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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혼돈을 떠나서
아침 창문을 열고 동해 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켜는 것은 나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아이가 잽싸게 기어 와 옆에 앉아서는 나를 흉내내었다.
바람개비는 여명이 지나갔는데도 잠을 자는지 움직임이 없다. 이슬이 무거운지 초겨울 서릿발에 굳어 버렸는지 돌기를 멈추고 우두커니 있었다. 내가 보아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비교 되었다.
바다를 쳐다보며 한참을 그렇게 창가에 서 있으면 발아래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요청하는 녀석이 또 있었다. 카라시안이 고개를 쳐들고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내세워 시샘하고 있는 것이다. 너울거리며 하늘하늘 춤을 추는 여인의 연보랏빛 치맛자락 같은 꽃!
-'나한테 관심이 없는거니?'-
아침부터 감성을 터치하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관심? 이제 내가 없어도 도결이가 널 친구해줄 텐데 나한테 조르니?"
-'이 치맛자락 같은 갸냘픈 이파리에 도결이의 감성을 꺼내기엔 아직 애가 어리잖아?'-
"유혹? 유혹이라 했어? 그럼 우리 남편이 널 보면 야시시한 꿈을 피우겠네!"
-'그냥 섭하지 않게 봐주세요! 나의 이 아름다움은 너 유림이를 위해서 있는거야! 그 통치자가 널 심심하지 않도록 날 보냈단 말이야! 날 싫음 이 꽃 금새 시들게 할거다!'-
"너 점점 도도해 지는 구나! 움직이는 친구하나 소개해 줄께! 창밖을 내다봐 봐! 잘 안 보이면 꽃봉오리를 길게 빼면 보이거든! 그렇다고 이웃 아줌마들 보는데서 창밖으로 꽃을 내밀지 말고 혹 이쁘다고 분양해 달라고 하면 널 포기나눔 해야 될거야! 보이지? 보여? 안 보여?"
-'안 봐두 다 알아! 저거 바람개비? 걔는 나하구 차원이 달라'-
"나 없을 떼ㅐ 쟤하구 놀아두 돼. 바람개비도 심심하다고 투덜거릴 때가 있거든! 그리고 저 바람개비는 유림이 거야! 나라고 생각하고 말좀 붙여봐! 남편이 날 위해 만들어 준 거다!"
-'피~이 난 살아있는 생명이 좋아! 잰 바람이 불 때만 움직이잖아!'-
아침 실갱이를 하는 동안 남편이 잠에서 일어났다.
"뭔 소리가 요란한겨?"
"요란? 무슨?"
난 속으로 대화 했는데....!
"소근대는 소리가 크게 나던데 누구하구 이야기한 겨?"
"....?"
내가 카리시안하고 꽃같은 대화를 소곤거렸는데 남편 귀에 요란하게 들릴 정도면 이거 내가 남편에게 텔레파시 보내는 듣는 훈련을 시켜줘서 소리가 새어나간 것이 분명하였다.
"얼마나 크게 들렸어요?"
"창문을 여는 소리처럼 들렸는데."
"뭐라고 했는데요?"
"꽃이 예쁘다고...."
"그리고요?"
"오늘 날씨가 좋아 바람개비가 멈추어 서서 햇빛만 쪼이고 있고 카리시안이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는 걸 자기가 안 된다고 이웃 아줌마한테 들키면 집에 다시오기 힘들다고..."
"그리고 또요?
"오늘 도결이가 유아원 안 가고 카리시안 하고 놀면 안 되냐고 꽃이 조르니깐 당신이 아기 밥도 니가 줄껴? 라고 반박하고..."
"그리고 또요?"
"오늘은 집에서 예쁜 꽃하고 꽃담이나 하고 있었으먄 좋겠다고!"
"글구 또 뭐라 했게요?"
"나하구 꽃하구 집에 함께 있는 거가 젤 좋다고.... 글구... 근데 내 말이 다 맞나?"
"다 맞는 거 같은데 하나만 비슷하네요!"
부부는 닮는다고 했다. 설마하니 초능력까지 닮을려고 도결이라면 인정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옆에 와 있는 아들녀석이 고개를 끄떡였다.
