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이 아니다. 어이없기 그지없는 이 얘기들의 출처는 대한민국 공영방송 드라마 대사다. 그것도 회당 특특A급 원고료를 ‘요구’하는 한 드라마 작가의 대본에 적힌 대사이고 파급력이 센 중견 배우들의 입으로 남녀노소, 대한민국 드라마 팬들에게 전달됐던 대사다.
(작가의 특급 원고료에 관해서는 시청율이 하늘을 찔렀던 초기 드라마 이후 기사로 나오기도 했거니와 유명작가 반열에 들기 이전,방송작가들 사이에 전설이 된 스토리가 있다)
황당하기가 특특특A급인 장면들을 좀 나열해 본다. 전부 황금시간대에 공중파를 통해 국민에게 고스란히 방송됐던 드라마 속 장면들이다.
2009~20010년 MBC 주말드라마
각각 보석에서 이름을 따서 지은 4남매의 애정만세 스토리. 늙어 밖에서 사생아를 낳아 온 부친과 매사에 사고뭉치인 모친을 4남매가 쫓아내는 설정에 뒷말이 무성했다.
예순이 넘도록 미혼으로 사는 여성이 “젊어 경상도 출신 조연출과 연애하면서 이용만 당했다”고 옛날 얘기를 하자 ‘비취’ ‘루비’ ‘산호’ ‘호박’이 이름인 주인공 남매들의 할머니가 맞장구 치며 ‘갱상도 문디’들을 비하한다.
그 외 장면 무수...
2007~2008년 MBC 저녁 일일드라마
여주인공과 검사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였다.
어느 날 엔딩이다. 시대가 불분명한 궁궐내실을 배경으로 드라마의 조연 2명이 한복 차림을 하고 나와 쇼를 하던 장면이다. 젊은 여자 조연 두 명이 대머리가발을 쓴 채 사극 대사 흉내를 내다가 원더걸스의 ‘텔미’ 춤을춘다. 이어 동성애 액션을 보여주다가 급기야 1명이 사약을 마시고는 앙드레 김으로 변신한다. 25분 짜리 일일 드라마에서 15분을 할애해 내보낸 장면이다. 작가 얘기로는 조연 배려 차원이라던 ‘엽기 사극개그패러디’였다.
시할머니가 여주인공의 나팔관이 막혀 임신이 힘들어지자 내외종간인 사촌 동생을 딸로 입양하라며 턱없는 요구를 하거나, 탕수육은 공장서 가져와 그대로 튀겨내고는 것이고짬뽕국물은 라면스프로 맛을 내기 때문에 중화요리는 ‘저질’이라고 방송에 나가 동네 중국집 사장님들의 원성을 듣거나, 출연 연의 입을빌려 “시청자 수준을 뭘로 보고”라며 ‘무한도전’의 수준을비하해서 네티즌의 공분을샀던 적도 있다.
띠동갑 연하와 결혼이라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극적으로 미화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 외 장면 무수…
2005~2006년 SBS 밤 10시 주말드라마
자기 딸과 자기 아들을 교배시키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생모가 딸을 며느리로 들이는 설정을 위해 많은 장치를 동원하느라 작가가 아주 애쓴 드라마다. 이 장치는 주인공의 비밀을 아는 출연자는 모두 죽여버리는 장치였다.
비밀을 아는 자는 하나씩 제거하는데 거의 ‘소년탐정 김전일’ 수준과 맞먹을 황당 스펙터클… 출연자들이 죽어 나갈 당시는 거의 ‘상조 드라마’수준이었다.
예컨대 ‘웃찾사’를 보다가 이름은 ‘피아’ 성은 ‘소’인 출연자가 돌연사하거나… 주인공 아버지의 전처는 사고사, 비밀의 단서를 알게 된 가정부는 식물인간 정도의 언어불능 전신마비환자가 되거나, 주인공인 딸이 며느리가 되는 과정에서 계모의 전 남편, 현 남편 모두 죽고, 여주인공의 선배언니와 선배의 남편도 죽는… 대학살극이 드라마에서 벌어진다. 탄식이 나올 법 하다. “하늘이시여!” 아, 물론 학살극은 펜을 쥔 작가 마음대로.
드라마 중간에 정치인 브리핑도 과감히 나왔다. 무려 1분20초. 로 나오는 남자주인공이 행정도시를 취재하는 장면에서 난데없이 당시 현직 행정도시 건설청장이 장황한 정책브리핑을… 잠깐 다큐멘터리인줄 알았다.
