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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3장
본 시편은 도망 중에 쓴 시입니다. 밖은 적들로 가득하고 안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작은 안전을 쌓아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눈에 보이는 안전을 만들어 불안을 없애려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대응은 어떠했을까? 다윗은 불안을 이기기 위해 안전의 출처를 바꾸라고 말합니다. 공주야! ‘반지의 제왕’으로 알려진 J. R. R. 톨킨이란 학자가 이런 어록을 남겼더구나. “헤매고 다니는 자가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This is a poem written while on the run. It is full of enemies on the outside and fluctuating inside. So one tries to protect oneself by building a small amount of safety. He is trying to eliminate anxiety by creating visible safety. What was David's response? He says to change the source of safety to overcome anxiety. Princess! A scholar named J. R. R. Tolkien, known as the 'Lord of the Rings,' left a quote like this. "Not everyone who hangs up is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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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으며, 깊게 뻗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않습니다. “ 공주야, 비록 지금은 왕관을 잃고 칼날이 부러졌어도, 하나님을 붙잡는 한 끝은 아니라고 본다. 행복의 문(1-2장)을 통과한 시3편은 원수들의 위협에 따른 고통과 좌절을 정직하게 호소하는 탄식 시란다. 이후7편까지 탄식 시는 이어질 것인데 하나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난의 시련은 휘몰아치는 광풍처럼, 불청객처럼 찾아올 것이다.
Even if it is old, strong things do not wither, and deep roots do not reach frost. "Princess, even if you lose your crown and your blade is broken now, I don't think it's the end of holding on to God. Poem 3 that passed through the Door of Happiness (Chapter 1-2) is a poem of sighing that honestly appeals to pain and frustration caused by threats from enemies. The poem will continue until the 7th episode, and even for the "happy man" who meditates on God's teaching day and night, the ordeal will come like an uninvited guest like a raging fren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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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왕좌에서 쫓겨나자 충신들은 사라지고 대적들이 많아졌다. 다윗에게 인간적인 배신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조롱이 사실 같아 더 괴로웠을 것이다. 다 몰라줘도, 그래서 억울해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인정해 주시고 지켜봐 주시고 알아주신다는 것만 확인되면 견딜 만하고 버틸 수 있을 텐데 개가 웃겠다는 조롱이 사실처럼 들리면 갈 곳도 숨을 곳도 없지 않을까?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돕지 않을 것이란 대적 자들의 조롱을 안 듣기로 했다.
When David was expelled from the throne, loyalists disappeared and there were more enemies. It was difficult to betray David as a human being, but it must have been more painful than that because it was true that the mockery that God would not be saved by God. Even if you don't know everything, even if it's unfair, if it's confirmed that God still recognizes, watches, and recognizes me, you can endure it. If the mockery that the dog will laugh sounds true, wouldn't there be anywhere to go or hide? So the poet decided not to listen to the ridicule of the opponents that God would not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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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 종종 이 작전을 쓸 때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고 빼앗긴 영광을 되찾아주시고 수치를 당하여 숙인 내 머리를 다시 들어주실 분이라고 믿기로 했어. 아들에게 쫓겨 머리를 가리고 도망치면서도 하나님이 거룩한 산 시온에 자신을 왕위에 세우셨으니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을 믿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면 원수가 하는 조롱을 잠재우고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한 거란다. 믿음은 선택하는 것이다.
My father was often surprised to find that he would use this tactic. I decided to believe that God would be a shield, reclaim the glory that was taken away, and re raise my head that was humiliated. Even as he was chased by his son and fled, he decided to believe that God would restore him because he had established himself on the throne in the holy mountain of Zion. Then he thought he would listen to his cries after putting to rest the mockery made by the enemy. Faith is a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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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자신을 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단다. 시인은 기도가 이루어질 줄 믿고,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여겼으니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잠 잘 자는 것은 믿음이 맞구나. 대적이 둘러치고 있어도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둘러 보호해 주실 것이고, 눈에 보이는 권력은 무너져도 하나님은 자신을 붙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Of course, it is important whether there is a basis or not, but it is equally important to bet yourself on it. The poet believed that prayer would be done and that it had already been done, so he would have been able to sleep comfortably. It is true that you sleep well in this sense. This is because even if the adversary is surrounded, God will protect you as a shield, and even if the visible power collapses, God will suppor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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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이 ‘일어나’ 치려 할 때 하나님만 ‘일어나’면 넉넉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필요 할 것 같다. 그는 수치를 되갚아 원수의 뺨을 쳐 그들에게 돌리실 것을 믿었고, 대적 자들을 이빨 없는 짐승처럼 무기력 하게 만드실 것을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불안한가? 숨막혔던 밤을 지나 은총의 아침을 경험한 때는 언제인가?