-'엄무이 마리 다 마자!'-
출근한남편은 회사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도면을 그려나갔다. 서서 그려도 말끔하지 않던 자동제도판과는 다르게 달리 편안히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고 숫자를 입력하면 그림들이 그려졌다. 지우개 가루가 떨어지지않아 청소할 일도 줄어들었다.
"정말 수월하네요. 정말로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해주네요!"
남편은 손가락 몇 개만 움직였는데 컴퓨터가 알아서 삭삭 다 그려내었다. 다만 복잡한 그림을 그리다보니 옆에서 말을 걸어도 별 답변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일이라 보는 것만도 즐거웠다.
큰 그림 뒤에 가려진 작은 그림은 마우스를 움직여 커서를 갖다대자 그림이 엄청 커졌다. 크게하여 선을 긋고 지우고 색깔을 입혀 구분하고 부품을 클릭하여 끄집어 내니 칫수가 매겨지고 옆으로 옮겨가 '착' 소리 한번에 쌍둥이 그림 만들어내고.... 나중에 다 됐다 싶음 필요한 부분을 그림자로 가리고 프린터 그림을 누르니 도면이 플로팅 되었다.
'이게 더 발전해 가면 나중에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눈빛만 보내도 그림이 완성되고 가상공간 스스로가 지들 맘대로 자동으로 쇠를 녹여 부품을 깎고 완성품이 나오겠지!'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런 일도 번거롭고 로봇들이 알아서 철광석을 분류하자마자 부품들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고 더 시일이 지나고 문명이 발전하여 내가 태어난 시점을 지나면 가상의 공간에서 금속이 분자형태에서 분류가 되어 합성되어 만들어지는 과정마저 생략되고 가상공간에서 꺼내오기만 하면 되겠지.
그러다가 먼 미래에는 신경세포를 입혀 만든 제품들이 완성후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미래 문명은 그래픽 안에 존재하는 공장으로부터 허상을 그려 넣으면 물건이 되는 생산과정을 갖고 있었다.
지금 남편이 만지고 있는 컴퓨터 역시 제도기라는형틀을 벗어나 가상의 공간을 활성화 시키는 문명의 초안을 잡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분명하였다.
이러한 첨단의 기능들은 아직 가상공간의 초보시기지만 누군가의 두뇌에서 나왔다는 것은 미래사회의 우위에 아직 인간이 군림하는 이치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였다. 컴퓨터는 가상을 만들고 그 공간은 우주 크기에 비례될 만큼 무궁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과거에 빗대어 연상해 보면 모양은 다르지만 컴퓨터 안에는 무한한 가상의 물질이 존재하며 형상이 있고 실존하는 허구가 존재하였다. 아마도 더 진일보한 가상세계를 구성한다면 우주 먼 곳이라해도 금새 한 바퀴 돌아오는 그런 여행도 가능성 있어 보였다. 지금 내 과거에서는그렇게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미래의 하늘은 청량하고 모든 사회질서가 깔금한 것은 모든 산업의 생산 공정이 가상의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가상의 공간은 가상공간 안에서도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청소라는의미의 다른 뜻을 가진 소멸이라는 단어 하나에 가상 공간은 말끔해 졌다.
그러니 인간이 편리한 생활을 누리며 하는 일은 가상의 공간 여기에서 말하는 컴퓨터 안의 공간을 다스리는일과 숨쉬는 일, 먹고 노는 일, 눈으로 관찰하고 입으로 지시하는 일이 인간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가상의 공간도 발전이라 하는 번식을 통해 방대한 양의 테이터가 늘어나면서 '팽창한다고 하는 우주의팽창론'과 비교되면서 컴퓨터 안의 가상세계는 차원만 다를 뿐 우주와 같은 부류였다.
태초의 무의 세계에서 풀들이 싹을 틔우듯 데이터가 형상화 되어 가상의 인물들이 출현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을 때 우성인자 하나가 지배자가 되어 나타나고 이후 인간이 있는 자연계마저 지배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었을까?그 지배자가 나를 찾아오는 이유에 앞서 나는 궁금한 것들을 정리하여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그러한 사소한 꿈을 그려보며 잠시 떠났던 상상의 나래에서 남편이 하는 일로 다시 돌아왔다.
