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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장 1~8절/부활의 증인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부활절은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리는 성탄절보다도 더 의미 있고 고백적인 절기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진리도 이 사실을 전하고 증명하고 고백하게 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시간 짧은 시간에 귀한 진리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1. 천사의 증언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남겨 주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이 여인들은 금요일 저녁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하여 요청한 사실과 요셉이 자기가 죽으면 사용할 개인 무덤에 예수님을 급히 안장한 사실을 다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3, 46~47절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을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이들은 안식이 지난 다음날 아침 일찍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그면서 그들은 서로 어떻게 무덤의 돌을 열 수 있을 지를 논의했습니다. 여자들인 고로 큰 돌을 여는 것이 염려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누가 무덤을 마가복음은 큰 돌을 굴려줄 수 있을까를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무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무덤의 돌을 천사가 굴린 것입니다. 마태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3절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여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무덤 안 오른쪽에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천사는 여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여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찾는가?”라고 하면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다”고 말하며 그가 누웠던 곳을 가리켰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7절에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공관복음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무덤을 빈 무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이 죽은 예수를 찾아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드리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에게 향유를 부어드리는 관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식 후 첫날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붓기 위하여 일찍이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이때 천사는 예수님이 여기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의심할까해서 그를 두었던 곳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둘째, 천사가 여인들에게 한 말씀을 누가복음 24장 7절에서는 “갈릴리에서 말한 것을 기억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무덤 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에 정신이 없는 여인들에게 천사는 이성적으로 이 사건을 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생전에 가르쳤던 말씀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즉 말씀에 대한 지식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은 놀라운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기념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그냥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평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인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부활의 진리를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우리가 이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부활의 진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 15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는 우리 구원의 여부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천사는 믿을 수 없는 부활의 사건 앞에서 반신반의하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생전에 가르쳐 주신 말씀, “생전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의 진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말씀을 공부하고, 암기하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성경 기자들의 증언들
이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함을 살펴봅시다.
첫째, 복음서 기자들의 증언.
마태복음 28장 11~15절에 “여자들이 갈 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누가복음 24장 32~33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요한복음 20장 27~28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유대교 장로들은 모여 의논하고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에게 돈을 주고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거짓 소문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거짓에 속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도적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부활하심으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그들에게 부활에 관한 소식을 성경을 통해서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이셨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의심 많던 제자 도마에게는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을 넣어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사랑하는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심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 사도의 증언.
고전 15장 3~8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상의 구절들은 부활을 둘러싸고 일어난 초대기독교의 상황에 있어서 확실하게 부활을 증언하는 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것들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자신들이 사모한 나머지 만들어 낸 신화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체의 바람을 하나로 묶어서 내어놓은 고백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도저히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근거로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사실을 전하는 제자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고 행동에 나섰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부르심을 받고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세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심을 증언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3. 증언의 명령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전하면서 주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셨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을 명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7절에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갈릴리 지역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3년 동안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사역하였던 장소입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정이 가고 추억이 깃들어있는 곳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 제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사역을 시작하신 곳에서 제자들을 다시 불러 그들을 재무장시키시기 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가운데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온갖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자 제자들은 낙심이 되어 낙향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가운데 핵심인물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본래의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이들을 찾아오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사명을 재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나의 삶의 현장 속에서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이미 찾아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과거의 연약한 모습과 행위를 묻지 않으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품으시며 능력을 주시어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인생은 새롭게 변하게 되고 새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주님은 우리 역시 장차 부활할 그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전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제 우리는 그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그대로 부활하게 되는 영적 원리가 적용되어지는 특권을 가진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고전 15장 23절에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만을 축하하고 찬양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불의와 부정을 타파하고 승리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이념을 새롭게 다지는 강연회가 아닙니다. 부활절의 축복된 의미는 우리에게 부활의 고백과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며 이 죄악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래서 모든 죽음으로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안 죽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 것입니다. 아니 죽어도 다시 살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 귀한 진리의 말씀을 고백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들은 이 귀한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고백하십니까?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온전한 고백과 함께 새로운 사명, 부활의 증인들로서 끝까지 충성하시어 주님의 재림과 함께 장차 임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