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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퇴원해 시댁으로 돌아 온 삼숙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친구의 말이 마디마디 옳다고 생각했다. 이미 떠난 신랑의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란 것을. 신랑의 빈자리를 추억으로 채우려했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 줄 깨달았다. 더구나 빈자리의 적막함을 그리움으로 메우다 못해 자살하려했던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말하던 친구가 백번 옳다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것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삼숙은 그렇게 생각했다.
삼숙은 말린 복어피를 마시고 자살시도 한 이후 완전히 인생의 철학이 바뀌었다. 삶의 사고도 바뀌었다. 누구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엔, 성숙해 지거나 피폐해진다는데 삼숙은 성장했다. 아홉 고개, 인생의 한 고개를 넘은 것이다.
태어날 때 한 고개. 걸어서 한 고개. 학업의 한 고개. 사랑의 고개. 성취의 고개. 실패의 고개. 중년의 고개. 깨우침의 마지막 고개 중 4번째 고개를 넘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깨우칠 때마다 한 고개를 넘는 것이 인생인가보다. 그러니까 마지막 깨우침의 고개에 이르면 남은 고개는 필수선택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이 일생이다.
친구가 왔다 간 후.
신랑이 바람 되어 날아가 버리기 전보다 삼숙은 더 밝아졌고 맑아졌다. 표정이 밝아지고 인성이 맑아진 외에도 삶의 방식도 바뀌었다. 더 적극적인 여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매사에 매달릴 줄 알고 자를 줄 아는 여자가 된 것이다.
신랑이 떠나고 달라진 것은 삼숙만 아니었다. 시댁의 분위기도 전에 없이 달라졌다. 시댁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완전히 시누이 덕분이었다. 아니 아니, 어쩌면 시어머니의 삼숙을 대하는 태도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시어머니는 삼숙에게 극진했다. 친딸인 시누이와 며느리 사이에서 사사건건 며느리인 삼숙의 손을 들어주었다. 때로는 삼숙이 미안할 정도로 시어머니의 삼숙 사랑은 태가 났다.
허지만 아무리 눈꼴사납게 삼숙만 감싸 돌아도 시누이는 내색한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흐뭇해했다.
저녁 무렵 김치 속에 들어갈 양파껍질 벗기던 시누이가 눈물을 흘리자 삼숙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양파껍질은 머리부터 자르는 거에요. 뿌리부터 자르면 눈 따가워요.”
“언닌. 눈물 안 흘리기에 독종인줄 알았어요.”
“제가요?”
“양파껍질 벗길 때만요.”
삼숙이 얼른 시누이가 까던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시누이는 눈을 행주로 닦으며 한발 물러났다. 그때 시어머니가 들어왔다. 시어머니의 눈에 시누이는 놀고 있고 삼숙이 혼자 다 일하는 모습으로 비춰진 것은 당연했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넌 뭐하고 있냐? 올케가 힘들어 보이지도 않냐? 집에 있을 때라도 올케 도와야지 쯧쯧.”
“아니에요 어머니. 아가씨가 지금까지 혼자서 양파 까셨어요.”
시어머니가 삼숙을 밀쳐내며 시누이에게 말했다.
“어서 네가 까라. 출가외인인 주제에 주인도 몰라보느냐?”
“언제부터 언니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제 내 살붙이는 니 올케다. 그러니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올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라.”
시어머니의 말에 황송해진 삼숙이 어쩔 줄 몰라 쩔쩔 맸다. 허지만 시누이는 삐지기는 커녕 화안하게 웃었다.
“이제부터. 제가 가도, 우리 언니 오늘처럼 대하지 않으면 어머니 그냥 안둘거에요.”
“아유, 아가씨 무슨 그런 말씀하세요? 어머니, 언제 제게 잘못하셨나요? 함부로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제 어머님이에요.”
시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시누이를 핀잔했다.
“안 두기는? 그 봐라. 네 올케 십분만 해라. 인제 네 올케 없으면 나 못산다. 그렇재? 아가?”