그 외 장면 무수…
이 드라마는 표절 논란도 있었다. 딸을 며느리로 맞는 상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일본작가 렌조 미히코의 단편소설 ‘어머니의 편지(1984년)가 딸이 며느리가 되는 플롯이다.
2004~2005년 MBC 저녁 일일드라마
온가족이 보는 일일드라마의 주인공이 무당이다. 신내림, 빙의 등 범상치 않은 소재를 범상한 일상처럼 그려놓았다. 무당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 한편이 무당을 킹왕짱 꽃선녀같은 존재로 각인, 무속인의 인지도 상승에 한 몫 했다. 아, 물론 드라마 성격에 맞게 귀신도 나왔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던 귀신은 주인공의 억하심정을 적절히 해결해줬다. 입양아를 개구멍받이로 지칭하고 입양이 잘못된 제도라는 뉘앙스의 대사도 기억이 난다.
그 외 장면 무수...
2002~2003년 MBC 저녁 일일드라마
엄마를 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배다른 동생의 애인을 뺏는 드라마. 여자주인공이 아주 오랜만에, 어쩔 수 없이 찾아 온 아버지와 식탁을 마주한 자리에서 소주병을 깨서 들고 발악하는 장면이나 새엄마와 쌍따귀를 주고받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이 소리쳤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작가가 피고름으로 쓴 대본, 엇다 던져요!"
드라마 작가의 대모격인 김수현 씨는 ‘부모님 전 상서’에서 출연자 김해숙의 대사를 빌려 이런 말을 했다.
"작가 그거 얼마나 골 빠개지는 일이냐. 누구는 그러더라, 피고름으로 쓴다고. 근데 피면 피지 고름은 뭐냐, 더럽게."
설마 김수현 작가가 이 드라마를 오마쥬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2000~2001년 MBC 주중 드라마
4명의 여자에게 각각 얻은 4명의아들을 둔 아버지와 후처, 그리고 아버지의 두 여자가 아들들의 연애 및 결혼에 개입하는 설정이다. 복잡하다. 그것도 상당히. 4형제가 얽히고설키니 그럴 밖에. 생수배달부가 재벌 사위가 되는, ‘남자 신데렐라’ 얘기다. 남성들의 완소필독 작품이 되기를 작가가 추구했던지 아예 형제들이 모두 여자 덕에 팔자를 편다. 평강공주 만나 팔자 폈던 고구려 왕자이름에서 드라마 제목을 따온 것도 그런 이유다. 연출자가 '이런 드라마 도저히 연출 불가'를 선언했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 외 장면 무수...
1998~1999년 MBC 일일드라마
연장 재연장 또 연장 다시 연장해서 ‘보고 또 보고..늘리고 또 늘리고’라고 불렸던 드라마다. 엇박자 겹사돈이 소재. 마에스트로 정명훈 남매가 겹사돈을 맺은 것처럼 우리 문화에 겹사돈 문화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서열을 역행, 언니가 아랫동서, 동생이 형님이 되는 설정으로 센세이셔널하다는 평을 들었다. 지나친 늘이기로 그해 최악의 드라마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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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SBS 주말드라마
이만큼 읽으면 드라마 작가가 누구인지, 작품 제목이 없어도 알 것이다. 맞다. 임성한 작가다. 시청자들은 이제 임성한 씨가 고집하는 드라마 징크스까지 알고 있다. 임 작가는 ‘드라마 제목은 반드시 5글자여야 성공 한다‘는 원칙을 이제껏 고수해왔다.
그래서 ‘인어공주’는 ‘인어아가씨’로, ‘온달왕자’는 ‘온달왕자들’로, ‘하늘이여’는 ‘하늘이시여’로 바뀌었다. 그 외 드라마들도 사정은 같다. 그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시청율이 나쁘지 않았던 것이 작명에 기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1년, 드디어 임성한 작가는 징크스와 결별한 것일까? 이번엔 제목이 4글자다. 드라마 쪽박나면 다시 5글자 제목으로 회귀할 텐데 그럴 일은 없을 듯싶다. ‘안티도 정들면 팬’이라고 나쁜 드라마에 중독수업 받은 시청자들 평도 나쁘지 않다. 인터넷 게시판 별 5점 평점 중 3점이다. 동 시간대 MBC드라마 ‘욕망의 불꽃’이 끝나자 시청율 15%대로 올랐다고 한다.
