로 나가, 박 ∙ 신 두 조방장과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오후에 출항하여 지도(통영시 용남면)에 이르러 정박하고 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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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자정에 거제현령이 와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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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의 왜적 소굴이 이미 텅텅 비어 버렸으며, 다만 서른 명 남짓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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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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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하는 왜놈을 만나 활을 쏘아 한 놈은 목을 베고, 한 놈은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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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밤 두 시쯤에 출항하여 견내량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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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경인) 맑다. [양력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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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 ∙ 경상수사 ∙ 충청수사 ∙ 두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오후 네 시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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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만호를 찾아서 잡아다 현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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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복(金大福)의 병세를 가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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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신묘) 흐렸다. [양력 8월 25일]
587
두 조방장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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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거제현령 및 전진해현감 정항(鄭沆)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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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 다섯 순 ∙ 철전 네 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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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병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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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임진)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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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가 들어온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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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태구련(太九連) ∙ 언복(彦福)이 만든 환도를 충청수사 ∙ 두 조방장에게 각각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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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에 아들 울(蔚) ∙ 회와 우후가 같은 배로 섬 밖에 이르러 아들들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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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계사)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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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일(李忠一)이 그의 부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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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갑오) 맑다. [양력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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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에 말달리는 일로 원두구미(통영시 한산면 염호리 역졸포)로 갔더니, 두 조방장 및 충청수사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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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작은 배를 타고 돌아왔다.
600
7월 24일 (을미) 맑다. [양력 8월 29일]
601
나라제삿날(度祖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602
충청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603
7월 25일 (병신) 맑다. [양력 8월 30일]
604
충청수사의 생일이라 음식을 마련하여 왔다. 우수사 ∙ 경상수사 및 조방장 신호(申浩) 등과 함께 취하여 마구 이야기했다.
605
저녁에 조방장 정응운(丁應運)이 왔다.
606
7월 26일 (정유) 맑다. [양력 8월 31일]
607
아침에 정영동(鄭永同) ∙ 윤엽(尹曄) ∙ 이수원(李壽元) 등과 흥양현 감이 들어왔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와 충청수사도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608
7월 27일 맑다. [양력]
609
어사의 공문이 들어왔다.
610
7월 28일 (기해) 맑다. [양력 9월 2일]
611
아침식사를 한 뒤에 배로 내려가 삼도를 모아 포구 안에 진을 쳤다.
612
오후 두 시쯤에 어사 신식(申湜)(1551~1631; 신숙주의 5세손)이 진에 왔다. 곧 대청으로 내려가 마주하여 이야기하고, 각 수사 및 세 조방장을 청하여 같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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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경자)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9월 3일]
614
어사(신식)가 좌도 소속의 다섯 포구의 부정사실을 조사 ∙ 점고했다. 저녁에 이곳에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