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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야!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니? ....아니면 이게 현실이니?"
-'언니 지금 현실이 맞아요!'-
"그러면 내가 왜 감정이 사라진 걸까? 예를 들자면 살갗을 꼬집었는데도 아무런 아픔도 못 느끼는데 왜 그런지 넌 아니?"
-'아~ 그거요. 그건 지금 언니가 타임머신이나 비행물체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고 감정이 살아있는 생체 비행접시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에요. 이 비행체는 스스로 방어하는 면역체계가 있어서 외부의 어떤 공격도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 준답니다. 스스로가 망가지기 전까지는 전혀 상처를 내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는 거죠. 안전하고 꽤나 괜찮은 비행체예요. 그리고 언니가 이 비행접시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에요. 지금 선진금속에서 만들고 있는 그 비행접시가 이 비행접시까지 진화하였으니 언니는 당연히 주인자격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과거를 보여주는 거니?"
-'그건 말이죠. 미래의 가공할 인물이 과거를 어지럽혔다는 사실을 내가 있는 시대에는 가 볼 수 있고 알려줘도 되지만 과거를 사는 사람들 즉 21세기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엉뚱한 예측을 하는 것이 안타까워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제왕께서 언니를 택한 거에요. 그걸 누군가는 알아야 되겠다고 염려해서 보여드린 거랍니다. 언니를 선택하였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으음, 그렇구나! 가보길 잘한 것 같네!'
-'그리고 언니가 있는 시간대의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셔야 해요!'-
나는 흐릿한 기분과 조금 허전한 느낌들을 갖고 다시 나의 거주공간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녁을 먹은 느낌을 살려 카리시안을 쳐다보았다. 아직 초저녁 시간... 남편은 아픈다리를 높이 들고 나름 운동을 하고 있었다.
"평소 안하던 운동을 왜 다리 아픈날 한대요?"
"이거... 한쪽 다리로만 다니려면 다리가 튼튼해야 잖아! 그래서 안 하던 운동이지만 당신 부축을 좀 덜어 주려고...."
"참! 이리 와봐요. 당신 다쳤으면 날 찾지 병원에는 왜 갔어요?"
"아~아..! 그게 그러니까... 넘어져 못 움직이자 부장님이 옆에 계시디가 날 부축해가지고 차에 던져놓고는 곧장 병원으로 간 걸 언제 당신을 찾아?!"
"이리 와 봐요. 운동은 나중에 다 났거든 하시고..."
나는 남편의 다리를 당겨 아프다는 다리를 무픞까지 끌어올렸다. 오른쪽 다리 발목이 부어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늘어났다는 인대에 대고 왼손로 꽉잡았다. 혹시 그동안 안 써먹은 탓에 능력이 없어지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되었지만 미리와 비행접시로 여행을 하며 들은 이야기로는 아직 능력이 건재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 솜씨 알죠?"
"응, 근데... 그걸 지금 나한테 쓰려는 거야?"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아플까봐 겁이 나나요?"
손에 힘을 주자 감정이 살아났다. 내 신경세포들이 왼손에 집중되어 능력을 가속화 시켰다.
그의 늘어난 심줄이 보이고 내 손에서 나간 능력이 그 부분을 꽉 조이자 늘어났던 신경이 줄어들면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살갗을 꽉 쥔 손바닥에서 파란 불빛이 새어나왔다.
"어떻게 할까요? 깁스를 떼어버릴까요? 아니면 아픈척하고 의사의 처방에 맞긴 채 2주간 깁스하고 다닐까요?"
"이거 진퇴양난이라고 해야 하나? 의사선생님 말로는 뼈가 어긋난 건 맞춰놓고 이삼일 쉬면서 무리하지 않으면 거의 완치되지만 인대가 늘어난 건 아물려면 2주이상 걸린다고 했는데...."
"그럼 당분간 깁스 상태로 있다가 목발도 짚고 다녀요. 다 나았다고 깁스한 채로 뻣뻣이 다니지 말고요."
"그거 쉽지 않겠네! 상황봐서 별거 아니라 하고 걷어치울까 해!"
남편은 깁스를 떼어내려고 이삼일간 쇼를 하기로 하였다.
