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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난 돌짐승 하나가 주인 없는 궁에 와 있소이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2 : 구멍 뚫린 천록(天祿)과 굶어 죽은 녹산 사슴
광화문의 지나 처음 만나는 문이 흥례문인데 바로 앞의 근정문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작은 다리(永濟橋)를 건너게 되어있다. 그 수로(어구:御溝) 좌우 주변 축대에는 바닥을 응시하며 엎드려 있는 동물상이 있다. 온 몸이 비늘도 덮여있고 정수리에 뿔이 하나 나 있는 기이한 형상으로 하늘에서 온 사슴, 일명 천록(天祿, 혹은 天鹿)이라하는 서수(瑞獸)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동물을 사자(산예:狻猊- 상상속의 동물)라고 하는데 경복궁 조성당시에는 무려 16마리가 다리 주변에 있었다 하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이 동물상의 역할은 궁 안에 잠입하는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제거하는 역할이었다.
동편에 천록(天祿, 혹은 天鹿) 하나는 등에 구멍이 뚫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윤곽과 세밀한 조각솜씨는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다. 마주보는 건너편 천록의 자태도 예사롭지 않다.
현재 영제교(永濟橋) 옆에 있는 천록은 모두 네 마리다. 205년 전 존재하지 않았던 한 마리가 멀쩡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쪽 한 마리는 등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덮개가 씌어 있다. 유득공(柳得恭, 1748·영조24-1807·순조7)의 목격담은 이렇게 이어진다. ‘남별궁(南別宮) 뒤뜰에 등에 구멍이 뚫려 있는 천록이 한 마리 있는데 이것과 아주 비슷하다. 필시 다리 서쪽에 있었던 나머지 하나임이 분명하다.’(「춘성유기(春城遊記)」) 한 때는 동쪽에 두 마리, 서쪽에 한 마리가 있었다.
남별궁(南別宮)은 임진왜란 이후 중국 사신이 머물던 숙도다. 서울 소공동(小公洞)에 있다. 조선시대 제3대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慶貞公主)가 출가해 거주하던 저택으로 소공주택(小公主宅)으로 불렀다. 지금 소공동의 지명은 ‘소공주(小公主)’가 살던 집에서 유래됐다. 경복궁에 있던 천록 한 마리가 이 남별궁으로 옮겨졌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영조17-1793·정조17)는 “바로 경복궁에서 옮겨온 것(盖自景福宮移置也·개자경복궁이치야”이라고 확신했다. (이덕무,『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51,「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4)『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는 이 천록을 ‘1865년 5월 4일 남별궁에서 가져와 영제교 서쪽 본래 자리에 두었다’고 적혀있다. 또 1868년 3월 2일 『경복궁영건일기』에는 ‘영제교 패하석의 동 쪽 팬 곳을 돌로 보완했다.’고 기록돼 있다.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는 ‘세속에 전하기를’이라고 전제를 달고 소공주의 남편인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대림(趙大臨)이 천록을 궁궐에서 무단으로 가져다 자기 집에 놔뒀다고 기록했다. 이후 소공주 집이 중국사신 숙소겸 접대소인 남별궁으로 바뀌자 한 청나라 사신이 ‘매우 신령스럽고 괴이하다’며 등에 구멍을 뚫고 흙으로 매워버렸다는 것이다.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 1865년 5월 4일)
조금이라도 속설이 객관적인 사실을 품고 있다면, 왕실 척족의 탐욕과 제후국 조선에 대한 사대 본국의 갑질이 결합해 만들어낸 흉터를 천록은 품고 있다는 뜻이다. 한 왕조의 안녕을 기구하던 석물이 척촉내 정원석이 되고 일본군 군영 어느 무명 병사의 의자도 되었을 터이고 이어 중국 사신에 의해 척추가 토막 나는 참사를 겪었으나, 돌치고는 운명이 기구하다.
