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 살아온 지 이십팔 년이 되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내가 드린 미사에서 당신 평화를 주셨음에 주님께 감사드린다.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당신 사랑과 말씀과 성령의 보화를 넣어주시고 늘 좋은 그릇으로 써주신 주님께 나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싶다.
예수님 시대에는 율법을 잘 지켜서 하느님께 공을 쌓으면 당연히 하느님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인과응보 사상이 있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은 주인과 종으로 나뉘는 신분제도가 사라졌지만, 당시 사회는 이 제도가 일반화되어 주인과 종의 관계를 이야기하면 청중은 쉽게 알아들었던 것이다. 품꾼은 보상을 바라지만 주인에게 매인 종은 한 식구이므로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자녀가 엄마에게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넘치도록 사랑을 받는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자세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보상을 바라거나 계산하는 상업적인 관계에서는 이익을 따지는 거래는 있지만 감동이나 사랑은 없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전서 9장 16절에서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도로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정월기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