네 발로 걷던 원숭이가 직립보행을 하는 유인원이 되기까지를 재현하며 사흘이 지나자 다 나았다며 깁스를 한 석고를 깨어버렸다. 그걸 본 생산과 직원들은 한마디씩 덧붙였다.
"과장님은 승질도 급하셔 그냥 냅두면 나을껄 갖구 그러다가 도지면 찔뚝다리 될뀨!"
"냅둬 봐요. 성격이 급하니깐 낫는 것도 되게 빨리 낫는가 보네요."
그래도 남편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단지
"기냥 다 났는지 멀쩡해졌네요."가 전부였다.
함께 병원에 갔던 부장님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한 말씀하셨다.
"역시 미래에서 온 부인을 두니깐 미래의 의술을 사용하셨나보네! 금새 다 낫는 걸 보니!"
생산부장님이 사실을 본 것처럼 과장을 해서 말을 하자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직원들이 휴게실에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금새 화제가 되었다.
"태 과장님 사모님은 미래에서 왔대!"
"그래? 그게 말이 돼?"
"사실이야? 그런데 어떻게 왔대?"
"그래서 저렇게 지적이고 아름다운가 봐!"
"내가 보기에도 여기 사람하고 다르다 했어!"
"누가 가서 물어봐 봐! 진짜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건강검진 받을 필요 없이 미래 의술로 진단하면 되지. 안 그런가?"
"그런데 의사는 아니래!"
"그럼 의사가 아니더라도 태 과장님이 저렇게 금세 멀쩡해졌으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겠어? 여기에서 못 고치는 불치병을 미래에서는 다 해결했을 테니 그런 걸 알아봐야지!"
옆 사무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에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는데 남편은 심기가 불편한지 석고를 떼어낸 오른발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계시던 생산부장님이 수군거리는 옆 사무실로 건너가 한 말씀 하셨다.
"그러니까 자네들도 예쁜 부인한테 잘 해봐! 그럼 미래에서 왔다고 소문날 테니!"
"그럼 진짜 미래에서 오신게 아니에요?"
"니들은 어떻게 거기를 오갈 수 있겠나? 미래가 식당도 아니고 화장실도 아닌데! 자네들 생각해 봤어? 그만큼 태 과장 사모님이 예쁘고 정숙하다는 거지! 이제 쉴만큼 쉬었으니 나가서 일들 하자구! 내일까지 작업 마치기로 한 것 모레까지 납기일 맞춰달라고 영업부 이 주임이 부탁을 하니 늦지 않게끔 마무리 잘 해주고... 자, 그럼 일을 시작하자구!"
부장님의 해명하는 소리를 듣던 남편은 마음이 놓였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모습을 보던 나는 속으로 웃었다.
'나 미래에서 온 거 맞다!'
나는 작은 소리로 남편 귀에 대고 말했다.
"심심하면 또 다쳐 봐요."
저녁이 되어 퇴근하자 카리시안이 나에게 윙크를 보내왔다.
낮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다는 듯 미래에서 온 것을 왜 밝히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도 이에 질세라 같이 맞장구를 쳤다.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풀꽃도 넘나드는데 뭘!"
-'나야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왔지만 유림이 넌 스스로 시간을 타고 넘어온 능력자잖아!'-
"너도 능력있잖니! 지금 도결이가 어디쯤 왔는지? 오늘 낮에 뭐하고 놀았는지? 배변은 몇 번 했는지? 먹는 것은 잘 먹는지? 선생님 속은 안 썩혀드렸는지? 내 생각은 얼마나 했는지? 얘기해 봐! 넌 다 알 수 있잖아!"
나는 꽃을 시샘하여 상대를 제압해보려고 숱한 질문을 날렸다.
"해봐! 해봐 왜 말 안해?"
나는 쉴틈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카리시안이 나를 올려다보며 딱 한마디 했다. 그 한마디가 나를 KO시켰다.
-'다 잘하는데 엄마 생각은 하나도 안 하던데요!"
KO라는 말은 주로 격투기에 사용하는 말이다. 그 격투기 용어로 말하면 나는 갸냘픈 꽃이 날린 어퍼컷 한 방에 주방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 가상의 제왕이라는 이가 만들었으면 비록 식물이라할지라도 내가 이기려고 한 게 잘못이지! 난 착하잖아! 그러니 내가 져 줘야 쟤가 날 좋아하지!