남편은 열심히 가상 공간을 두루 살펴보고 있었다. 이작은 가상의 공간은 미래로 가는 초입임에도 그 안이 끝없이 넓었다. 아마도 남편의 상상을 그려 넣는 일로부터 가상공간은 더욱 넓혀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직접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세상에서 왔기에 그 내용을 일부나마 알고 있었다.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지상에 실존하는 공장들은 다 없어질 것이다.
또한 가상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모든 재품에는 핸조와 같이 생명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지금 미래에서 날아오는 비행접시처럼 금속체에도 생명을 입혀놓은 것처럼 말이죠.
구시대로 와서 남편이 사용하는 컴퓨터라는 것으로 부터 그림이 그려지는 사실을 나는 처음 보았다. 인천의 공장에 있을 때에도 남편이 하는 일은 부품을 그리는 설계를 도맡아 하였지만 컴퓨터는 단지 문서 작성용으로만 사용되어 단순하게 손글씨를 대신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 단순한 기능이라도 가상의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었다.
세세한 부분을 알고 나자 비행접시라 명한 날틀이 미래의 타임머신으로 변천하고 발달해나간 것처럼 가상공간의 공장도 이곳의 컴퓨터로부터 허구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존재하게 됨으로써 시초가 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손길 가까운 주변에 미래 세상의 첨단의 원천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미래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덧붙여보자면 인간도 발달하게 된답니다. 의미야 어떻든 진화의 과정을 뒤로하고 인체내의 유전자를 변이시키는 일이 그것이랍니다. 모두가 예견하고 또 알고 있듯 사람의 수명도 인체내의 면역기능을 강화한 재생기능을 유전자에 보강하는 일이 그것이죠. 상처가 나거나 피부 조직의 일부가 잘려나가도 봉합수술 없이 금새 아물게 하는 의술이며 인체 치유의 기능이랍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인간의 게놈지도가 밝혀지고 파악이 끝났음에도 치유나 재생, 완치가 더디고 외과 수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직 기술의 미래화가 덜 되어 있는까닭이랍니다. 그렇지만 구준한 진보의 행렬은 언젠가 그 미래의 의술에 도달하겠지요.누구나 겪어보았듯이 상처가 났을 때 치유가 되는 일을 알고 있지요. 그것은 인간의 신체가 치유와 재생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그점을 살려 인체내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하더라도 인체에 침투한 세포 구성물인 영양소가 부족분을 재빠르게 채워주는 역할이 미흡하기에 상처의 치유가 늦는 것이랍니다.
인간의 몸 뿐만이 아니라 영양소의 기능을 향상시켜 영양소 안에도 인체내에 빨리 반응하게끔 활성화시키는 첨단 바이오 기능이 탑재 되어야 한답니다. 우리가 입으로 먹는 음식물은 아직 흡수성장의 기능이 늦답니다. 미래의 음식이 양으로 결정되지 않고 효능을 갖춘 영분추출물로 구성되어 신체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배부름과 의약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랍니다.
미래의 첨예한 문명은 모두 원시적인 것으로 부터 기능을 발달 시켜 온 것이죠. 어떤 것은 미래지향적이고 어느 것은 불편하고의 문제는 개선의 문제랍니다. 과거 석기시대의 돌도끼 문화가 불편하다고 그 기초나 발달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유압용 강철 해머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우리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미래의 첨단 문명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근본이라는 점이죠.
아직 발전 단계에 있는 과거에서 문명이나 물질들은 진화를 거쳐가는 중이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직접보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압축시켜 영사기의 필름처럼 일천 오백년의 세월을 빨리감기로 돌려 본다면 그 발달 과정을 진화과정처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밤바람이 차거웠다. 창문을 열어보니 저녁별이 눈을 깜빡거리고 아직 어두움이 옅은 대기사이로 바람개비가 보였다. 차가운 것을 못 느끼는 구 시대의 금속으로 만든 바람개비는 바람만 불어주면 좋아라 돌아간다. 바람개비는 나보다 바람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우쳤다. 왜 내게 말이 없었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질않았지만 이제야 답을 생각해 내었다. 바람개비는 바람을 제일 좋아한다. 자기를 만들어준 남편보다 유림이꺼라고 이름하였음에도 나보다 바람을 더 사랑한다. 아마도 말을 하고 싶을 때는 바람 속에서 바람에게만 조잘 댔을 것이다.