대원군이 그렇게 화재 예방 상징을 새겨 넣었지만, 경복궁은 화재가 여러 번 났다. 1867년 2월 9일 근정전 상량문을 올리던 그날 영추문과 건춘문 쪽 목재 창고와 인부 숙소에 불이 나버렸다. 한 달 뒤인 3월 5일 심야 화재로 공사 중이던 전각 수백 칸이 사라졌고 목재도 불탔다. 1876년에는 완공된 경복궁에 또다시 큰 화재가 일어났다. 전각 830여 칸이 재로 변했고 역대 왕들 글씨와 유품도 몽땅 사라졌다.(1876년 11월 4일 ‘고종실록’) 고종은 ‘민간 토목공사 금지령’을 거듭 내리며 재중건 공사를 강행했다.(1893년 8월 25일 등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이 백단향(白檀香)을 피우며 국태민안을 빌었던(‘영건일기’ 1867년 11월 16일) 근정전 향로는 뚜껑을 잃어버리고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남별궁은 1897년 황제가 천제를 지내는 원구단(圜丘壇)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1896년 2월 아관으로 파천한 이후 고종은 두 번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08년 2월 12일 고종과 왕비 민씨가 완상하던 궁내 녹산 사슴 7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죽었다. 고종 내탕금이 내려오지 않아 사료를 사지 못해 굶어 죽었다.(1908년 2월 12일 ‘대한매일신보’) 창덕궁으로 옮긴 6마리 가운데 4마리도 2주 뒤 죽었다. 어느 틈엔지, 구멍 뚫린 천록은 영제교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열면서 많은 개보수가 있었으니, 그때 이동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해 3월 1일 대한제국 궁내부는 텅 빈 경복궁을 민간에게 개방하기로 결정했다.(1908년 3월 1일 ‘대한매일신보’) 3월 8일 입장권이 발매됐고, 4월 26일 일요일 경복궁 관람객은 2118명이었다.(1908년 4월 28일 ‘황성신문’) 이듬해 궁내부는 경복궁 건물 4000여 칸을 경매에 부쳤다. 낙찰자 10여 명이 칸 당 15환부터 27환까지 가격으로 응찰했다. 한성부윤 장헌식 또한 석재와 목재를 사서 자기 집을 짓다가 욕을 먹었다.(1909년 5월 15일, 7월 5일 ‘대한매일신보’) 신문 기사 제목은 ‘기막히여’였다.
1911년 2월 20일 천록이 있던 옛 남별궁, 원구단 건물과 땅이 총독부에 인계됐다. 석 달 뒤인 5월 17일 궁내부는 경복궁 전체를 총독부에 넘겼다.(1911년 5월 17일 ‘순종실록부록’) 아무리 정교하게 깎고 정성을 들인들, 돌들은 나라를 지켜주지 못했다. 대원군이 심혈을 기울인 근정전 해태 가족상도, 국운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천록도 경회루 못 가운데 숨죽이던 청동 용도 소용없었다.
천록은 벽사(僻邪:사악을 물리치는 상상속의 동물)의 능력을 지닌 천록은 영재교 사방을 노려보며 변함없이 궁궐을 신성한 공간으로 지키고 있다.
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 - 박종인/ 상상출판/ 2021.8.20.
✵ 책소개
2008년 삼성언론상 수상, 2020년 서재필 언론문화상 수상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역사를 꿰뚫는 작가 ‘박종인’
화제의 연재작 ≪박종인의 땅의 역사≫ 4편으로 돌아오다!
✵ 저자 : 박종인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소위 386세대 신문 기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뉴질랜드 UNITEC School of Design에서 현대사진학을 전공했다. ‘직시(直視)하는 사실의 역사만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연재 중이다. 〈TV조선〉에 같은 제목의 역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잊히고 은폐된 역사를 발굴해 바로잡아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매국노 고종』, 『대한민국 징비록』, 『박종인의 땅의 역사』1·2·3, 『여행의 품격』, 『기자의 글쓰기』, 『한국의 고집쟁이들』, 『행복한 고집쟁이들』, 『내가 만난 노자』, 『나마스떼』,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공저), 『다섯 가지 지독한 여행 이야기』가 있고,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마하바라타』를 옮겼다.
