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인허가 절차 중단
현대차 매각 원천무효
전 불교도들에 참회촉구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2,3차 법회 지속봉행
군사정권시절 강압으로 빼앗아간 옛 한전 부지에 대한 불교계 환수활동이 본격화됐다. 조계종 한전부지 환수위원회(공동위원장 지현스님 원명스님)는 23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한전부지 환수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는 옛 봉은사 경내지가 온전히 불교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염원하고, 40여 년 전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 강탈에 대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마련됐다. 환수위는 토지를 온전히 되찾을 때까지 제2차·3차 기원법회, 100만 서명운동 등을 펼칠 계획이다.
1970년 상공부 장관과 서울시장은 상공부 청사 이전을 앞세워 봉은사 토지 10만평을 매입했다. 이후 상공부는 이전하지 않았고, 1984년 한국전력만 이중 2만5000여평의 부지에 입주했다. 이날 한전부지 환수위원회는 봉은사 토지 매입 과정 자체가 불법과 강압에 의해 이뤄졌음을 대외적으로 공포하고 향후 반환받은 토지에 전통문화와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도량으로 가꿔나갈 것을 천명했다.
환수위 공동위원장 지현스님은 봉행사를 통해 “봉은사는 과거 군사정권의 정치자금 확보를 위한 술책에 말려들어 선대들이 물려준 소중한 전통사찰 경내지를 빼앗기고 말았다”면서 “1971년 총선과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남서울개발계획에 필요한 봉은사 토지를 확보하고자 치밀하고 강압적으로 불교계를 강제했다”고 비판했다.
지현스님은 당시 실력자이던 이후락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종단 간부 회의에 참석하고 총무원이 법적으로 계약 주체가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종단과 계약을 체결했던 점 등을 들어, 강남 땅값의 폭발적 상승을 노리고 철저히 불교계와 국민들을 기망했다고 지적했다.
원 소유자인 봉은사에 토지를 돌려주지 않고 다시 사기업으로 팔아넘겨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은 한전에 대해서도 거세게 비판했다. 스님은 “한전은 108조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2조원이라는 엄청난 배당잔치를 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서울시를 향해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 잘못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환수위는 특히 서울시가 입찰을 통해 부지를 사들인 현대자동차로부터 공공개발부담금 1조7400억원을 받기로 하고 전례 없이 신속하게 인허가 절차를 서두르고 있는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서울의 동남권 개발이나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같은 초고층 건물의 경우 보통 사전 협상과 건축 허가에만 수년이 소요된다. 이는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안전 대책이나 주변 교통과 지역 사회에 미칠 영향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6개월 만에 사전 협상을 완료하고 올 6월 이내 개발 인·허가를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공동위원장이자 봉은사 주지인 원명스님은 “이처럼 유례없는 빠른 속도의 허가는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편향이며 현대자동차의 로비라고 의심된다”면서 “서울시는 과거 강남권 개발과 봉은사 토지 불법 강탈 사기극에 대해 전체 불교도들 앞에 참회하고 개발 인·허가 과정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법회에 이어 스님들과 불자들은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번에도 시 측이 거절했다. 이 과정에서 30여 분 동안 청사 입구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후 봉은사·용주사·봉국사·청계사 스님과 신도 1000여명은 현대차 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으로 향했다. 오후 5시경 도착한 참가자들은 ‘불법 강탈당한 봉은사 토지에 대한 개발계획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불법적으로 진행된 과거 잘못된 역사에 기대어 더 이상 개발계획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더 이상의 피해를 감수하지 않으려면 서울시를 압박해 정경유착을 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인허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현대차 측에 경고했다.
이날 환수 법회는 봉은사 토지 환수 기원의 뜻을 모은 법고의식을 시작으로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총무원 기획실장 혜일스님의 경과보고, 조계사 부주지 담화스님과 김정길 봉은사 신도의 대회연설, 결의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환수위는 서울시청 앞에 인허가 저지를 위한 법당을 설치하고 무기한 기도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