내가 키가 조금 크다면 바람이 없는 날 까치발을 하고 팔을 길게 뻗어 바람개비를 돌게 할 수도 있었는데.... 어쨋든 지금은 차가운 바람을 맞아 잘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참! 내 능력이 있었지! 그걸 시험해 보는 거야! '
나는 잘 돌아가고 있는 바람개비를 멈추어 보려고 내 깊은 심장에 힘을 쏟아붓고는 손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하나! 두울... 세에~엣!
바람을 맞아 잘 돌아가고 있는 바람개비가 뻑뻑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도는데 억지스런 모습이었다.
-'아야! 힌들게 왜 날 세우는 거니?'-
그동안 별 말이 없던 녀석이 반응을 보였다.
'그거였었네! 근데... 바람이 없는 날.... 저걸 돌려서 돌아가며...느..은 누가 보면 귀신 씌였다고 할까봐 그것도 맘대로 해선 안 되겠네!'그렇다고 바람 없는 날 바닷가에 서 있는 풍력 발전기까지 모두 돌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재밌을까나?
"하는 수 없지 뭐...! 너 하구 싶은 대로 하렴!"
빙글거리며 쳐다보는 바람개비를 나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창문을 닫았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아이는 방에 들어가 소꿉놀이가 한창이었다. 낮에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을 아이와 어울리며 남편은 아이사랑을 실천하는 중이었다.
나는 텔레비젼을 켰다. 채널은 거의 남편의 취향에 고정되어 있었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은 국가적 행사가 있어 지극히 좋은 소식이거나 천재지변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낼 때만 찾았다.
작은 손놀림에 의해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채널은 남편이 좋아하는 미스터리를 규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고전과 역사안에서 흐르는 과거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들로 긴 시간이 이어졌다. 남편은 아마도 나를 만나고 역사에 관해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나 역시도 텔레비젼을 별로 즐기지 않는 습관이 있었으나 오늘은 그냥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젼을 켰다. 아마도 남편이 만든 비행접시를 타고 조종하려는 생각에 머물다가 비행시에 정면 주시외에도 좌우 측면과 후면을 봐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에 몰입하였던 까닭이었다.
거기에 모니터가 있었다.
나도 텔레비젼을 본다면 남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다른 소식보다 호감이 더 갔다. 다큐멘터리 중에도 미스터리한 내용들은 사실 나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침 프로그램에는 남미 안데스산맥 고원의 산악 활주로 이야기와 나스카 평원의 그림들과 테평양 근해 바다속 깊은 곳에 갇혀있는 석축 조형물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추픽추라 불리는 웅대한 고대 마야 문명들은 미래에서 만나는 문명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궁금하였다.
미래의 기술이라면 이삼 십 톤의 바위쯤이야 그냥 종이짝 들듯이 들면 되고 쇳덩어리처럼 단단한 바위라도 칼로 무자르듯 하던가 아니면 옷에 묻은 먼지 털어내듯 쓸어내리면 각 잡고 평면에 광택 내는 일쯤은 일도 아니었다. 가상의 세계에서처럼 가상공간을 나온 이들에게 있어서는 가상의 세계를 적용하면 무게는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무게감이라는 것은 인간처럼 숨을 쉬고 있는 현실에서 태어난 이들이 받는 제재이기 때문이었다. 무게도 시간이나 차원을 이야기하는 공간처럼 제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는 땅이든 물속이든 들추기만하면 엄청나 보이는 석축구조물이 드러났다. 그렇게 우리 사람의 눈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의 흔적을 보면 과거에도 발달된 문명이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묵직한 건축물들의 잔흔들과 불가사의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억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이 시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상상하는 것처럼 나도 어설픈 상상으로 과거를 추측하였다.
나도 이 시대 과학자들처럼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생겨났다가고 발달하고 그러다가 또 인간의 욕심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고 땅이 한번 용트림하면 뒤틀리고 그러면 다시 원시시대가 되고 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처럼 지구위의 생명과 문화도 되돌리기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잠깐이나마 미리가 보여준 일들을 잊어 벼렸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문제가 과거 아득히 먼 곳의 문명의 발생 이전에 이루어진 일들이라 불가사의 하다며 내 생각처럼 텔레비젼에서 말하고 있었다.
