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
누군가에게 받을 돈이 있지만 상대방이 주지 않는 경우, 소송을 통해 판결을 받아 상대방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소송을 하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만일 상대방이 그사이에 재산을 처분해 버리면 설사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사실상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압류’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가압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제도처럼 가압류 역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가압류 재판은 보통 서류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악용해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 예금에 가압류하면 예금을 찾을 수 없고, 부동산에 가압류하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거나 부동산을 매도할 수 없어 가압류 자체만으로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당하게 가압류를 당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가압류를 당했을 때 대응방법에 대해 살펴본다.
1. 해방공탁
우선 가압류 결정문에 나와 있는 금액을 공탁해 가압류를 푸는 방법이 있다. ‘가압류 해방공탁’이라고 부른다. 민사집행법상 법원이 가압류 명령을 할 때는 가압류 집행을 정지시키거나 집행한 가압류를 취소시키기 위해 채무자가 공탁할 금액을 적어야 한다. 그래서 보통 가압류 결정문에는 ‘채무자는 다음 청구금액을 공탁하고 집행정지 또는 그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에 따라 ‘청구금액’에 명시된 돈을 법원에 공탁하고 가압류집행취소 신청을 하면 법원에서는 가압류집행을 취소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공탁 때문에 가압류집행이 취소되더라도 가압류명령 그 자체의 효력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방법을 통해 가압류를 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탁금을 마련해야 하므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위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2. 이의신청
다음으로 가압류 결정 자체가 부당한 경우 가압류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다만 이의신청을 한다고 해서 이미 이뤄진 가압류 집행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이의신청서는 가압류 결정을 한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가압류 결정을 했다면 이의신청서 역시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만일 채권자가 한 가압류 신청이 1심에서는 기각됐지만 채권자가 항고해 항고심에서 가압류 결정이 이뤄졌다면, 항고심 법원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이의신청의 사유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채권자에게 채권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권리(가압류 결정문에는 ‘청구채권의 내용’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든지, 가압류할 필요성이 없다든지 등 가압류 결정을 부당하게 하는 모든 사유를 주장할 수 있다.
가압류 이의신청에 대해 법원에서는 가압류의 전부나 일부를 인가·변경 또는 취소할 수 있다. 인가 결정은 원래의 가압류 결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변경이나 취소는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원래의 결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가압류 이의신청에 의해 가압류 결정이 취소되더라도 가압류 집행의 효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는 가압류 취소 결정정본을 집행기관에 제출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3. 제소명령 신청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채무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가압류를 신청하고, 정작 본안소송은 제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민사집행법에서는 제소명령 신청 제도를 두고 있다.
즉 ‘가압류법원은 채무자(가압류를 당한 사람)의 신청에 따라 변론 없이 채권자에게 상당한 기간 이내에 본안의 소를 제기하여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거나 이미 소를 제기하였으면 소송계속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제소명령에도 불구하고 채권자가 정해진 기간 내에 본안의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채무자는 제소기간 도과(일정한 기간이 지났음)를 이유로 가압류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제소명령 신청을 통한 가압류 취소는 ‘가압류 → 제소명령 신청 → 법원의 제소명령 → 제소기간 도과 → 가압류 취소 신청 → 법원의 가압류 취소 결정’의 과정을 거친다.
4. 취소신청
마지막으로 가압류 결정에 대해 취소신청을 해 가압류를 푸는 방법이 있다. 가압류 취소는 가압류 결정 자체는 유효하지만 이후 가압류를 유지할 수 없는 일정한 사유가 발생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다는 점에서 앞에서 설명한 가압류 이의와는 다르다.
민사집행법에서 정하는 가압류 취소 사유는 세 가지다. ① 가압류 이유가 소멸되거나 그 밖에 사정이 바뀐 때 ② 법원이 정한 담보를 제공한 때 ③ 가압류가 집행된 뒤에 3년간 본안의 소를 제기하지 아니한 때다. 위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가압류 취소 신청에 대한 재판은 원칙적으로는 가압류를 명한 법원이 하지만, 본안이 이미 계속된 때에는 본안법원이 한다.
위 세 가지 사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①과 같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는 가압류 취소의 대표적인 사유로는 가압류 이후에 채무자가 돈을 갚은 경우, 즉 변제를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상계나 소멸시효 완성 등에 의해 피보전권리(가압류에 의해 보호되는 채권자의 권리)가 소멸되거나 변경된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②의 담보제공으로 인한 가압류 취소는 가압류 자체의 취소를 구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해방공탁에 의한 가압류집행 취소와는 다르다. 이때는 취소 신청서에 ‘신청인에게 적당한 담보를 제공하게 하고 가압류결정을 취소하여 줄 것을 신청합니다’라는 식으로 기재하게 된다.
③의 경우는 문자 그대로 가압류 집행 후 채권자가 본안의 소를 제기하지 않고 3년이 지나면 취소의 요건이 완성된다. 그 후에는 본안의 소를 제기해도 가압류 취소를 배제하는 효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채무자는 가압류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이처럼 가압류를 당한 경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가압류한 채권자와 합의해 가압류를 푸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가압류를 전제로 설명했지만 가압류에 관한 규정은 대부분 ‘가처분’에도 적용되므로 가처분을 당한 경우에도 위와 같은 방법을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