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면체의 완성
전수오
누군가가 해저에 이미 광케이블을 잔뜩 깔았는데
시인은 자신이 보내는 메일이 꿈이나 혼처럼 허공을 날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상어가 케이블을 물어뜯기도 하는데
시인은 자신의 방에서 몽상을 합니다 태중에 있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지상에 닿지 못하는 무릎을 끌어안고
나는 그 시인의 기억입니다
나는 오하이오에도 북극에도 한국에도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군요
'차갑다'라는 말은 사실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생각으로 몸을 짓습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흰 육면체 모양의 집에서
이따금씩 비누 거품 같은 음성이 녹음되고 재생되고
눈에 푹푹 발이 빠지는 날이면
나는 시인에게 돌아가 보기도 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용한 그의 집에 어울리도록
들리지 않는 노크를 하고
'안녕 내가 왔어'라고
소리 내지 않고 생각하며
문을 열어 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이상하군요
집 안의 벽과 바닥 천장에 수많은 못이 빈틈없이 박혀 있어요
한 발짝도 디딜 수 없을 만큼 빼곡하고 징그럽게
참 이상한 일이네요
기다려도 시인은 오지 않고
비누 향 같은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요
나는 조용히 문을 닫습니다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하이오에도 북극에도 한국에도 있습니다
유령처럼 나는
- 『빛의 체인』 민음사, 2023.
첫댓글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