난 쉼없이 자기 제압에 들어갔다. 이 낮은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 꽃을 보며 조잘거렸다. 그리고 그 저기압 기분을 끌어 올리는 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딩동-
문을 열자 도결이가 아빠와 함께 들어오며 내 품으로 얼른 달려들었다. 그런 도결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볼에 뽀뽀를 하자 그 녀석이 옹알거렸다.
"어마~아~"
그 다음은 어색한 아이의 표현이 내 생각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카리시안에게도 그 파장이 흘러들어 갔다.
-'엄마~아! 나 오늘 엄마 생각만 했다. 많이 보고 싶었다, 엄마!'-
그 말을 들은 나는 카리시안을 째려봤다. 그러자 카리시안이 웃으며 꽃대궁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소리가 머리에 들어왔다.
-'놀리리깐 재밌다...!'-
남편은 내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어리벙벙해 있는 표정도 우스웠다. 그러면서 헛소리처럼 말이 새어 나왔다.
"남들이 말하는 4차원에 들어와 사는 기분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거야!"
남편은 내가 생각으로 사물과 대화하고 텔레파시로 대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근데 꽃하구 뭔 얘길 한거야? 인상까지 써 가면서?"
"알거 없어요. 별거 아니예요."
말을 그렇게 했지만 궁금해 하는 남편에게 다 설명하자니 길어질 것 같아 저녁 밥상을 차려가며 남편에게 생각을 전달시켜 보았다. 텔레파시라는 게 이런 건지.... 남편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금새 얼굴 표정이 바뀌더니 웃어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어? 나도 감성 전달 연습 좀 해서 쟤하고 당신 대화에 끼어들어 가 봐야 겠네!"
"관두셔요. 괜히 당신까지 미래에서 왔다고 일간 신문에 커다랗게 나오지 않게요."
저녁을 먹고나자 괜스레 카리시안에게 눈길이 갔다. 텔레비젼에 빠져 다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남편을 보자 다시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런 순간에 꽃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꽃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시간여행 보내줄까요>'-
'시간여행? 그게 네 작품이었니?'
나는 남편이 들을까봐 무언의 생각으로 대화하였다.
-'네, 미리의 작품이 아니고 그 통치자님이 저를 통해서 이곳으로 비행접시를 보낸 거에요, 지금도 제가 신호만 하면 금새 탑승할 수 있어요. 상상해 보세요,'-
모든 것은 순간이었다. 그 상상으로 들어간다는 것....!
나는 어느새 비행접시 안에 있었다. 카리시안이 그냥 상상이라는 유혹에 반하여 비행접시를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언니! 반가워요!'-
"응? 미리?"
-'제가 언니를 늘 옆에 두고 싶어서 항상 제가 올 거예요.'-
"나두 반가워!"
-'오늘은 어디로 여행갈까요?'-
"그보다도 궁금한 것이 있는데 지난번 과거로 갔을 때 가상의 제왕이라는 분이 왜 혼돈을 싫어하신다며 원생대의 평원에 석축을 쌓곤 하였는데 난 이해가 되질 않아! 무슨 곡절이라도 있는 거니?"
-'그건 말에요.가상의 공간은 인간이 만든 그야말로 가상과 허무의 공간이랍니다. 그런데 그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생각의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가상의 공간도 발달하게 된거죠. 그리고 그분이 스스로 생겨나 존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난폭해지자 인간은 다시 더 업그레이드 된 가상공간을 만들었고 동일시한 가공인물을 만들어 견제하게끔 하고 통치능력을 심어 주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나온 인물이 우위에 앉게 되었답니다. 우리가 선사시대로 올라가 함께 본 것은 처음 등장한 지배자이고 이곳에 저를 보낸 분은 가상공간을 통치하며 나중에 등장한 분이예요.'-
"그럼 사람들이 그 가공의 통치자를 만들고 나서 그분을 제왕이라 부르고 복종하는 거니? 지난번 나에게도 오셔서 나를 제어한다고 하시던데...."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분은 신은 아니에요. 단지 유림 언니는 생명의 숲에서 태어날 때 그분이 언니의 정신 세계에 능력을 하나 심어 놓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인간의 몸에서 나온 체액만을 배양하여 태아로 있다가 태어나기 때문에 가상의 제왕을 통치자로만 생각해요. 그래도 그 통치자는 인간의 전부를 통치하지는 못해도 일부 인간의 생각을 제어할 수는 있어요. 왜냐면요. 모두가 일상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가상의 세계를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이죠.'-
"그러면 나는 왜 인간이면서도 통치를 받는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언니는 인간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가지 다른게 있어요. 그건 통치자의 몫이예요. 그분이 심어 놓은 거죠.'-
"그게 뭔데?"
