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4일 월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진실한 사람을 반기신다.
영국의 황태자비였던 다이애나는 학력과 가난한 집안 출신 때문에 비참해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출신 성분과 학력과 명예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은 있어도 명문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면 대우를 받지 못하고, 명문가가 아니면 출세를 할 수 없어서 기를 쓰고 명문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고, 자녀들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려고 사교육비가 점점 늘어가고, 공교육은 그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과외를 시키는데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살기 힘들고, 과외를 받지 못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받는 상처는 아주 심각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나는 지방의 야간 대학을 나왔고, 아주 어렵게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무시를 당하기도 해서 정말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였지만 삶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경영학을 전공하였지만 실제로 경영에 대하여 아는 지식은 거의 없답니다.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아는 것도 없고, 신앙생활에서 도움 되는 것도 없습니다. 내 지식은 사실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답니다. 학문은 진리를 규명해가는 하나의 과정이고, 학문하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랑할 만한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논어의 학이편 첫머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아주 잘 아시는 말이지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 自遠方來면 不亦樂乎)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문은 배우고 익히는 기쁨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노여워하거나 섭섭할 것도 없이, 남이 나를 잘 알게 하기 위하여 학력을 속이고, 나를 드러내려고 한다면 그게 나의 삶에서 무슨 가치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 겸손하게 숨어 있는 나타나엘을 만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진실을 발견하고, 거짓말 하지 않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멀리 있는 그를 아주 쉽게 찾으시고 그가 누군지 분명하게 알고 계신 것은 주님이시니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겸손하고 믿음이 확실한 한 청년을 골라내시고 그의 편견과 그 당시 사회의 고정관념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십니다. 그의 신앙 고백을 들음으로써 가장 겸손하고 진실한 이스라엘 사람을 만나십니다.
진실한 사람, 거짓이 없는 사람을 알아보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나는 나타나엘과 같이 겸손하고 거짓이 없고, 진실한 사람인지 생각해봅니다. 내가 주님을 감동시킬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사위지기사' (士爲知己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나타나엘은 진심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준비를 합니다. 주님에게는 학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나자렛이란 장사꾼들과 이방인들이 많이 몰려와 사는 지역이라고, 천민들이 사는 곳이라고, 훌륭한 예언자가 나오지 않을 곳이라고 몰아붙일 이유도 없습니다.
주님은 오직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을 가장 훌륭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늘나라의 차지는 학력이나 명문가, 박사학위나 교수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야 한답니다. 지식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고, 겸손도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성덕임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서는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둡니다. 우리의 행실을 보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며, 우리의 진실 된 삶을 보고 우리에게 당신 나라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아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겠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입니다. 필립보 사도가 인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요한 1,4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답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바르톨로메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신실한 삶의 사도 바르톨로메오를 본받아 살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주님, 수산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