“네 어머니. 아가씨, 제가 어머니 평생 잘 모실께요.”
“고마워요 언니.”
시누이가 삼숙을 끌어안았다. 시누이가 삼숙을 끌어안기 전에 시어머니가 얼른 삼숙을 반쯤 끌어안고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쟤가 김치는 잘 담근다. 아가, 연속극할 때 다됐다 얼른 들어가자.”
“네 어머니. 제가 이거 얼른 하고 들어가 어머니 다리 주물러 드릴께요, 먼저 들어가세요.”
시누이가 흐뭇하게 삼숙과 시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봤고 시어머니는 시누이를 째려 봤다.
그렇게 시댁엔 거꾸로 봄이 왔다. 뜰에는 가을이 한창 깊어 가는데.
신랑이 떠난 이후, 시어머니는 잠시도 삼숙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갖은 신경을 다 썼다. 시누이도 시어머니 못잖게 삼숙을 위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삼숙의 빈자리 적막함을 잊게 해줬다.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삼숙을 맞았다.
그래서 삼숙은 신랑이 고마웠다. 삼숙은 신랑이 떠나면서 모든 악재를 다 가져갔다고 생각했다. 부러울 것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사흘이 멀다 하고 삼숙을 데리고 쇼핑하러 갔고 좋은 음식도 아끼지 않고 사줬다. 물론 시누이도 동행했다.
“이제 아가씨 출국할 날도 며칠 안 남았네요? 막상 가신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운해요.”
정원 사랑채 신랑의 자리에 누워있는 시누이를 돌아보며 삼숙이 말했다. 시누이도 삼숙을 돌아보며 말했다.
“언니, 겨울 오면 여긴 춥잖아요? 내년 설 오기 전에 한번 다녀가세요. 언니 신혼 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개월이 다됐네요. 이번엔 어머니와 함께 오세요. 제가 신혼 때 보다 더 좋은 곳 구경시켜 드릴께요.
“아버님 때문에 갈 수 있겠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차만 타도 멀미하시는데.”
“우리 어머니 언니하고 비행기타면 절대 멀미안하실거에요. 그리고 아버님은 혼자계시는 걸 더 좋아하세요.”
“그래도 어떻게?”
시누이는 신랑과 이별여행에서 본 울진의 동해 아침을 그림처럼 자세하게 묘사했고 시누이는 삼숙의 이야기에 사로 잡혔다. 상기된 얼굴로 시누이가 삼숙에게 말했다.
“전 언니가 우리 집에 계신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너무 감사해요.”
시누이는 돌아누워 삼숙을 꼭 끌어 앉았다. 시누이가 출국할 날은 금요일이다. 그러니까 꼭 엿새 남았다.
그때 삼숙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친구였다.
“애 삼숙아 옆에 누구 있니?”
“왜? 아가씨랑 같이 있어.”
친구는 스마트폰 저편에서 머뭇거렸다. 친구의 머뭇거림에 불길한 예감이 묻어 있었다. 혹시 집에? 아버지가? 아니면 어머니가?
시누이가 삼숙의 표정을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친구가 삼숙의 빨간 스마트폰 저쪽에서 말했다.
“나 어제 사촌오빠 만났어.”
“오빠는 왜? 어디서?”
“항구에서 나이트클럽하더라. 우리 직원들과 2차갔는데 사촌오빠가 있기에 처음엔 피하려고 했어. 근데 날 알아보고 우리자리로 오는 거야.”
“그래서?”
“근데 있잖아. 사촌오빠 몸에서 대마초냄새가 엄청나더라. 마약하나봐.”
“뭐? 설마? 그런데 넌 대마초냄새 어떻게 알았냐?”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카페에서 한번 피워봤거든. 호기심에. 허지만 그게 다야. 풀냄새 같은 게 난 아주 싫었어. 허지만 한참 지나니까 기분은 묘했어 몽롱한 게.”
삼숙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사촌오빠 이야기가 왠지 몹시 마음에 걸렸다.
“다른 일은 없었고?”