-'지금 차원을 달리한 곳에서 저와 대화할 수 있도록 유도된 거요. 다른 사람은 유체이탈을 하든지 걸어서 이곳으로 들어오는데 언니는 유체 이탈도 아니고 걸어서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요. 언니 스스로 공간이동을 하여 이동한 거예요. 그 때문에 언니는 외부의 어떤 위협적인 공격에서도 어느 정도 까지는 안전할 수 있답니다. 지난번 미래에서 20세기로 옮겨간 것도 그렇고 또 정신을 집중하면 지구의 태초까지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다만 몸에 무리가 가서 그렇지만요. 그렇게 유림 언니는 그 가상의 공간을 통치하는 분이 다스리는 영향을 받는 답니다.
"그러면 내가 나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있었네!"
-'그렇게 되네요. 일반인의 세포에 심을 수 없는 가상공간의 능력이 하나 더 있는 거죠. 언니는 스스로가 사람으로서만 인식하고 있었고 달리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 알기 전에 순수한 인간들의 사는 세상으로 옮겨 갔으니 알 길이 없었겠죠.'-
"그럼 내 스스로 공간이동을 하여 과거로 간다면 무리가 온다는 말은 무슨 의미니 미리야?'
-'네, 그건 일단은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또 그 시대에는 누군가 먼저 도달하여 생각을 연결해서 끌어주어야 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그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기후변화가 심해서 몸에 화상을 입거나 동상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죠. 심지어 언니 능력 밖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생명의 존폐위기도 다가올 수 있고요. 이렇게 안전한 비행접시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예요.'-
"선사시대로 올라간 한 가공의 신은 장난이든 삶의 터전이든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질러 문명을 만들고 한 가공할 인물은 그것을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려는 시도를 하고... 그렇게 하여 과거의 유물들이 생겨난 거네! 그럼 굳이 내용을 알고 있으니 먼 과거의 여행은 접어두고 가까운 곳으로 가야겠네. 이왕 비행접시에 올라앉았으니미리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 볼까?"
-'그럼 아무 생각마시고 눈을 감았다 떠 봐요.'-
잠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데... 내 몸이.... 거실에 있었다
'왜 일까?'
그 '아무 생각'이라는 말은 진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게끔 하지 못하는가 봐요. 남편이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시청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꽃과 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서 보니 현실로 돌아왔네요. 그 아무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봅니다. 특히 가정주부로서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낮에 있었던 일이며 그런 일들이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자유롭게 내 생각속으로 들어오는 일들인 거죠.
나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잃어버린 미리를 찾아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내 발가락을 만지고 있었다. 꼼지락 거리는 손길이 작고 부드러워 내려다보니 아들이 기어 와 나를 붙잡고 일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차마 정지된 시간 속을 여행한다고 해도 아들과의 교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을 안아 무릎에 앉혀놓고 손을 잡고 포옹하는데 어느 순간 아이와 함께 비행접시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안녕! 도결아!'-
-'응, 미리 이모!'-
아들은 비행접시 안에서 생각이 자유로웠다. 미리가 누군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벌써 나보다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엄마가 내 말을 못 알아 들을 때도 미리 이모가 내게 몇 번 왔었어!'-
아들의 이야기가 이 비행접시 안에서 또렸하게 내 귓전을 울렸다. 그러나 입을 열어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넌 이 비행접시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니?"
-'내가 조종은 할 줄 몰라도 가는 길은 알아 엄마!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뜰게!"
나는 이제 제 3의 방관자였다.
아주 먼 곳으로 가는지 갑자기 숨이 막혔다. 한참 동안을 고통 중에 헤매다가 통증이 가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들아....? 미리야....?"
하늘이 희뿌옇게 변해있었다.
"어디에 있는 거니?"
-'그냥 잠자코 계세요, 언니! 시간을 재는 기계로 따지면 지금 거리를 잴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지나왔답니다.'-
"이게 누구의 생각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거야?"
