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무릉 두 섬은 현(울진현)에서 바로 보이는 동쪽바다 가운데 있으며, 두섬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세종실록'-1454년-' 권153 '지리지' '울진현'조에서)
무릉(武陵)의 울릉도의 별칭임이 이미 확인된 사실이며, '우산(于山)' 역시 독도 이외의 다른 섬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제 울릉도에서 맑은 날 독도가 보이지 않습니까.
"우산도와 울릉도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에 있다. (우산도) 세 봉우리가 하늘로 곧게 솟았으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날씨가 맑으면 (울릉도에서도) 세 봉우리 위의 나무와 산 밑의 모래톱이 역력히 보이고, 바람이 잦아지면 이틀에 도착할 수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권45 울진현조, 조선중종26년,1531년)
◎ 자산도(子山島)
松島卽子山島 此亦我國地 汝敢住此耶 송도즉자산도 차역아국지 여감주차야
"송도는 즉 자산도이다. 이 역시 우리나라 땅이거늘 너희가 감히 이 곳에 사는가"(숙종실록:1696년) - 조선 숙종때의 안용복이 일본어부가 '송도'가 그들의 땅이라 주장함에 대해. 자산도란 이름에 대해서는 우산도의 우(于)자를 모양이 비슷한 자(子)로 혼돈함으로서 생긴 오기였다는 설명과, 모도(母島)인 울릉도에 대해 자도(子島)관계에 있는 독도의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 삼봉도(三峰島)
"9월 16일에 경성(鏡城) 배구미포(裴仇未浦)를 출발하여 25일에 서쪽으로 75리쯤에 '삼봉도'가 보였다. 섬 북쪽에 삼석(三石)이 나란히 서 있고, 다음에 소도(小島)가 있고 다음에 암석(岩石)이 나란히 서 있고, 다음에 중도(中島) 서쪽에 또 소도(小島)가 있는데 모두 바닷물이 유통하였다. 섬 사이에 사람 모양의 것이 서른개쯤 서 있으므로 다가자기 못하고 섬의 모양을 그려 가지고 왔다." (성종실록)- 조선성종때 영안도(오늘날 함경도) 관 찰사 이극균의 지시에 따라 김자주(金自周)가 섬을 보고 목격담을 실은 것입니다. 김자주가 전하는 섬의 외형은 현재 독도가 동도와 서도 그리고 지네바위, 독립문바위,가제바위등으로 불리워지는 36개의 암초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섬 북쪽의 세 바위는 지금의 서도 북방에 높은 솟은 세 개의 바위섬을 가리키며, 작은 섬과 암석은 동도와 서도 사이의 무수히 흩어져 있는 바위들이며, 중도는 서도를, 중도 서쪽의 작은 섬은 동도를 ( 참고로 서도의 높이는 98m, 동도는 168m), 그 사이로 바닷물이 통한다는 것은 지금의 동도와 서도 사이에 폭 110~160m의 좁은 수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합니다.
◎ 가지도(可支島)
"갑인년 6월 26일에 가지도(可支島)에 가 보니 가지어(可支漁) 너댓 마리가 놀라 뛰어나왔다. 그 생김새는 수우(水牛)를 닮았는데, 포수가 두 마리를 쏘아 잡았다"(정조실록 권40의 18년 6월 무오조, 1794년) 오늘날에도 울릉도 사람들은 강치를 '가제( 가제: 강치과에 속하는 바다짐승 강치의 별칭으로 물개나 바다표범과 비슷하되 좀 작으며, 낙지와 오징어, 물고기를 먹이로 한다)'라 부르며, 이를 한문으로 음역하여 '가지어'라고 부른듯하며, 가지도는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아울러, 서도 북서쪽에 '가제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기도 하지요.
◎ 석도(石道)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법침입과 삼림벌채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대한제국 정부가 고종37년 1900년 10월 25일에 칙령 제41호로 공포된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에 '석도'라는 이름 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의 제1조는 울릉도를 울도로 고쳐부르고,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있던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를 고쳐서 하나의 독립된 군으로 설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2조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및 석도를 관할할 사(事)"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죽도와 석도에 대해 알아보면, "죽도는 울릉도 근방의 작은 섬 죽서(竹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있으며,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죽도는 울릉도 바로 옆의 바위섬 죽서도(竹嶼島)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규원의 [검찰일기]에서 확인했다"고 하였다.즉, 울릉군 와달리 앞 바다에 존재하는 유인도가 죽도입니다.