내가 텔레비젼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카리시안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조금 달랐다. 물을 달라던가 양분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늘 부족한 것은 대화 상대였다. 도결이와 이야기하다가 자기의 능력에 못미치면 그냥 말을 닫고 삐침의 조짐마저 보였다. 나는 카리시안을 향해 늘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느낌을 보냈다. 그러다 혹시 지구의 역사를 대강이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올라 생각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난 배가 고프거나 하질 않아!'-
내 생각보다 먼저 말을 건네왔다.
"그럼 넌 숨을 안 쉬니?"
-'아직 몰랐어? 영양 호흡한다는 거! 난 대기에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거든. 그게 내 호흡이고 밥이지!'-
"여기가 미래는 아니잖아?"
-'그런건 상관없어! 공기 중에는 물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들어 있으니 필요한 것만 고르면 되는 거야! 근데 여행 보내줄까? 궁금한게 많지? 가서 보구와!'-
아니.... 내가 궁금하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저 카리시안은 대체가 뭔 괴물이야?
"나야 궁금한 게 있기는 하지..."
-'긍께 다녀와, 보내줄께'-
'카리시안 너도 데려가 줄까? 저 먼 곳으로 함께 가 볼텨?"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냥 빈말처럼 물었다.
-'나는 비행선에 오르면 덜덜 떨려서 싫어! 또 차원이 다르거나 공간이 바뀌면 공기 색깔이 달라져서 한동안 멀미를 한단 말야... 그게 내가 사람이나 동물들과 다른 거야! 혹시 숨을 안 쉬어도 괜찮은 핸조들이라면 몰라도... 이곳에 와서 멀미를 하는 통에 한참을 말도 못했단 말이야! 얼마나 답답한지 넌 아니?'-
어둠이 오는 사이로 별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허공에 그림자로 보이는 형체가 어둠사이에서 내 앞에 희미하게 나타났다. 궁금하게 여기던 과거의 문명에 대하여 미래에서 내게 해답을 줄 수호자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 지배자는 카리시안의 예견을 잘 따랐다. 아님 오겠다는 메시지를 카리시안에게 보냈을지도...
'통치...자..님?'
내게 어둠이나 빛으로 다가올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는 내가 상상하는 것들을 만나게 해줄 수 있고 머릿속의 관심을 이끌어 낼만한 능력자였다. 미리도 있지만 미리는 그의 손안에서 만들어진 작은 애완동물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미리의 능력이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나와 같이 미스터리한 현상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궁금하던 차에 누군가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면 고달픈 여행이 되더라도 꼭 밝혀내어 세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나의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순차적 질서 없이도 내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 되었다.
내가 먼 곳으로 부터 이동해온 터라 여자들이 갖는 관심으로는 투박스럽다 할지모르지만나의 과거가 이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니었던 만큼 미래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적었다. 나도 시간 여행자글이 갖은 간심처럼 더 먼 과거로 부터 이어온 지구상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알고 싳었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만큼 다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좀더 먼 과거를 알고 싶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와 여행도 해 보았고 궁금증이 어느정도 해소되기는 하였지만 알고자 하는 바가 점점 더 많아졌다.진실을 캐고 싶다고 말해야 어울릴겠지만... 그럴러면 확실히 아는 통치자 님께 알아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던 참이었다.
고생물 출현 이전시대의 실상과 현실을 초월하여 드러나는 과거의 유물들에 시대의 관심이 소려 있는 만큼 그 원인들을 깊이 파헤쳐 알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어쩌면 나는 이번 여행을 한 다음 궁금한 것들에 대해 시원한 답을 얻는다면 내 기억을 쓸어내려 하얗게 변모시키고 시간에 대한 나의 능력을 모두 접으려고 마음먹었다. 미래나 과거로 갈 수 있는 능력을 영구히 닫고 남편과 똑같은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싶었다. 아직 나의 능력이 미래든 과거든 생각하는대로 이동할 수 있는 지금에 알고자 하는 바를 다 알아낸 다음 지나온 것들을 모두 벗어던지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이 현실, 구닥다리라고 생각하는 21세기에 사랑하는 이와 좋아하게 된 모든 것들과 함께하며 영구히 머물고 싶었다. 궁금한 것들에 대해 알고 나서는 알아낸 기억들이 다 지워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21세기를 좋아하고 그이가 있는 이 현실을 갖고 싶고 함께 누리고 싶었다. 긴 수명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행복에 매료된 지금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없이 몇 백년을 산다해도 의미가 없었다.
