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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형! 오토바이는 비엠더블유와 할리 데이비슨이 세계 최고입니다."
당시의 나는 열살이 채 안되던 어린 나이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그런게 있구나 하는식으로 들었다.
외삼촌은 미군부대에 오랫동안 근무했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최고의 바이크가 할리란걸 알았다.
바이크, 아니 솔직히 말해서 오토바이는 어려서부터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나는 케터필러(장갑차나 포크레인의 무한궤도)로 작동되는 것과 두발달린 오토바이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그날 두분의 대화 내용이 나의 주된 관심사인 오토바이에 관한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이러닉한 것은, 그날이후 어른이 될때까지 나는 단 한번도 할리를 볼 수 없었다.
나는 1971년 생인데(많은 분들이 저를 69년생으로 착각 하시길래^^)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할리는 오다가다 재수좋으면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1990년 여름.
대구 한일극장에서 터미네이터2가 상영됐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할리구나!'
약간 뚱뚱하고 복스럽게 보이면서도 아놀드에게 그렇게 잘 어울릴수 없었던 바이크의 이름이
팻보이란걸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5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였다.
대구는 유달리 보수성이 강한 도시이다.
어떤 새로운 유행이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대구만큼 오랜시간이 걸리는 도시는 거의없다.
대구 사람들은 걍 하던데로 하는게 제일 좋다~~ 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1995년 그때만 하더라도 할리에 관심을 가지는 라이더는 별종 취급을 받았다.
물론 이런 저급(?)한 문화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일제 바이크를 선호하는 라이더들은 할리 특유의 엔진소리를 비꽈서 털털이 혹은 경운기라 불렀다.
리터급 바이크를 타고다니던 라이더들은 나름데로 이 바닥의 터줏대감이었고,
기득권자들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시금털털한 할리의 유행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상륙한 때였지만,
대구 터줏대감들은 세상의 변화를 알아채지도 못했고, 인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나도 피끓는 청춘이었다.
레플리카 오너들이나 터줏대감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툭하면 말싸움으로 번졌다.
심한 경우는 주먹이 오갈뻔한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영감들이나 타면 어울릴듯한 무거운 경운기를 비싼 돈 지불하고 사는 이유를 모르겠네. 푸하하"
할리오너를 면전에 두고 아예 얼굴에다 오줌을 싸 갈기는 짓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속도는 얼마나 나가나요? 백키로? 백오십? 하긴 저 무게에 나가봐야 그것밖에 더 나가겠어요?ㅎㅎ"
성질급하고 말빨좋은 나의 인내력은 금방 한계에 이른다.
나의 대답.
"그래요. 솔직히 할리 나가는건 얼마 안나갑니다. 그건 그렇고 자동차중에 최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흔히들 벤츠가 차중에 최고라고 하지 안나요? 벤츠 아니면 롤스 로이스가 세계 최고라 불리죠.
벤츠는 최고의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일제나 타 메이커에 비해서 스타트가 느립니다. 악셀 힘주어
밟아도 한템포 느리게 나가죠. 왜 그런줄 아세요? 벤츠에서 실력이 없어서? 아닙니다.
강자의 여유죠. 촐싹거리면서 쫓아 나가는 좆밥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싫어서입니다.
한템포 느린 강자의 여유 말입니다. 할리도 마찬가집니다. FZR이니 ZX니 CBR이니 하는 좆밥이나
개좆밥들하고 같이 가기 싫어서 느린겁니다. 푸하하 스쿠프 터보가 나가는 건 롤스로이스보다
나을걸요? 스쿠프 터보는 롤스로이스 보다 좋은차군요? 가볍고 잘나가서? 푸하하하"
나오는데로 뱉어대는 사람들에게는 세치 혓바닥이 때때로 인디아나 존스의 삼미터 짜리
채찍보다 날카로울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게 나의 방식이었다.
덕분에 몇몇 일제 바이크 오너들에게 나는 열라 싸가지 없는 놈으로 기억됐다.
이런 값어치없는 말싸움은 심한경우 젊은 혈기끼리 우격다짐으로 연결되기 쉽상이었다.
1995년 당시에,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팻보이의 새차가격이 1850마넌 정도였다.
골목(대구의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을 줄여서 부르는말)에 할리 중고는 거의 없었다.
