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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편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건 생각의 여부보다 생각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며 삽니다. 시편2편은 보이지 않는 두 생각의 흐름과 두 나라를 보여 줍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해 흐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반해 흐릅니다. 공주야!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는 “신은 사람을 부패시키기 위해 권력을 안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권력은 인간의 갈대본색을 자극하고 부추기기 일쑤다.
If you don't think about it, you will think about it as you live. What's more important is not whether or not you think about it. We live by thinking about something constantly. Psalm 2 shows two invisible flows of thought and two countries. One flows toward God, and the other flows against God. Princess! Historian Charles Beard once said, "God gives power to corrupt people." That's how much power often stimulates and encourages human beings to be r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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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때만 삶도 행복도 가능하단다. 시편2편은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아의 왕권을 통해 인간 왕권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지상의 열방과 통치자들의 행복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통치를 즐거워하는 곳에근거함을 역설하는 거란다. 여기서 나의 왕과 나의 아들의 호칭은 예수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종말론적 메시아 개념으로 확장한다.
However, all creatures can live and be happy only when they accept God's rule. Psalm 2 describ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human royal authority and the kingdom of God through the Messiah's royal authority. This emphasizes that the Nirvana on the earth and the happiness of the rulers are based on a place that admires the Lord and enjoys his rule. Here, the title of my king and my son extends to the post-apocalyptic Messiah concept leading to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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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성도는 주의 말씀을 묵상하지만(시1:2), 세상 사람들은 헛된 일을 꾸민다. 오만한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허세를 부리는 꼴이란다. 그들이 꾸미는 헛된 일, 악의 꾀를 보면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거만함과 흡사할 것이다(창11:3-4). 하나님은 그 나라와 메시아를 조롱하는 이방인들의 도모를 낱낱이 아시고 비웃으신다. 자기 주제도, 분수도 모르는 어리석고 교만한 분노에 화답하신다.
Princess, the saints meditate on the word of the LORD (Psalm 1:2), but the people of the world do vain things. It's like sitting in an arrogant seat and bluffing to God. Their futile work and their evil intentions will be similar to the arrogance of those who build the Tower of Babel (Psalm 11:3-4). God knows and laughs at the intentions of strangers mocking the country and the Messiah. He responds to foolish and arrogant anger that knows neither his subject nor his f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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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대적할 세상의 헛된 계획에 당신의 아들을 왕으로 시온에 세우는 계획으로 응수하셨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 약속은 아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성육신을 통한 세상의 심판은 에스겔의 그림으로 하면 죄 문제를 심판하시고 성령을 통해 새 백성을 창조한다는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 성전이 된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역설이 만든 지혜란다(벧후1:17-18).
Therefore, he responded to the world's vain plan to put your son in Zion as king to confront the king established by God. As we know, this promise was ultimately fulfilled in the son Jesus Christ. The judgment of the world through the Holy Father is that if it is done with Ezekiel's painting, it will judge the sin issue and create a new people through the Holy Spirit. That is why we have all become the new temple where God lives. The cross is the wisdom of God's paradox (Bed. 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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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텍스트에서 본대로 하나님은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권세를 위임 하시고 모두 소유권을 부여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업신여기는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신 것이지(빌2:9-11). 우리가 세상을이기려면 예수를 의지하면 된다. 공주야, 실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권력은 하나님을 지나치다못해 활시위를 겨누고 있지만 주의 발아래 무릎 꿇게 될 것이다. 계획을 세우기 전 질문, 이 선택이 하나님의 통치와 어울리는가? 나는 주님의 통치를 잘 받고 살았나? 내가 경영하는 허사가 무엇일까?