지구의 끝 시간을 넘어온 것처럼 보였다.
"이 비행체는 생명을 호흡한다면서 이렇게 먼 곳까지 올 수 있어?"
조금전에 심장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했던 이유가 궁금하였다.
'왜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그건 말에요. 미래로 가는 길에는 생명선이 있어서 자신의 생명선을 넘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미리 이야기해 준다는 것이 그만 알려 드리지 못 했네요'-
"생명선? 그게 뭔데... 알 것 같기도 하구..."
-'그건 수명선이라고 하는 자신의 정상 수명을 넘는 시간을 말해요. 그곳을 넘을 때는 고통을 수반한답니다.'-
"너에게는 없는 거니?"
-'인조인간들이나 헨조, 기계들에게는 없고 생명을 가지고 숨을 쉬는 생명체에게만 있어요. 삶의 연장선을 넘는다고 보면 돼요. 자신의 삶을 연장하는 선을 넘으니 고통스러울 수 밖에요.'-
"근데 아이는 어딜 갔지? 잃어버린 건 아니고?"
-'아마 잘 자고 있을 거예요. 자신이 정해놓고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그 잠드는 시간을 넘기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에요. 곧 일어날 거랍니다.'-
"원 녀석도... 근데 혹시... 아이가 여기 비행접시 안이 처음은 아니지?"
나는 아이도 생명선을 지나오며 힘든 시간을 넘었을 텐데 자고 있다 하니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 떠올랐다.
-'다시 되돌려 가야해요. 너무 멀리 와서 볼 것도 할 일도 없는 곳이예요.'-
"할 일?"
-'어쩌면 숨을 쉴만한 산소도 없을 수가 있답니다.'-
"그럼 네가 가고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니?"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문명의 다른 세계로 와 있었다.
시골 풍경이 전부인 것같기도 하고 잘 가꾸어진 원시시대로 온 것같이... 콘크리트로 만든 회색 건물은 전혀 없었다. 잘 다듬어진 푸른 잔디밭에 넓게 퍼져 흐르는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낙원이가? 미리야!"
'여기는 어디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미리도 음성을 감추었고 도결이는 아직 잠 속을 헤메고 있는지 기척이 없었다
'우리가 시간을 넘어와서 아무도 안 보이는 걸까?'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살피며 찾아보았다. 이 아름답고 황홀한 공간에 나 혼자만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지구, 생의 끝에서 나 홀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미리야!"
미리는 대답이 없었다.
세상이 조금씩 눈으로 들어왔다. 건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건물들이 때로는 빛을 받아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변모하여 다양한 변화를 연출하였다.
이러다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으면 못 찾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었다. 아님 자동차처럼 집을 타고 다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변모하여 여기까지 발달하여 왔을 때는 그만큼 관리하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되는 것인데 괜한 관심을 기울여가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내가 구시대 사람이라는것을 잊었다.
미래의 첨단 문명 안에 사는 이들이 설마하니 길을 잃을까?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도시는 건물도 스스로 움직이듯 나무도 풀들도 자라고 싶은 곳으로 옮겨 다녔다.
눈앞에 도시 여러 곳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찾아다닌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이 내 앞을 지나간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의 모습이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각으로 상상을 통해서 모습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생각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여겼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최고의 첨단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아마 이런 시대에 맞게 태어난 최초의 사람이지 않았을까도 생각되었다.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을 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었다. 보이는 세상은 맑고 푸르고 청명한 자연 뿐이었다. 타임머신이 지시하는 시대의 눈금은 기원 5000년을 지시하고 있었다.
....서기 5000년...?!
느낌이...
그 세상의 감촉이 다가왔다. 비행접시의 생체 파동을 타고 주변의 일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생각으로 바뀌어졌다. 생각으로 들어온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때로는 내가 실제로 밖으로 나가 미래의 현실을 돌아다니며 체험해 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요정이 주위를 살피려는 것처럼 나타나더니 미래의 현실을 이야기하듯 내 머릿속에 미래의 일들을 심어 주었다.
"너는 누구니?"
요정이 날아와 내 손등에 앉자 느낌이 전해져 왔다. 허상은 아닌 듯하여 손으로 잡아보려고 다른 손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고 서서히 사그라져 어디론가 가버렸다.