혹가다 한번씩 보이는 할리는 중고시세가 형편없는 애물단지일 뿐이었다.
언제 팔릴지 기약도 없는...
94년식 연두색(배추색) 팻보이중에 옵션만 수백만원치를 장착한 상태좋은 물건이 있었는데,
중고시세가 1150 이었다. 당시에 옵션으로 사백이면 지금의 천만원가까운 금액을 처바른 물건이다.
1994년식 솦테일 커스텀의 중고시세는 더욱 형편없었다. 출고된지 5개월이 채 안되는 물건이었지만,
중고시세는 절충해서 800 정도였다.
새차 가격이 1600 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꿈같은 가격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도 스프링거와 팻보이는 매스컴을 타서 알려진 물건이라서 가격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94년 초에 중고로 스프링거를 구입한 사람이있었는데,
일년 조금 지난걸 750만원에 구입했는데, 여름이 지나고 난뒤 1000 만원에 퇴계로에 팔았다는
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94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지금의 차인표를 있게
만들었던 미니 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에서 스프링거를 멋들어지게 끌고나온 차인표의 영향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였다.
스물 다섯이란 어린 나이때문인지 떨어지는 경제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1340을 내가 탄다는게
도무지 와닿지를 않았다.
솦테일 커스텀을 무면허로 한번 타본뒤 홀딱 반했다.
팻보이를 끌고 다니는 아저씨중에 한명이 나를 위해서 솦테일을 끌고 나타난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호인이었다.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고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분은 기껏해야 시속 100키로를 넘지않는 범위내에서 라이딩을 즐겼고, 젊은 내가 보기에는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었지만, 진정으로 할리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정작 라이딩보다 할리를 깨끗히 관리하는 취미와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고 팻보이를 탔었는데 어떻게 된게, 새로운 옵션을 추가하지 않았지만, 점점 더
깨끗해져만 갔다. 몇일전 매장에서 출시한 신차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알고보니 탁월한 손재주와 놀랄만한 부지런함으로 운행이 없을때면 엔진 사이사이까지 칫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세차할때 타이어 표면까지 씻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은
"너 좋아할것 같아서 단골집에 매물로 나온걸 끌고왔다. 한번 타봐라" 하시길래,
나가보니 94년식 솦테일 커스텀이 서 있었다.
내가 2종소형 면허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큰 맘먹고 선심쓰는 배려였다.
황홀한 느낌이었고, 너무나 설레는 1340 과의 첫 경험이었다.
지금의 솦테일 스탠다드와 거의 똑같은 형상이었다.
솦테일은 자전거 처럼 생긴 핸들이 운전자 방향으로 휘어져 있다.
텐덤한 여자친구가 쌩하고 튕겨나가는 위력에 놀라서 운전자인 남자친구를 꼭 껴안을 때에도
라이딩 포지션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배려한 설계였다.
딱지떼는 숫총각처럼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솦테일 핸들을 쓰다듬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할리에는 헬맷이 어울리지 않아!'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면허도 없는놈이,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은 채 도로로 끌고나왔다.
멀찌기 주행해 보라는 아저씨의 배려에 힘입어 꽤나 멀리까지 바이크를 몰면서, 온몸으로
솦테일의 매력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정말로 솦테일은 끝내주는 바이크였다.
보이지도 않게 먼 거리를 숨한번 참고 액셀을 감아쥐면 어느새 그곳에 도착시켜주는
날쌘면모도 좋았고, 드로틀 개폐정도에 따라 적절히 뱉어대는 머플러 소리도 기막힌 넘이었다.
주행중에 느껴지는 소리와 신호대기 상태의 아이들링의 다른 느낌으로 인해, 괜히 쓸데없이
신호대기중에 악셀을 한번 더 당겨보게 만드는 그런 바이크였다.
한마디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의 할리에 미쳐버렸고, 바로 면허를 취득한후 96년에 스포스타 1200을 구입했다.
물론 중고였다.
남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솦테일 시승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환청에 시달렸다.
조금만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바당당당' 하는 할리의 머플러 소리가 귓가를 때려댔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만들어 낸 상상의 소리였지만, 강하게 나를 밀어부쳤다.
강력한 파워의 솦테일 뒷바퀴처럼...