Therefore, he responded to the world's vain plan to put your son in Zion as king to confront the king established by God. As we know, this promise was ultimately fulfilled in the son Jesus Christ. The judgment of the world through the Holy Father is that if it is done with Ezekiel's painting, it will judge the sin issue and create a new people through the Holy Spirit. That is why we have all become the new temple where God lives. The cross is the wisdom of God's paradox (Bed. 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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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적 자와 하나님의 반응(:1-6)
1)열방이 허사를 경영함 (:1-3) A
(1)요약(:1) a
(2)구체적 설명(:2-3) b
a.구체적 행동
b.목표대상
c.그들의 말-직접화법
2)하나님의 반응(왕을 세우심) (:4-6) B
(1)요약(:4) a'
(2)구체적 설명(:5-6) b'
a.구체적 행동
b.목표대상
c.하나님의 말: 직접화법
2.왕을 세우심으로 결정 난 세계(:7-12b)
1)하나님의 반응(아들을 두심) (:7-9) B'
(1)하나님의 영(令)이 내림 a
(2)요구 - 1가지 b
(3)결과 - 2가지 c
2)군왕과 관원에게 권고 (:10-12b) A'
(1)하나님의 권고 a'
(2)요구 - 2가지 b'
(3)결과 - 1가지 c'
3. 결론 :(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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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열방이(1a)
분노하며(1b)
민족들이(1c)
허사를 경영하는 고(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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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2a)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2b)
여호와와(2c)
그 기름 받은 자를(2d)
대적하며(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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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3a)
그 맨 것을 끊고(3b)
그 결박을(3c)
벗어 버리자 하도다(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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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자가(4a)
웃으심이여(4b)
주께서 저희를(4c)
비웃으리로다(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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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분을 발하며(5a)
진노하사(5b)
저희를 놀래어(5c)
이르시기를(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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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왕을(6a)
내 거룩한 산 시온에(6b)
세웠다 하리로다(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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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을 전하노라(7a)
여호와께서(7b)
내게 이르시되(7c)
너는 내 아들이라(7d)
오늘날 내가(7e)
너를 낳았도다(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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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구하라(8a)
내가 열방을(8b)
유업으로 주리니(8c)
네 소유가 땅 끝까지(8d)
이르리로다(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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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철장으로(9a)
저희를 깨뜨림이여(9b)
질그릇 같이(9c)
부수리라 하도다(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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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군왕들아(10a)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10b)
세상의 관원들아(10c)
교훈을 받을 지어다(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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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11a)
경외함으로 섬기고(11b)
떨며 즐거워할 지어다(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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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12a)
그렇지 아니하면(12b)
진노하심으로(12c)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12d)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12e)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12f)
다 복이 있도다(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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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신이다_Power is God.
왕은 따로 있다_The king is separate.
하나님이 통치한다_God gov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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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이미 세상의 허사를 비웃으시며 아들을 세우셨는데도 계속해서 돈, 과학, 부자, 부동산등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작금의 현실을 바라볼 때 마음이 답답하옵나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의지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셨는데도 사단이 그 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때로는 직접적으로, 또 때로는 은밀하게 계속해서 우리를 위협하나이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일상의 싸움이 하나님 나라의 싸움임을 말씀하였사오니 저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내 눈 앞에 보이는 엄청난 어려움이나 혹은 당장 내 밥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지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때 주님 내가 이 영적 싸움을 직시하고 저 하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의 발에 입 맞추게 하옵소서. 아주 먼 훗날 이었지만 그 ‘아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바라보았던 시인처럼 우리들도 그런 믿음을 소유하며 누리게 도와주옵소서.
I feel frustrated when I look at the current reality that money, science, wealth and real estate continue to tempt me to be happy, even though the Lord has already set up a son in mockery of the world's futility. Even though he said it was a blessing to be in awe of Jehovah, he continued to threaten us, sometimes directly and sometimes secretly, to prevent the division from enjoying the blessing. But, O Lord, I have told you that our daily battle is the battle of the kingdom of God, so when you have to choose whether to rely on God, who sits on the throne of heaven, or on a man who has my own bread, or on a great difficulty before my eyes, let me face this spiritual battle and look up at the sky. Let me kiss your feet. Like a poet who looked upon his son Jesus as king in the very distant future, help us to possess and enjoy such faith.
2026.7.2.thu.Clay
신학 비평//
누가 내 삶의 왕인가? 시편 2편은 단순히 왕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누가 세상의 중심인가를 묻는 시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돈, 권력, 지식, 과학, 정치도 스스로 절대적인 자리에 오르려 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그런 모든 시도를 헛된 경영이라고 선언합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Martin Heidegger가 말한 '존재 망각'과 닮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잊고 자신이 중심이 되려 하지만, 결국 스스로 만든 우상에 지배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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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쥐려 하지만 오히려 권력이 인간을 붙잡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 흐름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세상은 강한 왕을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아지신 왕, 이것이 하나님의 역설이며 복음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은 "힘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기보다 "나는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가?"를 묻는 말씀입니다. 결국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 깊이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나라는 흥망성쇠를 반복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해 영원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