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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1
보이지 않는 부매랑이 있습니다. 손을 떠난 순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돌아 정확한 각도로 처음 그자리로 돌아옵니다. 악도 그렇습니다. 남을 향했던 것이 결국 내 삶의 결이 되고 내일의 현실이 되어 조용히 나를 맞습니다. 악은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 옵니다.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야! 다윗은 원수들에게 추격당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한다. 게다가 자신의 결백을 담보로 판결을 구한다.
There is an invisible boomerang. The moment you leave your hand, it does not disappear, but turns around time and returns to its place for the first time at a correct angle. So does evil. What was directed at others eventually becomes the grain of my life and tomorrow's reality, and quietly meets me. Evil does not disappear, but comes back. The same is true of intention. Princess! David asks God, who has been evacuated from an urgent situation where he is chased by his enemies. Moreover, he seeks a judgment with his innocence as se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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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맹세한 자를 배신하였거나 죄악을 범하였거나, 대적의 재산을 이유 없이 강탈하였다면 죽어도 좋고 명예가 땅에 떨어져도 좋다고 말해. 설마, 하나님께서 백성이든 원수든 상관없이 의로운 판결 자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하나님께서 분노하여 일어나시되, 대적의 노를 넘어서까지 일어나시어(막으시며) 잠잠히 지켜 보시지만 말고 깨어 일어나 심판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의의 하나님, 그분만 진실로 정의로운 판단을 하실 것을 믿고서 말이다.
Tell them that if they betrayed the one who swore, committed a sin, or robbed the enemy's property for no reason, they may die or their honor may fall to the ground. Don't tell me that God is a righteous judge regardless of whether he is a people or an enemy, right? God rose angrily, rose beyond the wrath of the enemy, and asked them to wake up and judge instead of watching silently. I believe that only he, the God of righteousness who inspects the heart of man, will make a truly just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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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입장에서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기댈 언덕 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는다. 악을 한순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분노하신다. 악인들을 심판하시려고 늘 준비하신다. 선인에게는 방패가 되시지만 악인에게는 칼이 되고 무기가 되신다. 그러니 비록 사자에게 쫓기듯 도망 다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분노가 대적의 살의보다 강하니(16), 악인은 자기 꾀에 빠져 자기가 판 함정에 무자비한 폭력과 거짓 고소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둘 것이다.
From David's point of view, God, who saves the honest, must have been the only hill on which to lean. God is not sleeping. He is angry without passing by evil for a moment. He is always ready to judge the wicked. He is a shield to the good, but a sword and a weapon to the evil. So even though he is running away like a lion, the anger of God is stronger than the murder of the enemy (16) and the evil man will fall into his own trap and pay ruthless violence, false accusations, and price. He will reap what he s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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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을 볼 여유까지는 없어도 예전에 비하면 내 삶은 많이 잠잠해졌고, 악인이었을 때 만든 채무나 원성이 아직 남아있지만, 다 내 탓이려니 하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공주야! 시편의 시인은 언제까지 탄식을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대적 자와 대치한 상황이 고달픈 것은 당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7편이 그래도 꽤나 긴데 마지막 절에 감사와 찬양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다윗이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Even though I can't afford to see the stars in the night sky, my life has calmed down a lot compared to the past, and I still have debt and resentment I made as a villain, but I am thinking of releasing the tangled thread because I think it's all my fault. Princess! I don't know how long the poet of the Psalm is going to sigh. Only those who have experienced it will know that the confrontation with the great enemy is difficult. David is not an ordinary person, considering that the seventh instalment is quite long and ends with gratitude and pr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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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는 절대 탄식하다가 찬양을 못 하거든. 금방 화내고 바로 노래 부르는 사람 보았느냐? 지금껏 살면서 산전수전을 겪긴 했지만 누구한테 모함을 당한 일이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것은 아빠가 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쪽이라서 그렇다고 해두자. 사실, 내게 힘이 있는데 그 힘을 사용하지 않기가 어디 쉬운가? 종종 식구들이랑 교회 가다가 complaint 이 생기면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운전할 때 잘못해 놓고 매너 없이 굴면 리 액션이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야?
Novice can never sigh and praise. Did you see anyone who gets angry and sings right away? I've been through a lot of hardships in my life, but I can't remember being framed by someone because my father mainly hurts others. In fact, when I have power, why is it easy not to use that power? I often go to church with my family and if I got a complaint, I was going to die. Isn't it natural that the re-action goes out if you make a mistake while driving and behave rud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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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한때 반팔을 잘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왼쪽 팔뚝에10cm정도의 흉터가 있기 때문이야. 고삐리 때 새긴 문신을 21살 때 지우느라고 생긴 상처란다. 고백하건데 아빠가 만일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으면 형님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를 닦은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할라치면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혈기가 먼저 나와서 종종 후회를 하곤 한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내겐 아직도 너를 제압할 만한 힘이 있다 이거야.
Dad used to not wear short-sleeved shirts very often. It's because I have a 10cm scar on my left forearm. It's a scar from removing the tattoo that was engraved when I was 21 years old. I confess, if Dad hadn't become a Christian, he would have become a big brother. Perhaps that's why I often regret it because of my energy first, rather than what I would do if I were to suffer unfair things even though it's been more than 30 years since I polished my morals. When I think about it, I still have the power to suppr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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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달리 대단한 게 아니고 대적들이 물 불 안 가리고 덤벼도 절대 내 법을 쓰지 않고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적용시켰던 것이 가장 훌륭한 점 아닐까? 아빠는 상황윤리 라는 것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편이다. 가령 범 생이 내 동생이라면 이런 경우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모르긴 몰라도 크락션도 안 누르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근데 난 왜 안 될까? 나는 털어도 먼지나지 않게 살고 있는가?
