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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名문장, 낯선 공간이 지닌 힘
“당신과 나는 집 이외에도 각자의 기예를 지닌 사람이기에, 집의 기예를 추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두 가지 어려운 일을 동시에 좇기란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보통은 파트너 중 한쪽이 집을 좇는 것으로 충분하다. 보통 이 사람은 여자다. 다른 한 사람은─보통 남자로─집이 꾸려지고 살림이 챙겨지는 모습을─단 그이 손에 의해서는 아니다─흐뭇이 바라볼 수 있다. 이게 집일이다.”
―조애나 월시 ‘호텔’ 중
작가는 결혼에 실패하며 호텔을 전전한다.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그녀는 낯선 호텔에 대한 감상으로 이 시작을 풀어낸다. 호텔은 상징적인 곳이다. ‘어머니’나 ‘아내’라는 명목으로 짐을 질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호텔은 ‘우리 집’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처럼 나도 호텔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호텔은 편안했고,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한 안락감을 주기도 했다. 보통 단기 투숙이 기본이었지만 장기 투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호텔은 여성에게 남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육아를 비롯해 온 집을 쓸고 닦으며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박수는커녕 당연시 여겨졌던 가사노동들. 작가는 ‘호스트’에서 ‘손님’이 되었던 경험을 호텔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여성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다사다난한 경험과, 실패로 수렴될 수밖에 없었던 일들. 그래. 내밀한 고백은 오히려 낯선 곳에서 솔직해지는 법이다. 내 나이 서른다섯. 친구보다 가끔은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안정감을 느낀다. 조애나 월시가 호텔에 가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처럼.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 만난 여행객에게 가장 내밀한 고백을 늘어놓은 것처럼. 장소가 주는 힘은 이토록 위대하다.
✺ 호텔(오브젝트 레슨스 1) | 저자 조애나 월시 | 역자 이예원 | 출판 플레임타임 | 2017.9.15.
✵ 책소개
플레이타임의 ‘오브젝트 레슨스’ 1권. 호텔을 매개로 언어 실험을 펼치며 결혼과 가족,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창조적 논픽션. 일상의 틈새와 여성의 욕망을 파고드는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작가 조애나 월시는 결혼 생활이 불행으로 치닫는 와중에 호텔 리뷰어로 일한 경험에 기반해 이 책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호텔들을 소개하고 품평하는 책일까? 혹은 호텔들의 종류와 그 공간들의 기능과 감별하는 책?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호텔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호텔의 반대인 집과 가족에 관한 책이기도 하며, 또한 비범한 성찰과 언어 사용, 형식 실험으로 이 모든 소재를 낯설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손꼽힐 작가로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은 이 책에서 월시는 불안과 아픔, 유머를 뒤섞은 매혹적인 솜씨로 호텔-집이라는 공간을 매만진다. 그녀의 손길 아래 익숙했던 소재들이 문득 새로운 모습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 저자 : 조애나 월시
저자 조애나 월시(Joanna Walsh)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는 글과 건조하되 유머러스하며 예사롭지 않은 언어 활용으로 일상의 틈새와 언어의 미끄러짐에서 불거져 나오는 욕망과 증상, 의미와 혼란을 탐구하는 작가. 단편소설과 에세이라는 느슨한 분류로 묶어 낸 저서로는 『Break.Up』(근간, 2018), 『말의 끝 지점에 남은 세계들』(2017), 『현기증』(2015/16), 『호텔』(2015), 『처녀 불알』(2015), 『프랙털』(2013)이 있으며 최근 디지털 소설 「씨앗」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4년 여성 작가와 그들 작품에 대한 기성 출판계의 편파성을 바로잡고자 #readwomen2014 해시태그 운동(트위터 ID: @read_women)을 시작했으며 2017년 영국 예술재단으로부터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부문’ 펠로십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영어로 번역된 작품의 여성 작가 및 해당 작품의 번역가에게 공동 수상하는 ‘워릭 번역 여성 작가상’을 공동 설립했다.
✵ 역자 : 이예원
저자 이예원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주나 반스의 『나이트우드』(근간), 앨리 스미스의 『호텔 월드』, 제니 페이건의 『파놉티콘』, 그래픽 노블 『반 고흐』, 『바늘땀』, 『늑대 인간』 등 다수가 있다. 현재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영어로 옮기는 중이다.
