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의 패러독스는 왜 항상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인류가 고안해낸 논 리체계속에서 지금까지 수없이 등장했던 대부분의 패러독스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길을 선택하든, 저 길을 가던지 간에 항상 벼랑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하고도 진부한 것중 하나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인데, 이 문제의 핵심은 정 보(달걀)가 먼저냐, 기능(닭)이 먼저냐 하는 것이다. 기능은 정보가 주는 설계도에 의해 구성된 구 조물인데, 그 정보는 구조물 속에 담겨있기 때문에, 마치 이 둘은 처음부터 동시에 존재했어야 하 는 듯 보인다.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DNA가 먼저냐 단백질이 먼저냐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서도 물론 정보는 DNA가, 기능은 단백질이 쥐고 있다.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 는 DNA인데, 이 DNA는 효소라는 단백질이 없으면 합성도, 복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만 약 무릇 사물에는 기원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면, 어느 것이 먼저이겠는가?
엔서니 기든스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 3의 길을 주창했을 때, 생물학적인 성과를 원용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DNA냐, 단백질이냐 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했던 길도 이와 유사한 방식이 다.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RNA다. 통상적으로 RNA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다루기 어려운 고분자이다. 그런데 이런 RNA중 다른 RNA를 절단 하거나 연결하는 기능을 가진 것들이 발견되었다. 이 기능은 효소인 단백질이 하던 촉매작용을 통 해 이루어 지던 일이다.
그런데 기능으로서의 단백질과 정보를 가진 고분자로서의 DNA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RNA의 발견은 일시에 닭이냐 달걀이냐 하는 패러독스를 일시에 해결해 주었던 것이다. 원시 지구상에 존재하였다고 생각되는 이 최초의 복제시대를 RNA WORLD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에 독자적으로 진화하던 아미노산의 사슬, 즉 단백질 대사계와 RNA의 협력이 시작되어, 보다 효율적이었던 고분자인 단백질에 RNA의 효소기능을 넘겨 주어, 핵산은 정 보를 기억하고, 단백질은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때 기억된 RNA의 '정보'는 보다 안정된 고분자인 DNA에 넘겨주어 DNA WORLD가 열린 것이다. 한 가닥보다는 두 가닥이 당연히 안정되지 않겠 는가?
이때부터 DNA의 전횡이 시작되었다. 정보를 쥐고 있다는 것은 어떤 권력보다도 강력하다는 것을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몸소 체험한 우리들에게는 아주 쉽게 와 닿는다. DNA는 자신을 보호할 보호막이 필요했으며(세포의 고안), 보다 효율적으로 자신의 보존을 위하여 분업체계를 갖춘 껍데 기를 갖추었으며(다세포 생물), 중력의 한계를 극복하며 육상에 상륙하였다. DNA의 입장에서 보 면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생존기계(Survival machine)에 불과하다. 컴퓨터 게임에서 보다 강력하고 우수한 무기를 장착하고 보다 탁월한 생존전략을 가진 캐릭터들이 보다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자신의 생존기계들이 보다 더 잘 생존할 수 있도록 고안에 고안을 거듭하여 현재 지구상에는 30여개의 기본 설계도 - 지구상에는 33개의 동물 門(phylum)이 있다 - 에 따른 수천만종의 생존기계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백억종류의 캐릭터들 - 지금까지 지구상에 는 대략 300억종(speces)가 명멸을 거듭했고 현재 지구상에는 3천만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수치는 매우 대략적인 것이다 - 이 명멸을 거듭하였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경쟁적인 캐릭터들을 멸종시켜 갔다. 스타 크래프트 게임은 10억년 전부터 시작 되고 있었던 것이다.
군비경쟁의 특징은 무제한적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진보하며,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생을 위하여 진행시켰던 진(gene)들의 생존경쟁은 보다 더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생존기계 를 계속하여 지상에 등장시켰고, 이들의 움직임은 엄청나게 빨라졌으며, 무기는 더욱 정교하고 치 명적이 되었다. 그러자 이 진들의 명령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이 변화에 따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손이 서투르고 느려서야 어찌 밀려드는 외계 괴물 하나라도 처치할 수 있겠 는가? 그러자 유전자들은 전략을 부득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신보다 빠르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한 후 이 장치에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명령만 주입시킨 후 자신은 후 면으로 일보 후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등장한 장치가 신경계였다.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세상을 자신 속에 담아두는 것이다. 우리가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을 지구상에서 최초로 도입한 것도 신경계였다. 보다 근사치에 가깝게 세상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신경계는 보다 많은 정보를 보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부하를 안게 되자 점차 효율적인 조직화를 이루어야 했고 그 정점에 뇌가 있다. 일단 유전자에 의해 '생존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뇌는 가능 하면 자신의 물리화학적 환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 두고자 하였으며 이 경쟁의 정점에 신체 대비 가장 무겁고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갖는 인간의 뇌가 있다.
뇌는 화학물질 분석기, 스캐너, 파동 분석장치, 압력 및 온도 검출기 등등 수많은 부속기관을 거느 리며 이들에서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검색하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종합하여 자신을 담고 있는 시스템의 운동기구의 속도와 힘을 조정하여 수많은 적들로 둘러싸인 이 험한 세상에서 결국 살아남고자 애쓰고 있다. 바야흐로 진의 전략이 성공의 문턱에 이르는 듯 하였다. 그러나 장강의 앞 물은 뒷 물에 밀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한 번 시작된 운동은 멈출 수 없는 것이 관성의 원리이며, 가장 믿는 장수에게 배신당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 한다면 유전자 자신도 예외일 수 는 없다.