“응, 사업은 잘되나봐 손님도 많고.”
“다행이네. 제발 오빠 잘됐으면 좋겠다. 오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덜컹거려.”
“나도 그래. 사촌오빠 보면 괜히 네 생각나서 싫더라. 그래서 바로 나와 버렸어. 그게 다야.”
삼숙은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난 후 마루로 나가서 앉았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치솟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날 밤 삼숙은 한잠도 자지 못했다. 삼숙이 앉았던 마루에, 떨어진 가랑잎 하나가 밤새 팔랑거리며 삼숙처럼 깨어 있었다.
다음날 경찰이 찾아왔다.
경찰은 삼숙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만 만나고 돌아갔다.
이틀 후 다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시누이가 횡구라니 경찰서로 달려갔다. 집을 나서는 세 사람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날 밤 늦게 세 사람이 돌아왔지만 삼숙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삼숙은 애가 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틀 후 시누이가 돌연 출국을 취소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세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다시 경찰서로 불려갔다.
그날 밤이었다.
밤늦게 돌아 온 시아버지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시집 온 후 시아버지가 술 냄새 풍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아버지는 삼숙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그대로 건넌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버렸다.
잠시 후 안방으로 삼숙을 시어머니가 불러 들였다. 삼숙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앉으려고 했을 때 시누이가 날카롭게 말했다.
“언니 집안은 도둑놈들만 있는 거 아니에요?”
삼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섬에서 이제껏 살아오면서 남들이 널어놓은 미역 한줄기 소문 없이 가져다 먹은 적 없고 바지락 한 알 탐해 본 적 없었던 삼숙이네다. 그런데 도둑집안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앙콤한 년. 알면서 저 지랄 하는 거 좀 봐라.”
“어머니 뭔데요? 제가 뭘 잘못했어요?”
“네가 이 집안에 발 들여 놓고 갖은 수모 다 겪으면서 오래 참는다 했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 삼숙은 정말 미칠 지경이 됐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행여 뭔가 실수했을까? 조심스럽게 시누이에게 되물었다.
“아가씨. 다들 왜 이렇게 화나셨어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전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시어머니가 왈칵 옛날 성질을 냈다.
“화냥년. 우리 아들 데리고 추억여행? 말이 좋다. 네 년이 우리 멀쩡한 아들 무슨 수로 죽였는지 다 안다. 내 아들 죽이려고 독살여행한 거 이제 알았다. 그 뿐이냐? 저년이 우리아들 씨 안 받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이 개 같은 년아.”
시어머니가 당장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방문을 열어 젖혔다.
“사람들아 여기 내 아들 죽인 년이 있소. 이년 좀 잡아가소.”
시어머니의 패악이 차가운 가을 밤 하늘을 날아 올라갔다.
다음날 삼숙은 경찰에 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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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숙이가 이제 살인 누명까지 쓰게 되내요.
타고난 팔자라고나 할까 너무나 당혹 스럽네요.
이제 기성회비 종결하다보니 답글 늦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모두 그렇드시 소성속의 주인공들이 연이어 죽을고비만 맞이 하네요..
박성기 회장 냉장실에 갇혀있지 삼숙이마저~~아~~살맛 안내네
나드래 속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언제 상면하면 좀 맞아 드릴께요...ㅋㅋ
신랑잃고 겨우 살만 하니까 또무슨 청천 벽력 입니까?
사는게 그런거죠..풀면 꼬이고 꼬이면 풀고...그러다..ㅎ
모든걸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삼숙이에게 너무 당혹스럽네요.
아무래도 살기가 힘들것 같아요..
소설 속의 주인공 이라지만 진절머리나겠슴니다.
느티나무 님 그래도 삼숙은 사랑이라도 받았잖아요? 박성기회장은 돈도 좀 만져봤구요..ㅎ
신랑 약먹인것이 잘못되었나요..
착한 삼숙이에게는 너무나도 큰시련 이네요..
글쎄요...이제 알게 되겠죠.
감옥살이 할지 아니면 풀려날지...아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