'무형일까?'
아마도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가상세계의 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 님프가 날아다니는 동안 그를 통해 미래의 일들이 눈에 보였고 나 스스로가 눈앞을 스쳐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냥 알 수 있었다.
'내 능력인가? 아님 미래의 기술일까?'
보이는 세상은 물론 모두가 자동화 되어있다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스스로 움직였다.
인간은 먹는 것도 모두 통제된 어는 곳에서 지급하여주고 작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하는 일은 청결한 가상의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것은 가상의 공간과 공존하며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연결되어있고 열려있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일들이 그냥 다 이루어졌다. 손짓, 언어, 눈빛으로 가상의 세상을 조종할 수 있는 곳이었다.
21세기로 말하면 사람이 컴퓨터 안에 들락날락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쩜...! 그러한 일이 이루어질 줄이야! 첨단이라고 했던 나 조차도 깜짝놀라는 일이었다.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생각과 현실이 겹치며 그들의 일상이 머리에 박혀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핸조들도 나의 고향에서와 다르게 인간과 거의 흡사하였고 이따금 그들의 모습이 반쯤 보이다가 없어지기도 하며 몸이 투명한 상태까지 변모할 수 있게끔 발달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을 구성하는 뼈와 동일시한 금속은 성장판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인간이 아이를 낳아 키우듯 그들도 아이로 만들어져 서서히 성장하였다. 그렇다면 나중에 오랜 시일이 지나면 사람처럼 노화현상으로 죽게 되는 것은 아닐지...?
늙어 죽는다면 다시 만들고 그 수를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겠지만 자신의 금속몸뚱아리를 스스로 재생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물은 세포분열을 하다가 멈추면 사멸하고 만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재생능력이 있고 닳아진 부품은 갈아끼우고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핸조들의 지능도 상승되어 더욱 발달하는 것이 문제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높은 지능으로 몸을 재생하여 새로워지고 오래 사는 금속생명체가 스스로 자신의 생을 즐기며 사는 법을 터득해 가면 그 다음은.... 뻔한 생각처럼 드러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금속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 할지라도 삶의 맛을 알고 쾌락을 깨우쳐는 범주에 이르는 세상을 안다면 우월감이 지나쳐 나를 동조하지 않는 세력들을 폭력과 전쟁이라는 무력으로 실력 행사를 한다는 것이 나 유림이가 본 미래의 문명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좀 전에 다녀온 미래는 인류가 소멸되는 과정이었을까나?
그러나 이곳은 인조인간에 대한 섬뜩한 공포만 없다면 여기에 살아도 별 탈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환경이 좋았다. 내가 꿈꾸던 구 시대처럼 푸른 나무들이 있고 풋풋한 자연이 진짜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조금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겉으로 느끼는 기운은 평온함이었다. 가상의 세계를 통치하는 제왕의 통치능력으로 하여 이곳까지 평화를 심었다면 좋으련만...
여기저기 둘러봐도 사람이 살아가기에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인조인간의 반란이라는 격동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그들이 사람과 공존하며 인간을 진화의 선조라고 믿고 있으며 따르고 복종하고 있다면 괜찮은 세상인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건물이든 도로든 회색빛이 사라졌고 직각도 없었다. 곡선으로 휘어진 환경이 부드러워 보였다. 이따금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다음은 어디로 가고 다시 그 자리에 나무들과 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서서히 모양새가 바뀌어졌다. 변화하는 미래의 세상은 머물지않는 흐름이 있고 미래의 세상 서가5000년의 도심은 푸른 빛이 여우르는 곳이고 멈춤이 없는 생명의 도시였다.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바다도 그냥 예전의 바다가 아니었다. 물에는 보이지 않는 섬유질이 형성이 되어 있었다. 땅에도 신경세포가 자라나 누군가 밟으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을 하며 어디론가 무언가를 전달하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금속인간은 자신들의 몸에만 성장판과 신경세포를 심은 것이 아니었다. 기계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체는 다 살아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선에도 사람처럼 숨을 쉬지는 않으나 크기가 점점 자라나고 스스로가 생각하며 움직이는 신경조직을 갖고 있었다.