◎ 독도(獨島)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교수는 '독도'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할때가 러일전쟁 때인 1904년 9월이라고 한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 군함활동을 정찰하기위해 우릉도에 2개의 군사용 망루를 설치했는데(1904년8월), 독도에도 설치할 목적으로 군함 니다카호를 파견하여 조사토록 하였다. 9월25일자로 올린 보고서에 의하면
"리앙꼬르도 암을 한인들은 '독도'라고 쓰고, 일본 어부들은 리앙꼬 도(島)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로 당시 국내 상황은 1904년 8월에 일본은 대한제국정부를 강요해 한일협정서를 성립시켰으며, 그 협정서는대한제국 정부의 주요 부서들에 대해 일본인 재정 고문관과 외국인 외교 고문관을 두게 함으로서 대한제국 정부의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 문헌중에는 1906년 3월 29일에 작성된 울도(울릉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서 '독도'가 처음 발견된다(의정부 외사국 《各觀察道案》제1책 보고서 호외).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 결정을 거쳐, 2월 22 일 시네마현(도근현)고시 제40호를 통해 일본의 영토로 일방적으로 편입한 이후, 일본은 1906년 3월 28일에 이르러서야 독도의 일본영토 편입사실을 울도 군수 심흥택에게 알렸으며, 이에 놀란 심흥택 군수는 강원도 관찰사 서리 이명래에게 "본관소속 독도가 일본영토에 편입되었다는 말을 들었다"라는 보고를 하였다. 이에 당시 참정대신은 1906년 4월 29일 지령 제3호를 통해 "독도가 일본인의 영토라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며,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다시 조사하여 보고하라"라고 지시하였다.
2)일본에서 부르는 이름들
◎ 송도(松島)
독도에 관한 일본의 기록들 중 최초의 것은 1667년에 편찬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입니다. 여기에 독도를 송도로, 울릉도를 죽도(竹島) 혹은 기죽도(磯竹島)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기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책의 편찬자는 사이토호센이었습니다. 그는 이즈모국에 속한 운주번의 관리, 즉 번사(藩士)로서 상관의 명령으로 1667년 가을에 오키시마를 순시한 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해서 [은주시청합기]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은주는 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은기도(오끼섬)라고 말한다.... 술해 사이에 두 낮 한밤을 가면 송도(松島)가 있다. 또 한 낮 거리에 죽도(竹島)가 있다. 이 두 개의 섬들은 무인도인데, 이 두 개의 섬들로부터 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에서 은기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경계는 은주(오끼섬)로써 끝이 난다."
일본의 서북경계를 은주라고 단정했기에, 따라서 서북경계 넘어 있는 두 개의 섬, 송도(독도)와 죽도(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인정한 것이며, 그러므로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한 것이되는 것입니다.(즉 일본의 오끼섬에서 배를 타고 가면 먼저 송도(독도)가 있고, 한나절 거리에 죽도(울릉도)가 있다는 것이죠.)
일본인들이 소나무라고는 없었던 독도를 '송도(松島)'라고 부르게 된 것은, 울릉도를 죽도(竹島)라고 부른 것에 대한 대칭으로 해석됩니다.
◎ 죽도(竹島)
당시 일본의 대표적 학자였던 하야시(林子平)가 1785년 만든 [삼국통람여지노정全圖]에 독도를 '죽도(다께시마)'라 표시하였으며, 다께시마, 마츠시마 옆에다가 "조선의 것으로"라는 문자까지 적어 넣었습니다. 참고로 이 지도는 국경과 영토를 구별하기 위해 나라별로 색깔을 칠했는데, 조선국을 황색으로, 일본국을 녹색으로 칠했으며, 다께시마와 마츠시마는 물론 조선의 색깔인 황색으로 칠하였습니다.
◎ 우산도(于山島)
일본육군성 참모국이 1875년에 만든 [조선전도(朝鮮全島)]이라는 지도에는 독도가 '우산도'로 나타나 있으며, 독도를 조선영토로 표기하였습니다.
◎ 리앙꼬도
독도를 '리앙꼬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3) 기타 외국에서 부른 이름들
◎ 붓솔(Boussole)
1785년 5월 프랑스 해군 함정 붓솔호가 동해를 항해하다가 울릉도,독도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울릉도에는 그 섬을 가장 먼저 발견한 승무원의 이름을 따서, 다쥴레(Dagelet Island)라는 이름을 붙였고, 독도는 배의 이름을 따서 '붓솔'이라 하였습니다.
◎ 리앙쿠르 바위(Liancourt Rocks)
1849년 프랑스의 고래잡이 배인 리앙쿠르 호가 독도를 발견하고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세계 여러나라의 지도에서 독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마나라이와 오리브차 바위(Manalai and Olivutsn Rocks)
1854년 러시아의 해군 함정 팔라다(Pallada)호가 독도를 측정한 후 붙인 이름입니다.
첫댓글 길다....;;아무튼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