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에 나설 정당이 50개, 투표용지 길이만 66㎝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명부를 기준으로 할 때 그렇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명부를 보면 유사한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전용전당으로 만든 더불어시민당이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만든 열린민주당도 있다. 열린민주당은 노무현 정권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만든 비례전용정당인 미래한국당도 명칭이 흡사하기는 마찬가지다. 미래한국당은 미래통합당이 출범하기 전 자유한국당의 비례전용정당으로 출범했다. 당초에는 ‘비례한국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려 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불허하는 바람에 발음이 유사한 미래한국당을 사용하게 됐다.
이런 정당들은 원래 비례전용 위성정당으로서 모(母)정당과의 연상작용을 노리고 작명(作名)한 것이기 때문에 당명이 흡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요절복통 유사 당명들
하지만 이들 정당 말고도 이름이 흡사한 정당들은 많다.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과 이름이 비슷한 정당으로는 국민새정당, 국민참여신당이 있다. ‘국민’이 당명으로 들어간 정당으로는 한국국민당과 사이버모바일국민정책당도 있다.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말고도 당명에 ‘미래’가 들어간 정당은 미래당, 미래민주당, 미래자영업당, 충청의미래당, 한반도미래연합 등 다섯 개나 된다.
‘민주’가 들어간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외에도 미래민주당, 민중민주당, 통합민주당, 통일민주당 등 네 개가 더 있다. 통합민주당과 통일민주당은 한 글자만 다를 뿐이다.
당명에 ‘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정당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전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외에 깨어있는시민연대당도 있다. 이 역시 친문(親文) 정당이다.
홍문종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세력에게 어필하기 위해 지난 3월 9일 친박신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등록했다. 하지만 ‘친박’을 내세운 정당으로는 2012년에 등록한 친박연대도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을 연상시키는 ‘공화’라는 글자를 당명에 넣은 정당도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조원진 의원의 ‘친박정당’인 우리공화당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박근영)씨의 남편 신동욱씨의 공화당이다.
‘자유’를 당명에 사용한 정당도 세 개가 있다. 전광훈 목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독자유통일당, 친박인사인 손상윤씨의 자유당, 그리고 자유주의 성향의 젊은이들이 창당한 자유의새벽당이 그것이다.
기독자유통일당은 당명에서 보듯 보수주의 성향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데, 당명에 ‘기독’이 들어간 정당으로는 2014년 창당한 기독당도 있다. 기독자유통일당이 불자(佛子)로 알려진 이은재 의원을 영입, 비례대표 1번을 준 것(3월 26일 공천 취소)은 현역 의원을 확보할 경우 투표용지에서 기독당보다 앞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민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정당으로는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민중당 외에 민중민주당이라는 정당이 있다.
‘자영업’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정당도 세 개나 있다. 미래자영업당, 중소자영업당, 직능자영업당이 그것이다.
‘한국’이라는 국호(國號)가 들어간 정당으로는 미래한국당 말고도 한국경제당, 한국국민당, 한국복지당이 있다. 국호가 들어간 정당으로는 대한당과 대한민국당도 있다.
당명 앞에 ‘가자’라는 단어를 쓴 정당도 세 개다. 가자코리아, 가자!평화인권당, 가자환경당이 그것이다. 현직 의원이 있는 정당의 경우 의석수 기준으로, 그 외에는 가나다순으로 투표용지에 이름이 오르는데, ‘가자환경당’은 만일 당명이 ‘환경당’이었다면 50개 정당 가운데 홍익당 다음인 맨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다.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이 합당해 출범한 민생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민중당과는 글자 하나가 다를 뿐이다.
이름이 유사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통합당의 전신(前身)이었던 정당의 이름을 사용하는 새누리당, 한나라당도 있다.
선관위 관계자, "보도자료에 나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당법 제41조가 “정당의 명칭은 이미 등록된 정당이 사용 중인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는 유권자들이 정당의 동일성을 오인·혼동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선관위는 지난 1월 13일 이 규정을 근거로 비례한국당의 등록을 거부했다.
