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문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 바로 391년 신묘년조입니다. 392년부터 시작되는 광개토왕 정벌의 원인조입니다. 이에 대하여 정확히 얼마나 많은 해석이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한국 학설, 일본 학설, 중국 학설, 심지어 북한 학설까지,... 적어도 100개 이상일 것입니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어떻게 판단합니까? 어느 설명이 신뢰성이 있습니까?
여기에는 오로지 학술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져야지 불필요한 감정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저는 그 기준을 3가지만 제시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3가지를 다 만족하는 설명만 듣습니다.
1) 관문 1
삼국사기는 사건을 기록할 때 해와 달을 동시에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나, 광개토왕비문은 영락 몇 년 하고 사건의 해만 쓰고 달은 쓰지 않았다. 신묘년조 사건이 391년 몇 월에 발생하였는지 설명하는 지를 본다. 이를 설명하면 첫번째 관문을 통과한다.
2) 관문 2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그 이전에 있었던 두 나라 사이의 최초 전쟁을 본다. 건국 후 4백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두 나라 사이에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전쟁이 발생한 것은 369년이다. 그 369년 전쟁 원인이 몇 년 몇 월에 어떻게 발생하였는지를 설명하는지를 본다. 이를 설명하면 두번째 관문을 통과한다.
3) 관문 3
광개토왕비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 그래도 신묘년에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지, 즉 광개토왕비문이 있건 없건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 세번째 관문을 통과한다.
첫댓글 신묘년조의 판단 여부는 결정적인 원문이 발견되지 않는 한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 신묘년조 논란의 핵심이 백제 신라를 격파한 주체가 바다 건너온 왜인지 고구려인지 이중 누구인가가 논란의 핵심 관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