세상을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의 궁극에는 세상을 시뮬레이션하는 자신 마저도 세상속에 집어넣어 시뮬레이션하는 일이다. 일찍이 양자역학이 관찰자의 관찰만으로도 실험에 영향을 미친 다는 놀라운 이론을 발표했을 때에도 이미 이 원리를 5백만년전에 체득하고 실현해오고 있는 뇌 에는 전혀 놀라운 이론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복잡해 버린 뇌의 필연적 부산물이었던, 자 신의 뇌까지도 시뮬레이션하는 뇌의 기능, 즉 자의식의 등장은 생존이라는 과제를 하달한 유전자 에게는 불순하고도 불길한 조짐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졸속에 의한 부실공사였 던지, 아니면 자의식을 갖자마자 깨닫게 된 유전자의 전횡에 넌더리가 난 것이었는지, 생존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1000여개에 이르는 기다란 자의식의 질병 목록이 등장하였으며, 심지 어는 무참하게도 스스로의 생존을 스스로 중단시켜 유전자의 의도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파렴치한 행동까지도 저지르는 기괴함까지 목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유전자의 일부는 자기만 살겠 다고, 자신의 통제자를 제압하여 제멋대로 증식하며 급기야 생존기계의 생존까지 박탈해 버리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그러자 생존기계는 한 술 더 떠서 유전자중 일부를 잘라버리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허물어 이종간의 유전자들을 한 군데로 모아버리며, 유전자를 미친 듯이 순식간에 증식시키기도 하는, 유전자로써는 치욕적인 기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뇌는 유전자를 모방하여 스스로 증식하고 자기복제를 하며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세대를 뛰어넘어 전달되는 자신 들만의 유전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meme의 등장이었다. 바야흐로 전장은 gene대 meme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밈의 활동은 소규모 생존기계 집단의 모닥불 주위에서 번저나가기 시작하여 언어, 문자, 책을 이 용하더니, 구리선, 유리선을 타고 음성, 영상의 탈을 쓰고 지수함수적으로 확대해 나가다가 파동에 몸을 싣고 무한 공간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효율적이며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밈이 진의 사기를 꺽고 결정적인 우위에 올라서게 된 일대 사건은 아직도 그 끝을 모르고 확대 재생산 하고 있는 인터넷의 등장이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에서 상상되었고 핵전쟁으로 상당부분이 파괴되더라도 작동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에서 고안된 네트웍(ARPANET)에서 시작된 이 요지경 가상의 공간 속에서 밈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분열하며, 서로 결합하고, 검색되며, 숨어있다. 접 속하라. 그러면 볼 것이다.
아직도 이기적인 진은 활동하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이 이기적인 진의 행동에 대한 기다란 목록을 가지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이를 수록한 분량이 두꺼워지고 있다. 이 개념에 격분하여 반증으로 제시한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까지도(일부 조류에서는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한 개체가 높이 날아 올라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낮추면서까지 이 위협을 동료들에게 알리는 행위를 보여준다) 결국은 이기적인 진의 계산된 행동이었음이 밝혀졌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타적인 진이란 개념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타적일수록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낮추며 결국은 진 풀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존이라는 단시안을 가진 이기적인 진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낳는다. 자가당착인줄도 모르면서 강물에 오물을 던지고, 무기를 팔며, 자기 이외의 생존기계들을 멸종시키 고, 하늘에 펼쳐진 보호막을 뚫어버리는 행동도 결국은 이기적인 진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이 음모같지도 않은 음모에 밈이 맞서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밈도 있다. 그러나 정직하고 선량함이 결국은 이긴다 - Axelrod의 연구 - 는 밈이 등장하지 않는가? 아니 어렵게 갈것도 없이 '사심없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밈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밈들이 뛰놀 공간으로서의 인터넷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이다. 혹자는 인터넷이 이익보다는 해악을 더 많이 준다면서 그 근거로 사이버 포르노를 들고 있다. 1995년 7월 3일자 [Time]지도 [Usenet] 뉴스그룹에 저장된 디지털 영상의 83.5%가 포르노그래피라는 우울한 통계를 싣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Usenet] 뉴스그룹에 담긴 전체 정보의 3%만을 나타내며 [Usenet] 자체는 모든 인터넷 통신량의 11.5%에 지나지 않는다는 중요한 통계가 기사 후반부에 파묻혀 있다. 그러니까 실제 통께는 83.5%가 아니라 인터넷 통신량 11.5%의 3%, 즉 0.33%에 불과한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통계숫자의 허구성에 놀아나선 안된다.
또 모든 혁신적인 미디어에서 그래왔듯이 초기에는 포르노그래피의 일시적인 범람을 보게된다. 아무려면 A4 크기에 컬러로 인쇄된 음란물보다 컴퓨터 화면상의 그림이 뛰어날 것이며, 30인치 TV 화면보다 신용카드 크기에서 조잡하게 움직이는 동영상이 흥미롭겠는가? 그렇다고 무책임한 희망만으로는 곤란하다. 인터넷 상에 담겨지는 밈들이 온 생명의 삶에 조화로운 영향을 주기 위해선 밈 제공자인 개인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필립 K 딕슨의 소설, [TRON], 공각기공대(Ghost in the Shell) 등등에서 보여지듯이 인터넷이 자의식을 갖게 되면 어떻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