과연 그 시초가 인간이라 하더라도 신이 인간을 만들어내고 인간에게 당한 고통을 우리가 다시 재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무생물을 이렇게 까지 발전하고 진화 시켰을까? 아마도 어디선가 통제를 하는 전체 조종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생체조절 관능적 통제 시스템... 숨을 쉬는 사람도 나처럼 만드어진 모든 사람들도 모두 통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존재하겠지!
그런 생각에 이르자 지구가 아주 작은 축구공만하게 느껴졌다.
복잡한 실타래를 풀 듯 잘 생각해 보면 그러한 미래를 만든 것은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든 인공 두뇌로부터 왔을 것이다. 금속이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다음은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화를 가장했든 진실한 평화가 깃들었든 간에 가상을 다스린다는 그 제왕님이 통치를 잘하고 여기까지 그의 통제가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구 시간의 끝에는 질소와 산소가 희박하고 탄소와 메탄가스로 가득찬 그 원인은 아마도 인간의 통제선을 넘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점에서 인간이 소멸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핸조들의 자리 다툼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과연 그들은 무슨 욕심이 있었을까? 쇠쪼가리들이... 아마 자기 몸속에 더 좋은 일명 영양제 같은 금속이나 영구한 생을 지탱해줄 신비한 금속을 놓고 다툼하였을까? 무슨 생각 때문에 그랬을까?
....지구가 숨을 멈추는 그 마지막의 날에...
나는 좀 전에 다녀온 그 지구의 끝에서 그러한 일이 사실일 거라는 추측을 하며 특이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쇠 쪼가리라고 하면 어디선가 듣고 나를 해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들의 신경세포에 성장판을 심는 정도를 지나 크기도 지능도 발달과 더불어 피부도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조직처럼 부드럽다고 생각될 만큼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 부드러운 곡선과 유연한 동작의 실체는 아주 단단한 갑으로 만들어졌다. 단지 생산이라는 제조방식만 아니라면 그들도 사람과 구분이 쉽지 않은 단단한 강철로 된 부드러운 피부조직은 가히 상상이 안 되었다. 그리고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피부를 갖고 있기에 어디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보여지는 미래...
미래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무섭게 있었다.
내가 고향에 있었을 때를 되돌아 보면 사회 흐름이 전반적인 통제시스템을 담당하는 신경조직부에 가 본적이 있었다. 그때 일을 생각해 보면 지금 서기 5000년에 이르러서 모든 자율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을 구축하는 과정에 있었고 그 연계성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간에 시간이 흘러간 뒤에는 모두가 '시조'가 되는 셈이었다.
또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세포조직 활성법을 이용하여 식물을 만들어 내고 그 식물에도 신경을 심어 제어를 하기 때문에 나무를 옮겨 심을 필요가 없었다. 통제본부에서 배치도만 그려놓으면 나무들이 스스로 움직여 있을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런 그림을 그려 넣을 필요조차 없이 나무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있어야 할 곳으로 매 순간 이동하였다.
여기 사람들이 그림자같이 이동하는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면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또 어디까지 발달했을까하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는 순간 눈앞의 허공에 그림처럼 나타나는 영양분이 있었다.
내가 전에 있던 고향에서는 영양호흡이라는 방법이 있었지만 간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여기서는 생각하는대로 만날 수 있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분자형태로 바꾸어 대기 중으로 흩뿌려 공중에서 생각과 연계하여 만날 수 있었다.
그 생각을 지우면 허공에 있던 양분도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다르긴 다르네!"
그게 시간이 변하고 문명이 지나가는 자리에 새로 돋아난 문명이겠지!
51세기의 바다는 잔잔하였다.
바람이 불어도 너울을 통제하는 바다로 변하여 있었고 무엇인가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동조하고 대화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바다를 통제하며 파도도 재울 수 있는 통치력...
그러고 보니 하늘의 공기 분자도 보이지 않는 그물을 갖고 있었다. 좀 전에 나타났던 상상속의 음식이 허공에 등장한 이유가 되었다. 지금쯤 아마 남편이 보고 있을 그 텔레비젼 화면을 구성하는 전파의 그물을 닮은 물질이 물이든 대기이든 땅이든 모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바다는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것을 감지하고 조절할 수 있는 그러한 생명체였다. 바다는 여태껏 죽어 본적이 없었다. 바다의 진화는 그 스스로 했을까? 아니면 인간의 작품인 핸조들의 신 가상의 제왕이 유리한 통치를 하기 위해 변화를 만들어 냈을까? 미래의 초 감각현실은 그렇게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동안 어디선가 나타난 도결이가 내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꼿꼿하게 서 있었다.