✵ 목차
1부 호텔 유랑
1 호텔 유령
2부 여행 가방에서 찾은 히스테리의 단편들
2 호텔 프로이트/ 3 결혼 엽서/ 4 홈텔/ 5 호텔 일기/ 6 『독일 하숙에서』/ 7 호텔 막스 (브러더스)/ 8 대화 요법/ 9 호텔 막스/ 10 호텔 스물여섯 곳에서 보낸 엽서
감사의 말
호텔 에세이_이예원/ 원주/ 찾아보기
✵ 책 속으로
p.56
잠자리 정리를 거들어 줄 사람이 난 필요했다. 하루가 다 저물도록 집 방방이 침대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때가 왕왕 있었다. 아예 그대로 다시 밤을 맞는 침대도 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고서야 누가 정리해 준다? 저희 스스로 침대를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는 머리가 덜 컸고, 갓난아이에 불과했고, 엄마가 필요했고, 유모가 필요했고, 가사 도우미가 필요했다.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마침 앞치마를 두른 사람이 나 말고 달리 있었던가?
p.57
당신과 나는 집 이외에도 각자의 기예를 지닌 사람이기에, 집의 기예를 추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두 가지 어려운 일을 동시에 좇기란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보통은 파트너 중 한쪽이 집을 좇는 것으로 충분하다. 보통 이 사람은 여자다. 다른 한 사람은-보통 남자로-집이 꾸려지고 살림이 챙겨지는 모습을-단 그이 손에 의해서는 아니다-흐뭇이 바라볼 수 있다. 이게 집일이다.
p.62
되감기: 결혼 생활에 숨어 있는 생각의 폭력 중 하나. 당신이 집에 없을 때 난 당신 호주머니를 뒤지기 좋아했다. 무엇이든 입증해 줄 단서를 찾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무엇이 뭐가 될지는 나도 몰랐지만. 주머니가 있는 것도, 주머니에 넣을 것이 있는 것도 남편이다. 내 호주머니들은 작고, 아예 봉해진 경우도 있다(뭐든 집어넣었다가는 옷매무새를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장치다). 나는 호주머니에 뭘 넣는 일이 드문 반면에 당신은 늘 호주머니를 영수증, 메모지, 수개월 지난 불법 주차 딱지 따위로 가득 채웠다. 바닥이 닳고 닳아 내용물이 옷 안감으로 흘러내릴 지경에 이르도록 주머니를 채웠다.
p.113
여자가 떠난다. 남자도 떠난다. 세 명의 여자가 남는데 각기 혼자 앉아 있다. 우리는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레스토랑에 앉은 여자들에게 응집이란 없기에. 미끄러지듯 서로를 비껴 나는 우리에게 연대란 없다. 혼자인 여자는 언제나 다른 여자들과 비교돼야 한다. 혼자인 여자는 위험하다. 맥락이 없는 한 혼자인 여자에게는 나이가 없다(아니면 다만 덜 나이 든 것에 불과하거나). 저를 완성해 줄 다른 여자들도, 그렇다고 아이들도 주변에 없는 여자는, 남자에 의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앉은 초대장이다.
(혹은 완성되지 않은 그 자체로 위대하거나.)
✵ 출판사서평
건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언어로 일상의 틈새와 여성의 욕망을
파고드는 작가 조애나 월시,
호텔을 매개로 비범한 언어 실험을 펼치며
결혼과 가족,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창조적 논픽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조애나 월시는 결혼 생활이 불행으로 치닫는 와중에 호텔 리뷰어로 일하면서 여러 호텔을 전전한다. 그리고 당시의 경험과 감정에 기반해 『호텔』이라는 책을 짓는다. 그렇다면 이 책은 호텔들을 소개하고 품평하는 책일까? 혹은 호텔들의 종류와 그 공간들의 기능과 감별하는 책?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호텔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호텔의 반대인 집과 가족에 관한 책이기도 하며, 또한 비상한 성찰과 언어 사용, 형식 실험으로 이 모든 소재를 낯설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손꼽힐 작가로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은 이 책에서 월시는 불안과 아픔, 유머를 뒤섞은 솜씨로 호텔-집이라는 공간을 매만진다. 그녀의 손길 아래 익숙했던 소재들이 문득 새로운 모습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결혼 생활, 집, 집일, 집일하며 기다리는 여자……
호텔을 출발점 삼아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지적이고도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헤치는 자전적 에세이
‘호텔’이라는 제목을 버젓이 달고 있지만 이 책은 결혼과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제도들에 속한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집일homework에 얽매여 있지 않은 여성이 얼마나 되겠으며 이들이 호텔 생활을 꿈꾸는 것은 또 얼마나 그럼직한 일인가.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도 집과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일의 다수가 당연히 그녀 몫이 되니, 이 일은 바깥일과 달리 언제나 똑같이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집일은 닫힌 문 뒤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침대를 만들기 위해 판자를 자를 때와는 달리 이 일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침대를 정리할 때마다 시간은 도로 물린다. 