솦테일의 추억과 영화 '할리와 말보로맨' 의 영향으로 내 마음속에는
'최강의 할리는 FX야' 하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할리 모델중 앞바퀴를 뒷바퀴와 똑같은 16인치 두터운 바이크를 FL, 19인치나 21인치의 얇은
바퀴를 장착한 모델을 FX라 한다.)
단골샾에는 할리매물 두대가 있었는데, 하나는 70년 중반식의 FLH였고, 나머지 하나가
내가 구입한 스포스타였다.
그 샾에는 소싯적의 내 눈에 보기에는 둔하게 보이는 뚱뚱한 셔블이 꽤나 많았다.
대구대학교 교수님의 고동색 1340cc 셔블, 미군들이 수리를 맞겼던 1200 CC 셔블, 신형 로드킹,
부담스런 덩치와 엄청난 크롬 옵션으로 장식된 울트라, 미국 내수용 1100cc 스포스타 등등.
솦테일 커스텀이 최강의 할리라는 기준을 갖고있던 나에게 그 모두는 정떨어지는 뚱땡이들일
뿐이었다.
스포스타는 귀엽고 앙증맞은 노란색에 당시로는 획기적이라 할만한 크롬 머플러를 옵션으로
달고있었다. 머플러는 속이 텅 빈 것이어서 엔진음을 여과없이 그대로 뱉어내었다.
악셀을 감아쥐면, 그야말로 동네를 소음천국으로 만드는 그런 넘이었다.
반면, 셔블은 오랜 연식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적인 주인의 손길과 정성에 힘입어 최강의 모델로
변모한 그런 넘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FX타입에 푹 빠져있었고, 그런 나에게 FL의 둔해보이는
앞바퀴와 할리 전매특허의 두터운 프론트 휀더는 나를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투구를 새로운 형상으로 해석한 에프엘의 후론트 휀다가 당시에는 왜 그렇게 답답하게 보이던지...
거기에다, 말대가리로 불리는 헤드라이트는 팻보이의 쌈박한 라이트에 비해서 골동품 그 자체였다.
FL중에서는 팻보이만이 내가 인정하는 모델이었다.
스포스타가 700마넌, FLH의 가격이 770마넌이었다.
무슨 속셈인지 샾 사장은 끊임없이 나에게 셔블을 권장했다.
"너 이거 안사고 스포스타 사면, 나중에 후회한다. 잘 생각해봐"
"아니, 사장님 눈이 있으면 보세요. 어떻게 이 앙증맞은 스포스타와 돼지같은 셔블을 비교해요?
정말로 셔블이 더 좋아 보이세요? 가슴에 손을얹고 대답해 보세요."
"그래!!!"
정말로 답답할 따름이었다.
계속 멋있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럼, 스포스타는 멋이 없어요? 좋기만 하구만... 도대체 FLH 뭐가 멋있다는 겁니까?"
"일단 차대가 멋있잖아. 요즘의 신형들의 사각빔(기름탱크 아래에 위치한)에 비해서 예술적인
모습이잖아. 단단하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알고보면 곳곳에 클래식한 매력을 간직한 물건이지.
무엇보다 싸운드도 끝내주고. 게다가 대한민국 땅에서 셔블중에 이만큼 깨끗한 녀석은
내가 알기로 없단다. 정말로 물건중에 물건이지. 단지 현재의 오너가 갑작스런 자금 악화로
급하게 현금이 필요해서 이렇게 싸게 나온거야. 앞으로도 이런 물건 없을껄..."
따지고 보면, 세월의 흔적을 제외하곤 흠잡을 곳은 없는 물건이었다.
사장님의 표정은 진실했지만, 나는 나대로 '나이가 들어가면 저런 모델이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끊임없는 사장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슴없이 스포스타를 구입했다.
그리고 열흘 후...
이제는 스포스타를 완전히 내 몸의 일부처럼 다룰수 있었다.
정말로 좋았다. 행복했다. 내게 필요한걸 구입하는 것과, 내가 진정으로 갖고싶은 것을 구입하는
차이를 온몸으로 느꼈다.
할일도 없으면서 부다다당 하는 소리를 내면서 시내를 질주했고, 그때마다 천둥같은 소리에
놀라서 내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레이저 광선같은 시선에 황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 망나니에 미친넘이 따로 없지만...
