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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6장
참회 시편들 중 하나입니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기도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죄로 무너진다. 몸도 마음도 나라도 흔들린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리는 시작입니다. 후회는 자기 안에 머물지만 참회는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공주야! 이 시는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이며, 개인적인 탄식의 전형성을 가장 잘 드러낸 시란다. 시인의 영적,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고뇌에 찬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로 보인다.
It's one of the Psalms of repentance. It's not a prayer that tries not to collapse, but a prayer that begins where it has collapsed. David collapses into sin. His body, mind, and country shake. But the collapse is not the end, but the beginning of him hanging on to God. Regret stays in oneself, but repentance is directed to God. Princess! This poem is about the eighth string of strings along with a guide, and it is the poem that best exemplifies the typicality of personal sighing. It seems to be a prayer that affirms the poet's response to his agonizing cry for release from spiritual and physical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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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온 몸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대적들의 조롱은 고통을 가증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이 고통이 하나님의 진노와 떠나심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는 영혼까지 떨게 하는 두려움 이다. 기도해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더욱 두려웠다. 시인에게 몸의 치유는 하나님의 돌아오심과 용서를 의미했다. 공주야, 우리가 겪는 불행이 늘 죄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병이 왔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복된 기회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The poet is suffering all over his body. The ridicule of the enemies aggravated the pain. But it was nothing compared to the fear that this pain might be the result of God's anger and departure. This is a fear that makes even the soul tremble. I was even more afraid because even if I prayed, there was no sign of recovery. For the poet, the healing of the body meant the return and forgiveness of God. Princess, the misfortune we experience does not always involve sin, but we will have to replace it with a blessed opportunity to look back on ourselves and acknowledge human limitations when the disease 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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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자기 병이 낫는 길은 주께서 돌아오셔서 자신을 용서하시는 길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적사람, 인자에 기대어 약속을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죽으면 감사할 수도, 찬양할 수도 없지 않느냐며 하나님을 설득하였다. 그는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했던 사람일 것이다. 결국 시인은 긴 두려움과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온다. 자기를 외면하듯 아주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일뿐 주님은 실제 자기 기도를 들으실 만하며 자기 영혼의 떨림까지 보실 수 있는 거리에 계신다고 확신했다.
The poet believes that the only way to heal from his illness is for the Lord to return and forgive him. So, I lean on God's covenant enemy, Sonja, and beg him to keep his promise. He persuaded God, saying, "I can't be grateful or praised if I die." He must have had a clear reason to live. Eventually, the poet escapes from a tunnel of long fear and stagnation. He seemed to be very far away as if he were turning away from him, but he was convinced that the Lord deserved to hear his prayers and was within a distance of seeing the tremors of his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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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담대하게,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란 행악 자들의 말을 거부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돌아오시면 모든 것이 역전될 것이고 대적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임을 알았다. 언제나 오실까(3)’했던 하나님이 ‘돌아오시면(슈브)’ 그들이 홀연히 '물러갈 것이다(슈브)'. 묵상 포인트는 가장 험한 형벌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추방당하는 것과 다윗이 인자를 알았다는 것이 놀랍구나. 무너짐은 끝인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시작인가?
So I was able to boldly reject the deeds that God would not listen to prayers. I knew that when God returned, everything would be reversed and that the enemies would be ashamed. When God, who always said, "Will you come (3)," returns (Shub), they will suddenly "retreat" (Shub). The point of meditation is that the toughest punishment is to be expelled from God's face and that David knew the Son of Man. Is the collapse the end or the beginning of the return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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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상황, 긍휼 호소) a
4-5절(구원 간구) b
6-7 절(상황을 아룀) a'
8-10절(구원의 확신)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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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주의 분으로(1a)
나를 견책하지 마시며(1b)
주의 진노로(1c)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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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2a)
내가 수척하였사오니(2b)
긍휼히 여기소서(2c)
여호와여(2d)
나의 뼈가 떨리오니(2e)
나를 고치소서(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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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도(3a)
심히 떨리나이다(3b)
여호와여(3c)
어느 때까지 입니까?(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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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돌아와(4a)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4b)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4c)
나를 구원하소서(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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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중에서는(5a)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5b)
음부에서(5c)
주께 감사할 자(5d)
누구입니까?(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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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식함으로(6a)
곤핍하여(6b)
밤마다 눈물로(6c)
내 침상을 띄우며(6d)
내 요를 적시나이다(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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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7a)
근심을 인하여(7b)
쇠하며(7c)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7d)
어두웠나이다(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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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악하는 너희는(8a)
다 나를 떠나라(8b)
여호와께서(8c)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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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9a)
내 간구를(9b)
들으셨음 이여!(9c)
여호와께서(9d)
내 기도를 받으리로다(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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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원수가(10a)
부끄러움을 당하고(10b)
심히 떪이여(10c)
홀연히 부끄러워(10d)
물러가리로다(1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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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겪는 하나님과의 거리감_
the feeling of distance from God all over the body
건강의 돌아옴과 하나님의 돌아오심_
the return of health and the return of God
하나님의 응답과 악인들의 떠남_
The answer of God and the departure of the wi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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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분노와 용서가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 내 눈에 눈물을 보시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셔서 나의 부끄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일상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오직 당신의 지혜로 이루어 가심을 믿사오니, 주님, 내게 다시 돌아오시옵소서. 당신이 우리 삶의 최선이고 최고가 되지 못한 삶을 회개하오니 다시 돌아오셔서, 내 주가 되어주시고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옵소서.
I knew that God's anger and forgiveness all come from God's love. O Lord, see tears in my eyes, and come back to me again to reap my shame. I trust in your wisdom, O Lord, to bring back to me a wonderful history through the little things that seem insignificant. For you have repented of the best and worst of our lives, and return to be my Lord, to be praised and appreciated.
2026.7.6.mon. Clay
신학 비평//
무너짐은 끝인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시작인가?
시편 6편은 죄보다 더 깊은 문제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거리감입니다. 다윗은 병들었고, 대적에게 조롱받고 있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육체의 통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신 것 같은 영적 고독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병을 고쳐 주십시오"보다 먼저 "여호와여, 돌아오소서"(4절)를 외칩니다. 치유보다 관계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전은 *돌아오심(슈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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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돌아오시면 원수들이 물러갑니다. 인간은 원수를 먼저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순서입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먼저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헤세드)'를 붙듭니다. 자신의 의로움이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근거로 간구합니다. 이것이 참회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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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자신의 선함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후회는 과거를 바라보지만, 참회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구조적으로도 시편 6편은 탄식(a)-구원(b)-탄식(a')-확신(b')의 대칭을 이루며, 눈물로 시작한 기도가 확신으로 끝납니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다는 믿음 하나가 시인의 현실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환경보다 하나님의 응답이 현실을 규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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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6편은 하나님의 부재를 말하는 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를 붙드는 시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눈물과 탄식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으시는 분입니다. 결국 가장 무서운 형벌은 질병이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잃는 것이며, 가장 큰 회복은 건강 이전에 하나님의 얼굴이 다시 우리를 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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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참회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확신이며, 눈물의 끝은 하나님의 돌아오심입니다. 죄인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분노보다 크고, 징계조차도 버리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다시 품으시려는 사랑의 손길임을 이 시는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언제나 같습니다. 주님, 먼저 제게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 그분이 오시면, 우리의 두려움은 물러가고 우리의 눈물은 다시 찬양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