집일(청소, 다림질, 빨래)은 도로 물리는 일이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집일도 하나의 기예고 보통 파트너 중 한 명이 이 기예를 좇게 되는데 그 사람은 대개 여자 쪽이다, 그에 따라 이이는 남편이 없을 때는 그를 기다리는 존재, 있을 때는 그에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오늘 당신은 퇴근하고 한잔하러 갔다. 난 이미 상당한 시간을 우리 아이들과 걔네 친구들을 돌보며 보내고 있던 참이다. 난 시계를 오 분 전에, 이 분 전에 확인했고, 이 분 후, 오 분 후, 십오 분 후, 삼십 분 후에 확인했다. 당신에게서 마침내 연락이 왔을 때 나는 당신의 의사를 묵묵히 그리고 나부시 받아들였고, 더 늦게 놀다 오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다. 결혼이란 이런 것일 테지, 서로를 위해 각기 공간을, 각자의 방을 마련해 주는 것. 그런데 내가 방에 그리고 집에 있는 지금, 당신은 그렇지 않다. 오늘밤 나는 결혼 생활을 경험하고 있으나 당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직장 동료들과 한잔하러 갔겠지만 나는 결혼이 아니었다면 이 방에 있지 않았을 테니까.”
“이 와중에 당신은 당신 역할대로 저만치서 바라보며 흡족해했다. 아이들을, 동물들을(당신과 내가 함께 우리 집에 채워 넣은 존재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이들은 물론 또 저들 나름의 판자로 만든 침대를, 그리고 그 침대의 계속적인 정리와 정리의 물림을 필요로 했다. 전자가 한 행위면 후자가 또 한 행위였다. 당신은 내가 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길 좋아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을 스스로에게 허용했다. 물론 최선의 의도에서 그랬겠지만, 내 일새를 흡족히 바라보기 위한 의도에서 그랬겠지만 말이다.……이렇듯 내 일은 바라봄의 대상이었던 반면에 나는 당신이 하는 일을 볼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화면이란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법이니. 당신은 외롭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는 언제나 지켜볼 상대가 있었으니까. 이런 걸 일컬어 보살핌이라고 한다.”
결혼과 더불어 보금자리로서의 우리 집을 꿈꾸던 그녀는(“우리 집이란 곧 희망에 있었다”) 더는 우리 집을 희망하지 않게 된다. 결혼 생활은 불안함과 수치심으로 가득한 경험으로 변모한다.
“당신이 집에 있으면서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불안할 것이다. 당신이 지켜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런 방식으로조차 집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 날 불안하게 만들 터였다. 내겐 그 눈길이 필요했다. 당신이 보지 않으면 그건 일이 아니었다. 일이 아니라면 그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었다. 당신이 보지 않는 한 내 집일에는 갈피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이 여기에 없으므로 그때만큼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놔두고 당신 혼자서만 뭔가 하고 있으리란 생각으로 마음 졸이는 일도 없다. 설사 내가 여기서 혼자, 언제나처럼,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해도. 이는 허락된 일이다. 난 당신이 저녁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불만이었다. 당신이 하는 무해한 일 하나하나가 나를 업신여기는 것만 같았다.”
결국 결혼은 파경에 이르고 월시는 호텔 리뷰어로 온갖 호텔을 오가게 된다. 동경의 대상이자 도피의 약속을 제공하는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그녀는 안식을 누렸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하다. 호텔에서는 숙박비를 치르는 한 뒤치다꺼리할 걱정 없이 마음껏 여유로이 지낼 수 있다(“호텔에 있는 동안 나는 규칙일랑 훌훌 까먹고 샴페인으로 욕조를 채울 수도 있고 텔레비전을 창밖에 내던질 수도 있다. 내 행동에 가타부타할 사람 하나 없는 곳이 호텔이다”). 그럼에도 호텔은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며(“호텔은 머무르기 위한 곳이지만 여기서 가능한 머무름이란 그 반대를, 즉 떠남을 아우리는 머무름이다”), 여기서는 무엇도 시작할 수 없고(“우리는 우리가 그곳에 잠시 머무를 뿐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기에 그곳에서 우리의 미래를 짓고자 생각지 않는다”) 무엇도 끝낼 수 없다(“난 끝을 내려고 힘들여 나아가고 있다. 당신을 떠나기까지 했으나 여전히 결말은 당도하고 있지 않다. 결말은 호텔이라는 곳에는 당도하지 않는다”). 그녀는 호텔을 떠난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가게 될까? 다시 집과 가족을 구하게 될까? 행복해질까 아니면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란 그녀가 불행과 욕망을 증상 삼아 살아가는 법을 앞으로도 계속 배우리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겪고도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증상들을 잃는다면 나 또한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시중들고 시중받으리라는 희망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희망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이건 얼핏 들리는 것만큼 희망 없는 일이 아니다).”