✵ 목차
작가의 말 | 이 책을 읽는 법
1장 비밀
01 저 험한 내포(內浦) 가야산에는 예부터 사연이 많았느니라
남연군묘의 비밀 1: 황제의 금탑
02 석탑 속 700년 묵은 명차를 추사에게 선물했다네
남연군묘의 비밀2: 〈세한도〉를 그린 암행어사 김정희
03 明 황제가 말차를 금하니 훗날 일본이 도자기로 일어서더라
남연군묘의 비밀3: 주원장의 용단차 금지령과 나비효과
04 여러분은 세종시대 천문기구 간의대의 종말을 보고 계십니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1: 근정전 품계석과 간의대
05 상처 난 돌짐승 하나가 주인 없는 궁에 와 있소이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2: 구멍 뚫린 천록(天祿)과 굶어 죽은 녹산 사슴
"상처 난 돌짐승 하나가 주인 없는 궁에 와 있소이다"
대원군이 곳곳에 만든 경복궁을 지키는 石物
국난 경고 해태 부부상, 화재 예방용 청동용, '龍' 1000자로 쓴 물 '水'
영제교 천록 한 마리는 구멍 난 남별궁 것 환궁
'건축주' 고종은 경복궁 이용 거의 안 해
1908년 경복궁 사슴들 아사, 1909년 전각 일체 경매에
1911년 총독부에 넘어가
06 경복궁 돌담길 나무마다 사연이 숨었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3: 효자로 플라타너스 숲의 정체
07 백성은 세상 일 알려 말고 충효(忠孝)하며 살거라
서점 없는 나라 조선과 책쾌(冊?)들의 대학살
08 상투 튼 원숭이들이 중국을 희롱하는구나
혐한론자 소동파와 그를 짝사랑한 한국인
09 8일 동안 나는 조선의 왕비였느니라
등극 8일 만에 쫓겨난 중종비 단경왕후릉의 비밀
10 세계 최첨단 조선 요업 기술은 완전히 몰락했다
집단 아사한 도공 39명과 첨단 요업 국가 조선의 몰락
11 역관들의 바보짓에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의 첨단 의학
역관 집단의 밀수 행각과 산업스파이 사건
12 그 많던 절들은 어디로 다 가버렸을까
조선왕조 불교 탄압기
2장 진실 - 조작된 신화
01 베트남 영웅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읽었다? 거짓말입니다!
정약용을 둘러싼 조작된 신화
02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순신을 존경한 적이 없다
이순신, 도고 헤이하치로 그리고 세계 4대 해전
3장 진실 - 호란과 사대
01 나에게 팥죽을 쒀준 저 유생을 금부도사로 임명하라
1624년 이괄의 난과 인조의 황당한 도주 행각
02 또 가짜 왕제를 보냈으니, 아랫것 박난영 목을 벤다!
병자호란과 외교관 박난영의 어이없는 죽음
03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그는 항복 후 집으로 돌아갔다
국난에 대처한 세 가지 자세 1: 김상헌
04 그대들은 명나라를 위해 조선을 망하게 하려는가
국난에 대처한 세 가지 자세 2: 최명길
05 조정과 백성이 최명길을 씹어 먹으려고 한다
국난에 대처한 세 가지 자세 3: '황제의 신하(陪臣·배신)' 송시열
06 송시열이 북벌(北伐)을 추진했다고?
북벌을 거부한 송시열과 화양동 만동묘
07 황제 은총에 조선이 살아 있으니!
망해버린 명나라에 200년간 제사 지낸 창덕궁 대보단(大報壇)
08 더러운 오랑캐 쌀을 먹느니 굶어 죽겠다
1698년 대기근과 청 강희제의 곡식 원조
4장 진실 - 영정조 흑역사
01 판결 따위 필요 없다, 모조리 죽여라
무법천하 막장정치 영조·노론 연합정권
02 금주령 어긴 자는 처형하고 자신은 술을 마셨다
개혁군주 영조의 ‘내로남불’
03 100년 국정 공백이 정실 인사에서 비롯되었다
정조의 인사 실패와 세도정치
5장 진실 - 시대의 갈림길
01 그의 죽음이 민중의 각성을 불렀다
기미년 그 날 1: 고종은 무엇을 했는가
02 그는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화를 막았다
기미년 그 날 2: 안중근은 무엇을 했는가
03 그물을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들었다
기미년 그 날 3: 왕족들은 무엇을 했는가
04 해주 청년 정재용이 선언문을 읽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기미년 그 날 4 : 그날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답사 안내
✵ 출판사서평
잊히고 은폐된 역사를 발굴해내는 30년 차 기자 박종인
땅의 진실과 비밀을 파헤쳐 보다.
“이 땅에 우리가 몰랐던 역사가 있다!”