I think we need to believe that if only God "wakes up" when the enemy is about to "wake up," he will save enough. He believed in retaking the shame and giving it back to the enemies by slapping them in the face, and was sure to make the adversaries lethargic like toothless beasts. And yet why am I anxious? When did you experience the morning of grace after a suffocating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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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급한 상황(:1-2)
1. 상황/탄원(:1-2) A
A. 많은 대적들이 일어남(:1) a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나 많은지요
2)나를 대항하여 일어나는 자가 (많습니다)
B.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2) b
1) 많은 사람들이 있어 나의 영혼에 대하여 말 합니다
2)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구원(승리)가 되지 못하실 것이다
Ⅱ. 신뢰와 확신(:3-6)
2. 보호와 기도 응답의 신뢰(:3-4) B
A. 보호하시는 하나님(:3) a'
그러나 여호와 당신은
나를 두르는(around me) 방패요,
나의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B. 기도에 응답하실 여호와(:4) b'
1) 내가 나의 목소리로(크게) 부르짖으니
2) 그 성산에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3. 확신 중에 누리는 평안함(:5-6) B'
A. 편히 잠(:5) b''
1) ‘내가’ 눕고 자고 깨니
2)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B. 두려워하지 아니함(:6) a''
1) 천만인이(수 많은 군사들이) 나를 사방에서 치려하여도
2) 나는 두려워 아니할 것입니다.
Ⅲ. 구원을 간구함(:7-8)
4. 구원 호소(:7-8) A'
A. 구원을 구함(:7) a'''
1) 여호와여 일어나소서(arise)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내게 승리를 주소서)
2)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실 것입니다(Prophetic Past)
B. 복을 빎(:8) b'''
1) 구원(승리)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2)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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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1a)
나의 대적이(1b)
어찌 그리 많은지요(1c)
일어나 나를 치는(1d)
자가 많소이다(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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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있어(2a)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2b)
저는 하나님께(2c)
도움을 얻지(2d)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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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3a)
주는 나의 방패시오(3b)
나의 영광이시오(3c)
나의 머리를(3d)
드시는 자니이다(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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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목소리로(4a)
여호와께 부르짖으니(4b)
그 성산에서(4c)
응답하시는 도다(셀라)(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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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워 자고(5a)
깨었으니(5b)
여호와께서(5c)
나를 붙드심이로다(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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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인이 나를(6a)
둘러치려 하여도(6b)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다(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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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일어나소서(7a)
나의 하나님이여(7b)
나를 구원하소서(7c)
주께서 나의(7d)
모든 원수의(7e)
뺨을 치시며(7f)
악인의 이를(7g)
꺾으셨나이다(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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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8a)
여호와께 있사오니(8b)
주의 복을(8c)
주의 백성에게(8d)
내리소서(셀라)(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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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적_ a great many enemies
두려움 대신 용기로_ With courage instead of fear.
침묵대신 도움으로_ with the help of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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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호자, 방패요 영광이신 주님, 내 과거를 잊으시고 저와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친히 고난을 당하셨으니 고난당한 자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아십니다. 사방에 적들이 우겨 싸고 있지만 방패가 되어 우리를 둘러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사오니 내가자고 깰 때 나를 붙드시고 보이는 현실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고 단잠을 자게 하옵소서.
My protector, shield, my glorious Lord, thank you for forgetting my past and being with me. You know the pain and hardship of those who have suffered. Enemies are everywhere, but I believe you will be a shield to protect us. For salvation is with the Lord, so that I may not be disturbed by the reality of my sleeping habit.
2026.7.3.fri.Clay
신학 비평//
눈에 보이는 안전을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둘러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시편 3편은 불안의 제거보다 불안의 방향을 바꾸는 시입니다. 다윗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적은 여전히 많았고, 왕좌도 잃었으며, 조롱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안전(safety)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방패(shield)로 선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돈, 권력, 인간관계, 제도를 통해 불안을 통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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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윗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의 출처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라는 고백은 단순한 숙면이 아니라 **신뢰의 신학**입니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밤새 일하고 계심을 믿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대적들은 "일어나" 다윗을 치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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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상황의 주도권은 바뀝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선입니다. 결국 시편 3편은 고난 없는 행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도 탄식하지만, 탄식 속에서도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는 용기가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용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