“간접적인 것, 은유, 실언은 다른 그 무엇을 능가하는
직접성을 띨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언어와 형식의 실험을 통해 경험의 근원에 다가가고
익숙한 서사에 읽기의 쾌감을 선사하는 매혹적인 글쓰기
『호텔』은 물론 호텔이라는 곳, 나름의 기능과 내부 공간과 규칙을 지닌 세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또한 온갖 언어유희와 뜻밖의 인용과 예민한 관찰력이 이 세계를 (그리고 물론 집과 가족이라는 반대편 세계도) 굴절시키고 해체하는 책이다. 소격 효과와 낯선 두려움이, 이로 인한 지적이고 감각적인 쾌감이 책 전체에 출렁이며 독자에게 거리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한층 강한 몰입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의 ‘도라’ 사례 논문, 마르틴 하이데거, 메이 웨스트, 캐서린 맨스필드, 오스카 와일드, 막스 브러더스 등의 글과 말이 종잡을 수 없게 인용되지만 이 말들은 은유나 환유, 혹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효과를 내는 장치가 되어 그녀 자신의 경험 및 감정과 묘하게 접착된다.
『호텔』의 매력 중 하나는 이 같은 언어 활용을 통해 익숙한 소재를 비틀어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는 점이다. 『호텔』은 형식상의 실험을 감행해 오늘날 우리(특히 여성들)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조건들, 즉 불행한 결혼 생활, 불평등한 가사노동 분담, 정신적 우울, 익숙하지만 사고의 대상이 되지 않는 공간 등을 가시화하고 감각과 성찰의 대상으로 만든다. 아마도 이것이 글쓰기가 우리의 세상을 비추고 감각을 일깨우는,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유력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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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약해 온 옮긴이 이예원은 이 책에서 자신만의 에세이 쓰기에 도전했다. 「호텔 에세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옮긴이는 지은이만큼이나 인용의 미학을 활용해 호텔과 집, 여성과 글짓기에 대한 성찰을 전개한다. 옮긴이가 징검다리처럼 배치한 인용문과 사색을 따라 읽으면서 내면적 성찰의 공간을 향한 여성들의 열망을, 또 글을 번역해 읽고 번역해 쓰는 여성으로서 제안하는 연대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타임이 펴내는 ‘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오브젝트 레슨스’Object Lessons는 영국 블룸스버리Bloomsbury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시리즈다.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로 한 아름답고도 짧은 시리즈”를 기치를 내걸고 한 권에 하나의 오브젝트, 제한된 분량,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글쓰기를 통해 그냥 거기 있는 듯 보였던 대상들의 감춰진 이야기를 독창적인 필치로 풀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플레이타임 출판사는 현재까지 출간된 30여 권 중에서 현지의 반응과 국내 독자들의 관심사를 고려해 『호텔』, 『쓰레기』, 『패스워드』, 『유리』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 네 권은 모두 우리가 그간 당연시하며 지나치던 사물들에 시선을 쏟고 새로이 바라보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니며, 그와 동시에 각 권이 저마다 고유한 빛깔을 발하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오브젝트 레슨스’ 한국어판을 그 자체로 매혹적인 하나의 오브젝트로 만들고자 단순한 해설 식의 옮긴이 후기를 피하고 옮긴이들이 집필한 ‘독립적인 에세이’를 권말에 추가했으며, 각 오브젝트를 부각하면서 시리즈의 일관성도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커버로 본문을 감쌌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내가 만난 名문장, 낯선 공간이 지닌 힘(이소호 작가), 동아일보 2022년 07월 11일(월)〉, Daum, Naver 지식백과, 인터넷 교보문고/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