'저를 과거로 데리고 가서 고대 유적의 발생과정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대로 나름 자격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근간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나는 텔레비젼이 나를 교육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갖가지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다시 솟아 올라왔다. 달리 생각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으로 부터 따져 보면 과거라는 시대적 유물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인류의 과거라는 것에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가상공간을 지배하는 통치자님은 나의 감성을 지배한다고 하였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떠올렸다. 그러자 곧바로 그 생각이 날개를 달고 날아 다른 현실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겨죠?" 라는 나의 짧은 질문은 벌써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생각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나는 그의 손짓으로 비행접시 안으로 들어와 과거를 날고 있었다. 가상공간을 지배하는 이가 그림자 불빛을 띄워 어둠으로 부터 윤곽을 채우며 나타났다.
'사람...?'
그러한 모습에서 별로 다르지 않았다. 가상의 공간을 통치하는 지배자라고 해서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나와 생김새가 다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기상천외한 형상을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그는 가상공간의 통치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상의 공간을 걸어나와 나처럼 형체를 입고 있었다.
-'나는 너의 일부를 만들고 정신을 지배하는 통치자다. 네게 보여지는 특별한 이유는 그 때문이니라!'-
"그러면 제 부모님 되시나요? 저는 인간이고 통치자님은 가상현실에서 존재하는 줄 아는 데요?"
-'너의 유전자에 심겨진 나와 연관되는 심이 하나 있다. 너도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이 너와 나의 연결을 가능케 하는 끄나풀이니라'-
"연결 고리요?"
-'그것은 시간을 벗어날 수 있는 타임 유전자다. 인간에게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을 네게 실현 시켰다. 수 없이 시도해 보았지만 다른 인간들의 유전자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기까지 하였다. 너의 복합 유전자들 중에는 유체이탈을 가능하케 하는 유전자 조합이 있어 가능하였다. 너는 네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니라'!-
'유전자 낙서?'
내 몸에 특수기능을 심어 놓았다고?
나는 내 능력이라고 하는 그 특수 기능을 심기 위해 삶을 찾지 못한 수 많은 배아가 있다는 소리에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더구나 첨부된 타의 유전형질을 내 몸 안에 몇 개, 아니면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얼마나심어 놓았는지도 궁금하였다. 갑자기 촉이 섰다.
어쩌면 그가 가상의 세계를 통치하는 만큼 나는 이쪽 유한한 세상을 지배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통치자는 생각의 혼돈을 막기위해 자신의 출현에 대해 설명하였다.
서기 3300년대 초의 일이었다.
-'가상에서 스스로 존재하던 데이터 중에 우성인자 하나가 특출하게 되었단다. 말하자면 가상의 세계에서 인간처럼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체가 생겨났단다. 그리고 스스로를 번식하듯 개체가 늘어나 무리를 이루었고 그중하나의 우성 인자가 스스로 가상공간을 통치하며 우두머리가 되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단다.'-
통치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 가상의 제왕이라는 자가 비범한 능력을 갖추게 되자 인간들이 욕심을 부리게 되었단다. 순리를 따라 미래로 가는 것은 단순하다며 지구 창조의 시점으로 올라가 지구 개발의 야심찬 계획을 수행키로 마음 먹었던 것이란다. 그들은 지구의 번창을 주창하는 가설을 세우고는 태초의 지구에 첨단 문명을 일으킨다면 서기 3300년에는 어마어마한 발전이 있겠다는 계산을 하게 된 것이지! 생각해서도 안 되고 실현해서는 안 될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단다. 태초의 시기로 올라가 문명을 일으켜 놓고 다시 서기 3300년으로 돌아오면 그들이 사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발전을 한다는 계산을 앞세운 것이지! 그러한 명분을 내세워 이미 만들어진 타임머신을 타고 3300년의 현실을 과거로 가져가 40억 년 이후에 태어날 자신과 미래의 발전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지! 그들은 태초의 지각이 여문 가장 오래돤 과거로 이동하였단다. ...이해가 되겠니?'-
"네! 아마도 과거를 개척하여 발달시켜놓으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서기 3300년의 세상에서는 문명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겠죠!"