2015년부터 〈조선일보〉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박종인의 땅의 역사’가 4편으로 돌아왔다. 꾸준히 〈땅의 역사〉 시리즈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인은 역사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나 4편 『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은 사람들이 몰랐던 역사의 진실과 비밀, 즉 이면을 다룬다. 어떤 과거가 쌓아 올려져 현재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땅의 역사〉 시리즈는 역사를 따라 걷는 작가 박종인의 역사 인문서로, 수험서로는 불량하고 교양서로는 불온하다. ‘역사와 인문’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책에 이런 부연 설명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생각하는 역사는 왜곡하지 않고 온전한 형태로 마주할 때 진정 영향력을 가진다. 그 의도에 맞게 〈땅의 역사〉 시리즈는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이나 오해하고 있었던 거짓을 바로잡기도 하며 시종일관 냉정과 진솔함을 유지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유명한 관용구가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보려 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현실에서 멀어진다. 작가는 그 희미한 시간에 돋보기를 대 조명해준다. 보기에 좋고 듣기에만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또한 이 책은 위대한 배달민족이 남긴 찬란한 역사만을 담고 있지 않다. 존경했던 인물에게 실망할 수도 있고, 실망했던 인물들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대인의 덕행에는 감동을 넘어선 위로를 받을 것이고 소인배의 행태에는 실망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역사란 기꺼이 우리의 예상과 빗나갈 때도 있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더 대단할 때도 있다.
수십 년간 기자로 일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의 깊이가 우리네 역사를 파고든다. 왜곡이나 과장, 선입견 없이 진실된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게끔 이 책이 도울 것이다.
땅은 곧 역사다.
역사는 현재로 이어진다.
『땅의 역사 4』는 총 5장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역사를 말한다. 효자로에 있는 플라타너스의 숲의 정체와 책쾌들이 대학살 되었던 사건, 조선이 사랑한 예술가 소동파가 혐한이었다는 사실과 8일의 왕비로 유명한 단경왕후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또한 일본에서 납치해갔다고만 생각했던 도공들이 사실은 자의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조선왕조 역사 속의 불교 탄압도 다룬다. 2장에서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다고 알려진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이 사실 정약용을 알지도 못했으며, 목민심서를 읽은 적도 없다는 진실을 다룬다. 또한 이순신을 존경했다고 알려진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또한 이순신을 존경한 적이 없다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는다. 3장에서는 국난을 맞이한 나라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대처하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대기근으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했던 잔혹한 역사까지 다룬다. 4장은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겐 엄했던 영조와 정조의 인사 실패가 등장한다. 마지막 5장은 이 땅에 일본의 그늘이 짙어질 때 고종, 안중근, 왕족, 조선은 무엇을 하였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를 다루며 끝이 난다. 위기의 시대에 한 사람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촘촘한 역사의 빛과 그림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하나의 사건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지는지를 눈치를 채게 된다면 놀라움 이상의 경이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우리에겐 역사가 필요하다.
2021년 지금, 우리는 역사로부터 나날이 멀어지고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미래지향적인 태도는 얼핏 일리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거는 우리에게 언제나 교훈을 남겼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에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이유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는 첨예한 갈등과 타자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사에서 기인한 사건들이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외부와 맞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들이 여타 나라들과는 다소 다른 대한민국의 성향을 형성했다. 그것이 바로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성향을 이해하고 분노를 이해하고 슬픔에 공감하기 위하여,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는 얼핏 전혀 다른 세상 같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과 갈등, 인간의 이중성,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과 실패의 과정이 그대로 들어 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땅의 역사』 시리즈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박종인, 상상출판), 인터넷 교보문고/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KBS 역사스페셜
경복궁은 지금과 달랐다
https://youtu.be/cefyjltrT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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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 김명희 화백
항상 고맙습니다. 반응도 별로 없는 톡방인데도 지치지 않으시고 소중한 자료들을 끊임없이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열심히 잘 읽었습니다. 경복궁을 지키는 石像들, 역사의 진실들... 덕분에 쉽게 많은 지식들을 접할 수 있었네요
고봉산 정현욱 작가님
경복궁 영제교를 수없이 드나들었으면서도 천록 돌 조형물을 눈여게 본적이 없는데 오늘 그림으로 보니 어렴풋이 생각이 나네요
경복궁의 오랜 수난사를 견디며 궁의 액을 막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는 천록에게 감사하고 싶네요
이제 경복궁에 가면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으로도 담아 보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