그날도 새까만 레이벤 썬글라스를 끼고 FLH셔블이 외롭게 새 주인을 기다리는 샾에 들렀다.
어찌저찌해서 내가 FLH를 타 볼일이 생긴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의 바이크가 1340이 아닌 1200의 구형으로 기억된다.
스포스타와 똑같은 배기량인데, 덩치가 일반 팻보이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힘이 많이 떨어질것이란
것이 나의 선입견이었다.
그런데...
폭발적인 파워는 아니었지만, 그런데로 잘 굴러갔다.
그리고 발등으로 쳐올려서 기어를 바꾸는것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레버를 밟는 느낌이 조금 색달랐다.
'어쭈! 이것봐라. 이거는 이거대로 매력이 있는걸...'
오바라고 느껴지던 와이드 핸들을 잡고 안장에 앉은채로 답답해 보이던 헤드라이트를 내려다 보니,
평소에 느껴지던 답답해 보이는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뭔가 거대하고 굉장한 녀석의 등짝에 올라탄 느낌이었다.
말대가리 헤드라이트가 나의 갈길을 묵묵히 가르키는것만 같았다.
느긋한 저공비행, 그 자체였다.
탄력을 받아서 달리려는데, 앞차가 느리게 주행하면서 앞길을 가로막았다.
'철커덕'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기어를 한단 내렸다.
악셀을 감아쥐자 투둥퉁퉁~~ 하는 소리에 전율이 일었다.
목뒷쪽부터 등을 타고 소름이 돋아나는걸 느낄수있었다.
황홀감의 극치였다. 가벼운 스포스타와 달리 묵직한 핸들을 살짝 틀면서 몸을 비틀면서 핸들을
당겨서 추월했다. 뭐랄까,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더라면, 내가봐도 내 모습이 멋질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샾앞에 다다랐다.
솔직히 바이크에서 내리기가 두려웠다.
절대로 느껴서는 안되는 셔블의 매력을 단 한번만에 느껴버린 것이었다. 지름신의 강림과 함께....
라이딩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왈,
"이야, 그 바이크 둔하게 보이더니, 막상 주행하니까 다르더라, 특히나 아까 추월할때 핸들 살짝
꺾으면서 몸 비트는 모습이 거의 예술이었다. 예술! 마치 터미네이터 주인공같은 느낌이었어."
"시꾸랏!!!!!!!!!"
당장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제 스포스타 드리고 이거 사려면 100 마넌 드리면 되나여? 당장 파세여!"
"안돼 벌써 팔렸어, 기어 고장난걸 고쳐서 너한테 타보라고 한거야."
"그람, 제가 150, 아니 이백마넌 더 드릴테니 새 오너한테 팔라고 하세요."
"그래도 안될걸..."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데, 새 오너가 나타난 것이었다.
때는 늦었지만, 믿을만한 새치혀를 무기로 셔블의 새 오너를 꼬셨다.
사정사정하는 나에게 새 오너가 하는말.
"절대 안됩니다. 저는 FLH 찾아 전국을 다니다 이놈을 만난겁니다. 이 모델중에 이만큼 깨끗한 넘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스포스타와 이놈중에서 스포스타를 고르셨다구요? 참 취향 독특하시네!!!"
후에 알고보니 그 사람은 할리 매니아중에 매니아였다.
부산에 거주하던 사람인데, 당시에 이미 많은 할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도 귀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FLH셔블의 명성은 매니아들 사이에선 소문이 자자했던 터였다.
특히나 우리보다 할리를 훨씬 일찍 접했던 미국인들이 입을 모아서 칭찬하는 모델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벽에 대가리를 처박은뒤 갈아 문지르면서 후회했다.
분란을 일으킨 이후로 카페에 도배하는 느낌도 있지만, 제 글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는것 같아
올려봅니다. 이 글도 라이더스 21에 올렸던 걸, 장사하면서 시간날때 살짝 손봐서 옮긴 것입니다.
자체만으로도 멋진 셔블을 신형 옵션으로 장식하려는 불필요(?)한 노력을 하는 셔블 오너님들에게
저의 졸작이 도움이 되시길...