-'그들의 욕심에 가상의 지배자가 합심하였단다. 그들의 행위는 반란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시간에 대한 횡포와 인류의 흐름을 역행하는 역모였음이 분명하였단다. 좋은 의미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현자와 과학자들은 그 행위를 막으려고 애썼지! 미래의 최첨단 문명을 가지고 태초로 가는 일은 지구를 혼란시키는 일이고 인간의 역사가 뒤엉키는 계기가 된다며 그들을 제지하였지만 막을 수가 없었단다.'-
욕심의 한계는 없는 것일까? 통치자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결국 잘못돤 편견을 가진 이기주의자들이 아주 먼 미래의 문명을 가지고 태초의 평원으로 올라갔다. 지구가 막 눈을 뜨고 걸음마를 할 그 시점. 그 태초의 평원....
땅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무형의 공간에 지구 건국의 역사를 시도하려고 서기 3300년의 신기에 가까운 완벽한 문명이 태고에 자리하게 돠는 이유였다.
-'그때는 지구가 다 여물지 않은 상태여서 문명을 세운 자리에 지질학적으로 맨틀의 상태가 안정되어 있지 않았단다. 더구나 태양계의 행성 운항도 제 궤도를 제대로 찾아가지 못 하였던 시기였지!'-
"....!"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네가 원하던 궁금한 것을 볼 수 있을 게다.!-
"저들이 우리를 볼 수는 없나요?"
-'볼 수는 있으나 우리는 저들과 단절된 시공간을 이용하고 있어서 접촉하거나 할 수 있는 차원은 아니란다. 가까이 가보자꾸나.'-
처음 기초를 놓는 곳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미리와 함께 갔던 곳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시간대였다. 그러나 그때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저들은 가상세계의 힘을 빌려 노동력을 필요로하는 거대한 핸조들을 만들었단다. 더구나 그들이 타고 온 거대한 크기의 타임머신은 변신할 수도 있어 일하는 로봇으로 변하여 무자비하게 보이는 노동을 해결해 주었단다. 아마도 미리와 함께 왔을 때는 차원에 가려져 저들을 볼 수 없었을 게다.'-
"...?...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엄청난 일이네요!"
그 통치자의 말을 빌려보면 그들은 태초의 기반위에 거대한 석조건축물을 계획하고 돌을 다듬어 높게 쌓아 올렸다. 크기가 거대한 핸조들의 노동력은 엄청난 무게를 이동하는 힘을 가졌고 2~30톤 무게의 돌은 가볍게 들려졌다.
내가 본 선사의 문명은 용암이 솟구쳐 지나간 자리에 굳은 암석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그 기초가 지구의 용트림을 막아줄 거라고 믿고 태고의 시대에 맞게 돌의 문명을 만들었답니다. 미래의 건축기술로 정교하고 웅장한 석조건축물을 만든 것이었죠.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문명은 번창을 거듭하여 불어난 인구와 더불어 지구의 여러 곳에 문명을 일으키니 선사의 평원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었죠.
.... 풀 한포기 없던 태고의 벌판....
용암이 굳어져 모래 먼지조차 구경하기 힘든 척박한 곳!
황량한 대지에 첨예한 문명이 기초도 없이 들어섰다. 돌도끼를 만들 사이도 없이 유압 강철도끼가 만들어진 것이다.
.... 결국 지구의 시간이 엉켜 버리고 말았다.
-'서기 33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막아보려고 애썼단다. 지구 탄생의 시기로 비행접시를 타고 올라가 태초의 문명을 만들어 혼돈을 야기시 할 초기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 예견하고 그와 맞설 제왕을 하나 더 만들었단다.'-
"그러면 지금 저와 함께 있는 분인가요?"
-'그렇단다'-
사이버 제왕의 반란이 있고 나서 새로이 만든 지배자는 가상의 세계를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탄생한 그를 '통치자'라 명하고 과거로 올라간 지배자의 힘을 견제하도록 데이터를 높이 올려놓았다. 그는 과거로 올라간 그들이 그들 스스로 만든 선사문명을 파괴하고 복구할 것을 명하였고 또 강력히 경고하였다고 했다.
-'경고한다고 해서 원상복구가 되겠니?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글구 여기가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진하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