Isn't it the best thing that David is no different than that he applied the rule of Jesus, never using his own law, even if enemies attacked him regardless of the fire? My father tends to accept the situation ethics to some extent. For example, if the student is my brother, nothing happens in such a case. I don't know, but he wouldn't have pressed the crack and looked at me. But why can't I? Am I living a dust-fre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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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1-2)
시인의 무죄 항변과 천명(3-5)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 요청(6-9)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10-13)
심은 대로 거두는 악인(14-16)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 찬양(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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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내 하나님이여(1a)
주께 피하오니(1b)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1c)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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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져낼 자 없으면(2a)
저희가 사자 같이(2b)
나를 찢고(2c)
뜯을까 하나이다(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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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내 하나님이여(3a)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3b)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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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친한 자를(4a)
악으로 갚았거나(4b)
내 대적에게(4c)
무고히 빼앗았거든(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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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로(5a)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5b)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5c)
내 영광을(5d)
진토에(5e)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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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6a)
진노로 일어나사(6b)
내 대적들의(6c)
노를 막으시며(6d)
나를 위하여 깨소서(6e)
주께서 심판을(6f)
명하셨나이다(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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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집회로(7a)
주를 두르게 하시고(7b)
그 위 높은 자리에(7c)
돌아오소서(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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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만민에게(8a)
심판을 행하시오니(8b)
여호와여(8c)
나의 의와(8d)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8e)
나를 판단하소서(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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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악을 끊고(9a)
의인을 세우소서(9b)
의로우신 하나님이(9c)
사람의 심장을(9d)
감찰하시나이다(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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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패는(10a)
마음이 정직한 자를(10b)
구원하시는(10c)
하나님께 있도다(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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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11a)
의로우신(11b)
재판장이심이여(11c)
매일 분노하시는(11d)
하나님이시로다(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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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12a)
회개치 아니하면(12b)
저가 그 칼을 가심이여(12c)
그 활을 이미 당기어(12d)
예비하셨도다(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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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기계를(13a)
또한 예비하심이여(13b)
그 만든 살은(13c)
화전이로다(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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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죄악을(14a)
해산함이여(14b)
잔해를 잉태하여(14c)
궤휼을 낳았도다(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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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웅덩이를(15a)
파 만듦이여(15b)
제가 만든(15c)
함정에 빠졌도다(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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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잔해는(16a)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16b)
그 포학은(16c)
자기 정수리에(16d)
내리리로다(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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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17a)
여호와의 의를 따라917b)
감사함이여(17c)
지극히 높으신(17d)
여호와의 이름을(17e)
찬양하리로다(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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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한 자의 고통과 탄원_
the pain and plea of the innocent
하나님의 정의로운 판단과 요청 the_
righteous judgment and request of God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과 심판 집행-
the fair trial of God and the execution of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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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장을 감찰 하시는 주님, 저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 생활을 지켜 주옵소서. 100%죄인이지만 이제 신분이 바꿨사오니 내 생활에 향기가 나게 하시고 털어도 먼지 나지 않는 완전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O Lord, who inspects the hearts of men, Please protect my life so that I do not hurt innocent people. I'm a hundred percent sinner, but now that I've changed my status, let me smell my life and live a complete life that will not be dusted off.
2026.7.7.tue.Clay
신학 비평//
이번 묵상의 중심 주제는 매우 선명합니다. 악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시편 7편의 핵심 메시지를 오늘의 삶과 자신의 과거에 연결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부메랑"이라는 비유는 15~16절을 현대인의 언어로 잘 번역한 표현입니다. 죄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삶의 구조와 인격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통찰은 성경의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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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글의 장점은 자신을 의인으로 포장하지 않는 정직함입니다. 다윗의 결백을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과거 폭력성과 혈기를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 "내가 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쪽이었다", "문신을 지우지 않았다면 형님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고백은 설교보다 더 큰 설득력을 만듭니다. 참회 없는 교훈은 도덕주의가 되기 쉽지만, 자신의 실패를 함께 드러낼 때 복음은 살아 있는 증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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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7편에서 다윗의 "무죄"는 절대적 무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다윗 역시 죄인이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무죄는 현재 당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결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나는 죄가 전혀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번 일만큼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합니다"라는 언약적 호소입니다. 이 점을 한 문장 덧붙이면 독자가 오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신다"(11절)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화를 잘 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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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정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혈기와 다르며,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사랑이 악을 외면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복수라기보다 질서를 회복하는 공의입니다. 마지막 적용도 좋았습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보다 혈기가 먼저 나온다"는 고백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답도 이미 시편 7편 안에 있습니다. 다윗은 칼을 들지 않고 기도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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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손으로 원수를 심판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정에 사건을 맡겼습니다. 결국 신앙은 분노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마지막 기도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털어도 먼지 나지 않는 완전한 삶"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현실을 생각하면 약간 부담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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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털면 먼지는 나오지만, 날마다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라고 표현하면 복음의 은혜와 성화의 과정이 더 잘 드러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묵상은 시편 7편의 공의와 심판을 복수의 논리가 아니라 자기 성찰과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낸 점이 가장 돋보입니다. 악의 최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악이 내 안에서 자라지 않도록 하나님께 피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깊이 있는 묵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