이때 선관위는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와 관련 “새로이 등록·사용하려는 정당의 명칭이 이미 등록된 정당의 명칭에 대한 보호법익을 침해하는지를 따져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유권자의 기성 정당과의 오인·혼동 여부는 정당 명칭의 단어가 중요부분에 해당하는지 뿐만 아니라 투표권 행사과정, 정당·후보자 등의 선거운동, 언론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대로라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당명이 흡사한 정당들 가운데 상당수는 선관위 등록이 거부되었어야 마땅하다. 이에 대해 선관위 공보과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명부를 살펴보니 유사한 명칭이 굉장히 많았다. 국민의당과 국민새정당과 국민참여신당, 대한당과 대한민국당, 민중당과 민중민주당, 친박신당과 친박연대, 심지어 통일민주당과 통합민주당은 한 글자 차이였다. 선관위는 비례한국당은 자유한국당과 유사한 명칭이라고 거부했는데, 왜 이렇게 유사한 이름의 정당들이 많나? 도대체 어떤 경우에는 허용되고 어떤 경우에는 불허되는 것인가?
“정당법과 비례한국당 등록 거부 당시 선관위가 낸 보도자료에 나와 있다.”
- 선관위는 자유한국당과 당명이 비슷한 비례한국당은 안 된다고 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당명이 흡사한 더불어시민당은 허용했다. 정당 이름이 유사한 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뭔가?
“보도자료를 보면 나와 있다. 정당법을 보면 ‘정당의 명칭은 이미 등록된 정당이 사용 중인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고, 새로이 등록·사용하려는 정당의 명칭이 이미 등록된 정당의 명칭에 대한 보호법익을 침해하는지를 따져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 지금 읽고 있는 그 보도자료는 내 앞에도 있다. 그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건 우리(공보과)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그렇게 판단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판단한 구체적 이유, 기준을 알고 싶다는 거다. 법원에서는 왜 그렇게 판결했는지 판결문을 공개한다. 보도자료 외에, 선관위가 그렇게 결정한 구체적 기준이 뭔지를 알 수 있는 결정문 같은 게 있나? 그걸 선관위 홈페이지 등을 통해 볼 수 있나?
“....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그건 모르겠다.”
- 정보공개신청을 하면 되나?
“정보공개신청은 할 수 있지만, 결정문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보공개신청은 할 수 있지만, 결정문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비례한국당은 안 되지만 더불어시민당은 된다?
선관위는 비례한국당 사용불가(不可) 결정을 내리면서 “‘비례’는 사전(事典)적 의미만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려워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비례’라는 단어와의 결합으로 이미 등록된 정당과 구별된 새로운 관념이 생겨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선관위는 “투표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배부 받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투표’ 투표용지에 게재된 내용에 비추어 ‘비례○○당’의 ‘비례’의 의미를 지역구후보를 추천한 정당과 동일한 정당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른바 후광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특히, 기성정당 명칭에 ‘비례’만을 붙인 경우 언론보도, SNS, 유튜브 등의 매체와 얼마 남지 않는 국회의원선거 선거운동과정을 통하여 유권자들이 기성정당과 오인·혼동할 우려가 많다”고 설명했다. “‘비례○○당’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 무분별한 정당 명칭의 선점·오용으로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와 유사명칭 사용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혼란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선거결과를 가져오는 등 선거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등록은 받아들였다. ‘비례’라는 글자만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 지역구후보를 추천한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동일한 정당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른바 후광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 언론보도, SNS, 유튜브 등의 매체와 얼마 남지 않는 국회의원선거 선거운동과정을 통하여 유권자들이 기성정당과 오인·혼동할 우려가 많으며, ▲ 무분별한 정당 명칭의 선점·오용으로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와 유사명칭 사용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혼란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선거결과를 가져오는 등 선거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인데도 말이다.
안철수신당은 안 되고, 친박신당은 되고....
한편 선관위는 2월 6일에는 ‘정당의 목적과 본질, 선거운동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한 헌법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안철수신당’ 정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정치인의 성명이 포함된 정당명을 허용할 경우에는 정당 활동이라는 구실로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다른 정치인들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선거운동의 기회를 갖게 되는 등 실질적인 기회불균등의 심화를 초래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비록 특정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2008년 제18대 총선 당시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연상케 하는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허용했던 것이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 ‘친박신당’의 등록을 받아준 것과는 논리적으로 모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