아이는 걸어다니며 미래의 문명과 대화하는지 눈빛이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이의 모든 자율신경이 미래의 문명 안에서 활발해졌다.
도결이는 아직 어리기만한 젖먹이 아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걷는 것도 아직 시작할 단계에도 못 미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걷고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었다. 아마도 도결이는 미래를 살아갈 운명을 타고 났는가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꺼내 활성화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혹시 하는 맘으로 말을 건네 보았다.
"잠은 잘 잤니?"
"네, 어머니! 저는 여기가 참 좋아요. 내가 그리던 엄마의 고향같아요!"
옹아리 수준을 예상했었다. 아니면 조금 더 나은 발음법을 숙지한 유아의 수준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은 어른의 말을 흉내내었다. 그리고 녀석은 사행시간을 넘어왔을 텐데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다. 고통도 느끼지 않고서....
아마 녀석의 세상은 먼 미래에 있는 걸까? 내 생각의 세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곳에 아이는 자신 만만하게 서 있었다.
다른 한편의 생각으로는 감성을 풍부하게 늘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아이의 막힌 숨을 터준 이곳은 뭔가 달라도 다른 격이 있었다. 사물의 질서가 흐트러진듯 어지러우나 형체가 비활성되어 눈에서 가시광을 제거해 버린 것처럼 보이는 세상...
그게 뭘까? 품위마져 만들어주는 그 무엇은....? 시간?
아님 내가 아이의 얼토당토한 말에 너무 감격한 걸까?
미리의 비활성된 음성이 내 생각속으로 들어오며 상상을 무너뜨렸다.
그러면서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너울거리며 우리를 환영나온 것처럼 비행접시 주변을 날아다녔다.
"미리야! 이 아름다운 미래에서 우리가 온 것을 환영하는가 보네, 아름답지않아?"
-'아니예요. 지금 이 비행접시가 혼란을 야기하며 환상을 보여주는 거에요. 얼른 여기서 나가야 해요, 시간이 잘못 엉켜버리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답니다. '-
미리의 도렷한 음성이 나와 도결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는 여기가 좋다고 했는데... 아이의 어줍은 언어를 믿어야 할까?
비행접시는 서서히 무지개를 잠식하고 있었다.
"시간이 엉킨다니?"
-'이 비행접시는 여기에서 만든 것이 아닌 구형이라 오래 머물다보면 자칫 자율 신경에 마비현상을 일으킬 수가 있답니다. 제가 말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예요. 만약에 이곳에서 자율 신경게에 접촉해 버리면 제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비행접시 스스로가 여기에 머물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자신의 타임장치를 사용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한다거나 통제가 불가능해진답니다. 그때는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언니!'-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아마...도.."
-'지금 언니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전자 부품이 미쳐버리는 거에요,'-
나는 얼른 도결이를 안고 생각 안으로 이동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21세기 현실로 돌아왔다. 시간이 정렬되어 있고 질서가 안정되어 있고 머물고 싶은 마음의 고향! 그이가 있는 곳...
긴 여행은 아주 짧게 마쳤다. 남편이 있는 현실은 짧은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남편은 소파에 비스듬이 기울인 채로 다큐멘터리에 시선을 집중하여 아직도 보고 있었다.
그 '아직'이라는 표현은 도결이와 나의 생각이었다. 시간을 보니 여행을 다녀온 시간은 1초를 지나고 있었다. 그 긴시간의 흐름은 찰나에 불과하였다.
부처님의 깨우침을 얻을 때 들었던 짧은 단어 한 토막처럼...
남편은 텔레비젼에 눈을 고정시키고 곁눈할 새도 없이 그 활동사진에 매료되어 푹 잠겨 있었다. 그 길기만 한 1초...!
미리가 내게 설명해준 그 1초의 기억이 새로웠다.
그 1초동안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을 현실은 인지하지 못하였다. 내가 시간을 붙들어 매자 시간은 나를 벗어나지 못 하였던 것을 알았다. 내가 시간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을....
12. 혼돈을 떠나서
감사합니다.
-진하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