‘신기생뎐’에서 제목 징크스는 떨쳤으나 작가의 원래 글쓰기 취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작가는 ‘기생문화’가 우리의 전통이라서 드라마 주제로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생뎐’ 전체 50부작의 절반이 넘어 방영하도록 ‘전통’의 ‘ㅈ’도 못 보았다. 전통은커녕 성적 페티쉬를 연상하게 하는 원색한복 치마가 너울거리는 장면을 초반부터 보았다. 속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복 치마는 시스루에 가까웠다.
임성한 작가가 그리려고 하는 기생문화가 어떤 문화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러나 ‘신기생뎐’에서 저 유명한 영화 ‘서편제’나 여성동아 장편소설이 원작이었던 ‘춤추는 가얏고’같은 줄거리와 영상을 기대하기는 글렀다.
왜냐고?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애초 ‘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 그 지긋지긋한 숙명적 ‘삶’이 정말 징글징글하지만 때론 눈물 흘리며, 혹은 그래서 공감하며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매회 시청자를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할 복수와 복수, 반전의 반전, 오로지 그 구조에 치중하는 줄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대생 주인공과 여대 친구들이 모여 70이 넘은 조부모와 초등학생 놀이도 안 되는 ‘바니바니 게임’을 하고, 지하철을 탄 일본인 청년들이 일본 말로 한국 여성을 ‘꼬시며’ 비하하는 장면이 나오고, 심지어 젊은 남성의 복근을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하는 것을 보면 정상은 아니다. 드라마 전개와 아무 상관없는 이런 기이하고 의미 없는 내러티브를 작가는 드라마의 알찬 재미로 알고 쓰는 모양이다. 이런 장면을 보다보면 이 작가의 상상력은 놀랍기 만한 4차원이 아니라 외계 수준으로 봐야 한다. 참으로 전파낭비요, 드라마 패악이다.
“어서 빨리 손님 방에 들어가야 돈을 팍팍 텐데...”라며 친딸이 아니라고 딸을 기생을 만드는 계모, 또한 그 딸을 팔아 번 돈을 챙기는 애비.
개를 외아들보다 사랑하고 개를 보고 배우라는 또 다른 애비.
자식을 형님 댁에 양자로 들이고 그 자식을 핑계로 사업자금을 끊임없이 받아내는 또 다른 애비.
이런 애비들과 부창부수인 어미들이 장단을 맞추고 그 자식들이 얽히고설키는 드라마. 드라마의 끝이 보인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하늘이시여’에서 작가가 써 먹었던 줄초상 설정도 있었다. 갑자기 ‘숙면’ 사망하거나 ‘머리카락 잡기’로 사망하는 등 2연타 장례가 벌써 있었다. 이를 보고 3번째 죽음을 예축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 3번째 그냥 죽는사람 예측해볼까요~~ 할아버지 죽을때 사란이 머리쪽으로 손뻗으며 머리~~하며 죽은거 라라한테 얘기했으니까 어느날 라라가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살아생전소원이 사란이 유전자 검사였으니 소원들어주느라 검사한후 손녀딸이라는 결과보고 사란이 불러서 말하려고 손뻗다가 죽음 케막장
... 말초신경을 건들고 내면의 이기심을 끌어 올리고 악마같은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것봐라, 이것이 현실이다.' 라고 던져놓는 그 재주는 왜 임성한의 드라마를 '기형' 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김수현의 장점을 골라 갖춘 작가는 노희경, 김수현의 단점만을 골라 갖춘 작가는 임성한." 이라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김수현과 임성한은 참 많이 다르지만 참 많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출처 블로그 마리, ‘김수현, 노희경... 그리고 임성한)
드라마를 보고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면 안 되나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언제나 화려하다. 늘 재벌이 주인공이다. 연기 잘하는 중견배우들과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드라마세팅, 그리고 반전과 복수로 충만한 줄거리로 높은 시청율을 보장한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은 유독 독한 안티가 끓는다. 이 글도 안티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보이지 않아서이다. ‘인간’이 없는데 무얼 담아낼 것인가.
‘신기생뎐’. 작가가 피고름으로 쓴 대본, 이 정도로 평가했다. 피고름으로 썼다기에 이만큼길게 설명했다.
그의 드라마가 이번에야말로 부디 ‘막드’나 ‘또드’라는 말을 듣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임성한의 드라마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