참! 제 대화명 페라리69의 69를 다른님들이 출생년도나 좋아하는 섹스 포지션으로 착각 하시던데,
그런뜻이 아니고, 다른 뜻이 있답니다. 말로 하려면 좀 긴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첫댓글 글이 재미있습니다...아랫글들도 그러했지만...전혀 악의가 안느껴집니다..페라리님의 글에서는요..물론 약간은 짖꿏은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ㅎㅎㅎ 꽤 오랫동안 같이 해오셨네요...빠른 시간안에 다시 같이 하시길....^^
네 고맙습니다. 횐님들 꼬릿말 붙어가는게 재미도 나고 보람도 느껴져서 자꾸 들어와 보게 되네요^^
즐겁게 봤습니다. 요즘 제가 님의 그시절 그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셔블.....매력이 많은 할리죠...
정말 한번에 끝까지 읽게하는 버퍼링이 필요없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69 를 이어서 붙이면 태극이 되죠^^
^^; 잼있습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1991년이 아닌가요? ㅋ 세계흥행 수입 2위였던걸로 기억이.......1위가 원초적본능이었구........흑흑 아니면 죄송. 국민학교5학년때 보이스카웃캠프갔다가 오는길에 포스터본 기억이 ㅜㅜ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드라마를 보는듯한 착각이..^^
사랑은 그대 품안에..차인표가 섹스폰을 연주하는 통에 당시 재즈와 밀러맥주 포켓볼이 대 유행 하지요..화장품 역시 마몽드 재즈와인.이런식의 열풍..그런데 우습게도 차인표가 들고 연주했던 섹스폰은 알토 였고 음악은 소프라노 섹스폰이 나왔습니다..초반V-MAX 를 타고 나왔었는데.스프링거 모델도 탔었는 모양이군요
ㅋㅋ 맞아요. 저도 차인표랑 케니G 때문에 멋도 모르고 selmar mark6 테너 색소폰을 샀는데...... 흑흑 연습할 시간이 있어야 느는데 ㅜㅜ
8회에 스프링거와 색소폰 연주 "흑인 오르페" 연주가 나왔는데 사운드트럭 앨범에는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멋진글 잘 읽고 갑니다.. 대구분이시라면 언젠가 한번 뵈야죠...
읽는게 오래 걸렸습니다...그래도 너무 잘읽었습니다....
셔블의추억이라 ㅎ ㅎ ㅎ 용달의추억이 더 어울리는 바이크죠^^ 용달비......암튼 아무리 정비가 잘된 셔블이라해도 100km 댕기면 안됩니다 마이아파 합니다.
정말 리플을 안달래야 안달수가 없는 글솜씨십니다. ^^*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네요.
할리에 대한 소설을 쓰셔두 손색이없을 듯한 글이였네요~ 이런글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71년생이시면 10년이 넘는 나이차이지만 저의 첫느낌과(할리레대한)같은데에 공감합니다..ㅎㅎㅎㅎ
대구에 대한 힘든 기억이 많은데 페라리69님의 글을 읽고는 대구로 함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머님만 아직 대구에 계셔서...가끔갑니다 ^^; 셔블을 보면 저두 잡아야 겠네요.
페라리님의 글중...'촐싹거리면서 쫓아 나가는 좆밥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싫어서입니다.' -> 이 대목이 무슨 내용인지를 떠나서 글솜씨와 순간 언어 구사력 및 순발력에 대하여 높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배우고 싶습니다...ㅎㅎㅎ
아..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글 에서 내공이 느껴집니다.... 동창놈이 셔블할리 갖고있단 소문을 들었는데 언제 한번 찾아가봐야겠습니다.... ^^
타고 다닌 세월보다 밀고 다닌 시간이 ..치매? 걸린 할리 라고해도 흐흐 암튼 재미 있는 놈 입니다. 성격에 딱 어울리는...
그때가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에 비하면 고성능(?) 이었겠져. 그때도 적정 90~110이었죠. 최고 150도 보긴했구여. 오래타삼
제가 하고픈 말 다른 님들이 다 하셔서 덧 붙일 말이 없네요. 즐겁게 읽고 감니다.
장문의글 잘 읽엇습니다...셔블을 마지하지못한 안따까움이 저에게도 느껴지는듯 하는데요 ㅎㅎ ~~
그런 숨넘어가는 셔블이 다시 아엠에프 때 덩값으로 일본으로 많이 넘어갔다는 소문에..가슴아파햇던 추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